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03

        

         어지러운 걸 넘어, 구역질이 올라올 수준으로 미친듯이 흔들리는 시야에 집중했다.

         

         반사적으로 겨눠지는 총구를 휘둘러진 팔이 후려친다.

         그 반동으로 인해 열린 상반신을 히든 블레이드가 가차없이 관통하고, 행여나 숨이 끊어지기 전에 무슨 헛수작이라도 부릴라. 발사된 탄두가 강도의 이마밖을 관통한다.

         

         한 놈이 정리되자 또 시야는 격변.

         그새 벽면을 지지대 삼아 도약했는지 위아래가 뒤집어진 기차를 가로지른 제로가 또 한 명의 머리를 붙잡아 바닥에 꽂아 넣었다.

         

         총탄이 튀고, 칼날이 번쩍일 때마다 터져 나가는 살과 갈라지는 피부. 그리고 허여멀건 한 체내 수액이 아주….

         

         “…어우.”

         

         “…? 많이 더우셔요 언니? 객실 온도를 좀 더 낮게 설정할까요?”

         

         목 아래로부터 후끈한 열기가 올라와서 손부채질을 하니, 차량 여기저기가 파손되면서 올라간 기온 탓이라 여기고 재잘거려오는 로잘린의 호의를 사양했다.

         난 그저 말 그대로 유혈 낭자한 풍경을 외면하고 싶었지만… 가까스로 참아낸 거에 불과했으니까.

         

         뜬금없이 별난 취향에 눈을 뜨고자, 고어(Gore; 잔인성) 내성도 그다지 없는 내가 억지로 이걸 관전하는 건 아니었다.

         

         제로가 어느 정도로 싸울 수 있는지 확인해보겠다는 목적도 있었으나.

         꽤 끔찍한 개조 인간도 섞여 있었다는 타이토 갱단의 현주소-잔존 전력-을 확인하지도 않고 성급하게 판단을 내리기엔 일이 잘못될 여지가 많아서 억지로라도 인내심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뭐, 그럼 그냥 로잘린이 만든 음압 예측 모델인가 뭐시긴가하는 화면으로 보면 되지 않냐고?

         저런 열악한 조감도를 본다고 전황을 이해할 수 있었으면 내가 숙련된 군인이었지, 해커 흉내내는 일반인 겸 초짜 용병일리가.

         

         아예 의식을 깊게 동화시킬 때는 잘 몰랐는데, 시각만 살짝 빌리려니 가만있는 몸과 움직이는 스크린의 괴리감이 장난 아니었다.

         

         이게 그 VR 멀미인가 그거일까…?

         복도로 나가서 기차 몇 량 건너가면 존재하는 생생한 풍경은 버츄얼(Virtual; 사실과 유사한 것)이 아니라 그냥 리얼리티(현실)였지만 어쨌거나.

         

         “아가씨가 여기까지 구조 활동에 나서 줄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그래도 덕분에 여러모로 살았네. 생각보다 제법 파이브 아이즈에도 잘 적응할 것 같은 면모가 보이는데… 어떻게 관심 없나?”

         

         “……됐네요!”

         

         몸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아시프가 농담처럼 건넨 말에 완곡한 거절을 표하니 왜인지 옆에 있던 로잘린이 실망했다.  

         다행히 대부분은 자신의 피가 아니라 저~ 앞쪽에 가로누인 살덩어리가 출처로 보였지만, 안색에서부터 이미 피곤한 기운이 줄줄 흘러나왔다.

         

         …이 아저씨는 아량도 넓지.

         목숨 걸고 일면식도 없는 타인을 구하라 하면 누구나 ‘이걸요? 제가요? 왜요?’ 부터 박을 텐데, 이렇게 녹초가 될 때까지 헌신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하긴 그러니까 저항군 딱지 달고도 대담하게 활보할 수 있는 건가? 견고한 품성은 그 자체로도 강점이 되는 걸지도.

         

         – …또 아샤님을 엉뚱한 말로 현혹하려 든다면 이 참에 기절시키겠습니다. –

         “난 단순히 칭찬한 것뿐이네만.”

