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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4

       미궁에서 길을 찾는 방법은 간단하다.

       

       지면에서 들려오는 대지의 신의 심장 소리와, 마지막으로 지나쳤던 안전지대의 번호를 기준 삼아 현재의 위치와 방향을 측정한다.

       

       그리고 지도를 보고 가려는 방향으로 향한다.

       

       뭐어. 말로만 간단하지 실제로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지. 하지만 내겐 망설이지 않는 길 찾기라는 스킬이 있다.

       

       2성이라는 낮은 등급 때문인지 내 위치와 가려는 곳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제약이 있지만, 가챠로 뽑은 스킬답게 발동만 하면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는 효자 스킬.

       

       그런데 어째서인지 아무리 걸어도 통로가 끝나질 않는다.

       

       “뭔가 이상하네요.”

       

       “여기 왔던 길 같은데?”

       

       한참은 걸었다. 분명 지금쯤 안전지대가 나오고도 남아야 했는데….

       

       “베니. 방금 왔던 길 같다고 했었죠? 제 눈에는 다 똑같은 통로라 구별이 안 되는데 따로 보는 법이라도 있어요?”

       

       “그런 건 없어. 앞쪽의 바닥을 봐.”

       

       “……그냥 바닥인데요?”

       

       “아냐. 잘 보면 분홍색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잖아. 아직 가지도 않은 길에 요나 네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는 건 이상하잖아.”

       

       “?”

       

       “물론 나도 저거 하나만 보고 말하는 건 아니야. 처음에는 우연이거나 잘못 본거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위화감을 느끼고 혹시나 싶어 계속 신경 쓰면서 걸었더니 대략 3,500걸음 주기로 머리카락이 보이지 뭐야. 거기에 몬스터도 그동안 한 번도 안 마주쳤고.”

       

       “세상에.”

       

       경악을 숨기지 못하고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베니…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 분홍색이라거나, 제 머리카락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그야….”

       

       “그렇게 평소부터 유심히 제 머리카락을 살펴보고 있었던 건가요?!”

       

       “에?”

       

       샤샥 뒤로 물러서며 몸을 가리는 시늉을 하며 외쳤다.

       

       “변태! 머리카락 성애자! 믿을 수 없어요! 엘리와 리디아 님의 친구래서 베니를 믿었는데…!”

       

       “그, 그런 거 아니거든?!”

       

       “아니라고요?! 아니라면 어떻게 사람이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그렇게 쉽게 발견하고, 어떻게 그렇게 쉽게 누구 머리카락인지 특정하겠어요! 평소부터 유심히 관찰했으니까 알 수 있던 거겠죠!”

       

       “내 말 좀 들어 봐! 고위 모험가쯤 되면 신체 능력 말고도 감각이 엄청나게 예민해질 뿐이야!”

       

       “그렇게 예민해진 감각으로 제 머리카락을 살펴보신 거겠죠! 보나 마나 뻔해요! 제 머리카락을 마구 핥고 싶다거나! 정수리에 얼굴을 비벼보고 싶다거나! 티슈 대용으로 쓰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나 했겠죠!”

       

       “안 했거든?! 대체 그런 상상은 어떻게 떠올리는 건데! 여기서 제일 변태는 너 아냐?!”

       

       “히익! 어차피 네놈이 변태인 건 다 알고 있으니, 이렇게 된 이상 같이 즐기라니…안 돼요! 싫어요! 이러지 마세요! 저에겐 엘리가 있단 말이에요.”

       

       “한 번도 뭐 하자는 소리 한 적 없어!”

       

       “하, 하지만 이 자리엔 베니 밖에 없고, 누구도 저를 도와주러 오지 않겠죠. 후우. 알겠어요. 베니가 원한다면 조금 정도는….”

       

       “나 정신 나갈 것 같아….”

       

       어버버 거리다 결국 포기하고 한숨을 푸욱 내쉬는 베니. 좋아. 오늘의 베니 놀리기는 이걸로 끝. 덕분에 잠깐 흔들렸던 멘탈이 돌아왔다.

