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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3

       “으아.”

         

        괴상한 소리를 내며 잠에서 깨어났다. 지금 몇 시지? 

         

        어제 과음을 한 탓에 머리가 작살날 것 같았다. 처음에는 주량 맞춰서 마시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설마 한 잔으로 취기가 올라왔을 정도로 독할 줄은 몰랐지.

         

        그런 주제에 맛은 주스 같아서 중독성이 있었다. 결국 알고도 퍼마시다가 필름이 끊겨버리긴 했는데….

         

        그래도 로테와 나누었던 이야기가 기억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야 그렇겠지. 금안족이 어떤 종족인데?

         

        생각을 정리한 나는 눈을 감은 채로 허리를 접었다. 어젯밤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머리에서 재생되는 탓에 싱숭생숭한 기분이었다.

         

        설마 살리에르 가문에서 핵물리 연구를 하고 있었을 줄이야. 아니, 여긴 마도학이 주류니까 핵마도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하려나.

         

        어쨌건 달가운 상황은 아니었다. 마왕은 어떻게든 잡는다고 쳐도, 그 이후가 걱정이었다.

         

        그런데 그럴 바에야 내가 처음부터 위험성을 말해 주는 편이 낫겠지. 그럴 생각으로 로테에게 수소폭탄의 설계 방법을 가르쳐 줬다. 물론 시간이 시간이다 보니, 자세한 것까진 얘기하지 않았지만.

         

        이쪽 세계 사람들도 바보는 아니다. 그건, 내가 없어도 언젠가는 개발될 전술 무기였다. 결국 만들어질 재앙이라면, 이쪽에서 잘 감독해 주는 게 경험자의 책무 아닐까.

         

        앞으로 바빠지겠지. 나는 남은 생각까지 말끔히 정리하고는 눈을 천천히 떴다.

         

        “어우.”

         

        눈이 건조하긴 건조한가 보다. 어째 마른 풀뿌리처럼 쩍쩍 갈라지는 듯했다.

         

        나는 눈두덩을 꾹꾹 짓누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제야 바로 옆에서 누군가가 누워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뭐야.

         

        불온한 기운이 양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포도주의 영향 때문인지 아직도 볼이 화끈거렸다.

         

        나는 슬며시 고개를 내렸다. 그러자

         

        나는 슬며시 고개를 내렸다. 그러자 와이셔츠 목 소매를 반쯤 풀어놓은 채 잠들어 있는 로테가 눈에 딱 들어왔다.

         

        “아?”

         

        조현되지 않은 멍청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순간이었다.

         

        설마 사고라도 쳤나?

         

        아니. 그보다도 내가 왜 침대에 있는 거지? 분명 책상에 엎어져서 잤는데.

         

        새벽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았다. 아무리 반추해 봐도 로테와 함 침대에서 잤다는 기억은 존재하지 않았다.

         

        필름 끊긴 사이에 뭔 짓이라도 벌였나? 만약 그렇다면 진짜로 삿된 거다.

         

        나는 턱을 괴고는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이상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게 없는데.

         

        자, 진정하자. 당시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간접적인 정황으로 파악해야 한다.

         

        일단 옷차림부터 점검했다. 좋아, 일단 잠옷 단추는 다섯 개밖에 풀리지 않았어.

         

        “어?”

         

        다섯 개?

         

        “으, 으응…. 왜 그래?”

         

        때마침 이 의문의 열쇠가 되는 인물이 일어났다. 로테는 고개를 들며 산발한 머리를 귓등으로 넘겼다. 그녀가 졸린 눈을 깜빡거리고는 날 향해 인사를 건넸다.

         

        “잘 잤어?”

        “어, 으.”

        “무슨 문제라도…. 앗.”

         

        그녀 또한 이 상황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로테는 헛숨을 삼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곧장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로테는 자기 이불을 끌어안고는 무안해진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았다.

         

        “미안…. 너 내려놓고 여기서 잔다는 게 그만.”

        “어, 뭐….”

         

        그래. 그럴 수 있지. 내가 의문을 표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그런데 내 단추는 누가 풀어놨어? 분명 다 잠그고 잤을 텐데.”

