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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4

       “……이거면 되는 걸까?”

        

       어머님께 보여드릴 편지를 다 쓰고, 나는 천천히 다시 한번 그 내용을 읽어보았다.

        

       솔직히 말해, 맞춤법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은 없었다. 수업을 제대로 들은 기억이 없으니까. 학교에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심지어 책상 위에 책을 펼쳐두지 않거나 수업 도중에 나가서 들어오지 않더라도,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상하게도 성적은 평균 수준의 점수가 나왔다. 시험을 제대로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도.

        

       내가 사는 저택은 넓긴 했지만, 그래도 비교하자면 학교 건물이 훨씬 넓었다. 그 학교에서, 적어도 그거 하나만큼은 좋았다. 저택에 딸린 정원보다 더 공원다운—그래봐야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떠올린 애매한 기억뿐이긴 했지만—공원도 있었고, 무엇보다 수업 시간 와중에 공원으로 나오면 누구와도 마주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한 사람 있기는 했다.

        

       주요 고객들은 고등학교에 있다는 이유로 이 학교에는 조금 낮은 빈도로 오곤 했지만, 나를 보고 ‘최대 고객’이라는 이상한 단어를 쓰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말씀입니다만, 그 자산을 관리한 결과를 보고드리고 싶은데……”

        

       나는 그 사람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갑자기 찾아와서 아버지의 이름을 들먹이는 사람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아니, 나는 내 주변의 누구도 믿지 못했다.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를 향해서 웃어주던 아버지가, 그렇게 갑자기 떠나버리신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너무 어릴 때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나에게 유일하게 남은 가족.

        

       ‘어머님’은…….

        

       그녀는, 나를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내가 어렸던 시절에, 그녀는 내 어머니의 빈자리를 정말 완벽하게 채워주는 사람이었다. 아니, 완벽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 사람은 그야말로 나에게 있어 ‘어머님’이었다.

        

       동경하던 시절도 있었다.

        

       어린 나의 눈으로 바라보는 그녀는 너무 멋진 어른이었고, 상냥한 어른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를 볼 때면 가슴을 간질이는 반가움과 동시에, 묘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 부끄러움은 동경하는 사람을 만나 느끼는 쑥스러움이었다.

        

       그렇기에, 그 사람은 ‘어머님’이었다.

        

       어린 내가 어떻게 그런 단어를 생각해낼 수 있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았다. 그저, 어머니를 대신하는 사람이었고, 존경하는 사람의 이름 뒤에 ‘님’이라는 말을 붙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어머님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짐작일 뿐이기는 하지만.

        

       하지만, 어머님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갑자기 바뀌었다.

        

       나를 한참 동안 찾아오지 않았다. 마치 더 이상 관심을 줄 필요가 없다는 듯. 무언가 목적이라도 이루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아무리 어린 나이라도,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른 위치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는 법이다.

        

       내가 살던 집은, 남들이 사는 집보다 한참 높은 곳에 있었다. 차를 타고 가다 보면 보이는 답답한 아파트 숲 한가운데가 아닌, 바로 옆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넓은 강을 끼고 있는 높다란 곳의, 시야가 탁 트인 집.

        

       도로변 옆의 다닥다닥 엎드린 낡은 집들을 보고 저 건물은 어떤 건물이냐고 물었다가 나와 똑같은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말을 듣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누구 앞에서 하면 안 되는 소리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뭐,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할 사람도 없었고.

        

       어쨌거나, 듣기로는 어머님이 원래 살던 집이 그런 집이었다는 듯했다. 그런 말을 하던 사용인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그렇기에, 나는 생각했다.

        

       혹시 어머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하고.

        

       그게 미친 듯이 무서웠다.

        

       세상에 남은 사람 중, 이제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나 무서웠다.

        

       그래서 일 년에 네 번, 짧게 나를 찾아오던 어머님을, 나는 온 힘을 다해서 반겼다. 단 일 분이라도 더 오래 있고 싶었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정말일까?—사람은 어머님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인제 와서는 그것도 의문이긴 했지만.

        

       그렇기에, 나는 그 사람도 믿을 수 없었다.

        

       어머님마저 의심하는 나였다. 내 곁으로 와 다짜고짜 아버지의 재산 이야기를 꺼내는 그녀를, 내가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나는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기, 고객님. 어떻게 하면 저를 믿어주실 건가요?”

        

       그렇게 세 번 정도 대화 아닌 대화를 나눈 뒤에서야, 그녀는 나에게 그렇게 물어왔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만나는 주변에서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어느 날 갑자기 약혼하게 된 약혼 상대도, 분명 나에게서 뭔가를 바라고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적대적이면서 나와의 약혼을 깨지 않는 데에는 무슨 이유가 있겠지.

        

       그리고 그런 사람과 나를 약혼시킨 어머님도, 무슨 생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님은 나를 만날 때마다 사랑한다고 해주셨다.

        

       믿고 싶었다.

        

       믿어도 될까?

        

       …….

        

       의심은 끊을 수 없었다. 나는 어머님을 완전하게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머님은 잊을만하면 나타나 나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그 말이, 너무나도 진심처럼 들려서, 달콤했다.

        

       그래, 공기마저 무겁게 가라앉은 그 침묵 속의 저택 안에서, 누구도 나를 바라봐주지 않는 학교 안에서, 내가 생각할만한 것은 그런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머님이 나에게 가지고 있는 관심은 내가 어머님께 가지고 있는 관심보다 너무나 가벼운 것이었던 모양이었다.

        

       불공평하다.

        

       나는 매일같이 어머님 생각만 하는데.

        

       어머님은 내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나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그랬기에, 나는 한가지 생각을 한 것이다.

        

       목을 매볼까?

        

       아니, 그건 너무 오래 걸려.

