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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3

       “그러니까 뭐야. 그게 지금 통짜 유니콘의 뿔로 만들었다고?”

       

       “넹.”

       

       “그걸 내 팔에 가져다 댔더니 빛이 났고?”

       

       “와! 처녀!”

       

       “…요나 네가 멀쩡히 들고 다니는 시점에서 너도 마찬가지거든?!”

       

       “와! 동정!”

       

       “내가 말을 말아야지….”

       

       간략하게 사정을 들은 베니가 보라색 머리를 부여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 그런데 베니.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에요.”

       

       “애초에 중요한 이야기가 있긴 해?”

       

       싸우다 말고 처녀 감정을 당한 베니가 부들부들 떨며 가시 돋친 말을 내뱉었지만…….

       

       은근슬쩍 나와 단검을 번갈아 바라보는 것을 보아, 자신의 처녀막보다 내 동정 여부가 중요한 모양이다.

       

       하긴. 남녀역전 세계가 되며 놀랍게도 여자가 남자의 순결을 선호하는 세계가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사랑의 여신의 영향력 탓에 일부다처나 일처다부를 해도 지탄받지는 않지만…아무래도 처음을 각별하게 여기는 건 변하지 않은 모양.

       

       그런 의미에서 남자의 순결 여부는 참 알기 어렵다.

       

       여자는 피라도 나지, 남자는 아무것도 없잖나. 그렇기에 지금처럼 명확하고 알기 쉬운 판별 결과가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

       

       보란 듯이 단검을 살살 흔들다 아공간 반지에 집어넣고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언제나 장난만 치는 줄 알아요? 방금 봤잖아요 베니. 타락한 대지 정령이 그대로 무너지는 거.”

       

       “…아. 마석을 부쉈으면 사라졌지 무너지지는 않겠네.”

       

       “맞아요. 제가 깜짝 놀라서 챙겨오지는 않았는데, 아마 저기 어딘가에 마석이 있을 거예요.”

       

       엄지로 뒤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원석 무더기를 통째로 삼키고는 괜찮은 것만 골라 뱉어내는 샤도우가 있었고.

       

       아마 뱉어낸 것들 사이에 마석도 끼어있겠지.

       

       “그나저나 샤도우는 진짜 유능하네요. 원석 같은 건 전문가가 아니면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전 뭔가 특별해 보이는 것 위주로 챙기고 길드에서 감정받을 생각이었거든요.”

       

       “뭐어. 나도 2층을 돌았던 적이 있으니까. 그때 샤도우에게 원석 생김새를 외우게 시켰거든. 물론, 나도 아직 기억하고 있고.”

       

       2층까지는 미궁의 상층으로 분류되며, 지도는 물론 온갖 정보가 완벽히 정리되어 무료 내지는 저렴한 가격으로 배포되고 있다.

       

       타락한 대지 정령이 지키는 원석의 분류도 그중 하나고.

       

       한차례 으쓱인 베니가 고개를 까딱이며 말을 이었다.

       

       “뭐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알겠어. 타락한 대지 정령이 유니콘의 뿔에 반응한 게 이상하다는 거지?”

       

       “네. 혹시나 해서 묻는데 정령도 성관계가 가능한가요? 아, 제 말은 자신의 형태가 명확한 고위 정령이 아닌 이번 같은 하위 정령도 가능하냐는 소리예요.”

       

       정령과의 혼혈은 아주아주 드물지만 존재하긴 한다.

       

       갈가리 찢긴 생명의 신의 유해는 정령에게도 영향을 미쳤으니까.

       

       다만, 다른 종족과 번식이 가능하다는 것과 야스를 즐긴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애초에 일반적인 번식이 아니라, 자연발생 하는 종족 아닌가. 성욕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존재다.

       

       아마 그 혼혈 또한 상대의 요구에 응한 결과일 뿐이겠지. 아니면 2세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었거나.

       

       적어도 성욕 때문은 아닐 텐데…….

       

       그렇다면 조금 전의 대지 정령은 대체 왜 특공 효과를 제대로 받고 죽었는가.

       

       “설마 어떤 미치광이가 땅에 박고 다니는 건가요?! 아니면, 땅을 뭉쳐서 자기가 박히고 다닌다거나?! 흙에도 발정하는 미친 연쇄 강간마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엄청 무섭지 않나요?!”

