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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3

        

       주술이 진행될수록 악마의 의문은 거세졌다.

         

       [ 대관람차 바로 아래에 제단을 쌓는 것을 보면 그리스식 번제 같은데….]

       “그, 그리스식…?”

       [ 홀로카우테인(ὁλοκαυτεῖν)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린 염소를 구하라고 한 것이나, 염소의 털 색을 신경 쓰지 않은 것으로 보아 무언가를 섞은 것도 같은데…. 변형된 것인 듯하다. ]

         

       악마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미묘하게 다른 진성의 의식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본래 주술이라는 것은 파생되고 변질이 될 수 있는 것.

         

       일본의 콧쿠리상(狐狗狸さん) 주술이 한국에 넘어와 규칙이 변하며 강령술로 변질되었듯, 의식 역시 사람의 기억과 기록 속에서 변형되거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뒤바뀌는 등의 과정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진성이 사용하는 주술 역시 변질된 것.

         

       고대 그리스에 사용되었던 주술이 다른 지역으로 건너가고, 그것이 그 지방의 환경과 풍습에 맞춰지며 달라진 것이다. 거기에 보통 이렇게 변형되는 경우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우연과 실력 있는 주술사의 힘으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어쩌면 이는 홀로카우테인의 아종이라고 볼 수 있으리라.

         

       그리고 생명으로서의 아종이 그러하듯, 주술의 아종 역시 천차만별이다.

         

       추운 지역의 동물이 보호색을 위해 털 색을 하얗게 바꾸고, 체격이 커지며, 몸에 근육 대신에 지방을 채워 넣는 것처럼 주술 역시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이다. 비슷한 효과를 내되 전혀 다른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도 있고, 아예 다른 효과를 보이는 것도 있다.

         

       마치 물고기가 땅으로 올라와 짐승이 된 것처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아종이 원형을 잡아먹고 더 큰 인지도를 가질 수도 있었다.

         

       [ 그런데 그리스식이면…. 흠. ]

         

       악마는 입술을 스윽 핥았다.

       무언가 의혹이 하나 떠올랐지만 제 동생에게 그런 짓을 시킬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에 바로 접어버린 것이다.

         

       “고, 고대 그리, 그리스?”

         

       하지만 악마의 혼잣말을 들은 이세린은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얼굴을 붉혔다.

         

       “지, 짐노스(gymnos)….”

         

       그녀는 ‘고대 유럽의 역사와 생활’ 강의에서 들었던 내용이 떠올렸다.

       나체로 운동하는 것을 권장했으며, 제 몸을 드러내는 것을 아끼지 않았던 고대 그리스의 문화.

         

       강의에서는 수많은 그림과 조각상을 예시로 들며 그들의 문화를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학교에서 의례적으로 가르치는 성교육보다도 더 충격적이고, 더 적나라한 내용을 담아서 말이다. 당연하게도 학부모에게 항의 전화가 걸려왔지만, 교사는 그 항의 전화에 오히려 보란 듯이 수위를 더 올려버리며 충격과 공포의 수업을 진행했었다.

         

       그때 이세린은 고대 그리스에 대해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서, 설마. 알몸으로 의식을 해야, 하나…?”

         

       이세린은 얼굴을 붉히며 대관람차에 뭔지 모를 액체를 뿌리는 진성을 슬쩍슬쩍 바라보았다.

       하지만 옆에 있던 악마는 안심하라는 듯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 아마도 그러진 않을 것이다. ]

       “으, 응?”

         

       이세린은 악마를 향해 고개를 홱 하고 돌리고는 되물었다.

       그러자 악마는 귀엽다는 듯 이세린을 한 번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 본래 홀로카우테인이란 깜깜한 밤에 행해지는 것. 거기에 공물 역시 눈에 뜨이지 않도록 밤의 색과 흡사한 것을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알몸은 과시를 위한 것. 말하자면 미덕에 가까운 것인즉, 의식의 성질과 반대된다. 계약자야, 계약자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나의 계약자야. 너는 몸을 더 꽁꽁 싸맬지언정 아마 발가벗지는 않을 것이니라. ]

       “과, 과시….”

       [ 고대 그리스에서 알몸이라는 것은 문명이요, 편안한 자유이며,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는 것이었느니라. 물론 그것이 매력이 되기 위해서는 수학적으로 완벽한 몸이어야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한들 잘 단련된 몸은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며 가치 있는 것이었느니라. 또한, 그들이 멸시하는 야만인의 알몸은 문명적이지 못한, 야만적인 것이었지만 그 역시 적에게 자신의 용맹을 과시하기 위한 것인즉. ]

         

       악마는 발굽으로 슬쩍 땅을 긁으며 말했다.

         

       [ 적어도 저것이 고대 그리스에서 파생된 것이라면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즉,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

         

       악마는 준비를 끝내고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진성을 바라보며 혀를 핥았다.

       진성은 거침없이 이세린을 향해 다가오더니 무표정하게 말했다.

         

       “준비가 끝났다. 네가 먼저 해야 하느니라.”

       “저, 저부터….”

       “몸만 오면 된다.”

         

       이세린은 진성의 말에 그의 뒤를 졸졸 따라가면서 적당한 곳에 침낭을 돗자리처럼 깔고 앉아 있는 이아린을 바라보았다. 이아린은 자신의 쌍둥이 동생과 눈이 마주치자 슬쩍 손을 올려 흔들었다.

