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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3

       벨라와 우리가 접촉한 곳은 카지노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는 않은 숲이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게임에서 카지노 건물 외의 다른 곳은 깊게 들어갈 수 없게 되어있기는 했고, 숲속도 온전하게 구현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우리가 모인 이곳은 카지노 건물을 기준으로 내가 기억하던 방향이 맞았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앨리스가 뒤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살던 세계를 기준으로 해도 꽤 높은 건물이 하늘을 찌를 듯 서 있었다. 카지노와 그 위로 쭉 이어지는 호텔 건물이었다. 물론 세상에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의 마천루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까이서 보면 고개를 위로 치켜들어야 그 끝이 겨우 보이는 건물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화려한 건물을 아래에서 비치는 화려한 조명이 밝히고 있었다.

        

       이 숲에서도 보일 정도로.

        

       주변이 개발하기 어려울 정도로 빽빽한 밀림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곳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장소선정을 참 잘했다. 숲속에 숨겨진 타락한 도시라니. 소설에서나 나올 법 한 곳이 아닌가.

        

       “늦지 않게 왔네?”

        

       숲의 입구에서 이어지는 길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벨라가 있었다.

        

       이런 밤중에 숲속을 돌아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므로, 저렇게 조명을 들고 있어도 큰 문제는 없는 모양이었다.

        

       벨라는 아까도 봤던 여우 가면에, 몸에 딱 달라붙는 가죽 슈트를 입고 있었다. 태도는 여유 그 자체였지만, 자기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것 같은 복장이었다.

        

       하긴, 루카스도, 벨라도, 황제 앞에서 대단히 불손한 태도를 취해 보이곤 했지만, 실제로는 철저하게 충성하고 있다. 황제가 세운 계획을 벗어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을 거다.

        

       벨라의 왼손에는 가방이 하나 들려있었다.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크기만 따지자면 핸드백 정도일까. 모양은 그냥 후줄근한 가죽 가방이었지만.

        

       저건…… 아마 베라티의 것이겠지. 게임에서도 베라티가 저런 가방을 들고 유적을 찾아다녔던 기억이 있다.

        

       안에는 아마 법국의 지보중 하나가 들었을 것이다.

        

       “흠.”

        

       벨라는 우리를 둘러보며 그런 소리를 냈다.

        

       벨라는 능력이 뛰어나다. 따지자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능 안에서는 이미 정점을 찍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대에 지어진 던전을 혼자서 공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훌륭하네.”

        

       벨라가 웃으며 말했다.

        

       물론 여전히 가면을 쓰고 있는 채다. 클레어와 레오는 이미 벨라의 모습을 한차례 보았기 때문이다.

        

       목소리도 다르고.

        

       사실을 알고 있는 나, 그리고 앨리스의 눈으로 보기에는 벨라 그 자체였지만…… 글쎄,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면 어떨까.

        

       레오는 몰라도 클레어는 눈썰미가 좋은 편인데.

        

       하지만 흘끗 본 클레어의 표정에 특별히 놀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폐하의 두 딸과 충성파 가문의 두 아이라. 듣기로는 실력도 훌륭하다고 했는데.”

        

       “맞아. 두 사람 다 훌륭한 실력을 갖췄어. 같은 황녀인 내가 보증할게.”

        

       앨리스가 한 발짝 앞으로 나가며 그렇게 말하자, 벨라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묘하게 고압적인 태도였다.

        

       벨라는 내가 파악하기 까다로운 캐릭터였다. 본편에선 언급 정도만 되는 캐릭터고, 일러스트 몇 장 정도에 회상 장면에서 몇 마디 더빙되어있는 것이 다였으니까. ‘클레어와 비슷한 성격이었다’라고 해도, 본편의 클레어와 완전히 같은 성격은 아니었을 거다.

        

       게다가 이미 내 머릿속에서 원작의 클레어의 분위기는 많이 희석되어버렸다. 지난 2개월간 바로 근처에 어마어마하게 착실한 버전의 클레어가 있었으니까.

        

       그래도 지난 10년간 나름대로 쭉 보아온 성격을 바탕으로 생각해보자면……

        

       저 태도는 연기다.

        

       가면을 쓰지 않은 벨라는 언제나 우리 앞에서 장난스럽게 굴곤 했으니까. 가끔은 조금 짜증 나는 장난을 치거나 놀려먹거나 하긴 했지만.

        

       “뭐, 제국의 차기 황제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나는 따라야지.”

        

       “…….”

        

       벨라의 말에 앨리스가 벨라를 노려보았다.

        

       레오는 침을 꿀꺽 삼켰다. 원작에서의 레오의 태도는 여기를 기점으로 해서 앨리스에게 훨씬 친근하게 바뀌는데, 아마 저 ‘차기 황제’라는 말 때문에 그날은 한참 뒤에나 올 것 같다.

        

       “장소는? 찾았어?”

        

       “황녀가 셋이나 달라붙었는데, 찾아내지 못하면 제국의 위신이 서질 않잖아.”

        

       하지만, 이어지는 벨라의 말은 그렇게 긍정적인 말은 아니었다.