       

       “…어휴. 이 변태를 어떻게 해야 할지.”

       

       한숨을 푸욱 내쉰 베니. 그녀가 이내 까치발을 들며 납작평평한 가슴을 쭈욱 내미는 우쭐거리는 포즈를 취했다.

       

       딴에는 선생님 흉내를 내려는 것 같지만, 아무리 봐도 선생님 코스프레를 하는 것 같은 베니가 입을 열었다.

       

       “분명 유니콘 단검에는 비처녀와 비동정을 해하는 힘이 담겨있어. 하지만, 그 외에도 다른 능력이 있잖아?”

       

       “독? 설마 독성 흙이었다니….”

       

       “그거 말구! 정화 말이야! 정화! 지금껏 계속 자기 입으로 말해놓고 알아차리지 못한 거야?! ‘타락한’ 대지 정령이 무슨 뜻인지!”

       

       “네? 그치만 엄밀히 말해서 몬스터는 그냥 미쳐있고, 강할 뿐인 생물 아닌가요?”

       

       “보통은 그렇지. 보통의 몬스터라면 그냥 일반적인 동식물이 힘이 세졌을 거야. 하지만 정령은 달라.”

       

       이어진 베니의 설명에 따르면 정령은 기본적으로 자연의 화신 혹은, 신의 심부름꾼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다른 존재의 피와 살이 섞여 만들어진 것이 아닌, 그저 힘으로부터 태어난 종족.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순수하기 짝이 없다는 소리다.

       

       “그런데 그런 정령에게 광기라는 이물질이 끼어든 거야.”

       

       “순수성이 더럽혀졌다?”

       

       “맞아. 그리고 자연이 더럽혀진 걸 우리는 오염이라고 불러.”

       

       “아하.”

       

       유니콘의 뿔이 단순히 대걸레용 결전 병기는 아니다. 자연 치유 능력 증대나, 정화 효과 같은 게 덕지덕지 발려있기도 하니까.

       

       아직 당해본 적 없지만, 어지간한 독은 내게 통하지도 않을 거라나.

       

       “잠시만요. 그럼 광기가 치료됐다는 건가요?”

       

       “그럴리가. 몸이 정화하는 힘과, 광기에서 뻗어 나오는 침식이 충돌한 끝에 버티지 못하고 몸이 무너진 거야. 아,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제정신이 돌아왔을지도 모르겠네. 정말 짧은 시간이라 별 의미는 없겠지만.”

       

       “…….”

       

       그제야 녀석이 마지막에 남긴 말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분명 도라는 말만 반복했었지? 지금까지는 이쪽을 향해 도둑이라는 건가 싶었는데…어쩌면 다른 의미일지도 모르겠네.

       

       도망쳐라거나. 도와줘라거나.

       

       “…베니. 그런데 베니는 이런 걸 어떻게 알아요? 아, 별건 아니고 추측이라 하기에는 너무 자세히 알고 있는 게 신기해서요. 마법사는 전부 그런 건가 싶기도 하고요.”

       

       “으음. 그런 건 아니려나.”

       

       고개를 저은 베니. 마침 모든 분류를 끝내고 괜찮은 원석과 마석만 삼키고 돌아온 샤도우를 부드럽게 쓸어주며 말을 잇는다.

       

       “광기와 관련된 실험은 내가 직접 경험해본 거잖아. 그래서 잘 아는 거야. 놈들은 사람이 아니라 몬스터 대상으로도 실험했으니까.”

       

       “아.”

       

       그냥 경험담이었구나.

       

       뻘쭘함에 머리를 긁적이고 있자니, 베니가 의식적으로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자! 이제 다 쉬었으니 다음으로 가볼까? 어찌됐건 타락한 정령에게 잘 통하는 무기가 생긴 거잖아? 즉, 안전하고 손쉽게 사냥할 수 있다는 뜻이야!”

       

       “그렇게 말하니 지금 쉬는 시간조차 아깝게 느껴지잖아요!”

       

       “실제로 아까울걸? 그도 그럴 게 다음부터는 리디아랑 와야 하잖아. 샤도우에게 짐꾼 일을 대신 시킬 수는 없으니 전투는 쉬워도 전리품 때문에 금방 돌아가야 할 거야.”

