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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3

   봄.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장.

     

   그런 봄이 완연하기 시작한 때.

     

   서류를 가득 들고, 복도를 걷고 있는 한 남성이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라헬른 아카데미의 부교수로 일하고 있는 이였다.

     

   폭풍 같았던 작년.

   라헬른 아카데미의 첫 시작에서 얼마나 많은 전쟁통을 치렀던가.

     

   학생들은 하나 같이 자신의 이권을 챙기고자 세력 다툼을 반복했고, 교수들은 빈번하게 터지는 사고를 막기 위해 미친 듯이 뛰어야 했다.

     

   라헬른 아카데미는 그야말로 홍역을 앓았다.

   물론 그런 홍역을 좀 치르고 나니 최근에는 조금씩 잠잠해지고 있긴 했다.

     

   하나둘 학생 중 뛰어난 이가 세력의 중심에 자리 잡기 시작한 덕분이다.

     

   그렇게 겨우 안정이 되어가나 싶더니.

   이번 봄, 또다시 신입생이 들어 온다.

     

   ‘젠장.’

     

   부교수는 자기 얼굴을 손으로 텁하니 감쌌다.

   겨우 안정된 마당에 또 신입생이 쏟아져 들어오면 아카데미 꼴이 어떻게 될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해 입학생을 받지 말라고 교장의 멱살을 쥐어 잡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고작해야 부교수밖에 안 되는 그의 신분으로는 그런 짓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런 그가 오늘 할 일은 무엇인가.

   다름 아닌 아카데미 입학시험을 치르게 될 리스트를 살피는 것이었다.

     

   작년 입학식 때는 난리가 났다.

   그러니 이번 입학식만큼은 반드시 시험 인원을 확실히 파악해 문제없이 시험을 진행하겠다고, 교수들은 일동 다짐했다.

     

   덜컹!

     

   발로 부교수실 문을 밀어낸 그가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러자 눈그늘이 잔뜩 쌓인 부교수 몇 명이 이쪽을 보다가 이내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다들 같은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왜 이 썩을 아카데미가 대성황인 걸까.’

     

   세계 최고의 영웅들을 키워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세워진 라헬른 아카데미.

     

   제국과 4왕국, 그리고 작은 규모의 수많은 왕국이 힘을 모아 세워낸 아카데미인 만큼.

   본래라면 화합의 장이 되어 모두 다 함께 으쌰으쌰 하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이미 자신의 세력에 찌들 때로 찌들어버린 학생들은 세계 침식에서 세상을 지키는 영웅이 아닌 자신의 나라의 이권만을 바라는 이들이었다.

     

   ‘세상은 썩었어.’

     

   이제야 막 성인이 된 아이들이라면 다를 줄 알았건만.

   그들이 얼마나 영악하고, 사악한지, 그는 부임하고 며칠이 되지 않아 깨달았다.

     

   ‘생각하면 또 과민 대장 증후군이 터진다.’

     

   부교수 하멜은 서류를 두고, 자리에 앉았다.

   오늘도 일이나 열심히 해야지.

     

   “하멜 씨, 그쪽은 이제 시작인가요.”

     

   그러는 순간 볕이 잘 드는 한편.

   차를 한 모금 하는 여성이 느긋한 미소를 보여왔다.

     

   검은색 흑발 사이, 눈가에 콕 하니 찍힌 점이 눈에 띄는 그녀는 자신과 같은 부교수, 카이란이었다.

     

   그런 그녀가 왜 이토록 느긋한가.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야말로 이번 입학시험의 주관을 맡게 된 가장 불운한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입학시험을 주관하게 되는 건 순전한 뽑기였다.

     

   아카데미에 오기 전에도 이름을 날렸던 교수들은 당연히 그런 건 부교수가 할 일이라며 하나 같이 입학시험 주관을 맡기를 사양했고.

   그 결과 부교수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뽑기를 해야 했다.

     

   그리고 거기에 당첨된 것이 바로 카이란이었다.

   그렇기에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서류는 쉬라고.

     

   “……얼른 입학식이 시작되면 좋겠네요.”

