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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4

       밀가루가 일 킬로에 이천오백 원.

       계란이 한 판에 팔천 원 정도 했다.

       

       오늘 여기서 밀가루랑 계란을 얻어갔다면 살림에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에 터덜거리며 교문으로 이동하는 그때, 뒤에서 조금 전의 남학생이 우리를 불렀다.

       

       “저기 얘들아?”

       

       “네···?”

       

       “잠깐 손 좀 줘볼래?”

       

       손이라니.

       왜 갑자기 뜬금없이?

       나는 말없이 그의 손위에 내 손을 얹었다.

       

       “아니 손을 얹는 게 아니라, 줄 게 있어서 그래.”

       

       “줄 거요?”

       

       “응. 이거 받아.”

       

       남학생이 내게 계란을 건네주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계란을 주려는 건가.

       

       괜찮다며 그에게 거절 의사를 내보이려는 순간, 남학생이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려 보였다.

       

       “나한테 한 번 던져볼래?”

       

       “네···?”

       

       “맞으려면 던질 줄도 알아야 하거든.”

       

       맞는 말이었다.

       그래도 사람한테 계란을 던지라니.

       감히 내가 그런 짓을 해도 되는 건가?

       

       긴장된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는데, 어째선지 많은 학생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파이팅을 외치는 자세가 성공을 기원하는 것만 같았다.

       

       “으음···”

       

       그래 뭐.

       어차피 이미 많이 맞았으니까.

       내 계란이 하나 더 추가된다고 해서 변할 건 없었다.

       

       “이얍···!”

       

       나는 괜스레 레비나스의 기합을 따라 했다.

       죄책감을 지우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었다.

       

       톡-

       

       손에 쥔 계란을 가볍게 사내의 이마에 찍었고.

       살짝 깨진 계란에서 끈적한 알끈이 흘러내렸다.

       

       “괘, 괜찮으세요···?”

       

       하고나서 곧장 후회했다.

       내가 감히 처음 보는 사람을 공격하다니.

       몸을 떨며 뒤로 물러서는 순간 레비나스가 퍄하 웃음을 터트렸다.

       

       “히히, 머리로 계란을 깼다!”

       

       “흐흐, 되게 재밌지?”

       

       “응!”

       

       레비나스가 폴짝 뛰며 즐거움을 표해냈고, 그 모습을 보며 주변 학생들이 미소를 지었다.

       

       “레비나스 재밌었어?”

       

       “응!”

       

       그렇구나.

       이거 재미있는 거구나.

       어쩌면 나 혼자서만 폭력적인 부분에 신경을 쓴 걸지도 몰랐다.

       

       “저기에 계란이랑 밀가루랑 많으니까 이러면서 노는 거야. 알았지?”

       

       “헉! 레비나스도 해도 되냐!”

       

       “물론이지. 축제는 누구나 즐기는 거거든.”

       

       “와!”

       

       레비나스가 남학생이 가리킨 곳을 향해 달렸다.

       테이블 위에 밀가루와 계란이 잔뜩 쌓여 있는데, 이걸 다 던지고 논다는 사실이 아까웠다.

       

       “왕아! 아까 깨진 계란 담아야지!”

       

       “아···!”

       

       계란을 어디다 담아야 할까.

       고민하다가 허리춤에 물병이 메여있음을 깨달았다.

       

       레비나스의 물병과 내 물병 두 개면 계란을 충분히 많이 담을 수 있을 테지.

       물론 그전에 물병에 담긴 옥수수 물을 다 마시기로 했다.

       그냥 바닥에다 버리면 아까우니까.

       

       꿀꺽꿀꺽-

       

       목이 그다지 마르지 않았기 때문일까?

       물병에 있는 물을 반밖에 마시지 않았음에도 벌써 괴로웠다.

       

       “으에···”

       

       옥수수 물이 턱을 타고 주륵 흘러내린다.

       이걸 어떻게 다 마셔야 하나 걱정하는 찰나, 무표정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는 새벽과 눈이 마주쳤다.

       

       “새벽아 이거 남은 거 마셔주라.”

       

       “나 아직 목···”

       

       새벽이 입을 열기에, 재빨리 그녀의 입에 물병을 대어주었다.

