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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4

       콰아아아앙!

         

       멀지 않은 곳에서 폭발하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당장 가봐야 하는 것 아닌가?”

        “괜찮아. 무왕 정도면 이길 수 있어.”

         

       아마, 무왕은 드래곤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레벨은 무려 94. 로드급 드래곤 정도는 와야 저울추가 맞는다.

         

       물론 그렇다고 단숨에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이곳, 금의 마경에 있는 드래곤은 로드는 아닐지언정, 그렇다고 평범하다고 말 할 수도 없었으니까.

         

       ‘잡는 데 최소한 1시간은 걸릴테니.’

         

       올리비아는 망설임 없이 반대편 통로로 향했다. 양쪽 통로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하던 키엘은, 이를 악물며 올리비아를 뒤따랐다.

         

       쿠구궁…….

         

       어찌나 격렬한 전투를 벌이는지, 한참 떨어진 곳에서도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한참을 걸어가던 올리비아가 마주한 것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의 공동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시커먼 어둠 속에서 비명이 울린다. 역한 피비린내와 함께, 아릿한 독기가 키엘의 코 끝을 스쳐 지나갔다.

         

       “……물러서라.”

         

       키엘이 올리비아를 보호하듯 섰다.

         

       “물러서기는 무슨. 비켜봐.”

         

       츠츠츳!

         

       올리비아를 중심으로 달빛보다 훨씬 밝은 빛이 퍼져나가 어둠과 독기를 단번에 소멸시켰다. 키엘은 그제서야 공동 내부를 직시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드워프가 있었다,

       살갗은 독에 물든 것처럼 푸르죽죽했고, 몸은 넝마가 된 것으로 모자라 뼈가 보일 정도로 녹아 있었다.

         

       올리비아의 말대로, 그가 알던 드워프와는 달랐다.

         

       “……언데드군. 사령술인가?”

         

       못해도 수 백, 어쩌면 천 명도 넘는 것 같았다.

         

       올리비아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말했다.

         

       “저 드워프들, 왜 저렇게 됐는지 알아?”

        “……왜지?”

       “드래곤을 사냥해서.”

         

       올리비아는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드워프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큰 덩치를 지닌 드워프가 있었다.

       

       뿔 달린 투구를 쓴, 거구의 드워프.

         

       족장이었다.

         

       족장의 손에는 거대한 도끼가 들려 있었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근육은, 생전의 경지를 짐작하게 했다.

       

       물론 그의 처지도 다른 드워프들과 다르지 않았다.

         

       “녀석들은 족장을 필두로 골드 드래곤에 맞섰고, 결국 드래곤을 사냥하는 데 성공했어. 하지만, 저주받았지.”

         

       드워프들이 남겨놓은 기록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러면 무왕은 무얼 상대하고 있는 거지?”

       “골드드래곤의 시체. 육체는 썩어 문드러졌고, 이성도 존재하지 않지. 하지만 비늘은 여전히 단단하고, 언데드라서 쉽게 죽지도 않아.”

       “잘……아는군.”

       “원래 이런 비사(祕史)들에 관심이 많아서.”

       

       올리비아의 벽안이 키엘을 마주 응시했다.

         

       “저들이 안식에 들 수 있도록 도와줘.”

         

       키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스릉, 소리를 내며 대검이 움직였다. 검신에는 어느새 묵빛 오러가 일렁이고 있었다.

         

       “네 부탁을 들어줄 생각은 없다.”

       “……음?”

       

       올리비아의 눈이 둥그래졌다.

       

       “……저들을 돕는 건 내 의지다.”

       

       키엘은 공동 아래로 뛰어내렸다.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대검이 지면을 강타했다.

         

       드워프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키엘이 무릎을 튕겨 단숨에 앞으로 튀어나갔다. 가벼운 검격에도 수십마리가 양단된다.

         

       올리비아는 위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단순히 자르는 걸로는 안 죽을걸?’

         

       흑마법사들이 만든 언데드와는 차원이 다르다. 드래곤의 저주는 그러한 것이다.

         

       꽈드드득!

       

       대검이 드워프들의 육체를 갈기갈기 찢으며 나아갔지만, 키엘의 표정은 영 좋지 못했다. 살덩이들은 서로 뒤얽히기를 반복하다, 어느새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키엘이 얼굴이 진지하게 바뀌었다.

         

       재생력이 예사롭지 않음을 눈치챈 것이다.

         

       공간검은 사용할 수 없다. 아무리 키엘이라고 한들, 산맥에 깔리고도 살아남을 자신은 없었기 때문이다.