     

   입학식이 시작될 때쯤이면 모든 입학생이 다 뽑힌 뒤다.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카이란을 안쓰럽게 본 하멜은 그만 서류로 눈을 돌렸다.

     

   그렇게 그가 첫 장을 넘겼을 때였다.

     

   “씨발?”

     

   무심코 튀어나온 욕설과 함께 일순간 모두의 시선이 이쪽으로 꽂혔다.

   방금 발언은 서류를 보는 부교수의 입에서 나오면 안 되는 거였기 때문이다.

     

   “누구야. 누가 또 씨발 소리를 낸 거야.”

   “제발, 입학시험이라도 조용히 가자고.”

     

   부교수들이 우는 소리를 내었다.

   입학시험 담당관인 카이란은 욕설이 들릴 때마다 몸을 떨었다.

   자신의 미래였기 때문이다.

     

   그사이 하멜은 얼굴을 감쌌다.

   그도 그럴 게 입학 신청서에 적힌 이름 탓이었다.

     

   ‘4황녀, 시즐리 에파니아.’

     

   올해로 15살이 된 이이자 소문으로는 제국 제일이라 일컬어지는 머리를 지닌 천재 소녀.

   그리고 사실상 올해 들어올 신입생 제국파들의 중심이 될 인물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벌써부터 하멜은 두통을 느꼈다.

   첫 장을 펼치자마자 요주의 인물을 발견하다니.

     

   게다가 호위 인물로 적힌 것은 광검이다.

   그녀의 악명을 들은 적 있는 하멜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래도 그나마 주는 문학, 부는 특수학 지원인가.’

     

   라헬른 아카데미는 총 다섯 가지의 학과로 나뉘어 있다.

     

   무를 중시하는 무학

   학문을 중시하는 문학

   신을 중시하는 신학

   마법을 연구하는 마학

   앞에 네 개와는 별개 기술을 배우는 학과 특수학

     

   학생들은 이 중 주가 될 하나의 학과를 택하고, 부가될 또 다른 학과를 하나 더 선택한다.

     

   시즐리는 그나마 소란이 적은 문학과 출신.

     

   물론 소란이 적다는 게 다른 학과에 비해서지.

   그쪽은 부교수조차 따라가기 힘든 머리싸움을 한다는 게 문제이나.

   적어도 겉보기에는 가장 조용한 학과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봐야 하나.’

     

   문학과는 기본적으로 라헬른 아카데미에서 준비된 시험지를 풀고, 점수를 매기는 식이다.

   그러니 입학시험에서는 문제가 생길 일이 없으리라.

     

   그래도 주의할 인물인 만큼 그는 서류를 슬쩍 빼놓고는 다음 서류들을 살폈다.

     

   “씨발.”

     

   그리고 또 한 번 그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모두의 시선이 또다시 모였지만 하멜은 서류만 노려보고 있었다.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보인 이름이 그의 머리를 엄청나게 아프게 했기 때문이다.

     

   ‘메리 다이아나라고?’

     

   세계 침식자에게 당해 4황녀 시즐리 에파니아를 죽일 뻔했다던 미친년이었다.

     

   세계 침식자고 자시고, 황족을 시해할 뻔했던 만큼.

   다이아나 가문에서도 그녀를 외면하고, 처형 예정일까지 잡혔다던 소문이 돌았었는데.

   어떻게 처형을 피해 아카데미에 입학 서류까지 넣었다.

     

   ‘살해 당할 뻔했던 황녀랑 동시에 아카데미에 입학시킨다고?’

     

   하멜은 지금 상황이 도통 이해가 안 됐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그는 특이 사항에 적힌 것을 보았다.

     

   ‘……황가의 낙인이 새겨져 있음.’

     

   황가를 향해 조금이라도 이빨을 드러내는 순간 즉시 뇌가 분쇄되어 죽어 버린다는 에파니아 제국의 낙인.

   그것이 메리 다이아나에게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낙인의 즉시 발동 조건을 쥐고 있는 게 시즐리 에파니아라고?’

     

   하멜의 눈이 게슴츠레 떠졌다.

     

   메리 다이아나는 과거 제국의 창 후보로 올랐던 만큼 천무지체의 소유자라 했다.

