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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4

     

    황태자 권터는 일성궁의 기사들을 모두 모았다.

     

    편성을 이어가던 그가 별안간 혀를 찼다.

     

    “이 정도 병력으로는 불안해.”

     

    아셀라와 전략 모의전 승부는 당장 내일 펼쳐진다.

     

    이야기가 커져서 서로 궁의 재원까지 모두 거는 대승부가 됐다.

     

    권터는 패배하면 일성궁을 유지하기조차 힘들어지지만 어쩔 수 없었다.

     

    황제에게 진면목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모든 걸 써서 반드시 이겨야만 했다.

     

    “전략은 자신 있긴 한데… 후우.”

     

    평소 궁에 틀어박혀 체스 같은 게임을 즐기던 그였기에 승산은 충분했다.

     

     

    전략 모의전.

     

    각자 백 명의 기사를 스무 개 부대로 편성해, 거점을 더 점령하거나 상대의 사령관을 제압하면 승리하는 규칙이다.

     

    턴제로 한 번에 한 부대만 움직일 수 있기에 기본적으로는 체스와 같다.

     

    “다른 점이라면 부대의 이동범위가 5분 동안 실제 움직인 거리로 정해져. 전투도 공격 방어측 상관없이 이긴 쪽만 살아남고.”

     

    체스와 달리 공격한 말이 승리하진 않는다.

    지형도 체스판처럼 평지가 아니라 실제 산지에서 이뤄진다.

     

    2병영을 손에 넣은 아셀라는 모의전에 적합한 기사들을 얼마든지 편성할 수 있을 것이었다.

     

    심지어 소드익스퍼트인 타냐라는 기사는 굉장히 강하다고 들었다.

     

    막상 상대하려니 부담되는 권터였다.

     

    “무엇보다 나도 전장에 직접 참가해야 해.”

     

    사령관 역시 전장을 함께 뛴다.

    자신이 제압당하면 패배한다.

     

     

    권터가 고민에 빠져있을 때, 리비오가 그를 오후 진료차 방문했다.

     

    “전하, 고민이 많아 보이시는군요.”

     

    “어? 어. 조건이 쉽지가 않아.”

     

    모의전 지형 모형에 말을 배치하는 권터를 보며 리비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전하십니다. 전략은 빈틈 하나 없이 완벽합니다. 문제는 기사들이 전하의 큰 뜻을 따를 수 있을까, 하는 점이군요.”

     

    “그, 그래 보여?”

     

    칭찬받은 권터가 머리를 긁적였다.

    리비오가 해결책을 내놓았다.

     

    “승부 당일, 소인이 파벌 치유사들과 강화 축복을 걸겠습니다. 제 축복은 어느 치유사보다도 효력이 좋습니다. 분명 월광궁의 수준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정말이야? 그럼 이길 수 있겠어!”

     

    “한 가지 걱정이라면 전하께서 기습당해 패배하는 그림입니다.”

     

    “그, 그렇지….”

     

    리비오가 병을 하나 꺼내 들었다.

    안에서 새까만 무언가가 요동쳤다.

     

    “그게 뭐야?”

     

    “정제한 강화 주문입니다. 위급 상황에 쓰십시오. 전하를 어지간한 기사보다도 강하게 만들어드릴 겁니다.”

     

    “진짜? 역시 리비오야. 이런 게 있구나.”

     

    덩어리져 꿈틀대는 주문이라는 건 분명 수상했지만, 리비오를 신뢰하는 권터는 의심 없이 그것을 챙겼다.

     

    “응원하겠습니다, 전하. 이 기회에 능력을 증명하시고 월광궁의 재원을 폐하께 진상 올립시다.”

     

    “물론이야. 아셀라 다음엔 헤이케도 쓰러트리고 내가 황태자라고 증명하겠어.”

     

    의지를 보이는 권터를 보며 리비오가 입꼬리를 올렸다.

