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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4

        이 세계에서 수소폭탄을 만드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혼자서 모든 과정을 해내거나, 아니면 거시과학을 하는 것처럼 수많은 사람의 힘을 빌려 완성하거나.

         

        처음에는 혼자서 해 왔었다. 물리학을 타인에게 일일이 가르쳐 주느니 1인 개발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마법이라는 편리한 수단이 있었기에 할 만하다고 느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달리 있었다. 바로 양심이었다.

         

        핵무기가 인류에게 가져다준 영향을 생각해 보면, 이곳 사람들에게 뉴클리어가 뭔지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것도 옛말이 되어버렸다. 

         

        “과연. 그러니까 이런 방식이면 공계마도로 폭탄의 화력을 높일 수 있단 소리구나.”

        “예, 그렇죠. 뭐.”

         

        이 세계의 시대상이 지구로 치면 20세기 초중반이라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이 세계 마도사들이 몇 년 사이에 핵 비슷한 걸 만들기 시작하겠지.

         

       그런 상황이라면 하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경험자가 팔 걷고 선두에 서는 수밖에. 

         

        “그러면 반대로 공계마도를 사용해서 폭탄의 위력을 경감시키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구나.”

        “네, 사실 이게 일종의 파라미터예요.”

         

        나는 살리에르 백작의 질문을 전부 받아주는 중이었다. 핵무기의 위험성부터 시작해서, 개발하는 방법과 안전하게 사용하는 매뉴얼 등등. 지구에서 익혔던 노하우를 마도라는 틀에 맞추어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아버지뻘 되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고 있자니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뭔가 괴리감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

         

        -똑똑

         

        “아버지, 차랑 디저트 가져왔…. 세상에. 이게 다 뭐예요?”

         

        문을 열고 들어온 로테의 입이 함박지만 하게 벌어졌다. 그제야 나와 백작은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명색이 귀족이라는 사람의 집무실이 엉망이었다. 책상과 의자는 온통 계산식을 휘갈긴 이면지 투성이였고, 벽 곳곳에는 지도를 붙여 놓아서 보기 흉했다. 특히 지도마다 그려진 원들의 수는 환공포증을 유발할 정도였다.

         

        “내가 못 살아.”

         

        로테는 픽 한숨을 쉬며 쟁반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하나둘씩 줍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둘이 뭐 하고 계셨어요?”

        “뭐긴 뭐겠니. 네 친구에게 피치블렌드의 사용법에 관한 강의를 듣고 있었단다.”

        “아버지가, 너한테…?”

        “그럼. 좋은 친구를 뒀구나, 로테. 얘가 참 설명을 잘해. 이러고 있으니까 아카데미를 한 번 더 다니는 기분이구나.”

         

        로테의 얼굴이 곧 경악으로 물들었다.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 얼굴은 이내 평온을 되찾았다.

         

        “이젠 그러려니 해요.”

         

        로테는 남은 서류를 책상 위로 반듯하게 올려놓았다. 그와 동시에 나에게 편지 한 장을 내밀었다.

         

        “이게 뭐야?”

        “프레이가 보낸 거야.”

        “프레이가?”

        “문앞에서 너 찾던데? 어디 가야 할 곳이 있다고.”

         

        슬슬 때가 된 모양이구나.

         

        나는 살리에르 백작과 눈을 마주쳤다. 실례지만 여기서 끊어도 되냐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백작은 제법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 잠깐 친구와 산책 좀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그러렴.”

         

        제국 예법에 맞게 인사를 건네고는 밖으로 나왔다. 집무실을 나와 밖으로 나올 때까지 입꼬리가 자꾸만 올라가느라 무표정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자, 보상받을 시간이다.

         

         

       **

         

         

        도개교가 있는 곳으로 향하니 재기발랄한 꼬맹이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프레이는 여느 때처럼 커다란 모자를 눌러쓰고 나타났다. 자신이 수인인 걸 숨기기 위함이었다. 아무래도 수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남아있다 보니까, 틸레트에서 수학하려면 이런 식으로 정체를 감춰야만 했다.

         

        “야! 오랜만이야!”

         

        그 말대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시그니처 대사였다. 여기서 ‘오랜만이야, 꼬맹아’ 하고 놀려주듯 인사하는 것이 아카데미에서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프레이가 씩씩거리는 걸 볼 생각이 없었다. 나는 프레이와 짧은 포옹을 나누고는 품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봉투를 뜯어 내부 문서를 읽은 프레이가 진심으로 감탄을 표했다.