       계란이라는 존재가 마음을 급하게 만든 탓이었다.

       

       “새벽이가 이거 반만 마셔주면 돼.”

       

       “응···”

       

       꿀꺽꿀꺽-

       고개를 끄덕인 새벽이 물을 받아마셨다.

       물병은 내가 들고 있었기에 새벽이는 고개만 위로 젖혀 물을 받아마셨다.

       

       “으에···”

       

       물병을 다 비우자, 새벽의 입가를 타고 옥수수 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마치 조금 전의 나를 보는 것만 같았다.

       

       “됐다.”

       

       물병이 하나 생겼다.

       나는 깨진 계란을 껍질 채로 물병 안에 집어넣었다.

       입구가 넓은 플라스틱 물병이었기에 집어넣기만 하면 됐다.

       

       “이런 식으로 던지고 남은 밀가루랑 계란을···”

       

       “받아랏!”

       

       내가 설명을 다 끝내기도 전에 레비나스가 새벽이의 머리 위로 밀가루를 탈탈 털었다.

       새벽이의 진한 흑발이 하얗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

       

       새벽이는 레비나스의 기습 공격에도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그저 무표정으로 꼬리만 좌우로 흔들 뿐이었다.

       

       “왕아! 레비나스가 해냈다!”

       

       “뭐, 뭐를···?”

       

       “레비나스가 어둠에 왕이를 하얀 왕이로 정화했다!”

       

       “으, 응···”

       

       탈탈탈-

       레비나스가 계속해서 새벽이의 머리 위로 밀가루를 쏟았다.

       밀가루가 새벽이의 머리 위로 피라미드처럼 수북이 쌓였다.

       그때에도 새벽이는 무표정으로 서 있기만 했다.

       

       “언니가 애들이랑 잘 놀아주네.”

       

       “응. 애들이 장난치는데도 가만히 놀아주는 게 기특하다.”

       

       주변 학생들이 우리를 보며 쿡쿡 웃었다.

       설마 우리 중에서 새벽이를 제일 어른으로 여기고 있는 건가?

       새벽이가 특유의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긴 했지만, 여기서 제일 맏이는 나였다.

       

       “흐, 흠···”

       

       나는 헛기침을 하며 새벽이의 바로 앞에 섰다.

       키가 더 커 보이기 위해 발뒤꿈치를 살짝 들었는데, 놀랍게도 새벽이의 키가 나보다 컸다.

       

       “내가 겨울이보다 더 크다.”

       

       “으, 응···”

       

       뭐지.

       외모는 같은데 왜 새벽이가 더 큰 거지.

       왠지 모를 실망감에 귀와 꼬리가 축 가라앉고 말았다.

       

       “내가 더 크다.”

       

       새벽의 꼬리가 빠르게 좌우로 흔들렸다.

       언제나처럼 사나운 느낌의 무표정이었는데, 어째선지 의기양양한 표정처럼 느껴졌다.

       

       이건 분명 내 착각일 테지.

       아이에게 자존심을 상해 하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도 없었다.

       지금은 그냥 계란이랑 밀가루나 가지고 놀기로 했다.

       

       

       **

       

       

       한여름과 소피아가 공원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새로 오게 된 새벽이에 대한 내용이 주된 이야기였다.

       

       “그 아이도 참 안쓰러운 일을 겪었구나.”

       

       “네. 소피아께서 잘 돌봐주셨으면 해요.”

       

       “그래··· 근데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만.”

       

       소피아의 태도가 진지하다.

       언제나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소피아인지라, 한여름은 꿀꺽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어떤 거요···?”

       

       “실험실에서 온갖 실험을 당한 아이가 겨울이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게 이상하더구나.”

       

       “그건···”

       

       맞는 말이었다.

       자신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하소연을 할 법도 한데, 새벽이는 대부분 겨울이에 관한 이야기만을 했다.

       겨울이가 아니라면 관심이 없다는 사람처럼.

       

       “겨울이가 만들어진 인격이라는 말을 했다지? 그럼에도 겨울이가 진짜라는 말을 했고.”

       

       “네···”

       

       “모순이다. 겨울이가 진짜라고 믿고 있다면, 만들어졌다는 걸 굳이 알릴 이유가 없었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만들어 졌다는 사실을 숨긴다면 겨울이는 진짜로만 남아있을 수 있으니까.