       “그, 그거! 너 숨쉬기 힘들까 봐 풀어 줬는데…. 아, 그런 일 없었어! 알지? 응….”

         

        횡설수설해 하는 걸 보아하니 쟤도 술이 덜 깼구나.

         

        나는 이 건에 대해 조금 생각하다가, 쓸데없는 짓이라는 걸 깨닫고는 그냥 불문율에 부치기로 했다. 필사적으로 해명하려 드는 로테의 반응을 보았을 때 이상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이런 것으로 호들갑 떨 시간도 없었다. 머릿속을 차갑게 만들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어제 우리 둘이 나눴던 이야기 기억나?”

        “어? 으응.”

        “그럼 백작님에게 얘기 전해줘.”

         

        이렇게 된 이상 일분일초도 허투루 쓸 수 없을 테니까.

         

         

        **

         

         

        “들어오셔도 좋다고 하십니다.”

         

        메이드의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백작이 있는 집무실로 발을 들여놓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서류를 동시에 읽으며 한시바삐 인장을 찍고 있는 유능한 공무원이 눈에 들어왔다.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얼. 딸 친구인데 잠깐을 못 내줄까.”

         

        살리에르 백작이 싱긋 웃으며 서류를 내려놓았다. 로테가 자주 짓는 표정과 똑같은 걸 보니 부녀지간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해 복구는 잘 되어가고 있나요?”

        “예년보다 피해가 조금 더 큰 걸 제외하면 잘 되어가고 있지. 이쪽 지역은 매년 이래서 애당초 어느 정도의 대비는 해 놓고 있었단다.”

        “다행입니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말을 이었다.

         

        “어제 따님과 진중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 백작님께서 피치블렌드 마석을 정련하시는 연구에 성공하셨다고.”

        “그렇지.”

        “네, 그런 일을 하시는 줄 모르고 많이 놀랐습니다. 그런데 홀로 연구하시던 기밀을 외부인에게 알려주셔도 괜찮은 건가요?”

        “허허, 수학 문제집을 채점하겠답시고 답지를 보는 어른이 구박받지는 않잖니.”

        “과찬이십니다.”

         

        그렇구나. 그렇게 된 거였네.

         

        이 사람은 내가 피치블렌드를 정련하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눈썰미가 좋거나, 아니면 로테에게 들었거나 둘 중 하나겠지.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다는 표정이구나.”

        “네, 그렇죠.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던 거니까요.”

        “플레어.”

        “…네?”

         

        살리에르 백작은 씩 웃으며 다음 말을 받아냈다.

         

        “네가 낸 논문의 인용 횟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고 있니?”

        “어…. 글쎄요?”

         

        하스펠트 교수 엿먹인 이후로는 학회에 들어가서 확인해 본 적이 없는데.

         

        “못해도 1백 회 이상이란다. 물론 그중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지.”

        “마소-에너지 교환성 정리에 관한 걸 읽으셨군요.”

         

        플레어의 제반 이론인 마소-에너지 교환성 정리. 말 그대로 마소는 에너지로, 에너지는 다시 마소로 바뀔 수 있다는 원리였다.

         

        해당 원리는 고출력 레이저에 대응하는 플레어를 구성하는 이론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 세계에서는 핵폭탄을 제작하는 원리이기도 했다. 저쪽 세계의 과학과 이쪽 세계의 마법은 이런 점에서 조금씩 달랐다.

         

        “정련기를 만들어내고 마석을 갈아 가루를 얻어내면서 생각했지. 이거, 화약이랑 비슷한 무언가라고. 그때 네가 논문을 딱 발표한 거란다.”

         

        우라늄을 정제할 기계를 만들어 낸 마도사라면 논문을 읽는 것에도 능통할 터.

         

        내가 쓴 정보를 바탕으로 핵무기 수율을 계산하는 건 할 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네요. 그런 이유도 있었겠네요.”

         

        백작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정련기를 보여주었다. 로테에게 듣던 대로 정교한 기계였다. 이런 걸 집안에서 만들었다는 게 참 흥미로웠다.