         

         남의 사유물에 도끼나 휘두른, 이런 난폭한 수배자와 엮이는 건 위험하다며 아시프를 향해 날을 세우고 틱틱거리는 제로를 진정시켰다.

         …얘는 아무리 봐도 치고 박았던 상대방과 나란히 있는 게 껄끄러운 것 같은데, 거기에도 나름 합당한 이유를 붙여서 나를 설득하려 드는 게 우스웠다.

         

         “후… 좋아.”

         

         신경 쓰이던 인물들도 모두 무사하겠다 이제는 이 난장판을 수습…이 아니라, 저 강도 새끼들을 쫓아내기만 하면 된다.

         생각해보니 수습은 죽어라 달려오고 있을 기업 사후 처리반의 몫이지 내 역할이 아니었다.

         

         목청을 가다듬고 나름대로 준비해 온 권고안을 떠올린다.

         

         “저놈들한테도 잘 들리게 통신 출력음 좀 키워 줄래?”

         

         – 확인했습니다. –

         

         까드득!!

         

         성큼 내딛어진 제로의 다리가 요란하게 시신의 팔을 밟아 부쉈다.

         시끄러운 총성이 울리는 와중에도, 강철 합금이 뼈를 부스러트리는 소음은 충분히 이질적이었는지 정신없어 보이던 좌중의 이목이 제로를 향해 쏠리는 게 똑똑히 보였다.

         

         떡 벌어진 입, 흔들리는 눈동자, 초조한 기색.

         궤멸한 별동대, 소식이 끊어진 다른 조, 늘어지는 강습 계획.

         

         자, 이만하면 차고 넘칠 정도의 공포 분위기도 조성됐을 터다.

         

         그럼 어디 항복을 권유해서 제 발로 꺼지도록 해보실….

         

         “드… 드로이드다! 기업 새끼들이 왔다…!!”

         

         “어.”

         “에?”

         

         – ……. –

         “음…?”

         

         타이토 갱의 째지는 비명과 함께 들려진 검지가 가리킨 건 물론 공공연하게 복도를 차지한 제로.

         언제든 총격전을 이어갈 수 있도록 옆쪽에 선 아시프도 손가락질에 포함한 건지 아닌 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 꽂히는 경계의 시선을 보면 동등한 위협으로 치부되는 것 같았다.

         

         후방에 있는 나와 로잘린은 동시에 현재 지원병력의 위치를 확인한 후, 아는 바가 있냐며 얼굴을 마주했고. 최전방의 둘은 피차 서로의 소속을 알면서도 그쪽이 원흉이냐며 삐끗하게 눈을 흘겼다.

         

         아무래도 저 외침에 담긴 논리를 이해하기 어려운 건 나만이 아닌 모양이다.

         그러니까… 그… 드로이드는 존나 고가의 전투 병기니까, 틀림없이 기업 병력이 도착한 것이다! …이건가?

         

         다소 난폭하기는 해도 그럴싸한 이론을 따르고 있으니 틀리지 않기는 했는데… 아니, 이번에는 완전 틀렸는데요.

         

         “으아아… 드디어…! 이 악물고 버틴 보람이 있구만!”

         

         “씹, 발. 두목!! 이젠 어떡합니까?!”

         

         지금만은 무자비한 공권력의 등장이 더없이 반갑다는 듯 환호하는 승객들.

         반대로 돌이킬 수 없는 좆 됨을 감지하고 창백해진 범죄자 겸 예비 시체들.

         

         이쪽은 아직 찾아온 용건은커녕 기본적인 자기소개조차 꺼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놈들은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느라 더럽게 바빴다.

         

         “시간 재던 놈은 어디 갔어?! 위험해지면 재깍재깍 말하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아까 빅보이한테 맞아서 터졌는뎁쇼!”

         “개지랄이 났구만 아주!!”

         

         “저것들, 완전 원시인들이 따로 없다니까요!”