       

       “……!”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다.

       

       베니는 어디까지나 오늘 하루만 리디아를 대신해서 나와준 것뿐이지, 앞으로도 항상 같이 미궁에 올 거라는 소리는 한 적 없으니까.

       

       샤도우가 있는 동안 최대한 뽕을 뽑아야 한다…!

       

       “오늘 잘 부탁해!”

       

       -크응?

       

       샤도우의 거대한 눈깔 근처를 톡톡 두드려 주고는 냅다 엎드려 바닥에 귀를 가져다 댔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규칙적인 심장 박동 소리. 대지의 신이 남긴 심장을 이정표 삼아 최적의 동선을 다시 계산했다.

       

       “이쪽 길로 가면 되겠네요! 뒤처지면 안 돼요?”

       

       “내가 겨우 2층에서 헤맬 것 같아? 요나 너나 조심해!”

       

       어이없어하는 베니를 데리고 앞장서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미로처럼 얽힌 내부를 거침없이 나아가며 마주치는 모든 몬스터를 마석으로 변환시켜 주었다.

       

       코볼트는 내 은신을 간파하지 못해 간단했고, 타락한 대지 정령은 무기를 꺼내는 순간 알아차리고 대응하긴 하지만 스치기만 해도 쓰러지니 어려울 게 없었다.

       

       미궁에서 가장 쉬운 계층은 2층이라는 말이 있다.

       

       1층은 경험이 없어 힘들고, 3층은 순수하게 몬스터가 강하고 기믹이 위험해 어렵다면.

       

       2층은 몬스터도 비교적 고만고만하고, 대단한 함정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경험은 쌓인 상태라 만만하다는 뜻인데….

       

       그 말이 슬슬 이해되기 시작했다. 1층도 가시나무 왕을 제외하면 날로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2층은 더 심하네.

       

       물론 다른 몬스터를 만나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스파이더 퀸 같은 경우에는 수십 마리의 새끼 거미를 데리고 다니는 몬스터다.

       

       내가 한둘을 상대하는 일은 누구보다도 잘할 자신이 있으나, 다수의 적을 상대로 싸우는 일은 좀 불안하거든.

       

       은신은 처음 한두 번의 칼질에 풀릴 텐데 내 체력은 아직도 2층 모험가 수준에 비하면 연약하지 않던가. 

       

       다만 아직 거기까지 진행할 생각은 없으니, 당장 신경 써야 할 위험은 아니다. 지금 해야 하는 것은.

       

       “죽어랏!”

       

       “코고곡…!”

       

       하염없이 땅만 파던 코볼트의 뒤통수를 쑤시는 거랑.

       

       “네 보물은 좋은데 쓸게!”

       

       “도도도도돗…!”

       

       타락한 대지 정령의 곳간을 강도질하는 일에 집중할 때니까.

       

       그렇게 슬슬 지칠 때까지 쉬지 않고 이동하며 전리품을 쌓아 올리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샤도우가 배부르다는데?”

       

       “에.”

       

       끝을 모르고 퍼먹던 샤도우가 파업을 선언했다.

       

       생각해 보면 많이 먹이긴 했지. 장담컨데 오늘 하루의 수익이 지난 일주일 치를 맞먹지 않을까 싶다.

       

       “어쩔 수 없죠. 그럼 이제 돌아갈까요?”

       

       “응. 지금쯤이면 지상에서는 진작에 해가 졌을 테니, 엘리 언니에게 한 소리 듣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해.”

       

       “…예전부터 생각한 건데 리디아 님도, 베니도 엘리를 좋아하면서도 무서워하네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뭐어. 남자는 모르는 여자들만의 세계라는 게 있는 법이거든.”

       

       “???”

       

       그니까 그게 뭔데.

       

       아무리 캐물어도 자세한 이야기는 알려주지 않는 베니. 그런 그녀를 계속 졸라가며 가까운 안전지대로 향하는 길을 찾았다. 그리고.

       

       “뭔가 이상하네요.”

       

       “여기 왔던 길 같은데?”

       

       길 찾기 스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길을 잃었다.

       

       무언가 잘못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흐아아아!

    드디어! 드이어 블아 빵을 산 것입니닷!