        

       “다만, 이번에 한 번에 찾지 못한 건 제국의 위신에 문제가 갈 일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찾지 못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가 너무 빠르게 잡아낸 모양이더라. 베라티는 유적의 위치를 정확하게는 알지 못한 상태였어. 법국 쪽의 기록을 토대로 위치를 짐작해 잠입했을 뿐이지.”

        

       “……그러면, 그 여자 같은 인간들이 제국에 몇 명이나 더 잠입해있다는 소리야?”

        

       “아마 그렇겠지? 참, 땅덩이가 큰 것도 문제라니까.”

        

       벨라는 그렇게 말하며 손에 들고 있던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앨리스한테 내밀었다. 앨리스는 조금 꺼리는 표정이긴 했지만, 그래도 별말 없이 벨라가 내민 쪽지를 받아 들었다.

        

       그건 엄밀히 말하면 쪽지라기보다는, 지도 같았다.

        

       “이 근방의 약도네.”

        

       그렇다고 군사적인 목적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이 주변은 꽤 넓고 복잡하다. 관광객이 길을 잃는 것은 노스우드 측에서도 원하는 일이 아니었으므로, 마치 테마파크 안내도를 만들 듯 만들어 배포하는 것이었다.

        

       내가 기억하던 테마파크 안내도에 비하면 딱히 색깔도 없고 마스코트 같은 게 그려진 것도 아니었지만.

        

       주변을 간결하게 묘사한 약도에는, 저 카지노를 중심으로 형성된 상업지구와 그 상업지구를 감싸는 숲이 표시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 숲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엑스 표가 그려져 있었다.

        

       “베라티 경에게는 미안하게 되었지만.”

        

       벨라가 베라티를 비웃는 것 같은 태도로 말했다.

        

       “아무래도 법국의 기사님은 정말로 운이 나빴던 모양이야.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찾았는데, 제일 마지막이 되어서야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을까?”

        

       “…….”

        

       벨라의 그 말에는,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

        

       지보는 지보끼리 반응한다. 단순히 하나하나 다른 능력을 갖춘 장치가 아니라, 어느 거대한 장치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정작 원작 내에서는 그 지보의 기능이 무엇인지 나오지는 않았다. 다른 세계관인 시리즈를 생각해보자면 신의 힘이 담겼으니 이룰 수 없는 소원도 이룰 수 있다……같은 식으로 표현될 것 같기는 했는데, 사실 그 지보에 관한 이야기가 시리즈 내내, 세계관이 몇 번이나 바뀌면서도 유지되어 슬슬 질렸다고 투덜거리는 플레이어들도 나오기 시작했기에 이번 세계관에서도 유지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플레이어 대부분은 ‘그 지보로 죽은 히로인 살리겠지’라는 추측 정도는 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히로인 살리기를 포기할 생각은 없다. 게임이었다면 어차피 막지도 못하니 그냥 즐기겠다는 마인드로 했겠지만, 여기는 게임 속이 아니라 현실이었으니까.

        

       “솔직히, 베라티가 왜 못 찾았는지도 알 것 같네.”

        

       벨라가 질렸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숲속을 헤맨 지 거의 세 시간이 지나서야 우리는 겨우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애초에 우리는 지보라는 것이 뭔지 제대로 본 적이 없었으니, 근처에 가면 더 빛난다고 해봐야 그 빛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도 못했다.

        

       던전 입구 근처에 가서야, 빛이 아주 미약하게 강해졌다.

        

       그러니까, 지보는 사실 빛나는 것이 디폴트 상태인 것이 아니라, 이미 이 지역에 온 시점부터 ‘다른 지보가 가까운 것’으로 판단하고 계속해서 빛나고 있었다는 소리다.

        

       “……샤를로트 쪽은 아직 공략이 안 끝났을까?”

        

       앨리스가 걱정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

        

       확실히, 이렇게 오래 걸린 상태에서 안으로 들어가 봐야 피곤해서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겠지.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다시.

        

       *

        

       “…….”

        

       벨라의 손에서 지보를 반쯤 빼앗아 든 내가 던전 입구까지 망설이지 않고 가버리자, 아이들은 모두 벙찐 표정이 되었다.

        

       딱히 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높게 자란 나무들 사이로 막 걸어갔으니까.

        

       그래도 내가 전진한 시간은 30분이 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내 기준으로는 거의 여덟 시간은 걸린 기분이지만.

        

       시간을 돌려도, 이곳저곳 빙글빙글 돌면서 돌아다닌 결과를, 시작점에서 다시 찾으려니 정말 지독하게 어려웠다. 그나마 건물 방향은 알고 있었으니 처음 시도했던 것에 비해서는 일찍 찾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큰 차이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주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몇 번이나 시간을 되돌려 가며 찾았다.

        

       내가 던전을 찾아낼 때마다 일행의 표정은 ‘그게 당연하지’라고 생각하던 표정에서, 놀랐다는 표정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거의 할 말을 잊은 정도가 되었고.

        

       “…….”

        

       나를 바라보는 앨리스의 표정이 더 의미심장해졌지만, 나는 굳이 더 말을 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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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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