         

        “성공했구나! 이걸로 한시름 덜었어!”

         

        꼬맹이가 나를 다시 한번 껴안았다. 키 차이가 있는 탓에 프레이의 등 뒤가 훤히 보였다. 에베레스트 등반하려는 사람도 아니고, 자기 몸통보다도 큰 가방을 메며 뒤뚱거리고 있었다.

         

        “근데 너 이 가방은 뭐냐?”

        “아! 이거? 지하 창고가 살아있었거든! 거기서 가져온 물품이야!”

        “뭐 먹을 거라도 돼?”

        “응! 아니?”

        “둘 중 하나만 말하라고….”

        “대부분 마력초야! 우리가 만드는 그 뭐냐, 유명한 브랜드 있잖아!”

         

        프레이가 가방에서 담뱃갑 하나를 꺼내 건넸다. 처음 보는 상표명이었다. 

         

        “골든슈타인?”

        “저번에도 이거 팔러 하류까지 내려갔었어! 거기 인간들, 조금 너무하긴 해. 이런 좋은 걸 깎아달라고 징징거리잖아!”

        “펴봐도 돼?”

        “물론이지! 천재 연성술사 프레이 님께서 허가하시는 거니까 감사히 받도록!”

         

        마력초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오우, 비싼 건 비싼 건가 봐. 장마철에 꽤 눅진한 상태로 보관되었을 텐데 여전히 품질이 좋다. 일단 무는 감각은 합격이었다.

         

        불을 붙이자 로즈마리 향기가 났다. 로테와 목욕했을 때 입욕제에서 맡았던 냄새와 거의 같았다. 

         

        놀란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뭐야.”

         

        마력이 차오르는 속도가 남달랐다. 일반 마력초는 못해도 30초에서 1분가량 태워야 마력을 얻을 수 있는데, 이건 거의 불을 붙이자마자 몸에 마소가 쌓이는 게 느껴졌다.

         

        “어때, 죽이지? 이러니까 비싼 값 하는 거라니까?”

        “그렇겠네.”

         

        향도 좋고, 맛도 좋다. 이거 몇 개비 피우고 나면 다른 브랜드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몸이 될 것만 같았다.

         

        나와 프레이는 제자리에서 5분간 맞담을 한 뒤, 약속이라도 한 듯 바로 피치블렌드 산을 향해 걸어갔다. 

         

        실제로 약속한 게 맞긴 하다. 

         

        “와, 신령님 만나는 건 정말 오랜만인데! 너도 신령님 만나 봤다고 했었지?”

        “그렇긴 하지.”

         

        프레이는 촌락의 복구가 끝나면 같이 피치블렌드 산에 올라가자고 부탁했었다. 그 ‘신령’님에게 수해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준 것에 대한 감사를 전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잠깐. 그런데 요르문간드에게 통하는 길은 새벽에 열리지 않았나?

         

        그런 생각에 잠겨있던 사이, 프레이가 배낭에서 스크롤을 하나 꺼냈다.

         

        “자, 너도 여기에 손 올리고 있어!”

        “이게 뭔데?”

        “방사파 방지 스크롤이라고 했나? 신령님이 자기 만날 때 항상 이거 사용하고 들어오라고 하셨거든!”

         

        아, 그렇네. 나는 몰라도 프레이는 방사선에 그대로 노출될 수 있을 테니까.

         

        “이거 나중에 나한테도 하나 팔아줄래?”

       “갑자기 왜?”

        “나중에 더 쓸려고.”

         

        살리에르 백작에게 몇 개 보내줘야겠다.

         

        우리는 두 시간에 가까운 등산 끝에 요르문간드가 있는 정상까지 도달했다. 나와 프레이 둘 다 체술에 능한 종족이었기에 돌산을 올라가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이윽고 정상에 선 프레이가 기암괴석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신령님 나 왔어요!”

         

        그러자 이변이 벌어졌다. 버멜 왈, 다른 시간대에는 꿈쩍조차 안 한다는 낙룡봉의 입구가 저절로 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뭐야. 어떻게 했어.

         

        “뭐 그런 얼굴을 하고 있어? 뭉그적거리지 말고 빨리 들어가자!”

         

        프레이의 뒤를 따라 동굴에 진입했다. 이미 한 번 와 봤던 곳임에도 불구하고 익숙하지 않은 장소였다.

         

        [왔구나.]