    근데 3개 중 2개의 스티커가 중복이었어요. 힝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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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3

EP.103





       “그러니까 뭐야. 그게 지금 통짜 유니콘의 뿔로 만들었다고?”


       


       “넹.”


       


       “그걸 내 팔에 가져다 댔더니 빛이 났고?”


       


       “와! 처녀!”


       


       “…요나 네가 멀쩡히 들고 다니는 시점에서 너도 마찬가지거든?!”


       


       “와! 동정!”


       


       “내가 말을 말아야지….”


       


       간략하게 사정을 들은 베니가 보라색 머리를 부여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 그런데 베니.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에요.”


       


       “애초에 중요한 이야기가 있긴 해?”


       


       싸우다 말고 처녀 감정을 당한 베니가 부들부들 떨며 가시 돋친 말을 내뱉었지만…….


       


       은근슬쩍 나와 단검을 번갈아 바라보는 것을 보아, 자신의 처녀막보다 내 동정 여부가 중요한 모양이다.


       


       하긴. 남녀역전 세계가 되며 놀랍게도 여자가 남자의 순결을 선호하는 세계가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사랑의 여신의 영향력 탓에 일부다처나 일처다부를 해도 지탄받지는 않지만…아무래도 처음을 각별하게 여기는 건 변하지 않은 모양.


       


       그런 의미에서 남자의 순결 여부는 참 알기 어렵다.


       


       여자는 피라도 나지, 남자는 아무것도 없잖나. 그렇기에 지금처럼 명확하고 알기 쉬운 판별 결과가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


       


       보란 듯이 단검을 살살 흔들다 아공간 반지에 집어넣고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언제나 장난만 치는 줄 알아요? 방금 봤잖아요 베니. 타락한 대지 정령이 그대로 무너지는 거.”


       


       “…아. 마석을 부쉈으면 사라졌지 무너지지는 않겠네.”


       


       “맞아요. 제가 깜짝 놀라서 챙겨오지는 않았는데, 아마 저기 어딘가에 마석이 있을 거예요.”


       


       엄지로 뒤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원석 무더기를 통째로 삼키고는 괜찮은 것만 골라 뱉어내는 샤도우가 있었고.


       


       아마 뱉어낸 것들 사이에 마석도 끼어있겠지.


       


       “그나저나 샤도우는 진짜 유능하네요. 원석 같은 건 전문가가 아니면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전 뭔가 특별해 보이는 것 위주로 챙기고 길드에서 감정받을 생각이었거든요.”


       


       “뭐어. 나도 2층을 돌았던 적이 있으니까. 그때 샤도우에게 원석 생김새를 외우게 시켰거든. 물론, 나도 아직 기억하고 있고.”


       


       2층까지는 미궁의 상층으로 분류되며, 지도는 물론 온갖 정보가 완벽히 정리되어 무료 내지는 저렴한 가격으로 배포되고 있다.


       


       타락한 대지 정령이 지키는 원석의 분류도 그중 하나고.


       


       한차례 으쓱인 베니가 고개를 까딱이며 말을 이었다.


       


       “뭐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알겠어. 타락한 대지 정령이 유니콘의 뿔에 반응한 게 이상하다는 거지?”


       


       “네. 혹시나 해서 묻는데 정령도 성관계가 가능한가요? 아, 제 말은 자신의 형태가 명확한 고위 정령이 아닌 이번 같은 하위 정령도 가능하냐는 소리예요.”


       


       정령과의 혼혈은 아주아주 드물지만 존재하긴 한다.


       


       갈가리 찢긴 생명의 신의 유해는 정령에게도 영향을 미쳤으니까.


       


       다만, 다른 종족과 번식이 가능하다는 것과 야스를 즐긴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애초에 일반적인 번식이 아니라, 자연발생 하는 종족 아닌가. 성욕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존재다.


       


       아마 그 혼혈 또한 상대의 요구에 응한 결과일 뿐이겠지. 아니면 2세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었거나.


       


       적어도 성욕 때문은 아닐 텐데…….


       


       그렇다면 조금 전의 대지 정령은 대체 왜 특공 효과를 제대로 받고 죽었는가.


       


       “설마 어떤 미치광이가 땅에 박고 다니는 건가요?! 아니면, 땅을 뭉쳐서 자기가 박히고 다닌다거나?! 흙에도 발정하는 미친 연쇄 강간마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엄청 무섭지 않나요?!”