         

       잘 다녀오라는 뜻이었다.

       동시에, 구경 잘 하겠다는 뜻이기도 했고.

         

       이세린은 자신의 혈연 메이트의 배웅을 받자 왠지 모르게 부담감과 긴장이 사그라지는 것을 느꼈다.

         

       “히, 힉.”

         

       하지만 긴장이 사라진 것도 잠시.

       제단 코앞까지 오자 긴장은 아래로 내려가다 말고 하늘을 뚫어버릴 듯 솟구쳐올랐다.

         

       “이, 이게. 이게….”

         

       가장 먼저 그녀를 맞이해준 것은 코를 찌르는 피 냄새였다.

       피의 정수만을 모아서 사방에 뿌리기라도 한 듯, 콧속을 넘어서 뇌에 직접 꽂히는 비릿한 냄새가 가득했다. 어찌나 강한지 코뿐만이 아니라 혀에도, 목구멍에도 그 냄새가 맴도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에 그녀를 맞이해 준 것은 제단.

       자작나무 장작은 일반적인 제단과 달리 낮게 만들어졌다. 사람의 허리 높이도 되지 않는, 얼핏 보면 높이가 낮은 벤치가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아주 낮게 말이다. 게다가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표면이 촉촉하게 젖어있는 것이, 그녀가 구해온 눈을 장작에 문지른 것 같았다.

         

       제단의 중앙에는 그녀에게 똥오줌을 갈겼던 염소가 있었는데, 언제 깬 것인지 눈을 말똥말똥 뜬 채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염소는 기이하게도 자유를 찾아 온갖 난리를 쳐댔던 아까와는 달리 발이 땅에 붙기라도 한 듯 우두커니 서 있었다.

       주변에 강렬한 피 냄새가 풍기고 있음에도 말이다.

         

       진성은 염소를 앞에 두고 잠시 눈을 감더니 품에서 작은 방울을 꺼냈다. 작은 방울은 꺼내지자마자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듯 몸을 부풀렸고, 진성은 풍선처럼 커지는 방울을 새끼손톱으로 톡 쳤다.

         

       데-엥.

         

       그러자 종을 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진동이 울려 퍼지고, 놀이공원 주변에서 나던 벌레와 짐승이 자아내는 소음이 뚝 그쳤다.

         

       그리고 정적 속에서 헤엄치듯, 무언가가 소리 없이 진성에게 날아왔다.

         

       그것은 눈을 불꽃처럼 환하게 빛내고 있었는데, 펼친 날개의 길이가 어찌나 큰지 그 길이가 사람 하나와 비슷해 보였다. 심지어 날카로운 발톱은 어두운 곳에서도 슬쩍슬쩍 빛을 받으며 그 예기를 드러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사람을 잡아채는 갈고리를 연상케 했다.

         

       [ 수리부엉이로구나. ]

         

       부엉이는 네가 나를 불렀냐는 듯 진성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몸을 부풀렸다.

       진성은 부엉이의 행동에 피식 웃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그러자 정적을 찢는 소리와 함께 수리부엉이가 흠칫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아래로 내렸다. 마치 잠에 취하기라도 한 듯 고개를 꾸벅꾸벅 흔들며 숙이고, 동그랗게 떴던 눈은 반개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윽고 수리부엉이는 고꾸라지듯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진성은 잠에 취해버린 수리부엉이에게 다가가 향기를 맡았다.

         

       “훌륭하다.”

         

       진성은 그렇게 중얼거리곤 수리부엉이를 허공에 띄워 제단의 앞까지 데려갔다.

       그리곤 손에서 불을 피워냈다.

         

       “부, 불?”

       [ 화염주술이 아니라 삼매진화로구나. 허. 저 나이에 저것을 사용한다고? ]

         

       진성은 염소에게 삼매진화를 이용해 불을 붙였다. 그러자 불꽃은 선명한 빛을 뿜으며 염소를 집어삼켰지만, 산채로 타는 고통을 느껴야 할 염소는 그 어떠한 고통도 느끼지 않고, 그 어떠한 생명의 위협도 느끼지 않은 채 불 속에서 아까처럼 멀뚱멀뚱 주변을 둘러보기만 할 뿐이었다.

         

       이는 진성이 비물질만을 태우기를 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불은 무언가를 태워야만 존재할 수 있는 법.

       현세에서 불은 오롯이 존재할 수 없으며, 무언가를 태우며 그 형태를 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물질을 태우는 불꽃은 장작 역시 비물질로 이루어져야 하는 법.

         

       그리고 그 장작은 여기에 널려있었다.

         

       딸-랑!

         

       진성의 손에 들린 작은 방울이 이번에는 작게 울렸다.

       음산하기 짝이 없는, 몸을 진동시키는 것이 아닌 영혼을 유혹하는 듯한 소리로.

         

       그러자 결계에 붙잡힌 악령들이 일제히 방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재료가 이렇게나 많으니, 참으로 좋은 일이로다.”

         

       진성은 악령이 불꽃을 향해 달려올 수 있도록 결계를 풀어주었다.

         

       하지만 결계를 전부 풀지는 않았다.

       또한, 트럭 아래에 깔린 간수 악령 역시 풀어주지 않았다.

         

       이는 주술에 불필요하기 때문이 아닌, 앞으로 찾아올 손님들을 위한 것이니.

         

       ‘선물도 주고, 인맥도 쌓고. 모두가 좋은 일이로다.’

         

       진성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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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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