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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3

       

       

       

       

       “뀨웅.”

       

       아르는 바닥에 앉은 채 고심했다. 

       

       자신의 젤리로 빵실한 볼을 문지르며, 꼬리로 바닥을 스윽 쓸었다. 

       

       아르의 붉은 눈이 부지런히 무언가를 계산하는 듯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뀨!”

       

       작은 체스말을 집어서 다음 자리에 놓았다. 

       

       “허어…. 그렇게 나온단 말이지.”

       

       나 역시 미간을 좁힌 채 체스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음 수를 두기 위해 나이트에 손을 가져갔다. 

       

       “……!”

       

       그러자 아르의 표정이 밝아지려 했다. 

       

       나는 곧바로 나이트를 놓았다. 

       아르의 표정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나는 비숍을 집었고.

       

       “뀨….”

       

       아르는 불안한 듯 침을 꼴깍 삼키며 아주 작은 뀨 소리를 냈다. 

       

       ‘이거다.’

       

       나는 비숍을 움직여 중요한 자리의 폰을 잡았고.

       

       “쀼우…!”

       

       아르는 큰일났다는 듯 양손의 젤리로 자신의 양 볼을 휘휘 문질렀다. 

       

       그리고 그 순간.

       

       “…레온 씨.”

       “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실비아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아르 표정 보고 하는 건 너무 치사하지 않아요? 아이 상대로 너무하시네.”

       “…….”

       

       솔직히 맞는 말이었다. 

       아르는 아직 체스라는 게임을 다섯 판밖에 하지 않았고, 나는 원래부터 체스라는 게임을 알고 학창 시절에도 친구들과 꽤 했었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아르가 첫 판 빼고는 다 이겨 버렸는데 저도 먹고 살아야죠, 실비아 씨…. 좀 봐 주세요.”

       “…….”

       

       그런 아르한테 4연패 중인 나는 슬픈 눈으로 실비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원래 이렇게 대면해서 하는 게임은 심리전도 포함되어 있는 거라고요.”

       

       내가 변명을 하는 동안 아르는 볼을 문지르며 고민을 하던 중 아주 좋은 수가 떠올랐는지 쀼 소리를 내며 룩을 움직였다. 

       

       “쀼!”

       “아니, 저기서 저걸 저렇게 둔다고?”

       

       생각지도 못했던 아르의 수에 나는 생각 나는 수를 하나씩 간 보며 아르의 표정을 살폈지만.

       

       “쀼후.”

       

       아르는 내가 어떤 수를 두든 상관없다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수를 두었지만.

       

       “쀼!”

       

       그 뒤로 단 세 수만에 체크메이트를 당한 나는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졌다….”

       “쀼웃!”

       

       아르는 이겨서 기쁜 듯 하늘을 향해 팔을 쭉 뻗었다. 

       

       ‘역시 우리 아르는 진짜 똑똑하다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기뻐하는 아르를 바라보았다. 

       

       캐머해릴에서 떠날 때, 나는 텐트나 식료품, 간식 등을 사기도 했지만 긴 여행 기간 동안 지루하지 않도록 몇 가지 보드 게임도 구매했다. 

       

       나는 오늘 그중 보편적이면서도 아르가 용병 길드에서 용병들이 심심풀이 내기를 하는 모습을 지나가듯 봐서 익숙한 체스를 꺼냈고, 아르에게 세부 룰을 설명해 준 뒤 게임을 진행했다. 

       

       그리고, 아르가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첫 번째 판을 제외하고 방금 판까지 다섯 판을 내리 패배했다. 

       

       ‘첫 번째 판도 아르가 감을 잡기 전에 초반에 몰아붙여서 이겼지, 중간에 역전 당할 뻔했어.’

       

       예전 같았으면 아르를 얕보고 적당히 룰 적응하게 해 줘야지, 하고 생각하다가 첫 판도 졌겠지만.

       

       아르의 천재성을 알고 있는 나는 첫 판부터 전력을 다했고, 다행히 첫 판이라도 승리를 건진 것이었다. 

