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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3

   EP.103

     

   “허.”

     

   분명히 나는 놈을 베려고 했다.

     

   한철검 끝자락에는 여전히 예리한 검기가 맺혀 있었고 그것을 쥐고 있는 나의 두 손끝에 뭉친 마력 또한 그것을 충분히 가능하게 만들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의 귀를 강타한 소리는 날카롭게 들려오는 절단의 울림이 아니었다.

     

   빠아아악!!!

     

   -꾸엑!!!

     

   무언가를 베어낸 깔끔함이 아닌 야구방망이 따위로 홈런을 쳤을 때의 그 묵직한 느낌.

   놈의 비늘이 도대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검기가 가득 실린 나의 한철검이 비늘을 관통하지 못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크워어어!!!

     

   고개가 돌아간 드래곤이 나를 곁눈질로 흘기며 온몸을 비튼다.

   순식간에 나의 시야를 장악한 것은 육중한 놈의 꼬리. 날개로 오크들을 제압하던 와중에 반격 당한 것이 학습 된 것인지, 날개 공격은 포기한 것 같았다.

     

   “젠장!”

     

   하지만 지금 문제는 내가 지금 놈의 공격을 피할 방도가 없다는 것.

   최선의 일격으로 놈의 목을 베어낼 생각을 하던 터라, 뒤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쿠콰과과과!!!

     

   “조, 조심해요!!!”

   “나도 알아!!!”

     

   꼬리가 휘둘러지는 소리라고는 예상할 수 없는 굉음이 나의 귀를 강타한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날아드는 토끼의 비명에 나는 마력을 있는 힘껏 끌어올려 꼬리가 날아드는 방향으로 손을 뻗었다.

     

   [‘빠른 납득(B)’이 발동됩니다.]

   [‘칠링실드 (B)’가 발동됩니다.]

     

   공기가 얼어붙으며 나의 앞에 두꺼운 얼음 방벽이 만들어진다.

   마력을 아끼지 않고 펼친 덕분에 꼬리가 나에게 닿기 전에 방벽이 완성되었고 그 순간 놈의 공격이 방벽에 직격했다.

     

   하지만 내가 뚫어내지 못한 비늘로 이루어진 놈의 꼬리는 상상 이상으로 단단했다.

   꼬리가 닿는 순간, 묵직한 얼음덩어리가 박살났고 이윽고 코앞까지 다가온 꼬리에 시야가 암전됐다.

     

   와장창!!!

   쩌어어엉!!!

     

   “커헉…!”

     

   공격이 닿기 직전에 본능적으로 박찬 공중의 얼음 파편.

   빠른 도약 덕분에 공격을 살짝 빗맞았지만 공격 자체가 무거워서 그랬는지 그것조차 치명타로 느껴졌다.

     

   쿠당탕탕!!!

     

   한순간에 추락한 나의 신형이 볼품없이 반쯤 얼어붙은 흙바닥을 나뒹굴었다.

   나를 향해 급박하게 달려오는 토끼의 모습에 나는 곧장 튕겨지는 반동을 역이용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저기요! 괜찮아요?!”

   “퉷…!”

   “우왁! 이, 이거 피!!!”

   “정신 사나워, 설레발치지 마.”

     

   나는 속에서 올라온 뜨끈한 피를 한 움큼 바닥에 뱉어냈다.

   다행히도 뼈가 부러지거나 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내장이 뒤틀린 것인지 상당히 속이 쓰려온다.

     

   “이거 쉽지는 않겠다.”

     

   얼음에서 몸을 완전히 꺼낸 비만 드래곤의 몸이 보인다.

     

   푸른 비늘로 뒤덮인 영롱한 자태.

   박물관이나 미술관 따위에서 그 모습을 보았다면 한참을 구경했을 장관이었지만, 저런 괴물이 지금 나와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니 좀 질리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포기할 생각이었으면 애초에 이 무리한 싸움을 걸지도 않았을 것.

   오크들에게 죽을 뻔한 녀석을 굳이 살린 이유는 괴물들에게 빼앗길 거면 차라리 내가 처치하고 격을 쌓겠다는 마인드에서 시작한 것이 컸다.