   제국은 그녀란 카드를 무턱대고 잃고 싶지 않았고, 차라리 이참에 확실하게 황가의 개로 목줄을 채워 버린 게 분명했다.

     

   문제는 그 목줄을 쥔 것이 다름 아닌 시즐리 에파니아였다.

   메리 다이아나가 노린 건 4황녀였던 만큼 그녀가 목줄을 쥐는 건 어쩌면 당연한 절차일지도 모르지만.

     

   ‘뭔가 더 있어.’

     

   어쩌면 메리 다이아나가 처형을 피할 수 있었던 건 시즐리 에파니아의 선처가 있어서일지도 몰랐다.

     

   마탑 개 삼 년이면 마법을 읊는 법.

   그도 라헬른 아카데미에서 수많은 이권 다툼을 본 결과 대충 윤곽 정도는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음습한 기운이 듬뿍 느껴졌다.

     

   ‘이쪽도 요주의 인물이군.’

     

   그녀의 주는 무학, 부는 특수학이었다.

   이쪽도 부가 특수학인 게 마음에 걸렸지만, 더 신경 쓰지 않도록 했다.

     

   아직 서류는 많이 남았다.

   하멜이 다음 서류를 드는 순간이었다.

     

   “씨.”

     

   이제는 욕도 전부 이어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서류에만 이런 녀석들이 다 모였나 싶어 한숨을 내쉬었다.

     

   제일 처음 보인 이름은 발하임.

   세계 최강의 가문이자 수많은 영웅을 배출한 인외의 마굴.

     

   그곳의 막내, 크라슈 발하임.

   그 이름이 이곳에 적혀 있었다.

     

   그는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지금도 라헬른 아카데미에 있는 최강의 골칫거리 중 하나인 샬롯 발하임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검성, 샬롯 발하임.

   그 칭호에 걸맞게 그녀는 라헬른 아카데미 제일의 검이었다.

   그리고 제일의 문제아였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을 건드리는 순간 일말의 망설임 없이 상대를 바닥까지 박살 내놓았다.

     

   특기는 자신의 성깔을 숨기지 않기.

   취미는 눈 마주치면 내리깔게 하기.

     

   눈에 이채가 거의 없는 샬롯은 부교수인 하멜이 보기에도 두려운 이였다.

     

   그런 샬롯의 동생이 온다.

     

   ‘분명 발하임 막내의 소문도 몇 번 들려왔던 거 같은데.’

     

   하멜은 기억을 잠시 더듬었다.

     

   발하임의 막내는 반푼이, 최근에는 그가 달라졌다는 소문들까지.

   발하임의 막내와 관련된 소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 정도로 많았다.

     

   ‘어느 순간 들려 오는 게 좀 줄어든 것 같은데.’

     

   크라슈가 재기했다는 게 헛소문이라는 말도 종종 떠돌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발하임은 발하임.

   또 다른 폭풍의 눈이 될 것은 확실했다.

     

   주는 무학, 부는 특수학.

   이쪽도 부는 특수학이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서류를 따로 빼두었다.

   그러고는 서류를 또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역시 이번에도 작년이랑 비교해도 만만치 않은 수준인데.’

     

   그는 넘길 때마다 어느 가문의 주요 자식이거나 하는 상황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1년은 상황을 보려던 가문들이 라헬른 아카데미 소식을 듣고, 너도나도 죄다 입학 신청서를 넣어온 탓이었다.

     

   ‘허, 이그리트 가문의 직계도 있네.’

     

   붉은 마탑을 떠올린 그는 마학 쪽도 심상치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보다 부학과를 특수학으로 정하는 요주의 인물들이 묘하게 많지 않나?’

     

   이그리트 가문의 직계도 특수학이였기에 그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다음 장을 연 순간 그는 한 이름을 보았다.

     

   ‘아서 그라말테.’

     

   그 이름은 평범한 이름이었기에 그는 대충 일반 서류에 넣어 두었다.

   그 뒤로도 요주의 인물들에 들어가는 서류는 자꾸만 늘어 갔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저 멀리서 카이란의 입가가 파르르 떨리는 것은 하멜은 보지 못했다.