       


       “…어휴. 이 변태를 어떻게 해야 할지.”


       


       한숨을 푸욱 내쉰 베니. 그녀가 이내 까치발을 들며 납작평평한 가슴을 쭈욱 내미는 우쭐거리는 포즈를 취했다.


       


       딴에는 선생님 흉내를 내려는 것 같지만, 아무리 봐도 선생님 코스프레를 하는 것 같은 베니가 입을 열었다.


       


       “분명 유니콘 단검에는 비처녀와 비동정을 해하는 힘이 담겨있어. 하지만, 그 외에도 다른 능력이 있잖아?”


       


       “독? 설마 독성 흙이었다니….”


       


       “그거 말구! 정화 말이야! 정화! 지금껏 계속 자기 입으로 말해놓고 알아차리지 못한 거야?! ‘타락한’ 대지 정령이 무슨 뜻인지!”


       


       “네? 그치만 엄밀히 말해서 몬스터는 그냥 미쳐있고, 강할 뿐인 생물 아닌가요?”


       


       “보통은 그렇지. 보통의 몬스터라면 그냥 일반적인 동식물이 힘이 세졌을 거야. 하지만 정령은 달라.”


       


       이어진 베니의 설명에 따르면 정령은 기본적으로 자연의 화신 혹은, 신의 심부름꾼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다른 존재의 피와 살이 섞여 만들어진 것이 아닌, 그저 힘으로부터 태어난 종족.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순수하기 짝이 없다는 소리다.


       


       “그런데 그런 정령에게 광기라는 이물질이 끼어든 거야.”


       


       “순수성이 더럽혀졌다?”


       


       “맞아. 그리고 자연이 더럽혀진 걸 우리는 오염이라고 불러.”


       


       “아하.”


       


       유니콘의 뿔이 단순히 대걸레용 결전 병기는 아니다. 자연 치유 능력 증대나, 정화 효과 같은 게 덕지덕지 발려있기도 하니까.


       


       아직 당해본 적 없지만, 어지간한 독은 내게 통하지도 않을 거라나.


       


       “잠시만요. 그럼 광기가 치료됐다는 건가요?”


       


       “그럴리가. 몸이 정화하는 힘과, 광기에서 뻗어 나오는 침식이 충돌한 끝에 버티지 못하고 몸이 무너진 거야. 아,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제정신이 돌아왔을지도 모르겠네. 정말 짧은 시간이라 별 의미는 없겠지만.”


       


       “…….”


       


       그제야 녀석이 마지막에 남긴 말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분명 도라는 말만 반복했었지? 지금까지는 이쪽을 향해 도둑이라는 건가 싶었는데…어쩌면 다른 의미일지도 모르겠네.


       


       도망쳐라거나. 도와줘라거나.


       


       “…베니. 그런데 베니는 이런 걸 어떻게 알아요? 아, 별건 아니고 추측이라 하기에는 너무 자세히 알고 있는 게 신기해서요. 마법사는 전부 그런 건가 싶기도 하고요.”


       


       “으음. 그런 건 아니려나.”


       


       고개를 저은 베니. 마침 모든 분류를 끝내고 괜찮은 원석과 마석만 삼키고 돌아온 샤도우를 부드럽게 쓸어주며 말을 잇는다.


       


       “광기와 관련된 실험은 내가 직접 경험해본 거잖아. 그래서 잘 아는 거야. 놈들은 사람이 아니라 몬스터 대상으로도 실험했으니까.”


       


       “아.”


       


       그냥 경험담이었구나.


       


       뻘쭘함에 머리를 긁적이고 있자니, 베니가 의식적으로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자! 이제 다 쉬었으니 다음으로 가볼까? 어찌됐건 타락한 정령에게 잘 통하는 무기가 생긴 거잖아? 즉, 안전하고 손쉽게 사냥할 수 있다는 뜻이야!”


       


       “그렇게 말하니 지금 쉬는 시간조차 아깝게 느껴지잖아요!”


       


       “실제로 아까울걸? 그도 그럴 게 다음부터는 리디아랑 와야 하잖아. 샤도우에게 짐꾼 일을 대신 시킬 수는 없으니 전투는 쉬워도 전리품 때문에 금방 돌아가야 할 거야.”