     

   “우, 우리 도망가요! 이건 너무 위험한 것 같……”

   “아니.”

     

   5층에 올라온 이후로 토끼가 이렇게까지 긴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충분히 그럴 만한 상대였기에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만나왔던 어정쩡한 거미 같은 괴물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압도적인 위용을 보이는 신화 속 괴물 같은 게 떡하니 있는데, 정면으로 맞서 싸운다는 건 미친 짓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저거 지쳤어.”

   “…네?”

   “저기 봐봐.”

   나는 손을 들어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 녀석을 가리켰다.

     

   놈이 날개를 완전히 접고 있었다.

   그것은 곧 지금까지 공격의 수단으로 쓰던 날개를 자신의 몸을 지키는 방어 수단으로 사용하겠다는 의미.

     

   “아까 오크들이랑 싸울 때부터 녀석이 집요하게 방어하던 부위가 있어. 아마 정면 목덜미 부근 어딘가에 역린이 있을 거야.”

     

   나의 말에 토끼가 얼빠진 표정을 지으며 잠시 드래곤을 바라봤다.

   무려 도우미로 일했던 토끼와 동급의 격을 가진 몬스터. 애초에 플레이어와는 격의 차이가 확연한 내가 전투를 분석하고 놈을 사냥할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초회복약이 완전히 흡수되었습니다.]

   [초회복약의 효과가 더 이상 유지되지 않습니다.]

     

   “다시 간다.”

     

   내상은 그럭저럭 회복되고 마력 또한 크게 부족하지 않은 상태.

   나는 한철검을 집어넣고 내가 계속 사용해 오던 무명검과 함께 붉은색의 보석 하나를 꺼내 들었다.

     

   [열화의 호흡 (S)]

     

   보석을 집어든 손끝에서부터 느껴진 뜨거운 기운이 서서히 뇌를 파고들며 나의 마력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불에 그을린 듯, 서서히 재가 떨어지는 검의 표면.

   내가 딛고 있던 땅 또한 빠른 속도로 수분을 잃어가며 그 영역을 확장해 갔다.

     

   ‘연속해서 쓰려니 조금 무리가 오긴 하네.’

     

   한기의 심장과 열화의 호흡은 애초에 플레이어의 정신을 갉아먹어 그들을 괴물로 만들기 위한 함정이었다. 그렇기에 정신적인 피로가 쌓이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상황에서 가장 정답에 가까운 패를 아껴둘 수는 없었다.

   대피할 길은 남겨두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 나의 신념이었으니까.

     

   “쓰으읍.”

     

   숨을 들이키자 차갑게 식어 있던 공기가 폐부를 적신다.

   물론 나의 속에서 데워진 공기가 금방 불을 머금고 입 밖으로 나가긴 했지만, 시원한 감각은 썩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크롸아아아……

     

   고개를 들어 드래곤을 바라보니 놈이 다시 한 번 포효하며 나를 노려본다.

   하지만 처음과는 달리 약간 의아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뭔가 목소리가 좀 줄어든 것 같지 않아요?”

   “그러게.”

     

   나의 변화를 인식한 이후로 뭔가 모르게 당황한 듯한 모습을 보이는 드래곤.

   파충류의 얼굴이라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지금 모습만 봐서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듯한 느낌이 풍기는 기분이었다.

     

   “……설마 아니겠죠?”

   “나는 그 설마가 맞는 것 같은데……”

     

   나와 토끼의 머릿속을 동시에 스쳐 간 한 가지 생각.

     

   “그럴 리가. 아무리 위기라고 해도 어떻게 드래곤이 본인 발톱만한 인간한테 겁을 먹겠어요.”

     

   아무리 봐도 위축되어 보이는 녀석은 나에게 잔뜩 겁을 집어먹은 듯, 나의 눈을 슬금슬금 피하고 있었다.

     

   ***

     

   젠장.

     

   크레센도는 현재 자신의 앞에 나타난 쪼그마한 두 인간을 보며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감히 인간 따위가. 그것도 고작 단 한 명에게 이렇게 위기감을 느끼게 될 줄은 녀석도 예상치 못했던 것.

     

   처음에는 작은 체구에 빨빨거리며 오크들을 소탕하는 모습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었다.

