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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3

       교회는 마을 회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언덕 너머 건물들 사이로 둥글게 솟은 돔이 보였다.

       위중한 상태의 환자들이 저곳에 모여 있다고 했다.

         

       잠시라도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던 우리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했던 복병들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아이고, 성자님, 성자님.”

       “저희도 치료해주십시오!”

       “성 빅터여, 아픈 이의 몸을 돌봐주소서.”

         

       아까까지만 해도 텅 비어 있던 거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저주 역병 환자들로 가득했다.

         

       그들의 용태는 회관에서 봤던 사람들의 것보다 좋지 않았다.

       사지 중 하나가 망가진 것은 예사였고, 얼굴이 무너져내려 앞을 못 보고 숨 쉬는 것조차 힘든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집안에 누워 죽음만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어디서 활력이 솟아났는지 눈에 불을 켜고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다리가 감염된 사람들은 두 팔로 기었고, 그것조차 힘든 이들은 몸을 바닥에 비벼서라도 우리에게 다가오려고 애썼다.

         

       아니, 정확히 말해 우리가 아닌 나를 향해서였다.

         

       내가 치료해준 사람들은 몸이 낫자마자 동네방네 뛰어다니며 그 소식을 전했다.

       절망에 빠져있던 주민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려는 그들의 의도는 좋았지만, 그 선전 효과가 지나치게 뛰어났던 것 같았다.

         

       저주를 치료했다는 소식에 주민들은 다들 필사적으로 집에서 기어 나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은 내 옷자락 끝이라도 한 번 쥐어보려고 손을 뻗었다.

         

       “뭐야!”

       “이, 이봐 멈추라고!”

       “뒤로 물러서시오!”

         

       병사들이 내 앞을 막아섰지만, 수십 배나 많은 사람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주민들은 점점 나를 향해 가까이 다가왔다.

         

       “아아, 성 빅터의 보살핌이 함께 하기를!”

       “저희에게도 축복을!”

       “잠깐이라도 저희에게 빛을 쬐어 주십시오!”

         

       사람들은 나를 성교회의 사제로 착각했다.

       손 한번 대는 것으로 저주 역병을 치료한 데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이 바로 성교회의 수도사들이 입는 복장이었다.

       그들이 나를 성직자로 생각하는 것은 무리도 아니었다.

         

       “비키시오! 지금 더 급한 환자들이 우선이오!”

         

       이바넨코의 서슬 퍼런 외침에도 사람들은 조금도 물러나지 않았다.

       평소라면 기사의 권위에 목을 움츠렸을 주민들이지만, 목숨이 달린 문제에서는 앞뒤 가리지 않았다.

       그가 칼을 뽑아 들어도 주춤하는 것은 잠시뿐이었다. 빈자리에 몸을 구겨 넣어 어떻게든 내게 조금이라도 가까이 오려고 했다.

         

       몸이 기괴하게 변형된 수백의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덤벼드는 모습은 예전에 본 좀비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했다.

       며칠 동안 저주 역병에 익숙해진 이바넨코와 병사들도 그 모습에는 기가 질리는지 욕을 내뱉었다.

         

       “단장님, 마법을 쓸까요?”

         

       마야가 내 앞에 서서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 대해 일말의 두려움도 혐오도 경멸도 표현하지 않았지만, 필요하면 얼마든지 그들을 때려눕힐 기세였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그들의 필사적인 몸부림을 보고 안쓰러운 마음이 일었다.

         

       내가 자랐던 보육원은 사이비 종교 소속의 재단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보육원의 원생들 모두가 몸이 어딘가 불편한 아이들이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였다.

         

       손을 대는 것만으로 앉은뱅이도 일으켜 세우고, 암에 걸린 사람도 낫게 하는 목사님.

       그분의 ‘축복’ 한 번 받는 것이 우리들의 평생의 소원이었다.

       그것을 위해 얼마나 성경을 암송하고 앵벌이로 적립금을 채웠던가.

         

       나는 차마 나에게 매달리는 사람들을 귀찮다고 떨쳐낼 수 없었다.

       그들의 절박한 심정이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야가 염동력으로 그들을 날리려는 것을 제지했다.

         

       나는 부드러운 말로 그들을 달래려 했다.

       지금 가야 할 곳이 있으니 갔다 온 다음 당신들을 치료해주겠다고.

         

       그러나 사람들은 벼랑 끝에 몰린 처지라 그런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팔짱을 끼고 바닥에 드러누워 길을 가로막았다.