     

     

     

    ***

     

     

     

    “마력회로가 조금 흐트러졌다고 생각되네요. 활동은 괜찮지만 오늘 하루는 무리하지 말고 주의해 주세요.”

     

    아셀라의 오전 진료를 마치고 짐을 챙기는데 그녀가 내게 물었다.

     

    “공자, 지금부터 내의원으로 갈 거야?”

     

    “예.”

     

    아셀라가 내 대답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차갑게 말했다.

     

    “…허튼 짓 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

     

    “그럼요. 어느 분 명령인데요.”

     

    아셀라와의 대화는 스산한 공기가 흘렀다.

     

    어제 둘이서 한탕 싸운 탓이다.

     

    나는 찝찝한 기분으로 월광궁을 나섰다.

     

     

    뭐, 당연하지만 아셀라의 말대로 얌전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권터의 브로치도 손에 넣어야 하고, 리비오가 수작을 걸 게 뻔하니 대응해야 해.’

     

    아셀라가 안 끼워준다면 밖에서 공략할 수밖에 없다.

     

     

    나는 즉시 입원실 회진을 돌며, 리비오가 담당하는 게다의 병실을 찾았다.

     

    마침 리비오가 공주를 검진하던 중이었다.

     

    내가 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리비오가 나와 마주했다.

     

    “고트베르크 선생님, 무슨 용무신지요.”

     

    “이번에는 수고하셨어, 리비오 신관. 공주 전하는 꽤 힘들었지.”

     

    가볍게 회화를 걸었을 뿐인데 그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감사드립니다.”

     

    기계처럼 내뱉은 그의 인사에 내가 입꼬리를 쭉 찢었다.

     

    “다름이 아니라 내일 있을 우리 월광궁과 너희 일성궁의 모의전 말이야.”

     

    “모의전 말이군요. 저는 일개 주치의라 전해 들은 바는 없어 잘은 모릅니다.”

     

    리비오는 포커페이스를 한 채 높낮이도 없이 말하는 것이 꼭 기계 같다.

     

    확실하게 나와 선을 긋고 싶은 모양이지.

     

    어디 반응을 떠볼까.

     

    “잘 몰라? 소문에 의하면 자네가 권터 전하를 부추겼다고 하던데.”

     

    “무슨 말씀이신지.”

     

    리비오는 태연하게 말했지만 목 근처가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심장박동이 빨라졌단 의미였다.

     

    아무리 연기를 잘 해도 자율신경계의 반응은 조절하기 어렵지.

     

    증거라면 쉽게 얻을 수 있다.

     

    ‘진단.’

     

     

    ―――――――――――

    · 계시자 리비오 신관

    · 상태 : 일시적 혈압 상승

    · 상태 : 일시적 신체 저항도 상승

    · 상태 : 경계선 성격장애

    · 상태 : 저주 중독

    ―――――――――――

     

     

    ‘오호라.’

     

    거짓말을 할 때의 전형적인 반응이다.

     

    리비오가 이번 모의전을 일으킨 건 확실하다고 생각됐다.

     

    ‘저주 중독은 뭐지?’

     

    분명 지난번에는 일반 중독만 있었는데.

     

    “자네는 모의전에 출전 안 해?”

     

    “기사들이 싸우는 장입니다. 치유사인 저는 참전하지 않습니다.”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씨익 웃으며 그를 칭찬했다.

     

    “치유사 중에서도 리비오 신관은 최고잖아. 나가봐야 하는 거 아냐?”

     

    “과찬이십니다.”

     

    “게다 전하의 목숨도 구했지. 재능 있어.”

     

    내 칭찬에 리비오가 눈을 사백안이 되도록 크게 떴다.

     

    어지간히 화가 났나 보네.

     

    ‘공주가 기억상실에 걸렸다고 했지.’

     

    아마 놈은 치유술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난폭한 치유법을 썼을 것이다.

     

    “수고해. 나중에 보자고.”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리비오가 내게 고개를 숙였다.