       

       기겁하던 표정을 풀고 생글생글 웃으며 베니 옆으로 돌아갔다.

       

       “아무튼 우리가 여기 갇혔다는 사실은 알겠어요. 빠져나갈 방법은 있나요?”

       

       “……혹시 요나 너도 벌써 머리의 나사가 풀린 종류니? 모험가 중에 유독 미친년들이 많더라고.”

       

       어이가 없다는 듯 묻는 베니. 그런 그녀의 입가에 검지를 가져가 끌어올리며 웃는 표정을 지어주었다.

       

       “아하하! 농담이었답니다. 만약 저희가 여기 갇혀서 평생 못 빠져 나갈 수도 있잖아요? 그럼 굶어 죽기 전에 야한 일은 해보고 죽어야죠.”

       

       “넌 제발 두 번 다시 농담하지 마!”

       

       “왜요? 이렇게 재밌는데요?”

       

       “너만 재밌었겠지! 난 얘가 날 정말로 무서워하나 싶어서 곤란했다니까?”

       

       “에이. 그럼 베니도 재밌게 만들어 드릴게요!”

       

       베니의 뒤로 돌아가 어깨를 움켜쥐듯 마사지 해주었다. 그녀의 작은 어깨는 생각보다 단단하게 뭉쳐있더라.

       

       꾸욱 꾸욱.

       

       “히읏!”

       

       “사실 조금 전에 했던 말은 아주 없는 말이 아니에요. 이 통로가 반복되는 것도 알겠고, 우리가 갇혔다는 사실도 이해했어요.”

       

       길 찾기 스킬이 있는데 길을 잘못 들었을 리는 없다.

       

       하지만 길은 똑바로 가고 있지만, 그 길이 계속 반복될 뿐이라면 이해는 된다.

       

       어찌됐건 올바른 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 아닌가. 그저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할 뿐이지.

       

       목덜미를 붙잡힌 고양이처럼 얌전해진 베니의 어깨를 떡 주무르듯 마구 쪼물대며 말을 이었다.

       

       꾸욱 꾸욱.

       

       “흐이이잇….”

       

       “상황을 이해한 뒤에 하는 말이에요. 가능하면 빠져나갈 생각이지만, 만약 그게 불가능하다면…뭐어. 좋든 싫든 굶어 죽을 때까지 베니랑 여기서 살아야겠죠?”

       

       “그, 근육이 풀려버려엇…!”

       

       “하지만 베니가 이렇게나 싫어하니 어쩔 수 없죠. 어떻게든 여기서 나갈 방법을 찾아봐요!”

       

       “…….”

       

       이미 추욱 늘어져 슬라임 같은 상태가 된 베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옆에서 그런 베니의 모습을 지켜보던 진짜 슬라임 샤도우가 슬그머니 내게 촉수를 건넨다.

       

       자기도 해달라는 듯하여 안마해 줬지만…베니처럼 근육이 뭉친 것도 아니라 별 의미는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근육이 있기는 하나?

       

       다만, 그냥 스킨십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르릉대며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내는 샤도우.

       

       잠시 그러고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베니가 어깨를 빙글빙글 돌리며 눈을 크게 떴다.

       

       “개운해…아, 아니지.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이 공간이야.”

       

       “넹. 뭔가 짚이는 거라도 있나요? 2층의 함정 중에 이런 함정은 없었던 것 같은데.”

       

       “응. 이건 2층의 함정이 아니야. 어쩌면 맞을지도 모르지만, 그보다는 다른 누군가의 소행이라고 보는 게 훨씬 가능성이 높거든.”

       

       “다른 누군가라면요?”

       

       “거기까진 나도 모르지. 다만 확실한 건, 공간이나 결계를 집중적으로 파고든 고위 마법사거나 특수한 권능을 지닌 모험가라는 거야.”

