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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4

       “이런 곳이 있는데, 사람들이 어째서 몰랐던 걸까.”

        

       던전 입구를 바라보며 클레어가 말했다.

        

       클레어의 말대로, 던전 입구는 꽤 컸다. 문자 그대로 유적 그 자체.

        

       낡은 신전 같은 것이 있었지만, 거의 다 무너져서 그 본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원래는 그저 바닥이었을 곳도 풀이 빽빽하게 자라나 있어서 걷는 것이 쉽지 않았고, 파르테논 신전을 축소해둔 것 같은 모습의 신전은 담쟁이덩굴이 완전히 점령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곳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었다. 숲 한가운데 있으니 공터처럼 보였을 테고,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도 인위적으로 세워진 곳이라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으니까.

        

       아무리 짐승이 돌아다니는 숲속이라고 해도, 노스우드의 사냥꾼들이 이 장소를 모를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 지보의 힘이겠지.”

        

       앨리스는 진지하게 말했다.

        

       지보에서 나오던 빛은 이전보다 더 밝아져 있었다. 그 외에 특별한 이펙트가 보이지는 않는다. 지보 주변에 마법진이 보이거나, 아니면 숨겨져 있던 문자가 보이거나……

        

       사실 마력석 하나만 있어도 이렇게 신비로운 빛을 보이는 물건은 쉽게 만들 수 있을 텐데.

        

       지보는 깨진 석판같이 생긴 물건이었다. 위에 새겨진 문양이 있기는 하지만 큰 그림의 일부라는 것 정도만 알 수 있을 뿐, 그 그림이 무엇을 옮겨 그린 것인지는 알기 어려웠다. 마치 공포 게임 같은 데서 문을 열기 위해 얻어야 하는, 몇 조각으로 쪼개진 석판 같은 모양이었다.

        

       이 석판은 그 가운데 부분에 있던 물건인지, 사방이 깨져서 전체적인 모양이 사각형인지, 삼각형인지, 아니면 원형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건 본 기억이 있다.

        

       원작에서도 베라티와 싸워서 이긴 뒤 얻을 수 있는 물건이었으니까.

        

       베라티는 그대로 황실의 포로가 되고, 법국과 제국의 협상 수단이 된다.

        

       ……히로인은 아니다. 법국 쪽의 히로인은 나중에 따로 나온다.

        

       뭐, 그건 둘째치고.

        

       “인식 저해 마법 같은 것이 있을 겁니다. 제국 기준으로도 잊힌 곳이지만, 이전의 문명에는 매우 중요한 장소였을 테니까요.”

        

       “인식 저해 마법? 그런 게 있어?”

        

       “모든 것을 마법으로 해결하던 시대에는 있었을지도 모르지.”

        

       나의 말에 클레어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고, 앨리스는 그럴싸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이런 지보를 직접 가지고 온 게 아니겠어? 적어도 법국은 이런 장소가 전 세계 곳곳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뜻이지.”

        

       “제국에도 지보는 있지 않아?”

        

       “하지만 그 지보를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 그리고 지보의 위치가 어디 있는지 기록된 지도가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그저 ‘보관하고 있는 보물’ 그 이상이 아니었어.”

        

       클레어와 앨리스의 대화가 이어지는 것을 들으면서, 나는 천천히 유적지 쪽으로 다가갔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지보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빛은 점점 더 강해졌다.

        

       내가 멋대로 나아가자, 뒤쪽에서 얼른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알고 있는 거라도 있나 봐?”

        

       내 옆에 따라붙은 벨라가 그렇게 물었다.

        

       “…….”

        

       굳이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래, 알고 있는 거라면 많지.

        

       예를 든다면, 나는 이 던전의 구조를 기억하고 있었다. 아주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분명 들어가서 구조를 보면 하나하나 천천히 떠오르리라. 제도 하수도에 들어갔을 때처럼.

        

       그리고, 이 던전은 그렇게 어려운 곳이 아니었다. 여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부분 중에서 본격적인 던전이 처음으로 나오는 2장의 던전이었으니까.

        

       그래픽 최적화를 하지 못해서 풀이 듬성듬성 있고, 담쟁이덩굴도 이렇게까지 자연스럽게 움직이진 않았지만, 지보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미한 빛을 이리저리 밝히며 돌아다녀 본 결과 유적의 모습은 내가 알고 있던 모습과 거의 비슷했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하지만, 위험한 건…….”

        

       “위험한 건 내부에 있을 괴물들 뿐이겠지요.”

        

       앨리스의 걱정에 나는 간단하게 대답하고, 지보를 다시 벨라한테 넘겼다.

        

       “안에서는 지보가 필요 없나 봐?”

        

       “마지막에 필요할 겁니다.”

        

       나는 미리 챙겨온 산탄총을 들었다.

        

       불 속성의 탄환은 분명 큰 도움이 될 거다. 내부에는 슬라임들이 잔뜩 있었으니까.

        

       처음으로 ‘던전’의 형태를 한 던전이다. 그 이전에도 숲속이 던전처럼 길이 꼬여있다거나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지하 유적의 모습을 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길이 이리저리 꼬이고, 특정한 장치로 길이 막혀있고 하긴 했지만, 적어도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의 함정은 없다.

        

       그저 안쪽에 적이 조금 많을 뿐이지.

        

       내가 샷건 펌프를 뒤로 당겨 약실에 탄을 장전하자, 일행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심지어 벨라마저도 앨리스와 눈을 마주쳤다.

        

       그나마 앨리스는 일전에 내가 제도 하수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길을 찾던 모습을 보았었지만, 뭐, 하수도와 고대에 지어진 던전은 완전히 다르니까. 적어도 하수도는 제국 안에 지도라도 있을 거 아냐.