     

    감정을 어둠 속에 숨기는 게 여전히 기분 나쁘다.

     

     

    나는 사무실로 돌아와 리비오에 대해 문서를 작성했다.

     

    “저주 중독 증상이 보임.”

     

    본래 그의 중독은 술이나 마약성 물건 대상이 아닐까 했다.

     

    새롭게 명기된 걸 보면 리비오는 최근 저주를 만진 적이 있다는 뜻이다.

     

    어제나 그저께일 지도 모르겠다.

     

    [처방전 작성] 스킬을 사용해본다.

     

    “환자는 자의로 증상에 노출되었음.”

     

    리비오가 모의전에서 저주로 사건을 일으킬 생각이 아닐까 추측됐다.

     

    이렇게 큰 행동을 취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 급해진 모양이다.

     

    당장에라도 황제를 암살하려 들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참전은 하지 않는다고 했지. 이미 손을 다 써둔 모양이야.’

     

    당일에는 현장에서 떨어져 알리바이를 만드는 게 안전하니까.

     

     

    저주는 어디서 손에 넣었을까.

     

    “환자가 저주에 노출된 건 흑마술에 조예가 있어서라고 생각됨. 관련된 저주는 중급 이상. 경과 관찰 요망.”

     

    처방전을 작성해 완성한다.

     

    문장이 어색한 부분도 손이 절로 움직여 깔끔하게 적어냈다.

     

    그리고 나는 처방전을 대상으로 스킬 [세컨드 오피니언]을 사용했다.

     

    “이러면 내 추측이 맞는지 검증할 수 있겠지.”

     

    손이 절로 움직이며 처방전에 추가 문구를 적어넣는다.

     

    “어디. 환자가 저주에 노출된 증상에는 동의하나 흑마술 사용자는 아니라고 판단.”

     

    그럼 그는 어디서 저주를 손에 넣었지?

     

    “흑마술사와 접촉했다고 예상됨. 저주의 등급은 상세 진단 필요.”

     

    내 손이 마지막 문장을 적었다.

     

    “전염 방지를 위해 즉시 격리하길 권장함.”

     

    꽤 위험한 상태다.

     

    리비오가 흑마술과 연관되었다는 증거를 잡을 필요가 있다.

     

    내가 타냐에게 말했다.

     

    “리비오를 미행해야 해.”

     

    대기하던 타냐가 즉시 대답했다.

     

    “브루노를 시키겠습니다. 어떤 증거를 잡으면 될까요.”

     

    타냐는 내 말뜻을 바로 이해하니 소통하기가 꽤 편하다.

     

    “수상한 인물과 접촉하는 장면은 전부 기록해. 특히 흑마술사 같은 인물에 주목하고.”

     

    “알겠습니다.”

     

    “휴고, 전에 개발하던 건 완성됐어?”

     

    “마침 딱 되었습니다.”

     

    휴고가 내게 마석과 보석을 조립해 만든 장치를 하나 내놓았다. 끝에는 얇은 종이가 몇 개 꽂혀있다.

     

    “저주 탐색기입니다. 시약지가 환자의 몸에 접촉하면 보석의 색깔이 변해 저주의 등급과 종류를 개략적으로 알려줍니다. 다만 제가 리스트업한 저주만 측정 가능합니다.”

     

    “좋아. 수고했어.”

     

    이 장비가 있으면 리비오가 저주를 써놨어도 어지간한 건 종류를 파악할 수 있다.

     

    휴고는 벌써 다양한 저주를 체계적으로 연구해 놨다.

     

    아셀라의 저주는 아직이지만.

     

    ‘휴고가 이리도 애를 먹는 걸 보면 아셀라는 최상급 저주를 가진 게 아닐까.’

     

    최근에는 비교적 얌전하지만 언제 아셀라가 폭주할지 모를 일이다.

     

    그쪽의 분석도 빨리 필요하다.

     

    “저주를 분석할 수 있으면.”

