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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4

        

       불꽃은 악령을 장작 삼아 타오르기 시작했다.

       악령이 하나 타오를 때마다 그 색을 같이 집어삼키기라도 하는 듯 색이 점차 뚜렷해졌으며, 붉은색과 주황색이 혼재되어 그림으로 그린 듯한 색을 현세에 뚜렷하게 각인시켰다.

         

       하지만 그 불꽃은 장작을 매개로 몸집을 불리는 보통의 불꽃과는 다르게 색이 뚜렷해지기만 할 뿐 몸을 불리지 않았으며, 오직 염소를 자신의 색으로 완전히 덧칠해버릴 때까지 색이 진하게 변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 비현실적인 색채는 이세린이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자, 가거라.”

       “네, 네?”

         

       진성은 타오르는 불꽃을 손가락질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을 뛰어넘어라.”

       “네? 잠, 잠깐. 불꽃 위를요?”

       “그러하다.”

         

       진성은 저기 튀어나온 돌이 있으니 뛰어넘으라는 듯한 평온하기 짝이 없는 어투로 이세린에게 말했다. 그 어투가 어찌나 평온한지, 이세린의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저것을 뛰어넘는 것은 별 것 아닌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을 정도였다.

         

       “잠깐. 저, 저는 무인이 아닌데요….”

         

       이세린은 자신이 저 불 위로 뛰어다니면 화상을 입을 것이라고 넌지시 진성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말아라. 저것은 비물질만을 태우는 것. 네가 저 불꽃 안에 들어가서 하룻밤 잔다고 한들 털끝 하나 그을리지 않을 것이니라. 또한.”

         

       진성은 이세린의 옆에서 일렁이는 아지랑이를 슬쩍 바라보았다.

         

       “너와 계약한 악마 역시, 저 정도 불꽃에는 타격을 입을 리가 없을 것인즉. 안심하고 갔다 와도 되느니라.”

         

       그의 말에 이세린은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악마가 그녀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이자 결심을 했는지 입을 앙다물고는 치맛자락을 붙잡고 제단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는 체육 시간에 멀리뛰기 측정을 하듯 두 발을 모아 제단 끝에서 끝으로 폴짝 뛰었다.

         

       “내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뛰거라.”

       “흡!”

         

       진성의 말에 이세린은 몇 번이고 끝에서 끝으로 뛰었다.

       그러다가 힘이 빠졌는지 슬쩍 휘청여 치맛자락에 불꽃이 닿았지만, 불꽃은 마치 환영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또한, 치맛자락에는 그 어떠한 그을린 흔적도 없었고, 그녀에게 느껴지는 열 또한 없었다.

       진성은 그녀가 슬슬 힘이 빠져가는 것을 보고는 자신이 아까 붙잡은 수리부엉이를 근처 가로등 위에 올려놓았다.

         

       “그만해도 되느니라. 이제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라. 눈을 감고 기도를 드리되 오직 불꽃과 밤을 떠올릴 것이며, 숨소리를 크게 내는 것조차 유의하며 네가 밤과 동화되어야 할 것이니라.”

         

       진성은 그렇게 말하고는 손에 삼매진화를 피웠다.

       이번에 피운 삼매진화는 물질을 태우는 것.

         

       진성의 손에 묻은 기름을 매개로 타오르는 불꽃이었다.

         

       불꽃은 기름을 탐욕스럽게 먹어치우며 활활 타올라 횃불 크기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팔을 횃불 삼아 하늘 높이 치켜들고는 제단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제단을 돌기도 하였고, 제단을 뛰어넘기도 하였고, 개구쟁이가 즐거워서 어찌할 줄 모르겠다는 듯한 몸짓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몇 차례 반복한 뒤 불이 붙은 자신의 손을 제단 안쪽을 향해 털었다.

         

       화르륵!

         

       그러자 삼매진화가 타오르고 있던 제단에 다시 불이 붙었다.

       불이 붙은 곳에 다시 불이 붙었고, 장작을 매개로 타오르는 진짜 불꽃이 비물질을 태우는 불꽃을 잡아먹으려 이리저리 움직였다. 탁하지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불꽃이 그림으로 그린듯한 불꽃을 휘감으며 기이한 풍경을 자아내었는데, 그 모습이 불꽃이 그려진 그림이 불꽃에 타오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Al—-eph—-

         

       제단 안에 있던 염소 역시 진짜 불꽃에 휘감겼다.