     

     

   * * *

     

     

   하늘 끝까지 닿아 구름을 뚫어 하늘을 떠받고 있는 압도적인 크기의 나무.

     

   신목(神木)

   세계수(世界樹)

     

   계절마다 그 색을 바꾸며 봄에는 분홍빛의 꽃잎을 흩날리는 나무 아래.

   나무만큼이나 거대하게 지어진 성 한 채가 바로 라헬른 아카데미다.

     

   학생들이 지내는 기숙사 부지를 포함해 웬만한 도시 규모의 라헬른 아카데미는 세계 침식의 침투를 막는 신목의 힘 아래, 세계 제일의 아카데미라는 포부를 내걸었다.

     

   그리고 그 포부에 걸맞게 라헬른 아카데미의 첫 시작은 그야말로 인재의 폭풍이었다.

     

   그런 폭풍 같은 1년이 겨우 끝마친 시점.

   또 다른 폭풍들이 다시금 라헬른 아카데미를 덮쳐오고 있었다.

     

   다그닥, 다그닥-

     

   울려 퍼지는 마차 소리와 함께 마차 안, 검푸른 머리카락의 이가 스르륵 눈을 떴다.

   겉보기에는 18살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큰 키와 외모를 지닌 이는 창문가로 눈을 돌렸다.

     

   그러자 창문 쪽에 세계수의 꽃잎들이 흩날리며 지나갔다.

   본래라면 아름답다며 감탄할 만큼 세상은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그는 이미 질리도록 봤던 광경이었으니까 말이다.

     

   “결국 왔나.”

     

   혼잣말을 내뱉은 그의 이름은 크라슈 발하임.

   올해 기다리고 기다리던 라헬른 아카데미의 시험을 치르러 온 그였다.

     

   “설레느냐?”

     

   웬일로 생각이 아닌 들려온 목소리의 크라슈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 앞에는 까마귀 한 마리가 앉아 날개를 고르고 있었다.

     

   그가 스승으로 데리고 있는 이이자 세계 침식자인 불사자, 크림슨가든의 종이었다.

     

   “설레기는 개뿔이.”

     

   크라슈는 헛웃음을 삼킬 뿐이었다.

     

   과거 이곳은 크라슈에게 도피처였다.

   발하임에서 눈치 보고 살 바에야 차라리 라헬른 아카데미에 있겠다는 마음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라헬른 아카데미 또한 도피처가 되어 주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이곳 또한 발하임이라는 이름은 끊임없이 그의 목을 졸랐으니까.

     

   ‘그렇지만 이번에는 다르겠지.’

     

   크라슈는 가볍게 손을 들어 보였다.

   그러자 자기 손을 타고 흐른 뇌기와 흑염이 느껴졌다.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자신이다.

   이번 라헬른 아카데미는 이전의 자신은 상상조차 못 할 시간이 될 것이다.

     

   “그렇게나 설렌다면 내가 하나 주의 시켜주마.”

     

   방금전에 안 설렌다고 했건만.

   크라슈는 크림슨가든을 못마땅한 눈으로 힐끗 보았다.

     

   “저번에 터득한 그거 입학시험에서 쓰지 말거라.”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크라슈는 별소리를 다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입학시험에서 내가 그걸 쓸 일이나 있을 거 같냐?”

   “네놈은 쓸데없는 곳에 힘 빼는 걸 좋아하지 않느냐.”

     

   크림슨가든이 노려보자 크라슈는 눈을 피했다.

     

   “기껏 해 준 경고니 들어라. 출력을 조절하는 게 어렵지 않으냐. 입학시험에서 사람 죽이고 싶은 건 아니겠지?”

     

   죽이고 싶은 놈들은 몇 명 있긴 하지만.

   크라슈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펜달 때처럼 회귀의 지식으로 사람을 판단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쓰레기라고 판단이 나면, 여지없이 좋은 결과는 맞이하지 못 할 테지만 말이다.

     

   “그보다 이거나 받거라.”

     

   그 순간 크림슨가든이 크라슈에게 브로치를 툭 던졌다.

   그 브로치를 크라슈가 손으로 받자 크림슨가든이 설명해 주었다.

     

   “내 목소리가 전해질 물건이다. 아카데미 안에서 까마귀를 보였다간 크라드 때를 떠올릴 녀석이 있지 않겠느냐.”