     

    대응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사건이 일어날 모의전은 직접 참가하고 싶었다.

     

    “단장, 내일 모의전에 나가지?”

     

    “그렇습니다. 기동대에 편성됐습니다.”

     

    “중갑병에 남는 자리 하나 만들 수 있어? 얼굴에 풀헬름까지 쓰는 무장으로.”

     

    “선생님, 그 생각은 그다지 추천 드리고 싶지 않은데요.”

     

    타냐가 내 의도를 읽고 즉시 조언해왔다.

     

    그녀의 생각대로, 나는 직접 월광궁 기사로 위장해 잠입할 생각이었다.

     

    아셀라에게 걸리면 큰일 나겠지만 뭐.

     

    안 걸리면 그만이지.

     

    “모의전에서 문제가 안 생기면 조용히 있을 거야.”

     

    “문제가 생기면요?”

     

    “그땐 내가 해결할 테니 아셀라도 용서해주지 않겠어?”

     

    “확실하십니까?”

     

    “당연하지. 짐작 가는 부분이 있거든.”

     

    “그게 아니라 황녀님께 용서받는 부분 말입니다. 오늘 묘한 기류가 흐르더군요.”

     

    타냐는 은근히 이런 부분은 눈치가 빠르다.

     

    아셀라랑 친해서 그런가.

     

    “조금 다퉜을 뿐이야. 별일 아니야.”

     

    “음. 그때는 그런 법이긴 합니다만. 선생님께서는 황녀님의 기분을 모르실 때가 가끔 있단 말이죠.”

     

    “내가?”

     

    타냐의 말은 살짝 동의하기 힘들었다. 나만큼 아셀라를 잘 아는 사람도 없을 텐데.

     

    …뭐, 요즘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고는 있다.

     

    “어쨌든 모의전에는 직접 참가해야 해. 대응하지 않았다가 더 일이 커질 수도 있어. 혼나는 건 나중이야.”

     

    “확신이 있으시군요.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협력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대신 제 옆에 붙어서 비상시 대응할 수 있게 해주시죠.”

     

    “나야말로 잘 부탁해.”

     

    덤덤하게 작전을 설명하는 타냐는 꽤 든든했다.

     

     

     

    ***

     

     

     

    ―전략 모의전에 와주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오늘의 심판이자 입회인은 저, 라우가 폰 뷔르템펠트랍니다!

     

    라우가의 목소리가 마법으로 산지 전역에 울려 퍼졌다.

     

    산 초입에 마련된 관객석이다. 현장은 그녀가 실시간으로 중계한다.

     

    ―모든 형제께서 멋진 승부를 펼쳐주시길 바라며, 모의전을 개시하겠습니다!

     

    쿵, 쿵.

     

    승부 개시를 알리는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원, 배치 완료했습니다.”

     

    기사단장의 보고를 받은 아셀라가 지팡이를 들었다.

     

    그녀가 선 장소는 황궁 부지 북쪽 산에 만들어진 기사단 실전 훈련장이었다.

     

    총 120개 구역으로 나뉜 훈련장은 기사들이 산지 지형에서의 전투를 익히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낭떠러지나 진창 지대, 나무가 빽빽하거나 경사가 가파른 곳 등.

     

    고저차를 위한 훈련에는 제격이다.

     

    “출전 준비해.”

     

    “예!”

     

    부대를 편성한 기사들이 본격적인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타냐 공, 선봉을.”

     

    “맡겨주시죠.”

     

    타냐를 따라 적의 방어진을 돌파할 네 명의 기사가 앞으로 나섰다.

     

    그 중 한 명이 행동이 살짝 뒤쳐졌다.

     

    타냐가 정신 차리라는 듯, 그의 어깨를 툭 치며 기운을 불어넣었다.

     

    ‘다행히 아직 못 알아봤네.’

     

    전신을 가린 중갑 속에서, 라스는 아셀라의 눈치를 보며 방패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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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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