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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3

    아침을 일깨우는 마력차 한잔.

    루크는 만족스런 향기와 감촉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도 잘 만들어졌군.’

    푹 자고 일어나서 마시는 피로 회복의 영약의 효과는 굉장해서, 루크의 정신에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피로의 잔재마저 남김없이 날려버릴 정도였다.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온 탓인가, 예르나도 어느새 눈가를 비비며 루크의 옆으로 다가왔다.

    간단히 아침인사를 나누고, 차를 나눠 마신다.

    예르나는 출근의 준비를 하고, 루크는 예르나의 출근을 돕는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패턴이다.

    몇달이나 반복된 루틴은 이제는 더이상 특별하지도 않다고 할 수 있다.

    일상.

    그 단어가 가져다주는 아련한 안정감에 젖어갈 무렵, 예르나가 말했다.

    “루, 저번에 말했듯이. 며칠, 아니. 좀 길면 몇주정도 집에 돌아오지 못할거야.”

    “기억하고있네, 장기출장이란 말.”

    “그래. 그동안 다이튼의 집에서 신세를 져야 하는데……. 괜찮지?”

    “음, 문제는 없다네.”

    “그래.”

    현관문 앞에서, 예르나는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루, 당분간 내가 없어도 잘 지내야해. 알겠지? 다른 급한일이 있으면 숲지기들한테 연락하고.”

    “혹시 위험한 일이 있으면 꼭 전화하고, 늦은 시간에 혼자서 돌아다니지 말고, 골목으로 다니지 말고…….”

    “가끔 연락이 안될 수도 있는데, 너무 걱정하진 말고.”

    “그리고 또…….”

    거듭된 잔소리에 루크는 예르나의 말을 끊었다.

    “그만, 그만. 이미 몇번이고 한 말이잖은가. 내 걱정은 이제 그만두게나.”

    “응…….”

    루크가 질렸다는 듯이 손을 내젓자, 예르나는 살짝 멋쩍은 듯 뒷통수를 긁었다.

    “그냥 다녀온다는 말이나 하게.”

    별 생각 없는 루크의 말에 예르나는 어깨를 흠칫 떨었다.

    “……다녀올게.”

    “……? 그래, 잘 다녀오게나.”

    그 말을 끝으로, 예르나는 몸을 돌렸다.

    ‘뭔가 비장한 표정이로군……?’

    예르나의 표정을 알 수 없던 루크는 예르나와 며칠전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

    “루, 우리 대화 좀 할까?”

    예르나는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루크에게 물었다.

    “……? 그러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일까, 루크는 덩달아 진지한 표정으로 예르나와 마주앉았다.

    “그, 친구라는 사람 말이야. 정말 아는 사람이야? 어쩌다 알게 된거야?”

    루크는 턱을 쓸면서 생각했다.

    예르나가 걱정하는 이유가 뭔지 루크도 추측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그야, 자신이 낯설고 거칠어보이는 어른과 관계되어있다고 생각하면야 그럴 수 밖에 없겠지.

    “물론 아는 사람이라네.”

    사실 한번밖에 보지 않은 사이지만,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일단 접어두기로 했다.

    당시엔 정말 피곤하기도했고, 남자의 상태가 그토록 심각할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예르나가 자신을 따라오도록 두었을 뿐인데, 그래선지 안타깝게도 남자는 예르나에게 첫인상이 굉장히 나빴다.

    그렇다보니 예르나가 루크에게 더이상 그를 만나지 말라고 해도 딱히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겉모습을 보면 자신은 10살짜리 여자아이이고, 그런 모습으로 어울리는건 확실히 범죄와 연상하기도 쉬웠다.

    실제로 범죄도 저질렀고 말이다, 비인가 마법사용은 불법이니까.

    하지만 루크는 남자와의 연결을 끊고 싶지 않았다.

    드래곤의 심장이 뛰고있는 같은 처지의 인간을 만날 기회가 그토록 쉽게 오겠느냐는 말이다.

    그래서 루크는 그를 대변하듯 말했다.

    “그대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는 알겠지만, 결코 그는 내게 나쁜짓은 하지 않았다네. 부디 그를 나쁘게 보지 않아줬으면 좋겠어.”

    “……그러니?”

    루크의 간절한 눈빛에 예르나는 마음이 약해질 수 밖에 없었다.