         

       촤악!

         

       드워프들은 마치 야수처럼 움직였다. 무기가 없으면 손톱으로 할퀴고, 이빨로 물어뜯으려 들었다.

         

       그 모습을 본 키엘은 마지막 가책을 완전히 덜어낼 수 있었다.

         

       츠츠츠츠츳!

         

       공동을 새카맣게 물들이는 검격.

       검의 궤적에 맞닿은 드워프들이 괴성을 지르며 튕겨나갔다.

       그렇게 백, 이백, 삼백……. 순식간에 절반이 넘는 인원을 한 쪽 벽면에 몰아넣은 키엘의 대검이 사납게 울었다.

         

       우우웅!

         

       그리고 다음 순간, 폭음이 터져나왔다. 먼지폭풍이 걷혔을 때, 키엘의 주변에는 재생하지 못한 시체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올리비아는 그런 키엘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키엘을 이곳에 데려온 목적은 단 하나였다.

         

       바로 키엘의 성장이었다.

         

       ‘쑥쑥 커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 딱 90레벨만 찍자.’

         

       피치못할 사정으로 마경에 들어오게 된 순간부터, 올리비아는 어떻게든 뽕을 뽑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검성 키엘’이 성장합니다!]

       

       저 곳에 있는 드워프들은 약해보이지만, 부족 전체를 놓고 보면 엄연한 드래곤 슬레이어였다.

         

       키엘은 지금 웬만한 왕국 이상의 전력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키엘이 저렇게 마음대로 활보할 수 있는 건, 올리비아가 족장의 움직임을 알게 모르게 봉쇄하고 있었기 때문이지만 말이다.

         

       키엘이 잔챙이들을 거의 처리했을 무렵, 올리비아는 족장의 속박을 풀었다.

         

       족장의 모습이 사라진 것은 동시였다.

         

       [크아아아아!]

         

       그는 키엘의 틈을 노리고 땅을 박찼다. 순식간에 키엘의 후방으로 이동한 족장의 도끼날이 섬뜩하게 빛났다.

         

       흠칫 놀란 키엘이 대검으로 공격을 틀어막았다. 굉음과 함께 먼지폭풍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폭풍 속에서 칼부림 소리가 울려퍼졌다. 약간이지만 키엘이 밀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도와줄까?”

       “필요……없다!”

         

       공중에서 키엘의 대결을 지켜보는 올리비아의 입꼬리가 씰룩거리며 올라갔다.

         

       저거면 충분했다.

         

       올리비아가 방관하더라도, 키엘은 문제삼지 않을 것이다. 지금부터는 자존심의 영역이었으니까.

         

       그렇게 되면 경험치는 전부 키엘이 독식할 것이다.

         

       ‘키엘은 됐고.’

         

       올리비아는 무왕에게 붙여둔 관측용 사역마를 통해 반대쪽 상황을 확인했다.

         

       [크하하하하! 쓸데없이 질기구나!]

         

       무왕은 드래곤이 내뿜는 독기 속에서 주먹질을 계속하고 있었다. 한 때 황금색으로 빛났을 비늘은 산산조각이 나다 못해 떡처럼 다져져 있었다.

         

       ‘……미친놈이네.’

         

       만약 저 드래곤이 살아있는 놈이었면, 무왕의 강함에 혀를 내둘렀을 것이다.

         

       마법 무구를 두른 것도 아니다. 그는 오로지 육체로만 드래곤의 독기와 마법을 견뎌내고 있었다. 자잘한 상처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뿐.

       그에게 언데드 드래곤은 단단한 샌드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드래곤이 발악하며 더욱 섬뜩한 독기를 뿜어냈다. 넘실거리는 독기는 지면을 감쌌으며, 무왕이 있는 공동을 검정으로 물들였다.

         

       하지만 무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독기는 그의 신체를 부식시키지 못했고, 바위를 종잇장처럼 베어버리는 날카로운 꼬리는 그의 주먹에 작살난 지 오래였다.

         

       오히려, 무왕의 얼굴에는 약간의 무료함이 드러나 있었다.

         

       실망.

         

       드래곤이라는 종족이 이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실망한 것이다. 동시에 올리비아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역시.’

         

       무왕이 상대하는 드래곤은 강하지만, 옛적에 죽은 시체에 불과했다.

         

       아마, 무왕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냥 덩치 큰 도마뱀이었군.