       하지만 불꽃 속에서 타오르는 염소가 내뱉는 것은 일반적인 염소가 내뱉는 소리가 아닌, 어딘가 짐승과 사람의 중간에 있는 듯한 소리였다.

       울부짖음 대신에 평온함이 담긴 소리가, 고통 대신에 증오가 담긴 소리가, 감정이 담겨야 할 울음소리 대신에 의미가 담긴 속삭임이.

         

       Allllllllll-e——-p.

         

       그 소리는 이어졌다.

         

       Pap—a—i—papa—i—–Aleph!

         

       다만 그 이어짐엔 끝이 있어서, 마치 불꽃이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들 듯이 그 소리 역시 작아지고 뭉개지며 그 모습을 잃어갔다. 대신에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듯 불꽃 속에서 새까만 재로 형상을 이루어 밖으로 빠져나오려 하였고, 그 모습은 악령의 집합체가 제 얼굴을 타오르는 불꽃 밖으로 내밀어 숨을 크게 들이마시려는 모습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세린이 끝까지 눈을 감고 있자 포기한 듯 다시 불꽃 속으로 사라졌고, 이내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그것을 끝으로 불꽃은 사라지고 다시 삼매진화의 불꽃만이 남았다.

         

       “닮은 것은 닮은 것을 낳고.”

         

       진성은 잿더미가 가득한 제단으로 향해 자작나무 장작으로 만들어진 숯 하나를 허공에 띄우고는 그것을 대관람차 위에 날렸다.

         

       “물건과 물건 사이에는 얽매임이 있으니.”

         

       장작은 대관람차의 철제 기둥과 부딪치며 텅 소리를 내었다.

         

       “이는 만물이 연결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니라.”

         

       진성의 주언이 끝나자 장작이 부딪쳤던 철제 기둥에 불이 붙었다.

       제단에서 타오른 불꽃이 그러했듯 사방으로 번지며 대관람차를 휘감아 타오르는 태양과 같은 형상이 되었다. 어마어마한 불꽃은 놀이동산 전체를 환하게 밝히는 것은 물론이고 진성이 왔던 길목 하나하나까지 비춰주었으며, 하늘에 뜬 달을 한낱 전구만도 못하게 만드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그 모습에 뒤에서 구경하고 있던 이아린이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진성은 대관람차에 불이 붙자 제단에 타오르는 삼매진화를 꺼뜨렸다. 그리곤 완전히 잿더미가 되어버린 염소의 재를 손가락으로 찍고 이세린의 쇄골에 선을 그었다. 그러자 재는 이세린의 몸에 흡수되듯 사라져버렸다.

         

       ‘더, 더워….’

         

       이세린은 재가 흡수되자 몸이 뜨거운 듯 몸이 발갛게 달아올랐고, 땀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흘리는 땀이 어찌나 많은지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이 물에 빠졌다 나온 것처럼 푹 젖었을 정도였다.

         

       ‘땀이, 땀이 너무, 너무 많이 나는…데…?’

         

       하지만 이내 땀은 언제 그랬냐는 듯 뚝 그쳤고, 이세린이 몸이 불타는 것 같다고 느꼈던 열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며 러시아의 차가운 냉기가 그녀의 몸을 감쌌다.

         

       “이제 의식이 끝났다.”

         

       이세린이 추위에 떨자 진성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이세린을 일으켜주었다. 이세린은 진성의 손길이 닿자 흠칫 놀라더니 민망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저, 저기…. 땀 냄새가, 그. 날 텐데…?”

       “신경 쓰지 말아라.”

       “오, 오빠…가 신경 쓰이는 게 아니라…제가…어?”

         

       섬세함이 없는 진성의 말에 항의하려던 이세린은 자신의 눈앞을 환하게 비추는 불꽃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고.

         

       “저, 저, 저. 저게 뭐예요?”

         

       대관람차가 불타고 있었다.

         

       140m 높이의 대관람차가.

       활활 불타고 있었다.

         

       진성은 이세린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마무리로 태운 것이니라. 계약자인 너에게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올 것인즉.”

       “아, 아니. 그, 그게 아니라.”