     

   사람들이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곤충을 보고 무섭다며 피하기는 해도 목숨 걸고 곤충과 일대일로 싸우면 절대 질 수 없는 것과 같은 원리였고,

   녀석도 한편으로 쫄렸지만 지지 않을 자신감이 있었던 탓이었다.

     

   서걱! 콰과과곽!!!

     

   하지만 놈의 움직임을 관찰하니 크레센도는 자신의 생각을 조금 정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귀뚜라미 쯤 되는 거슬리는 육식 벌레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놈의 움직임을 보니 녀석은 장수말벌에 가까웠고 놈이 이상한 마법을 쓰며 호수를 얼렸을 때는 뭔가 잘못 돌아가는 게 아닌가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힝, 무서워……’

     

   오크들을 버겁게 상대하던 차에, 단 한 번의 마력 폭발로 오크들을 모조리 쫓아버린 인간.

   그리고 호수가 얼어붙은 순간 크레센도의 발도 함께 얼어붙었기에 녀석은 발을 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그때.

     

   타아앙!!!

     

   「크롸아아아악!!!」

     

   녀석은 순식간에 눈앞에 자신의 코앞까지 날아든 인간을 보며 기함을 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땅 위에 있었다.

   그런데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놈은 호수의 정중앙에 있는 자신에게 닿았고 그것은 둔한 오크들만 봐오던 크레센도에게 적잖은 정신적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끼야아아악!’

     

   게다가 문제는 그런 놈이 무시무시한 검을 무자비하게 휘둘러 자신의 목덜미를 노렸다는 점.

   크레센도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턱을 목으로 바짝 당겼다.

     

   빠아아악!!!

     

   「꾸웩!」

     

   너무 아팠기에 재수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판가름할 정신이 없었다.

     

   원래는 목에 닿았어야 했을 인간의 검이 얼굴에 적중했다는 것과 인간의 공격이 냉기 속성의 마력을 잔뜩 품고 있던 덕에 비늘이 등골이 서늘해지는 공격을 막아 냈다는 점.

     

   돌아보니 운이 좋아 살아남은 것이긴 했지만, 그런 생각을 할 겨를 따위가 없었다.

     

   「크워어억!!!」

     

   녀석은 얼얼해진 뺨을 어루만지며 넘어지지 않기 위해 발을 굴렸다.

   하지만 아직 한쪽 발이 얼음에 걸린 상태였고 그것은 곧 기울어짐으로 이어졌다.

     

   ‘어어…’

     

   휘청거리던 크레센도는 최대한 넘어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그러던 와중 꼬리 끝에 알 수 없는 타격감이 느껴졌지만, 중요한 건 얼어붙은 호수 바닥에 1초 후, 코를 찢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도, 도망치자…!’

     

   뺨을 한 차례 맞으며 깨달을 수 있었다.

   저 인간은 벌레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고차원적인 존재라고.

     

   드래곤의…… 아니, 블루 와이번의 자존심 따위는 버린 지 오래였고 현실적인 녀석은 곧장 고개를 들어 위협을 가한 뒤, 호수 속으로 몸을 피할 작전을 세웠다.

     

   그런데.

     

   「크롸…!」

     

   아까 와는 전혀 상반되는 기운, 세상을 불태울 것만 같은 뜨거운 마력이 전방에서 느껴졌고 그 근원은 조금 전, 뺨따귀를 날린 인간에게서 뿜어지고 있었다.

     

   「아아아……?」

     

   쫄았다.

   잔뜩 쫄아서 뇌정지가 왔다.

     

   인간의 발에 닿은 모든 얼음이 순식간에 녹아 버렸고 이윽고 물이 된 액체는 순식간에 수증기가 되어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최악이야. 이건 물속으로 도망쳐도…’

     

   저 괴물 같은 인간이 따라오면 호수가 초토화될 수도 있다는 말.

   이건 싸우면 필패한다. 그렇다고 도망친다고 놈이 순순히 자신을 보내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게 와이번이었다가 드래곤이 될 뻔한 이무기 크레센도는.

     

   -우, 우리 그만하지 않을래? 헤헷.

     

   끝끝내 남은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인간의 언어로 실없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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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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