       자신들을 치료 해주기 전까지는 절대 지나가지 못한다고 외쳐댔다.

       덕분에 우리는 10분 동안 단 10걸음도 전진하지 못했다.

         

       그렇게 힘겨운 밀고 당기기로 우리도 주민들도 서서히 지쳐갈 때쯤, 누군가의 손이 내 다리에 닿았다.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예상치 못했던 각도로 불쑥 뻗어 나온 것이었다.

         

       콰직.

       무언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피가 튀었다.

       하얀색 수도복에 붉은색 얼룩이 번져 나갔다.

         

       강렬한 통증이 일었다.

       나는 아래를 바라보았다.

       허벅지 한쪽의 살점이 뭉텅 뜯겨나가 있었다.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상어 이빨 같은 것을 단 주둥이가 내 살점을 으적으적 씹어먹고 있었다.

       그것은 어떤 여인의 손에 달린 것이었다. 손의 주인도 자신의 손이 저지른 짓에 깜짝 놀랐는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단장님!”

         

       나에게 덤벼드는 사람들 덕에 저 멀리까지 밀려났던 마야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넘어졌다.

       그녀는 염동력을 주변에 마구 뿌려대며 나를 향해 직선거리로 달려왔다.

         

       원래라면 밀쳐지건 넘어지건 다시 벌떡 일어나서 덤볐을 주민들이었지만 그들도 내가 피 흘리는 것을 보고는 그 자리에 굳은 채 서 있었다.

         

       나는 내게 상처를 입힌 여인의 손을 내려다봤다.

         

       -키르르르

         

       그녀의 손에 달린 이빨 달린 주둥이는 무엇이 즐거운지 핏물을 입가에 질질 흘리며 웃어댔다.

         

       내가 정상적인 상태라면 저따위 이빨은 내 몸에 흠집 하나 내지 못했을 것이다.

       내 조직 경도는 4.0으로 판금 갑옷 수준이었으니까.

         

       그러나 역병 데볼루트들 때문에 내 몸이 크게 약해졌다.

       시스템과 몸에 부하가 걸리면서 기초 능력치도 떨어진 모양이었다.

         

       “단장님, 괜찮으신가요?”

         

       마야가 내 앞에 내려앉았다.

       항상 무표정만 고수하던 그녀의 인형같은 얼굴에는 놀랍게도 보통 사람들도 화났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노기가 서려 있었다.

         

       그녀는 내 다리에 난 상처를 보고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바닥에 엎드려 벌벌 떨고 있는 여인을 노려봤다.

         

       “죄, 죄송합니다! 서, 성자님, 저, 저는 그럴 의도가…….”

       “당신……뭐 하는 짓거리야…….”

         

       항상 차분하던 마야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손을 뻗자 여인의 몸이 둥실 허공으로 떠올랐다.

       환상으로 만들어진 칼날들이 그녀의 주변에 나타났다.

       수십 개의 얇고 납작한 다면체들은 명백히 여인의 팔을 토막낼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

         

       “네가……감히…….”

         

       마야가 내뿜는 분위기가 어찌나 흉흉하던지 마을 주민들은 물론이고, 기사와 병사들조차 움찔 놀라며 그녀에게서 조금씩 떨어졌다.

         

       여기서 그녀가 손을 까딱이기만 해도 여인의 팔은 다진 고깃덩어리가 될 참이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바라지 않는 결과였다.

         

       내가 흡수할 데볼루트가 줄어든다는 치졸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원더스타인에게 속아 나락으로 떨어진 아나이스를 구해냈다.

       나는 유령의 새장에 갇혀 노리개가 되었던 샤일라를 구해냈다.

       나는 딸을 잃고 세상에 대한 원망과 열등감으로 비틀려버린 미노바를 구해냈다.

         

       게임에서 불행한 결말을 맞은 피해자들을 다른 미래로 인도하면서 나는 퀘스트의 보상과 상관없는 성취감을 느꼈다.

         

       평생 누군가의 도움만 받고 살아가던 내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정확히 그 반대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마법사 마야는 TTT의 영웅 중 한 명이었다.

       냉소적인 태도 덕에 기사나 도적만큼 인망을 얻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자기 주관이 확고한 사람일 뿐 결코 악당은 아니었다.

         

       내가 이곳에 와서 본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타인에 대한 무심한 태도와 평균보다 모자라는 사회성 때문에 오해를 사기는 했지만, 절대 이기적이거나 나쁜 아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어딘가 어긋나려 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의 역사 개입 때문에 서커스단에 들어온 처지였다.