         “…이건 조금 당황스럽네.”

         

         힘껏 씩씩대는 로잘린 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살짝 예상이 어긋남을 느꼈다.

         

         대담무쌍하게 메트로폴리스 간 횡단 기차를 털기로 마음먹은 거나, 탈출 수단이자 쐐기로 호버크래프트를 구비한 점, 부하의 숫자가 꽤 많다는 것도 고려해서.

         갱단의 수괴와 나 사이의 냉정한 협상이 이루어지리라 여겼는데, 설마 그저 끔찍하게도 안전을 챙기는 소인배의 행각이었다고?

         

         어느새 도열한 타이토 갱단을 훑는다.

         과연 뒤로 주요 병력이 몰려갔다는 내부 정보엔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

         

         자신들이 휘말리는 걸 경계했는지, 여태까지 차마 꺼내지 못하던 화약뭉치와 조잡한 사제 폭탄 등을 주섬주섬 꺼내 쥔 모습은 그야말로 유리대포의 향연.

         

         누가 보더라도 망한 김에 자폭할 기세가 만만한 상대의 태세를 확인한 두 명의 몸도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당겨졌다.

         

         ……내가 너무 몰아붙였나?

         원래는 약간 마지못해 전투를 포기하는 느낌으로 무사 퇴각을 보장해줄 계획이었다.

         

         호버크래프트 구석에 차곡차곡 쌓여 있던 물자 상자들을 떠올렸다.

         

         놈들의 희망사항보다는 현저히 적은 양의 수확이겠지만, 달리 보면 저들 또한 갈라 먹을 머릿수가 반토막도 더 났으니 납득하고 달아나려 들지 않을까… 하는 내 소박한 기대는 거기까지 물러날 생각도 없는 시점에서 망가졌다.

         

         이래서 대놓고 살 길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했던 건데 이 새끼들은 왜 멋대로 거품 물더니 결사 항전을 각오하는 걸까?

         

         “아가씨…? 기막힌 묘수가 있는 게 아니라면 그냥 우리가 먼저 공격해도 되겠나? 지금이라면 못해도 셋은 잡아낼 수 있는데.”

         

         – …명령을. –

         

         금방 폭발할 게 뻔한 화약고에 들어갈 생각이 만만한 두 명을 바라본다.

         오합지졸이 상대이니, 전위와 후위의 역할 구분이 확실한 이 콤비는 대치가 풀리는 순간 강도들을 섬멸하기 위해 날뛰리라.

         

         하지만.

         

         “너무 별로인데….”

         

         나는 이런 모지리들을 정리하기 위해 우리 측이 떠안아야 할 약간의 위험부담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갓난아기가 방아쇠를 당겨도 살살 발사되지 않는 게 총이었으니까.

         

         뾰족한 수가 없나 고민하던 그때,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저들의 오해를 굳이 풀어줄 필요가 있나? 어찌되었건 조작이 끝난 호버크래프트 안으로 밀어 넣기만 하면 되는 거 아냐?

         

         게다가 사람은 스스로 내린 결정이라면, 환경이나 주변에 의해 유도된 결과인 걸 눈치채기 힘들다는 연구 결과-인터넷 게시글-을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아예 착각을 가속시켜 주고 약간의 연극까지 곁들인다면 정말 완벽한 유인책이 되지 않을까?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음량 최대로 키우고, 노이즈도 약간 넣어줘. 더 그럴싸해 보이게.”

         

         한두 달짜리 기간제 정규직 경력자라도 무려 최상위 실적을 자랑하던 상관 밑에서 구른 만큼 매뉴얼과 실제 상황은 질리도록 보고 배웠다.

         

         그런고로, 어디 니들이 이거에 안 속고 배기나 한 번 보자.

         

         

         – 크흠… 아… 아아! 이쪽은 하베스트 플래닛 국경 수비대 소속, FG-01와 예하 탐색 로봇입니다. 무장 강도 및 폭발 사고 조사에 긴밀한 협조 부탁드립니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경찰이다! (아님)
    다음화 보기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