   “옳은 판단이네.”

     

   제국에서의 일 당시 메리도 까마귀를 보았다.

   그러니 크라슈는 브로치를 품 안에 잘 넣어 두었다.

     

   “크림, 넌 어쩌게?”

   “적당히 날아다닐 예정이다. 그리 알거라.”

     

   그러겠다면야.

     

   덜컹-

     

   그사이 또 한 번 마차가 움직이며 정지했다.

     

   “크라슈 님, 도착 하였사옵니다.”

     

   그러는 순간 크라슈는 바깥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었다.

   그러곤 그대로 마차의 계단을 터벅터벅 내려오자 거기에는 작은 체구의 하녀 복장을 한 여성이 서 있었다.

     

   진한 갈색 머리칼과 잿빛의 눈은 크라슈가 잘 아는 누군가와 무척 닮아 있었다.

   

   

     

   그녀는 알리오드의 딸, 알리샤였다.

   어린 시절 변색병을 앓아 체구만 작지 않았다면 딱, 알리오드의 여성 버전이라 해도 좋았다.

     

   알리오드는 청송관의 총집사장이다.

     

   하물며 크라슈가 성인이 된 만큼 전용 집사 역할도 더는 무의미해진 마당.

   그러니 그가 원해도 크라슈를 따라 아카데미까지 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딸인 알리샤를 크라슈에게 붙였다.

     

   변색병이 완쾌된 후 알리오드는 줄곧 알리샤에게 크라슈에게 목숨을 빚진 은혜를 갚아야 한다며 교육했으니.

   그녀라면 충실히 크라슈의 시녀 역할을 해줄 거란 믿음이었다.

     

   그 결과 원래는 크라슈가 혼자 가도 괜찮다고 했지만.

   알리오드가 한사코 평소 쉬실 때라도 시중받으라 부탁하여 어쩔 수 없이 그녀도 데려온 것이었다.

     

   “수고했어. 알리샤.”

   “아니옵니다.”

     

   크라슈가 편히 쉬어야 한다며 굳이 마차 안에 들어오지 않고, 마부 석에 줄곧 앉아 있었던 알리샤였다.

   그러니 크라슈가 감사를 하자 그녀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걸 보고, 크라슈는 짧게 쓴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은 영락없이 알리오드를 떠올리게 했다.

     

   조금 많이 과하게 존칭을 쓰는 말투지만 이미 지적하기에는 입에 익어 버린 모양이다.

     

   하지만 알리오드와 다른 점이라면.

     

   “치마 끝이 뒤집혀 있어.”

     

   아직은 어리숙한 면이겠지.

     

   “아, 죄, 죄송합니다.”

     

   알리오드를 따라 최대한 정중함을 유지하던 그녀의 얼굴은 금세 금이 갔다.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 그녀는 서둘러 치마를 정리했고, 크라슈는 알리오드의 아내를 떠올렸다.

     

   그의 아내가 딱 이런 느낌이었으니, 아무래도 유전이 된 거겠지.

     

   “난 시험을 치르고 갈 테니까. 사용인들이 대기하는 곳에 가 있어. 시험 끝나면 갈게.”

   “네, 짐을 챙겨 그쪽으로 가 있겠사옵니다.”

     

   보통 짐은 시험에 합격한 후 가져오는 법이지만.

   크라슈는 물론이고 알리오드도 크라슈가 라헬른 아카데미에서 떨어질 거란 생각은 아예 없었다.

     

   그도 그럴 게 크라슈의 성장을 알리오드가 직접 두 눈으로 봤기 때문이다.

     

   알리샤가 크라슈에게 고개를 숙이고 떠나는 사이.

   크림슨가든이 마차에서 나와 하늘로 날아올랐다.

     

   크라슈가 그런 크림슨가든을 따라 고개를 들어 올리자 거기에는 세계수의 아래 펼쳐진 라헬른 아카데미의 건물이 보였다.

     

   무학 쪽의 시험을 치르게 될 장소는 당연히 무학관이다.

   아는 녀석들을 몇이나 만나게 될지는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크라슈가 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옮기면 옮길수록 사람은 점차 많아졌다.