         

       올리비아는 무왕과 키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무왕은 드래곤을 압도하고 있었고, 키엘은 약간 밀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웃는 쪽은 키엘이었다.

         

       결국, 검사도 전사다. 본능적으로 치열한 싸움을 즐긴다.

         

       키엘의 가슴이 쿵쿵거리며 뛰었다.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고양감이었다.

         

       밀린다. 밀리는데, 질 것 같지가 않다.

         

       ‘조금만 더…….’

         

       키엘의 대검이 갈수록 빨라졌다. 뒤로 밀리던 키엘이, 어느 순간 밀려나기를 멈췄다.

         

       츠츠츠츠츳!

         

       검과 도끼가 부딪치며 사방에 불꽃이 튀었다. 불꽃은 점점 족장 쪽으로 기울었다.

         

       지금의 감정을 잃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전투는 곧 자신의 승리로 결착이 날 것이다. 하지만 검격을 멈추고 다시 붙는다고 한들, 지금과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은 확실했다.

         

       ‘더.’

         

       키엘의 검이 더 빨라졌다. 더 이상 불꽃은 튀지 않았다. 그 대신 섬뜩한 피륙음이 들려왔다. 족장의 온 몸이 찢겨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키엘은 멈추지 않았다.

         

       완벽한 무아(無我).

         

       ‘……지금이라면.’

         

       키엘은 그동안 공간검을 2식까지 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제 5식, 단절은 [회귀자 특전] 없이는 시도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지금은 될 것 같았다.

         

       키엘은 두 눈을 감았다. 온 신경이 검으로 향했다.

         

       공간검은 쓰지 않으려 했지만, 다시 없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올리비아를 믿는다.’

         

       그녀가 어떻게든 뒤처리를 해줄 것이라 믿었다.

         

       다음 순간, 키엘의 검이 움직였다.

         

       사악, 하는 소리와 함께 사위가 고요해졌다.

         

       키엘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족장은 두 다리만 간신히 남아 있었다. 육체는 더 이상 재생하지 못했다.

         

       ‘……성공했다!’

         

       키엘은 상기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 미간을 잔뜩 일그러뜨린 올리비아가 있었다.

         

       “미친놈아! 큰 기술 쓸거면 말을 하고 쓰라고. 말을!”

       

       그녀는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지반을 떠받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공동 전체가 뒤흔들리고 있었다.

         

       콰르르르!

         

       ‘무슨 무게가……!’

         

       올리비아는 나머지 한 손으로 공간이동 마법진을 그려냈다.

         

       “빨리 잡아!”

         

       올리비아가 손을 뻗었다. 키엘은 멀뚱히 그 손을 보다가, 올리비아의 손을 붙잡았다.

         

       둘은 어느새 무왕이 있는 반대쪽 공동에 도착해 있었다.

         

       떡이 된 드래곤의 시체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무왕은 그 시체를 의자 삼아 앉아 있었다.

         

       “……드래곤들은 원래 다 이따위더냐? 마법의 종주라더니. 쯧. 마술쟁이 네년에 비하면 약하기 그지없군.”

         

       무왕의 얼굴은 권태로 가득했다. 역시나, 이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한 것이다.

         

       그의 손에는 황금빛 열쇠가 들려 있었다.

         

       “언데드라서 그래. 이지가 있는 놈이었다면 아무리 너라도 하루는 걸렸을거야.”

       “……본좌를 속였구나.”

       “언데드 드래곤도 드래곤이지.”

        “아니, 네 년은 본좌를 속였다.”

         

       무왕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올리비아의 코 앞에 착지했다. 그는 올리비아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한 판 붙자. 그러면 네 잘못을 용서해주마.”

       “전생에 나한테 죽었다면서. 괜찮겠어?”

         

       올리비아가 도발하듯 미소지었다. 무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네 년이 빌어먹을 쫌팽이처럼 싸워서 진거다.”

       “싫은데? 나한테 득될 게 없잖아.”

         

       무왕이 들고 있던 열쇠를 던졌다. 올리비아는 얼떨결에 열쇠를 잡았다.

         

       [금의 마경 열쇠]

       

       “그걸 주마. 어떠냐?”

       

       무왕이 힘 있게 주먹을 두드렸다.

       올리비아도 그를 따라 미소지었다.

       

       계획대로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무왕 VS 올리비아 구도는

    세트 VS 우르프 르블랑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롤을 모르신다고요?

    안타깝군요. 죄송합니다.

    한대도 못 때리고 뒤지도록 처맞기만 한다는 걸 이보다 더 찰지게 설명할 방도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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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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