       

       “···혼자만 알고 있기 힘들어서 비밀을 털어놓은 거 아닐까요?”

       

       “그러기에는 일부러 죄책감을 자극하는 것 같구나.”

       

       “제 죄책감을요?”

       

       “그래, 죄책감을 이끌어내서 겨울이가 더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느낌이다.”

       

       “새벽이가 왜 굳이 그런 행동을 하죠···?”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실험을 당한 아이였다.

       한여름도 기록을 통해 새벽이 어떤 실험을 받아왔는지 알고 있었다.

       

       그런 새벽이 자신을 등한시한 채, 겨울이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한여름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사랑을 받게 해 주기 보단,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게 당연 했으니까.

       

       “새벽이가 겨울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았다고 했지?”

       

       “네. 매일은 아니고 가끔씩요.”

       

       “···그렇다면 뭔가를 보았을 수도 있겠구나. 실험실의 실험이 우스울 정도로 끔찍한 짓을 당한 겨울이라든가.”

       

       “네···?”

       

       그 새벽이조차 안쓰러운 마음이 들 정도로 겨울이가 끔찍한 일을 당했다는 건가?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해 주려는 거고?

       

       한여름의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겨울이의 지옥같았던 삶에 더 밑바닥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가 않았다.

       

       분명 겨울이를 뭐든 할 수 있는 용감하고 씩씩한 아이로 만들었다고 했지.

       살기 위해 정신력만큼은 세상 누구보다도 뛰어난 아이로 만들었다고.

       

       그 정도로 뛰어난 정신력을 가진 아이가 삶을 가볍게 여기게 될 정도였다.

       한여름이 주먹을 말아쥐었다.

       

       “아니면···”

       

       “또 뭐가 있나요···?”

       

       “···아니, 그만하지. 전부 억측이니까.”

       

       톡톡-

       소피아가 지팡이를 두드리며 생각했다.

       만들어진 아이라는 말이 죄책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새벽의 거짓말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렇다면 새벽이의 몸을 차지하게 된 겨울이는 대체 어디서 온 아이인 거지?

       고민하던 소피아는 백 년 전 인간 스승으로부터 들었던 ‘빙의자’라는 존재에 대해 떠올렸다.

       

       빙의자와 원래 몸 주인이 한 몸을 두고 싸웠다고 했나.

       빙의자의 과거를 읽을 수 있었던 몸 주인이 결국 승리 했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 애들은 안 싸워서 다행이다만.’

       

       새벽이가 겨울이의 과거를 읽은 건가?

       그 과거가 인체 실험을 당한 아이가 동정심을 느낄 정도로 끔찍했고?

       

       푸후-

       한숨을 내쉰 소피아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너무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극성 부모가 되는 기분이구나.’

       

       이게 다 겨울이를 사랑하고 아껴서일 테지.

       피식 미소를 짓던 소피아는 익숙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소피아는 냄새가 들려온 방향을 돌아보았고.

       그곳에서 충격적인 상태의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

       

       전신은 밀가루로 뒤덮였고, 끈적한 무언가로 몸을 적시고 있다.

       찐덕거리는 액체가 겨울의 머리카락을 타고 바닥으로 흘러내릴 정도였다.

       

       “어머.”

       

       “아이고.”

       

       저 얼빵한 표정 좀 봐라.

       애들이 신나게 놀았나 보구나.

       그 충격적인 모습에 소피아가 머리를 쥐어뜯고 말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댓글 추천 또한 정말 감사합니다! 언제나 힘이 되네요!

    새벽이(2) EP.102화의 내용을 조금 수정했습니다.
    새벽이가 거짓말을 치는 장면을 조금더 착하고, 순수하게 말하는 걸로 바꿨습니다!
    뭔가 음흉하게 거짓말을 하는 거 같아서요! 물론 다시 볼 이유는 없답니다!

    ───
    딩딩딩님 81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비공개회원[ㅅㅇㅇㅎㅇㄷㅎㅎ]님(11-29)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Prologue P님 3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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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최강 길드에 납치당했다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When I opened my eyes, I was in a den of mon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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