   라헬른 아카데미의 시험을 치르러 온 이들이 이토록 많았다.

     

   ‘못해도 천 명은 넘겠네.’

     

   예전에 자신은 시험을 어떻게 치렀더라.

   분명 끄트머리에 아슬아슬하게 붙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것도 시험 중에 상대가 발하임이라는 이름에 괜히 겁먹은 것이 얻어걸린 게 제일 컸었다.

     

   ‘괜히 떠올렸네.’

     

   기분만 잡쳤다며 크라슈가 눈살을 찌푸린 순간.

     

   툭-

     

   뒤에서 바쁘게 달려오던 이가 대뜸 그의 어깨와 맞부딪쳤다.

   제 육감이 있는 만큼 피할 수 있는 크라슈였으나 주변에 사람이 많은 탓에 공간이 없어 부딪쳤다.

     

   그렇기에 크라슈가 어깨를 털며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버펄로처럼 거대한 덩치를 지닌 남자가 있었다.

   입은 옷도 터질 것 같은 게 인간이 아닌 것 같았다.

     

   문제는 크라슈는 녀석의 얼굴을 알았다.

     

   회귀 전에는 제국의 무투 대회 덕에 라헬른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이자.

   예전에 제국 무투 대회를 크라슈가 출전한 당시 예선전에서 한방에 탈락시킨 그 근육 돼지였다.

     

   설마하니 여기서 또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아무래도 녀석은 포기하지 않고 라헬른 아카데미 입학을 노린 모양이었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다.

     

   그 순간 근육 돼지가 인상을 와락 구겼다.

     

   “어쭈, 부딪치고서 뭘 쳐다봐!”

     

   돌아온 대답을 듣고, 크라슈가 눈을 깜빡였다.

   그는 크라슈를 전혀 못 알아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그때는 크라드였나.’

     

   지금과는 모습도 체형도 많이 다르니 못 알아볼 만도 했다.

   그렇다면 크라슈는 그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기로 했다.

     

   분명 그때 했던 말이 이걸 거다.

     

   “너 쳐다봤다. 돼지 새끼야.”

   “뭐, 뭐엇, 돼지, 돼지이!?”

     

   이어진 말과 함께 근육 돼지의 두 눈이 순식간에 성난 버펄로로 변했다.

   놈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인파에도 불구하고 크라슈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 그를 보며 크라슈가 손을 올렸다.

     

   근육 돼지는 그 모습이 왜인지 눈에 익었다.

   그는 갑자기 데자뷰가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분명.

   분명히.

   무투 대회에서 이랬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가 의문을 품은 찰나, 그의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에 크라슈가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이미 그의 얼굴에 크라슈의 주먹이 꽂아 넣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꾸엑?!”

     

   짧게 울린 목소리와 근육 돼지의 몸이 공중에 부웅하니 떴다.

     

   촌경(寸勁)

     

   동시에 추가로 발동된 촌경의 효과로 그의 몸이 공중에서 또 한 번 치솟았다.

     

   “꺄악!”

   “으아악?!”

     

   무학관으로 향하던 이들이 떨어지는 근육 돼지를 보고,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쳤다.

   순식간에 바닥을 나뒹군 근육 돼지의 눈앞에는 별이 돌고 있었다.

     

   까악!

     

   그 순간 하늘 위에서 들려온 까마귀 소리와 함께 의식을 잃어 가는 근육 돼지가 예전 무투 대회를 떠올렸다.

   눈을 감고 있는 이상한 꼬맹이에게 한 방 먹여주려다 하늘을 날았던 자신을 말이다.

     

   “커, 헥, 이, 이거…….”

     

   혼잣말을 내뱉던 그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그대로 눈을 까뒤집고 기절해 버렸다.

     

   그 모습을 바라본 크라슈는 가볍게 손을 털었다.

     

   “사람 어깨를 쳤으면 사과부터 해야지.”

     

   예의 주입기가 이번에는 잘 작동했기를 바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트위치에서 삽화 작업을 방송하고 있습니다~ ]
!!놀러 오실 분들은 트위치에 ‘무화꽃란’ 을 입력 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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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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