       

       “오! 그럼 이제 해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선 마법인지 권능인지를 알아봐야지. 마법이라면 역설계로 해체할 수 있을 테고, 권능이라면 힘으로 밀어붙여 보는 거고.”

       

       “아하? 이해했어요! 요는 베니가 나설 차례라는 거죠? 저는 뭘 하면 될까요?”

       

       “…응원?”

       

       “헙! 여기서 탈출 못 해도 야한 일을 할 생각이지만, 탈출에 성공하더라도 그 대가로 야한 일을 해달라는 건가요?! 베니타스 베니베니…무서운 아이!”

       

       “아이 아니야! 그리고 그냥 요정과 은화에서 한턱 쏘면 그만이거든?! 지금은 방해되니까 샤도우랑 저기 가서 놀고 있어!”

       

       훠이훠이 입으로 소리를 내며 손을 까딱이는 베니.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내게 촉수 마사지를 받는 샤도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우리끼리 놀고 있을까?”

       

       -크응.

       

       잘은 모르겠지만 알겠다는 뜻이리라.

       

       ***

       

       샤도우의 위에서 뒹굴거리며 노닥거리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옅은 마력광을 뿜어내고 있던 베니가 그제야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중얼거리던 주문도, 작은 체구와 반대로 어마어마한 마력량에서 느껴지던 위압감도 전부 사라졌다.

       

       이제 남은 것은 내게 익숙한 왜인지 야한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응애 마녀 베니 뿐.

       

       의자 모양으로 변형시킨 촉수 위에 앉자, 쭈욱 뻗어 베니 앞까지 이동시켜 주는 샤도우.

       

       잔뜩 지친 표정의 베니를 향해 물었다.

       

       “베니? 어떻게 잘 됐나요?”

       

       “…우리 진짜 큰일 난 것 같은데?”

       

       “네?”

       

       “둘 다였어.”

       

       “???”

       

       “어떤 미친 마법사가 겨우 2층에 와서 7서클 공간 마법으로 통로를 단절시킨 뒤, 끝과 끝을 연결한 것도 모자라 권능의 힘으로 강하게 고정하기까지 했어!”

       

       “어…그러니까 못 나간다는 소리인가요?”

       

       “그 정도는 아냐. 다만 엄청 힘들 뿐이지. 이건 우리가 재수 없게 공간 왜곡에 빠진 게 아니라, 처음부터 우리를…정확히는 나를 여기에 가둬두려고 만든 함정이거든.”

       

       “제가 아니라 베니를?”

       

       “응.”

       

       요즘 나를 노리는 사람이 많아서 또 황혼을 삼키는 자인가 싶었는데 이번에는 아닌가 보다.

       

       베니가 상어를 닮은 뾰족 이빨을 아득바득 갈며 말을 이었다.

       

       “판 그레이브에서 이만한 공간 마법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고, 고정부에서 느껴지는 권능도 예전에 한번 봤던 힘이야.”

       

       “대체 누구길래….”

       

       “마탑의 장로 모르가나 데스위버. 아마 권능은 본인의 힘이 아니라 성물에 담긴 걸 증폭한 거겠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네요. 베니랑 원한이라도 있는 건가요?”

       

       “그럴리가. 다만 녀석의 비원에 내가 필요하거든. 지금까지는 연구를 도와 달라는 식으로 접근했는데 내용이 하나같이 괴랄해서 거절했는데…이젠 아예 나를 실험체로 삼으려는 것 같네.”

       

       주먹을 꾸욱 쥔 베니가 씹어 뱉듯이 말했다.

       

       “그 지긋지긋한 년의 연구 주제는 불로불사야. 그래서 늙지 않는 나를 연구하고 싶어 하는 거고.”

       

       “아.”

       

       베니의 말을 듣고 문득 내가 뿌려둔 마탑의 떡밥이 생각났다.

       

       그 키워드는 실패한 불로불사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끼야아아ㅏㅏㅏㅏ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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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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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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