    어째서 이토록 그 남자를 변호하려는 걸까.

    역시, 같은 처지에서 겨우 살아남은 자들의 동료애일까?

    예르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루크, 혹시……. 옛날에 있었던 일, 기억해?”

    “흠, 옛날이라면 어느때를 말하는 거지?”

    다짜고짜 ‘옛날’이라고 말해봤자 너무 두루뭉술하다.

    100년간 있었던 모든 일을 일일히 설명하는것도 불가능하고 말이다.

    예르나는 루크의 반문에 살짝 긴장한 듯 어깨를 움츠렸다.

    이 질문 자체가 상처가 될 수도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하면서.

    “그러니까, 내가 너를 숲에서 발견하기 전……. 말이야.”

    “음. 그때를 말하는 건가.”

    루크는 한쪽 눈썹을 들어올리며 팔짱을 끼웠다.

    그 말에는 딱히 해줄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저번에 다 말했기 때문이었다.

    못 믿은건 예르나였지, 자신은 애초부터 숨기려고 하지도 않았으니까.

    자세하게 말해봤자 비슷한 말이지 않은가.

    루크는 또 같은 설명을 내뱉을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정신을 차려보니 숲속이었다.’

    그 이전의 기억은 존재하지도 않고, 그 기억을 거짓말로 지어낼 이유도 없으니.

    예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하진 못했지만, 다행스럽다는 표정으로.

    “그래, 기억하지 못하면 됐어.”

    ———

    “……왔군.”

    예르나에게 아는척을 하며 삐딱하게 앉아있는 병자나 부랑자같은 모습의 남자, 서드였다.

    남자의 시선을 받은 예르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기억은 없어요?”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헤어지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기억나지 않아.”

    서클이 재구축된 후유증인가, 기억이 드문드문하다.

    그 꼬마를 만나기 전의 기억은 거의 나지 않는다.

    예르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거 참 답답하네요.”

    “나도 답답해서 미치겠어.”

    그렇기에 유일한 단서는 ‘프로이튼’이었다.

    단서가 주어진 이상, 가볼 수 밖에 없잖은가.

    “그럼, 이야기는 끝낸건가?”

    서드의 질문에 예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자신이 없는 사이에 위험에 빠질 수도 있으니 다이튼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다이튼이라면 믿을 수 있지, 일전에 용의 모습이 되었던 루크를 망설임 없이 막아섰던 것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아마도, 별일 없겠지.

    ……다른 의미로도 별 일이 없기를 바란다.

    이건 다이튼을 믿는 수밖에.

    “가보죠, 당신이 마지막으로 기억한다는 그 장소로.”

    ———

    – 다이튼의 집이라고 너무 풀어지면 안돼! 자기전에 꼭 이도 닦고!

    휴대폰으로 날아온 문자를 읽은 루크는 머리를 빗다가 피식 웃어버렸다.

    “예르나도 참, 걱정이 많아서 탈이로구나.”

    애초에, 그녀가 걱정할만큼 나약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8서클 이상의 마력을 지닌 3서클마법사.

    자신이 생각해봐도 역시 전무후무한 괴물이다.

    웬만해선 무력으로 어디가서 지고다닐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애초에 손짓 한번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도 가능한게 마법사란 존재다.

    2서클만 되어도 사람을 죽이는 게 가능하지 않던가? 너무나 기초적인, 2서클의 파이어만으로도 생물은 죽는다.

    루크가 ‘파이어’를 공격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은 것은 어디까지나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3서클은 어떻겠는가?

    서클마법에서 3서클이란 물질에 대한 조작의 권한이다.

    돌과 물을 비롯한 물질 그 자체를 조작할 수 있는 권한.

    비록 누군가 만들어낸 것이나 무언가 섞인 합성물은 다룰 수 없지만, 마나로 생성된 자연적인 원소 그 자체를 다루는것은 가능하다.

    그렇다는 말은 즉, 마나를 재배열해 허공에 순수한 물을 만들어낸다던가, 돌을 만들어낸다던가 하는 짓도 충분히 가능하다.

    기초적이지만 우회없이 물질계에 바로 간섭할 수 있는 권한.

    그것은 마법사로서 파격적인 차이다.

    물질을 지배한다면 현상의 제어도 훨씬 쉬워지니까.

    그렇기에 3서클의 마법사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마법사라고 부르는 것이다.

