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라는 것이 가끔 술술풀릴 때가 있다.
운세가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 다거나, 가진 실력이 불운을 이겨 낼 만큼 충분하면 일이 풀리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이 둘이 폭발하듯 날뛰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일주일 동안 잡은 노예상인만 두팀.
노예를 구출 해낸곳만 세곳이었다.
“자네는 뭐든 간에 잘 풀리는군.”
“….”
“그렇지 않은가?”
“…”
클로셀 영감님이 물어도 나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게 다 이유가 있다.
“험험, 어쨌든 내 말이 틀린 건 없지 않았는가?”
보통 감옥은 문이 잠겨 있다.
새벽에 갔던 감옥은 특히나 복잡한 방법으로 잠겨 있었다.
풀려면 풀기야 했겠지만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았다는 것.
그때 영감님이 나섰다.
뭐라 그랬더라?
‘무엇이든 열 수 있는 마법이 있네.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지.’
잠긴 문을 열 수 있는 마법.
돌연 우리 옆을 지나가던 사람들의 이야기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감옥입구가 통째로 폭발했다는군.”
“완전히 무너진 모양일세.”
찌릿 –
저게 바로 영감님이 말한 마법의 정체다.
“영감님, 그걸 통째로 날리면 어떡해요?”
“별문제 없었지 않은가? 고도로 계산된 위력이었다네.”
영감님의 말대로 다친 사람도 없었고, 들키지도 않았다.
하지만.
우르르 –
“잠시 검문이 있겠다. 협조하도록!”
온 마을에 병사들이 저러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얼른 가세나. 신전이 없었다면 나도 그러지는 않았을 거라네.”
다행히도 근처에 신전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아이들이 발각되는데 까지 얼마 걸리지도 않았으리라.
“도대체가 여기는 깔끔한 귀족이 없어.”
이런 곳만 골라와서 그런 것일 테지만, 노예 상인들과 얽혀 있는 곳이 제법 많았다.
죄다 도둑놈에, 강도에 아주….
“저기도 한 명 더 있네.”
평범한 척 위장했지만, 내 눈에는 정확하게 보였다.
살짝 찢어진 눈매에 메기같은 입술.
심지어 눈동자의 빛깔도 이상했다.
저건 관상자체도 그렇거니와 살아온 삶때문에 인상마저도 이상하게 변한 케이스였다.
저 꽁꽁숨긴 눈빛을 봐라.
“….?”
점점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도둑놈.
태연한 척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해 있었지만, 그 목적지가 우리인 것은 분명했다.
그것도 파라몬영감님.
불쌍한 사람이 아닐 수 없었다.
“영감님, 그놈 도둑놈이예요! 소매치기 조심…?”
그런데 이게 웬걸.
영감님이 태연하게 그놈의 손이 품 안으로 들어오는 걸 두고 보고 있었다.
이런 거에 당해 줄 영감님이 아닐 텐데?
“괜찮네. 정보원이네.”
“….?”
“자네 정말 정보원들을 잘찾아내는구만? 제국 내의 첩자들도 한번 봐주겠는가?”
“….?”
지나가던 정보원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억울하고, 씁쓸해하는 얼굴로.
어쩌겠는가, 천직을 찾아도 너무 잘 찾는 바람에 도둑놈으로밖에 안 보이는 것을.
“한번 읽어보시겠나? 자네도 알건 알아야 하지 않겠나?”
“제가요?”
“자넨 이제 영향력이 남다른 사람이라네.”
영감님이 건네준 쪽지를 펼쳐보니, 막상 별다른 내용이 보이지는 않았다.
– 큰 시장에서 고기하나, 집 앞에서 생선 여러 마리와 소금 조금.
아마 들키지 않기 위해 위장한 암호인듯싶었다.
파라몬 영감이 대충 설명을 시작했다.
“큰 시장은 하르프 왕국의 수도일세, 고기는 노예 상인을 뜻하지.”
“뒤에거는요?”
“집 앞의 생선은 이곳 근처에 있는 바다일세. 소금은 오크를 의미하네. 자네가 알아봐달라기에 부탁했었네.”
“생각보다 평범하네요.”
보통 그런 걸 생각하지 않는가?
무슨의미인지 알아보기 힘든 문장들.
예를 들어, ‘달빛 아래 거꾸로 선 나무’ 같은 문장 말이다.
“이렇게 해야 잡혀도 의심을 덜 받는다네. 자네가 생각하는 건 척 봐도 수상하지 않은가? 도둑 길드에서나 쓸법한 문장이네.”
“아, 그러네요.”
그건 그렇고, 새삼 제국의 힘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이미 하르프왕국의 수도에까지 첩자를 심어놓았다는 소리가 아닌가?
영감들이 마음대로 뒤집고 다니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바다 근처에 오크라…”
느낌이 솔솔 올라왔다.
“이곳에서 배를 타면 수도까지 갈 수 있네.”
“좋네요.”
“어떤가? 배를 타고 싶은가? 땅으로 걸어가도 멀지는 않으니 상관없네.”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재빠르게 방울을 꺼내려다가, 주변을 한번 둘러봤다.
나에 대한 소문이 많이 퍼져서 자칫 오해를 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것이 워낙에 독특한 행동들이니, 누가 봐도 크리스라고 광고를 하는 꼴이 아닌가.
“일단 신전으로 가시죠.”
신전이라는 말에 루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쏘옥 –
“빠! 신젼 가?”