        

       그런 둘의 표정을 확인하고 뒤로 돌아서며 나는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뿌듯함의 미소였다.

        

       그래도, 나에게는 확실하게 차별화된 캐릭터성이 아직 남아있었다.

        

       *

        

       어두침침한 던전 내부는 비슷비슷한 돌길로 이루어져 있었다.

        

       게임에서는 플레이어의 편의를 위해 어느 정도 밝게 묘사되었지만, 막상 들어온 던전 내부는 몹시 어두침침했다. 바깥에 보름달이 떠 있는데도 안쪽으로는 빛이 한 줄기도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이것도 마법적인 이유일까?

        

       반대로, 벨라가 받아든 지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아까보다도 훨씬 강렬해져서 우리 주변을 선명하게 밝히고 있었다. 게임에서 보았던 묘사와 매우 흡사한 묘사였다.

        

       뒤에 바싹 붙어 따라오라는 말을 할까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일행들 모두 나보다 뛰어난 전투 능력을 갖췄는데, 나를 따라오지 못할 이유도 없으니까.

        

       지보의 빛을 따라 눈 앞에 펼쳐진 던전을 나아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적—”

        

       탕!

        

       눈앞에 나온 슬라임에 클레어가 반응하기도 전에, 나는 곧장 방아쇠를 당겼다.

        

       조준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총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화염은 슬라임을 그대로 증발시켜버리기에 충분했다.

        

       “…….”

        

       내가 허리 쪽에서 탄을 한 발 꺼내 느긋하게 한 발을 다시 채우는 소리를 낼 때까지, 다들 입을 살짝 벌린 채 멍하니 나를 보고만 있었다.

        

       뭐, 나도 나름대로 준비하고 왔으니까.

        

       적어도 여기서 튀어나오는 놈들이 주로 어떤 속성을 가진 괴물들인지는 알고 있다고.

        

       마음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작은 뿌듯함을 느끼며, 나는 앞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

        

       “언니, 굉장해…….”

        

       ……음.

        

       어쩌면 조금 과했을지도?

        

       앞에 함정이 거의 없고, 나오는 괴물들도…… 내가 좀 지나치게 오버스펙으로 준비해둔 무기들 때문에 너무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가지고 온 무기들은 권총과 산탄총이 전부였지만, 슬라임은 뜨거운 것, 그리고 마력에 약했으니까.

        

       미아 크로우필드도 큰 도움이 되었겠지만, 아무래도 카지노는 가고 싶지 않다는 그녀를 억지로 끌고 나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긴, 데리고 나왔다고 하더라도 이 안까지 보여주는 것은 조금 그렇긴 했다. 오히려 샤를로트 쪽에 붙여주었겠지.

        

       “흐응.”

        

       나를 따라오던 벨라는, 마침내 우리가 던전 가장 깊은 곳으로 보이는 곳까지 오자 흥미롭다는 듯 콧소리를 냈다. 그녀가 쓰고 있는 가면은 눈 부분이 까맣게 칠해진 것이라 그 눈빛까지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나를 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이 장치는.”

        

       던전의 가장 깊은 곳. 던전 각 끝에 있는 보스 몬스터가 있는 방 앞.

        

       그 앞에는 자동 회복 장치가 있었다.

        

       사실 이것도 게임적인 허용이었다. 보스전 직전에 상인이 멀쩡하게 있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제작진은 고대 마법으로 돌아가는 신비한 장치를 보스 방 앞에 하나씩 가져다 두었다. 사실 여기뿐만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다 나오는 장치이긴 했지만, 적어도 이 세계에 오고 나서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아직도 가동되고 있어.”

        

       앨리스가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

        

       환하게 밝혀진 형형색색의 빛이 휘감고 있는, 기묘한 나선형의 기둥.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아무래도 이건 상점 기능까지 갖춘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 장치는 정체가 뭘까.”

        

       레오가 가까이 다가가서 미간에 주름을 잡고 장치를 자세히 바라보는 것을 보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아, 여기까지 오면서 다친 애가 하나도 없구나.

        

       사람이 총에 맞으면 죽는 세계라는 것은, 참 공평하게 다른 짐승이나 괴물들에게도 적용되었다. 가죽을 뚫을 수 있는 수준의 관통력이면 곰도 사람에게 죽는다.

        

       ……당연히 슬라임은 말할 것도 없고.

        

       철저하게 준비해온 내 덕분에, 다친 애가 거의 없었다는 거다.

        

       그러니, 여기서 따로 회복할 이유가 없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진짜 내가 너무 나갔나?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부레옥잠 님, 후원 감사합니다!

    나름대로 글을 많이 쓴다고 썼는데, 이렇게 좋아해 주시니 마음이 참 놓입니다. 안 그래도 소설에 혼잣말이나 해설같은 내용이 많아서 전개가 지루해질 것 같아 걱정했는데, 역시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연참이 답이네요. 마음같아서는 매일 3연참, 4연참씩 하고 싶은데, 사실 전작을 연재할 때 그렇게 했더니 좀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 연참은 제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으면 꾸준히 하고 싶네요. 저도 보여드리고 싶은 장면이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까요.

    언제나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열심히 쓰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늘 즐겁게 볼 수 있는 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김승우383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님께 종종 감사인사를 받고는 하는데, 사실 언제나 감사해야 할 사람은 저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부족한 글이지만 이렇게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에, 그리고 그 덕분에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해야죠. 작가라는 꿈을 거의 접었던 제가 독자 여러분 덕분에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마 이 소설도 언젠가 완결을 낼 수 있을 거고, 그건 당연히 저의 글을 거기까지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 덕분일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독자 여러분께 계속 보여드리는 작가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저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 여러분 덕분에 요즘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돈과 시간을 투자해 읽어 주실만한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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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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