       

       “흐으음. 이번에는 그럼 제가 아르랑 해 볼까요? 보고 있으니까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 것 같은데.”

       “후회하실지도 몰라요.”

       “에이, 한번 해 보는 거죠. 아르야, 나랑도 한 판 할까?”

       “쀼우!”

       

       그리고 잠시 후.

       

       “…….”

       “…….”

       “아르 왜 이렇게 잘해요?”

       “그러게요.”

       

       솔직히 실비아 씨의 실력은 나쁘지 않았다. 

       

       ‘일단 나보단 잘하시는 것 같아. 언제 체스를 저렇게 해 보셨지? 이게 B급 용병인가?’

       

       용병 길드에서 심심풀이용 혹은 술 내기용으로 안성맞춤인 게임이라, 고등급 용병일수록 체스 실력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실비아도 아르를 상대로 초반에 호각을 다투다가 중후반에 가서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아르의 실력이 진짜 한 판이 다르게 늘고 있는데.’

       

       마치 알파고가 대국 정보를 많이 습득할수록 정교해지는 걸 보는 것 같았다. 

       

       이 세계에도 체스 AI가 있다면 아르와 대결을 시켜 줘 보고 싶을 정도였다. 

       

       “우리 아르, 역시 영재야, 영재. 똑똑해.”

       

       나는 실비아 씨를 이긴 아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쀼우웃!”

       

       아르는 칭찬을 받아 행복한 듯 풀어진 얼굴로 내 손길을 즐겼다. 

       

       “이렇게 대결 식으로 하는 보드 게임은 아르를 못 따라갈 것 같고…. 제가 이럴 줄 알고 준비해 온 게임이 몇 개 더 있긴 해요.”

       “오오, 뭔데요?”

       “일단 운발이 중요한 카드 게임류, 그리고 주사위를 던져서 진행하는 블루 마블(Blue Marvel)이라는 게임도 있고….”

       “주사위 게임 좋죠!”

       

       아르에게 실력으로 패배의 쓴맛을 본 실비아는 운으로 하는 게임이라는 말에 반색했다. 

       

       “뭐, 여튼 게임은 많으니까 차차 하기로 하고, 일단 지금은 출발하죠. 오늘 꼭 들러야 할 데가 있거든요.”

       

       그간 우리는 원래 가려던 경로를 변경해 꽤 타이트하게 달렸고, 가가레일 유적지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으로 말들이 휴식하는 동안 잠시 보드 게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출발하겠습니다!”

       

       체스판을 정리하고 마차에 다시 탑승한 우리는 유적지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늦지 않은 시간에 도착한 우리는 낡은 유적지 입구 앞에 섰다. 

       

       “여기가 레온 씨가 말씀하신 유적지예요?”

       “네. 맞아요.”

       “유적지라고 하기에는 생각보다 너무 초라한데요.”

       “그래 보이긴 하죠.”

       

       실비아의 말대로 이 가가레일 유적지는 겉보기에는 다 쓰러져 가는 낡은 석재 건물일 뿐.

       

       유적 파기를 좋아하는 도굴꾼들도 이 모습을 보면 고개를 절래절래 저을 정도로 먹을 게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유적지다. 

       

       ‘오히려 그래서 아직까지 먹을 게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은 거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앞장서 들어갔다. 

       

       “버트 씨는 여기서 기다리고 계세요. 길어야 세 시간이면 나올 테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저희는 들어가죠. 아르야, 가자.”

       “쀼웃!”

       

       아르는 유적지가 초라해 보이든, 초라해 보이지 않든 이런 낡고 비밀스런 공간에 들어간다는 것만으로 신이 나는 듯, 내 옆에서 한 발씩 방방 뛰며 따라왔다. 

       

       안쪽은 으스스했다. 

       

       “라이트.”

       

       조금만 걸어 들어가도 불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곳이었기에, 라이트를 시전해 주변을 비추었다. 