       


       “……!”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다.


       


       베니는 어디까지나 오늘 하루만 리디아를 대신해서 나와준 것뿐이지, 앞으로도 항상 같이 미궁에 올 거라는 소리는 한 적 없으니까.


       


       샤도우가 있는 동안 최대한 뽕을 뽑아야 한다…!


       


       “오늘 잘 부탁해!”


       


       -크응?


       


       샤도우의 거대한 눈깔 근처를 톡톡 두드려 주고는 냅다 엎드려 바닥에 귀를 가져다 댔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규칙적인 심장 박동 소리. 대지의 신이 남긴 심장을 이정표 삼아 최적의 동선을 다시 계산했다.


       


       “이쪽 길로 가면 되겠네요! 뒤처지면 안 돼요?”


       


       “내가 겨우 2층에서 헤맬 것 같아? 요나 너나 조심해!”


       


       어이없어하는 베니를 데리고 앞장서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미로처럼 얽힌 내부를 거침없이 나아가며 마주치는 모든 몬스터를 마석으로 변환시켜 주었다.


       


       코볼트는 내 은신을 간파하지 못해 간단했고, 타락한 대지 정령은 무기를 꺼내는 순간 알아차리고 대응하긴 하지만 스치기만 해도 쓰러지니 어려울 게 없었다.


       


       미궁에서 가장 쉬운 계층은 2층이라는 말이 있다.


       


       1층은 경험이 없어 힘들고, 3층은 순수하게 몬스터가 강하고 기믹이 위험해 어렵다면.


       


       2층은 몬스터도 비교적 고만고만하고, 대단한 함정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경험은 쌓인 상태라 만만하다는 뜻인데….


       


       그 말이 슬슬 이해되기 시작했다. 1층도 가시나무 왕을 제외하면 날로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2층은 더 심하네.


       


       물론 다른 몬스터를 만나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스파이더 퀸 같은 경우에는 수십 마리의 새끼 거미를 데리고 다니는 몬스터다.


       


       내가 한둘을 상대하는 일은 누구보다도 잘할 자신이 있으나, 다수의 적을 상대로 싸우는 일은 좀 불안하거든.


       


       은신은 처음 한두 번의 칼질에 풀릴 텐데 내 체력은 아직도 2층 모험가 수준에 비하면 연약하지 않던가. 


       


       다만 아직 거기까지 진행할 생각은 없으니, 당장 신경 써야 할 위험은 아니다. 지금 해야 하는 것은.


       


       “죽어랏!”


       


       “코고곡…!”


       


       하염없이 땅만 파던 코볼트의 뒤통수를 쑤시는 거랑.


       


       “네 보물은 좋은데 쓸게!”


       


       “도도도도돗…!”


       


       타락한 대지 정령의 곳간을 강도질하는 일에 집중할 때니까.


       


       그렇게 슬슬 지칠 때까지 쉬지 않고 이동하며 전리품을 쌓아 올리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샤도우가 배부르다는데?”


       


       “에.”


       


       끝을 모르고 퍼먹던 샤도우가 파업을 선언했다.


       


       생각해 보면 많이 먹이긴 했지. 장담컨데 오늘 하루의 수익이 지난 일주일 치를 맞먹지 않을까 싶다.


       


       “어쩔 수 없죠. 그럼 이제 돌아갈까요?”


       


       “응. 지금쯤이면 지상에서는 진작에 해가 졌을 테니, 엘리 언니에게 한 소리 듣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해.”


       


       “…예전부터 생각한 건데 리디아 님도, 베니도 엘리를 좋아하면서도 무서워하네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뭐어. 남자는 모르는 여자들만의 세계라는 게 있는 법이거든.”


       


       “???”


       


       그니까 그게 뭔데.


       


       아무리 캐물어도 자세한 이야기는 알려주지 않는 베니. 그런 그녀를 계속 졸라가며 가까운 안전지대로 향하는 길을 찾았다. 그리고.


       


       “뭔가 이상하네요.”


       


       “여기 왔던 길 같은데?”


       


       길 찾기 스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길을 잃었다.


       


       무언가 잘못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흐아아아!

    드디어! 드이어 블아 빵을 산 것입니닷!

    근데 3개 중 2개의 스티커가 중복이었어요. 힝힝.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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