       나는 단장으로서 그리고 TT0의 플레이어로서 그녀의 바뀐 운명에 책임을 져야 했다.

         

       그녀가 이번 일을 계기로 악명을 얻게 된다면?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 되어 버린다면?

         

       나는 지금까지 미래를 바꾸면서 느꼈던 성취감에 맞먹을 정도로 절망감을 느낄 것이다.

       절대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그녀의 어깨를 붙들었다.

         

       “그만두세요, 마야 양. 저는 괜찮습니다.”

         

       내 얼굴은 의도하지 않아도 활짝 웃고 있었다.

       목소리 역시 평온했다.

       내 평정심을 보고 그녀도 진정하길 바랐다.

         

       마야는 나를 보더니 이를 악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도대체……어디가……괜찮은데요…….”

         

       나도 말을 꺼내놓고 아차 싶었다.

       살점이 뜯겨나가 피를 한 바가지나 흘리면서 괜찮다고 웃는 건 아무리 봐도 정상은 아니었다.

       나는 로브 자락으로 상처를 가리며 다시 한 번 그녀를 만류했다.

         

       “의도하고 저지른 잘못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그분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원망하지 않는다는 건 진심이었다.

       물론 이빨에 물린 순간 속으로 욕을 한 디발이나 내뱉었지만, 그렇다고 상대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장애인들은 타고난 결함 때문에 본의 아니게 주위에 폐를 끼치곤 했다.

         

       보육원에 있던 친구 중에도 그런 아이들이 몇 있었다.

       자기 몸이 통제가 안 되어 식사 시간에 식판을 엎지르거나, 취침 시간에 잠꼬대로 괴성을 내지르는 등의 일로 주변을 힘들게 했다.

         

       하지만 그걸로 그들을 원망하는 아이는 없었다.

       다들 그러려니 했다.

         

       그들에게 베푸는 관용과 배려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함께 살아가면서 기본적으로 감수해야 할 것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 종류와 범위가 다를 뿐이었다.

         

       우리 또한 각자가 모자라는 부분에서 서로의 도움과 배려를 받아 살아가는 처지였다.

         

       마야는 내게서 고개를 돌리더니 거칠게 손을 흩뿌렸다.

       환상 칼날들이 사라지고, 공중에 떠 있던 여인이 바닥에 털썩 떨어졌다.

         

       나는 피투성이 손을 붙들고 있는 여인에게 다가갔다.

         

       “……서, 성자님……. 죄, 죄송……저, 저는…….”

       “이해합니다. 의도적으로 절 공격한 게 아니라는 걸 압니다.”

         

       나는 허리를 숙여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지금은 교회 쪽에 생명이 위독한 분들이 계십니다. 그분들을 먼저 치료해주고 여러분들을 돌봐드리겠습니다. 아, 이 손은 좀 위험하니 지금 처리해야 겠군요.”

         

       나는 여인의 손을 감염시킨 데볼루트를 흡수했다.

       뜨거운 기운이 내 팔을 타고 흘러들었다.

         

         

       [데$#%$트 19를 습득*ㄹㅇ습니다.]

       [흡@# 데!#$&트의 종45@$# 시작합니다.]

       [종속화 도ㅈ ㅜ%6ㅇ에는 몸과 시%3ㅊㅇㅅ템에 부하가 걸ㅇ3$립니다.]

         

         

       여인의 팔에 붙어 있던 이빨 달린 주둥이가 힘을 잃고 떨어져 나갔다.

         

       -키르르…….

         

       놈은 마지막까지 기분나븐 웃음소리를 남기더니 혀를 빼물고 축 늘어졌다.

         

       여인의 팔에는 뭔가가 붙어 있었다는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멀쩡해진 자신의 팔을 바라보며 눈물을 왈칵 쏟았다.

         

       “아아, 고, 고맙……고맙습니다! 제가……아아……아아……성자시여.”

         

       그녀는 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울음을 터뜨렸다.

         

       다른 사람들도 자신들이 목격한 기적에 감화됐는지 하나둘 고개를 조아리더니 흐느끼는 소리를 냈다.

         

       “오오, 성 빅터의 재림이시다.”

       “역병 마귀를 치료하소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사람의 파도가 갈라지며 성당으로 오르는 길이 생겨났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바우머어 님, 3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지적해주신 부분은 수정했습니다. 며칠 동안 연재가 미뤄져서 죄송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쓰겠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개인 사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내일부터 다시 정상적으로 성실연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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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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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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