       

       길은 복잡하지 않았다. 

       

       그저 큰 길을 따라 안쪽으로 계속 들어가면 끝.

       

       그리고 가장 안쪽의 큰 방에 도착하면….

       

       “엇, 저기에 뭔가 관 같은 게 있는데요?”

       

       실비아는 먼저 달려가 누가 봐도 뭔가 있어 보이는 관을 열었다. 

       

       “…근데 아무것도 없네요.”

       “아무리 낡아 보이는 유적지라도 누군가 지나가면서 여기까지는 털어 갔을 테니까요.”

       

       실제로 이 관 안에는 주변 지역에 사는 캐릭터가 뽑혀서 게임 극초반에 빨리 오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없는 게 정상이다. 

       

       ‘사실 극초반에 와도 별게 없긴 해. 기껏해야 건질 거라곤 낡은 마력석 몇 개랑 은으로 된 목걸이 정도.’

       

       하지만.

       

       나는 관이 아닌, 방 안에 있는 석상 중 하나에 다가갔다. 

       

       그리고 석상이 들고 있는 방패를, 있는 힘껏 밀었다. 

       

       뚝.

       

       “…됐나?”

       

       그러자 뭔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관짝의 밑바닥이 열리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드!!

       

       “쀼우웃?!”

       

       관 모서리에 올라서서 균형 잡기 놀이를 하고 있던 아르가 바닥의 진동 탓에 중심을 잃고 떨어졌다.

        

       “쀽.”

       

       꼬리로 뒤로 굴러 떨어지는 걸 막은 아르는 눈이 땡그래져서 얼른 다시 일어서 열린 바닥을 바라보았다. 

       

       “계단…?”

       

       그 아래에는 지하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다시 앞장서서 계단 밑으로 내려갔다. 

       

       “…레온 씨.”

       “네?”

       “이런 건 도대체 어떻게 알고 계시는 거예요?”

       

       나를 따라오던 실비아가 살짝 얼이 빠진 얼굴로 물었다. 

       

       타당한 의문이었다. 

       

       가 본 적도 없는 유적지 안의 비밀 통로를 척척 알아내서 들어가다니,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지. 

       

       하지만 나는 미리 준비해 둔 대로,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아, 이거요? 꿈에서 봤어요.”

       

       ***

       

       내 생각대로 실비아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저번에 서로가 안고 있는 비밀이 있다고 했으니, 깊게 캐묻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더 깊게 묻고 있을 겨를도 없을 거고.’

       

       철그럭.

       절그럭.

       

       “…이 소리는.”

       

       내가 라이트 마법을 비추자, 무언가 우리 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석상이 움직이고 있어…. 그렇다는 건.”

       “골렘입니다. 빠르게 정리하죠!”

       “쀼웃!”

       

       실비아와 나는 앞으로 달려 나갔고.

       아르도 얼른 내 후드에 올라 타 마법 시전을 준비했다. 

       

       ‘아르야. 저 녀석들은 골렘이라 화염 속성 내성을 가지고 있거든. 그러니까 얼음 마법으로 가자. 알겠지?’

       

       나는 아르를 돌아보며 눈빛으로 뜻을 전달했고, 아르는 알았다는 듯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철그럭.

       

       구우우우웅—

       

       안쪽에 있던 석상들은 붉은 안광을 뿜으며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여기가 진짜 이 레벨대에서는 폭렙 가능한 구간이지.’

       

       현재 나와 아르의 레벨은 각 27, 그리고 28.

       

       이 방에 있는 골렘들만 잡아도 아마 1업씩은 확실히 할 수 있을 거다. 

       

       ‘이 유적지 안에 있는 골렘을 다 잡으면 당연히 30레벨은 훨씬 넘겠지.’

       

       아르의 다음 성장이 30일지, 40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10의 배수니 뭐라도 있을 거다. 

       

       나는 손 앞에 생성된 마법진을 보며 외쳤다.

       

       “쀼—.”

       “—아이스 블라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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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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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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