         

        저번과 마찬가지였다. 스산한 기운을 담은 목소리가 뒤로부터 들려왔다.

         

        “쉿. 당황하지 말고 다시 앞을 봐.”

         

        이전에도 겪어본 현상이었다. 요르문간드의 첫 목소리는 반드시 뒤에서 들리고, 인기척은 앞으로부터 나타난다. 실제로 순간이동을 하는 건지, 아니면 동굴의 반향 효과 때문에 겪는 경험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눈앞에 있는 건 내가 알던 요르문간드였다.

         

        사제복을 입었고, 강철로 된 양쪽 뿔은 볼품없이 뜯겨 나간 방사룡.

         

        “신령님!”

        “그래, 프레이. 거의 1년 만이구나. 여가 돌보는 친구들은 잘 지내고 있니?”

        “네, 신령님 덕분에요. 여기 같이 온 친구도 도와준 덕분에 아무도 안 다치고 태풍에서 견딜 수 있었어요.”

         

        씨익. 요르문간드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태풍은 잘 넘긴 모양이로구나.”

         

        그 말이 누구에게 향하고 있는 건지는 불분명했다.

         

        프레이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열심히 풀어놓았다. 나와 프레이가 힘을 합쳐 제방을 놓은 일, 요호들을 설득하여 동쪽으로 빨리 피신시키게 해 주었던 일 등등. 꼬맹이의 낯간지러운 칭찬에, 나는 속으로 안도했다.

         

        아까 꼬맹이라고 안 놀려서 다행이다.

         

        “그래. 거기까진 잘했구나. 하지만 식량이 대부분 떨어졌잖니. 이건 어떻게 헤쳐 나갈 생각인지 여는 알고 싶구나.”

         

        요르문간드는 실눈을 뜨며 이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녀의 금색 눈동자는 분명 초점을 잃었을 터인데,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게 빛나는 중이었다. 마치 기대감에 차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말을 건네는 건 내가 아니었다.

         

        “그거라면 제 친구가 이미 해결해 줬어요!”

         

        아까 내가 건넸던 계약서를 그대로 요르문간드에게 전하는 프레이. 문서를 받은 요르문간드는 손으로 종이를 쓰다듬으며 침음을 흘렸다.

         

        공문서라지만 점자가 찍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저건….

         

        “대단하구나. 약탈 대신 차관을 택하다니.”

         

        방사룡의 입꼬리가 더욱 높이 올라간다.

         

        “심지어 불공정 계약이 아니군. 살리에르 백작인가 하는 사람은 믿을 만한가?”

         

        이번에는 내가 대답했다.

         

        “네. 제가 보장합니다.”

        “재미있군.”

         

        요르문간드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로 다가왔다. 프레이는 나와 방사룡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여 고개만 갸웃거리는 중이었다.

         

        다음 순간에 들려온 건 염화였다.

         

        [이런 걸 보여주려고 마왕 밑에서 빠져나간 건가?]

         

        나는 속으로라도 대답하지 않았다.

         

        [뭐, 좋아. 어디까지나 우리의 주적은 정령이니까. 원래라면 수인족을 대대로 난도질해 오던 인족 따위, 같이 절멸시켜도 좋으려고 생각을 하고 있었건만. 이런 걸 보여주면 흥이 식어버리기 마련이야.]

         

        그녀가 눈을 가늘게 떴다. 세로동공에선 압도적인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

         

        [그래. 때로는 침묵이 더 나은 법도 있지.]

         

        요르문간드는 잘려나간 제 뿔을 만지작거리며 더 가까이 다가왔다.

         

        “신령님, 뭐 하세요?”

        “여기 있는 게 네 친구렸다.”

        “네!”

         

        당차게 대답하는 꼬맹이. 귀여움이 묻어 나오는 목소리에 요르문간드의 입가가 온전한 호선을 그렸다. 엄마 미소였다.

         

        “좋아. 계약대로 내 너에게 약조했던 보상을 내리도록 하지.”

         

        [우라늄 40kg가량을 입구에 미리 챙겨 놓았다. 프레이와 나갈 때 같이 챙겨 가거라. 나머지는 겨울이 온 후에 다시 찾아오면 그때 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아, 그렇지. 내가 용심(龍心) 좀 써서 후하게 하나 더 쳐 주려고 하는데.]

         

        갑자기 뭐지? 빙의자에게 추가 보상이 있다는 건 들은 기억이 없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 요르문간드가 날 향해 혀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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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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