       “게다가 불꽃을 뛰어넘는 것으로 불에 대한 내성을 얻었으며, 몸이 건강해졌을 것이다. 또한, 정화와 파사(破邪)의 효과를 극대화하였으니 몸 역시 깨끗해져 건강해졌을 것인즉.”

       “그게 아니라!”

         

       이세린은 자꾸 주술 얘기만 하는 진성의 말을 끊어버리며 소리쳤다.

         

       “저, 저래도 되는, 되는 거예요?! 허, 허락은 맡았어요? 정부, 정부나, 주인한테 허락은 맡았죠?!”

         

       그 물음에 진성은 웃었다.

       그리곤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느냐.”

         

       이세린은 입을 떡 벌렸다.

       이게 무슨 문제가 되냐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진성의 얼굴에 무어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진성은 충격을 받은 이세린을 뒤로하고 트럭으로 향했다.

         

       짐칸에는 여러 가지 짐이 쌓여 있었는데, 진성은 그 짐들을 둥둥 띄워 옆으로 치우곤 안쪽에서 유리 상자 하나를 꺼냈다.

       진성의 허리께까지 오는 유리 상자에는 자른 떡갈나무 가지와 그곳에 빈틈없이 감겨있는 겨우살이가 있었다.

         

       겨우살이는 잘린 가지에 기생하고 있음에도 그 빛을 잃지 않고 있었고, 유리 상자 밖으로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 최고급 겨우살이로군. 계약자야, 귀여운 나의 계약자야. 너의 언니에게는 켈트 주술 의식을 하려는 것 같구나. ]

         

       최고급 겨우살이.

       성스러운 떡갈나무의 생명과 푸르름을 그대로 간직하고, 참나무의 정령의 힘을 고스란히 담아두고 있다는 최고급 재료.

       당연히 최고급인 만큼 채집 방법도, 보관 방법도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만성절(Allerheiligen)의 전날, 현대에서는 할로윈(Halloween)이라고 부르는 날의 깊은 밤에 고명한 드루이드가 한 번도 쓰지 않은 황금으로 만든 날붙이로 의식을 행하며 채집하고, 채집한 후 단 한 번도 땅에 닿지 않게 해야만 하는 물건이었다.

         

       일 년에 단 하루 동안만 채집이 가능한 데다가, 한 번이라도 땅에 닿으면 품질이 수직 하락을 해버리니 주술사 사이에서는 돈 주고도 구할 수 없는 귀물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 보자. 흠. 대마녀라는 여자에게 뜯어낸 물건이로다. 품질도 좋고. 아예 자른 가지 채로 시들지 않게 잘 보관했으니…. 적지 않은 돈을 썼겠다. ]

         

       그것을 시작으로 짐칸에 실린 재료들이 하늘을 날았다.

         

       물고기의 비늘, 깃털, 혈액팩, 술….

       그 모든 것들이 저 멀리서 구경하고 있던 이아린의 앞에 차곡차곡 쌓였다.

         

       이윽고 모든 물건이 쌓였을 때, 진성은 이아린에게 다가갔다.

         

       “다음은 너의 차례인데. 아직은 의식을 치러줄 수 없느니라.”

         

       멍하니 타오르는 대관람차를 보며 멍하니 있던 이아린은 진성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진성은 카피바라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으로도 의식이 가능은 하나,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니라.”

       “응?”

         

       이아린은 그 말에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오라비, 그럼 출발하기 전에 사 오지.”

       “그럴 필요가 없다. 곧 좋은 재료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알쏭달쏭한 진성의 말에 이아린은 물었다.

         

       “재료? 그, 뭐냐. 그럼 저 카피바라는 의식에 안 쓸 거야?”

       “그렇다.”

       “그럼 저건 왜 안고 오게 한 거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진성은 그녀 앞에 쌓인 짐에서 후추와 소금을 꺼냈다.

         

       “손님이 오는데, 요리는 대접해야 하지 않겠느냐?”

         

         

         

         

        * * *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어두운 밤을 밝히는 태양과도 같은 불이.

         

       “SN-04-S02M 확인! 파사, 정화의 불꽃입니다!”

       “쑤까 불럇(сука блять).”

         

       빅토르는 땅에서 타오르는 태양을 보며 입가를 비틀었다.

         

       “또 주술사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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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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