         

        아, 그렇게 불가능한 건 아닌가. 나도 학부생 시절에 간이 가속기 정도는 만들어 본 경험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진중한 눈빛으로 기계 구조를 구석구석 훑었다. 그러자 백작이 농담조로 말을 던졌다.

         

        “이걸 보여주면 내 후계가 되어야 하는데. 괜찮으면 내 수양딸이 되지 않겠니?”

        “아하하…. 말씀만이라도 고맙습니다.”

         

        어쨌건 이걸 집에 두었다는 건 꽤 위험한 일이다. 나는 백작에게 물었다.

         

        “아버님, 마석을 만지실 때 맨손으로 만지시나요?”

        “보통은 그렇지. 정련 후라면 모를까, 정련 전 마석은 그다지 위험한 것 같지 않았으니까.”

         

        저런.

         

        “어느 정도 되셨나요?”

        “제대로 연구한 건 10년이 거의 다 되었지, 아마?”

        “앞으로는 절대 맨손으로 만지시면 안 됩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니?”

        “피치블렌드에는 미약한 마력 방사파가 뿜어져 나와요. 독성이 있단 뜻이죠. 그나마 10년이면 몰라도, 20년이나 30년씩 만지시면 몸에 장기적인 피로가 생겨서 건강에 문제가 생기실지도 모릅니다.”

         

        내 말을 들은 백작은 놀란 기색이었다. 그는 서둘러 정련기가 있는 방문을 닫고 청결 스크롤에 손을 씻어냈다.

         

        “그런 것도 아니?”

        “네. 고향 사람들에게 주워들은 정보입니다.”

         

        우라늄 위험한 거 모르는 현대인이 어디 있어? 그러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

         

        나는 곧 백작에게서 종이와 깃펜 하나를 받았다. 마소-에너지 동등성 정리로부터 베테-파인만 방정식으로 이어지는 모든 공식을 상세히 유도하고, 이로부터 적당한 값을 대입해 결괏값을 산출했다.

         

        “로테에겐 비슷한 걸 어제 해 줬습니다. 이제 따님과 아버님 모두 피치블렌드의 폭발력을 알게 되셨군요.”

        “이렇게나 위험한 물건이었단 말이지.”

         

        살리에르 백작이 침음에 잠기는 사이, 나는 자와 컴퍼스를 추가로 빌렸다. 그리고 축척이 세밀하게 담긴 지도를 꺼냈다. 지도에는 제국을 중심으로 주요 도로와 지형도가 그려져 있었다.

         

        “폭발 반경 따위의 물리적인 의미는 수치보다는 그림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 낫습니다. 여기 보시지요.”

         

        내가 가리킨 곳은 제국의 수도, 필리우트였다.

         

        “피치블렌드는 그 자체로도 폭탄으로 쓸 수 있지만, 공계마도의 도움을 받아 훨씬 강력한 마도병기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여기선 그 설계를 상정하여 이만한 수치의 폭발력이 나올 때 어느 정도의 광구 반경을 보이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지도를 한 번 더 계측한다. 컴퍼스의 한쪽 끝을 수도의 중심에 꽂는다. 정확히 황궁이 있는 위치였다.

         

        “제국 수도는 황실을 중심으로 회전 대칭적인 구조를 지녔습니다. 주요 가도가 방사상으로 뻗어져 있죠?”

        “그렇지.”

        “이런 구조는 대규모 폭발에 무척이나 취약합니다. 불길이 주요 가도를 따라 사정없이 번질 테니까요.”

         

        스스슥.

         

        자를 동원하여 선분을 그었다. 축척을 계산하면 8km가 조금 넘는 길이였다. 그대로 컴퍼스를 돌려 작은 원을 만들자 수도 전체는 물론이고, 근교의 모든 도시가 원 내부로 들어왔다.

         

        “앞선 계산 결과를 따라 폭발 반경을 그려보면….”

        “최, 최대 피해 범위가 이 정도라는 뜻이겠구나.”

        “아뇨?”

         

        당황해하는 살리에르 백작을 보며, 나는 조곤조곤하게 말을 이었다.

         

        “일단 이 원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죽는다고 보시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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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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