“응응, 일단 거기로 가야 할거 같아.”
배시시-
“알게쪄!”
새벽에 아이들을 구출하고 신전에 들렀을 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루나는 신전에 있으면 힘이 넘친다.
물 만난 고기처럼 말이다.
놀랍게도 루나가 태어나고 신전에 가 본적이 처음이라 이제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따지고 보면 신당도 신전 아닌가?”
“신댱?”
“우리 집이 신당이야.”
“알고이쪄, 신젼에는 하얀빛이 많아! 신당은 움…다른 게 많아!”
그동안 루나가 제법 자라서 이제는 어엿한 두세살배기의 몸을 가지게 되었다.
아직도 내 정강이만큼 오는 크기였지만 말이다.
천천히 걸어가니 신전앞을 지키고 있는 성기사들이 보였다.
척 –
“성녀님을 뵙…!”
“쉿! 어디 소문낼일 있어요?”
몇 번이나 강조했지만 도저히 고쳐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눈앞에 성녀가 있는데 이들이 인사를 하지 않고 어떻게 참겠는가.
당장 알루어드만 와도 이들은 긴장해야 될 사람들이었으니까.
“찾아온 사람들은 없었죠?”
“병사들이 찾아왔으나 돌아갔습니다.”
“그럼…?”
성기사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이 안전하다는 뜻이리라.
“빠! 나 내려.”
“응응.”
아장 아장 –
스윽?
“아저찌!”
“…헙! 마, 말씀하시옵소서.”
“루나, 져기 가 볼래!”
“명을 받드옵니다!”
맨날 등에 업고 다니려다 보내려니 뭔가 마음이 허전했다.
하지만 성녀를 신전안에서 잡아 둘수는 없는 노릇.
이미 새벽에도 한번 풀어 준적이 있었으니 괜찮을 것이다.
잘 부탁한다고 인사라도 하려고 했지만, 내 말이 들리기나 할까 싶었다.
저 벅차오르는 얼굴, 감동에 젖은 눈동자.
“광신도가 따로없네.”
“허허, 성녀란 그런 존재라네. 전대의 성녀때도 비슷했지.”
전대의 성녀.
그러고 보니 자세한 내용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대륙전쟁 때 큰 희생을 하고 사라졌다 했으니, 영감들은 만난 적이 많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었나요?”
따지자면 루나의 선배격 되는 사람이 아닌가.
알아 둬서 나쁠 게 없었다.
“말 그대로 성녀였다네. 모두가 생각하는 성녀다운 모습을 그대로 갖춘 사람이었지.”
“흠…”
“다음에 알루어드경에게 물어보는 것이 더 자세하게 들을 수 있을 것이네.”
뭔가 대화를 회피하는 듯한 기분이다.
파라몬 영감님도, 클로셀 영감님도, 드잔트도 고개를 살짝 돌렸다.
저런 반응을 보이는데 굳이 캐물을 이유가 있겠는가?
나중에 교단 사람을 만나면 물어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일단 어디로 갈지부터 정해 보죠.”
사람이 없는 곳.
한적한 곳을 찾아온 나는 곧바로 방울을 꺼내 들었다.
딸랑 –
지도를 보며 바다를 상상하고.
딸랑 –
다시 걸어가는 모습을 떠올렸다.
“흐음…바다로 가는 게 좋을 것 같긴 한데.”
둘 다 상관은 없었다.
어느 쪽으로 가도 문제가 될 만한 운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방울을 흔들 수록.
딸랑 –
“왜 자꾸 바다가 보이지?”
“바다로 가야 하는 것인가?”
“당장에 배는 안타요.”
근시일 내에 배를 탈 일은 없다.
그렇다고 말을 탈것 같지도 않았다.
“아우, 여기로 오는 게 아니었는데.”
옛날처럼 눈이 부셔서 잘 안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거슬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신전 안에서 온통 번쩍거리는 빛이 나고 있으니까.
루나의 빛은 편안하기만한데 말이다.
딸랑 –
딸랑 –
“이동수가 꽉 끼어 있기는 한데….이게 오늘 아니면 내일이네요?”
거기다 손님 비슷한 것이 하나 올 것 같다.
요즘 들어 굉장히 답답한 것이 확 그냥 할머니에게 큰 공수를 부탁해 볼까 싶지만….
큰일이 있었으면 벌써 일러 주고 갔을 것이다.
내가 하는것이 얼추 맞는 길로 가고 있지 싶었다.
“손님 만나고 이동할 것 같네요. 오늘은 쉬시죠?”
***
교단에서 차려주는 어마어마한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었다.
밤이 깊었으니, 손님이 내일쯤에나 올거라 생각하고 말이다.
그런데 자는 새벽에 들이닥치다니.
“…크리스?”
옆에 누워 있던 세레나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손님이 온 것 같아.”
주변을 둘려보고는 의아하게 나를 보는 세레나.
근처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
밖에서 들어오지도 못하고 있을 테니까.
“꿈자리가 뒤숭숭하다 했더니… 다른놈이 왔나보네.”
루나를 안아드니 세레나가 포데기를 건네줬다.
“고마워. 같이 갈 거야?”
“네. 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요.”
신전 밖으로 나오니 어둑어둑 한 새벽이었다.
멀리서 보이는 나를 기다리는 손님.
꼴을 보아하니 신전이라고 접근도 못하는 모양이다.
“어휴…”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영혼이었다.
– ….%&@!!!
어제꺼 입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