    드디어 물질계를 조율하는 힘에 발을 들이기 시작한 서클.

    루크는 잠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고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웃었다.

    “마법사라.”

    마법은 사람을 죽이는 힘이 되기도 하고, 지식을 추구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전쟁에서 지형을 뒤바꾸고, 세기의 발명으로 인류의 삶을 뒤바꾸기도 한다.

    그렇기에 마법은 언제나 경외해야 할 대상이었다.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언제나 마법사들이었기 때문에.

    머리를 빗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참지못한 디아나가 루크에게 물었다.

    “언니, 머리를 언제까지 빗어? 머리 다 빗으면 놀아준다면서!”

    “기다리거라, 원래 이런건 시간이 좀 걸리는 법이니.”

    “힝……. 공주님들두 언니처럼은 안 할거야.”

    “하하.”

    디아나가 기죽은 소리를 내자, 다이튼도 루크에게 한마디 했다.

    “머리 관리하기 귀찮지않냐. 짧게 자를 생각은 없는거야?”

    다이튼이 봤을 때, 루크는 소위 말하는 ‘효율 중시’의 캐릭터였다.

    그러니까, 짧은 머리가 상식적으로 더 편하다는 걸 루크도 모르지는 않을텐데.

    반면, 다이튼의 질문을 들은 루크는 머리를 빗다말고 안쓰럽다는 표정을 보냈다.

    “다이튼, 머리를 빗기 귀찮다고 머리를 자르는건 정말 게으르다고 생각되지 않느냐?”

    “……그건 그렇지만. 그게 편하긴 하잖아.”

    “미안하네만, 당장은 자를 생각이 없네.”

    그것은 단지 긴 머리가 익숙하다는 것 뿐 아니라, 이 신체의 일부라는 이유도 있었다.

    머리카락은 마법적으로 자신을 의미하는 신체부위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추후 마법적 소재나 제물로 사용됨에 역할을 할 수 있으므로 미리 길러둔다는 것.

    따라서 마법사들은 대체적으로 장발이 많았다.

    마법적 재료는 신선한게 제일인 것처럼, 갓 자른 머리카락이 마법에 쓰여도 최고이니까.

    그리고 긴 머리는 당연히 관리가 필요한 법, 이것은 남자든 여자든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 세상의 모든것엔 ‘정성’을 쏟은만큼 의지가 깃든다.

    좋은 머릿결이 좋은 품질의 재료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루크도 나름대로 머리를 관리하는데에 있어서는 노하우가 있는 것이다.

    원래라면 하인을 시키던 일이었지만, 말년에는 저택에서 나와 평민처럼 살았기 때문에 스스로 머리를 관리해야 했었으니.

    다이튼은 질리지도 않고 머리를 다시 빗어대기 시작한 루크를 바라보다가 디아나를 향해 한소리 했다.

    “디아나, 너도 저거 보고 배워라. 맨날 나한테 빗어달라고 하지 말고.”

    “응, 시러!”

    디아나는 해맑게 웃으며 외쳤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는 오빠의 손길은 좋아하는 감각이었으니까.

    뭐, 다이튼으로서도 디아나의 머리를 빗어주는건 귀찮을 뿐이지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래’하고 어깨를 으쓱 할 뿐이었다.

    이렇게 오빠를 좋아하는 시기도 금방 지나가버리니까, 이럴때 잘 해줘야 한다며 남들이 하는 말도 있고…….

    디아나도 어느날 갑자기 사춘기가 와서 ‘오빠 빨래랑 같이 돌리지 말랬잖아!’같은 말을 내뱉게되는걸까.

    그때를 생각해보면 솔직히 가슴이 아플것 같기는 하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데다, 아주 어릴때부터 혼자서 키워왔다보니 여동생이라기보다는 이제 딸같은 느낌이다.

    그럼 방금 상상으로 느낀건 딸에게 폭언을 듣는 아버지의 심정인가?

    ‘그 때가 오면 정말 많이 슬플것 같군.’

    “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팔짱을 끼고 루크 옆에 앉아 쫑알거리는 디아나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다이튼의 머릿속을 강타하는 한가지 생각에 몸을 굳혔다.

    ‘잠깐, 내가 예르나랑 결혼해서 루크를 입양하면 디아나는…….’

    루크의 고모가 되는건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개족보 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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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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