        

       뛰어내려 볼까?

        

       아니, 실패 가능성이 너무 커.

        

       찔리거나 베이는 것은—

        

       아냐, 내 방에 그런 흉기는 없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에게 쪽지 하나를 건넨 것이다.

        

       어느 약 한 통을 구해달라고.

        

       “……정말로 불면증 때문에 달라고 하시는 것이 맞습니까?”

        

       그 사람은 어울리지 않게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약통을 꽉 쥐고 있어서, 내 힘으로는 빼낼 수도 없었다. 손가락 끝이 새하얗게 질려있는 것은 그만큼 이 상황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미리 준비해 온 편지 한 통을 건넸다.

        

       아버지 재산에 대해 어떻게 할지에 대한 대략적인 계획이었다.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제 아버지는 내 곁에 없는데.

        

       돈 따위 많이 가지고 있어 봐야 무슨 소용이겠어?

        

       돈이 아무리 많아도, 죽은 사람을 되살리지 못한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 돈이 어머님의 시선마저 빼앗아 간다면, 차라리 전부 버려버리고 싶다.

        

       그래도 계획은 꽤 충실하게 썼다고 생각한다.

        

       “…….”

        

       그 은행원은, 편지를 읽어보고 나서야, 약통을 놓아주었다.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표정이 서려 있었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앞으로도 부디 자주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곧 졸업이시니, 고등학교에선 훨씬 쉽게 만나 뵐 수 있을 겁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별로 관심 없는 이야기였다. 나는 아마 졸업식에도 가지 못할 테니까.

        

       그리하여,

        

       그래, 이렇게 된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편지를 내려다보았다.

        

       어머님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얼추 다 담은 것 같았다. 사실 구구절절하게 전부 적어버리면 기껏 구한 편지지가 넘쳐버릴 것이 분명했기에, 추리고 추려서 넣은 내용이었다.

        

       “……아.”

        

       그래. 아직 넣지 않은 내용이 있었다.

        

       만약, 어머님께서 그저 나에게 평범한 어머님이었다면.

        

       그리하여 내가 다른 아이들처럼 웃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면. 말을 걸고 대화를 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면.

        

       누군가의 곁에 ‘있는’ 사람일 수 있었다면.

        

       그런 상상을 해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나처럼 외톨이라도 하나 나타나서 옆에 가만히 앉아있어 주기라도 해줬으면. 나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나타나 줬으면.

        

       ……뭐, 이제와서는 너무 늦은 이야기지만.

        

       하지만 그것은 나의 소망이기도 했기에, 편지에 추신을 달았다.

        

       행복한 일주일을 보낼 수 있었다면 좋을 텐데.

        

       이제는 못 하게 됐네요.

        

       부디 당신도, 평생 나를 생각하며 그렇게 되기를.

        

       ……아무래도 마지막 말은 너무한 것 같아, 쓰지는 않았다.

        

       *

        

       그래, 그렇게 해서, 나의 계획은 완성되었다.

        

       내가 가족으로서 가장 사랑하는 어머님의 관심을 확실하게 끌어올 수 있는 계획.

        

       나의 시신을 본 어머님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나의 장난을 어머님은 이해해주실 수 있을까?

        

       그렇다고 믿기로 했다.

        

       나의 시신을 끌어안고 울어주실 것이라 믿기로 했다.

        

       혹시 내 뒤를 따라오신다면.

        

       음, 그래,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저 하늘에서, 가족끼리 만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을 것 같기도 하다.

        

       ……뭐, 어떤 반응을 보이건, 이제는 못 볼지도 모른다는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막상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실행에 옮기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제는 정말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그저, 긴 잠에 빠지면 그만이었다.

        

       반쯤 비어버린 약통을 다시 서랍에 넣는다.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노트 위에, 방금 쓴 편지 봉투를 올려두었다.

        

       내가 남길 흔적은 이것으로 끝이다.

        

       별로 아쉽지는 않았다.

        

       어머님께서는 이 흔적을 찾아주실까?

        

       이건, 내가 마지막으로 거는, 일종의 장난이었다.

        

       일부러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제일 안 보이는 곳에 꼭꼭 숨겨놓는다.

        

       어머님께서 부디 이 노트와 편지를 직접 찾아 읽어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기왕이면, 울어주셨으면.

        

       침대에 눕자, 지독한 수마가 나를 덮쳤다.

        

       나로서는, 마지막 잠이었다.

        

       *

        

       그랬다고 생각했다.

        

       눈앞에, 어머님의 얼굴이 다시 보이기 전까지는.

        

       대체, 내가 어떻게?

        

       혹시, 이것이 나의 마지막 꿈인 걸까?

        

       아니, 마지막 꿈이라기에는 너무 생생했다. 나에게 붙어있는 어머님의 체온과 숨결과, 볼을 만지는 어머님의 손길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어머님…….”

        

       당황해서 그렇게 중얼거리자, 어머님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그리고, 그 표정은, 내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그 표정이었다.

        

       몸이 떨린다.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던 마지막 사람마저, 그 관심을 거두려 하고 있었다.

        

       어머님은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또 정해진 날에 다시 오도록 하마.”

        

       그렇게, 냉정하게 말했다.

        

       “으에……?”

        

       그 말을, 순간 이해하지 못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지금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도저히 머리가 따라가질 못했다.

        

       설마, 내가 실패한 걸까……?

        

       그렇다면, 이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프라시아님, 후원 감사합니다!

    정말 매일 올라가는 조회수를 보고도 믿기가 쉽지 않습니다. 랭킹 100위 안에 든다던가, 제가 쓴 글의 조회수를 전부 합치면 수십만이라던가… 처음 글을 쓸 때만 해도 이런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요. 사실 쓰는 소재가 소재라서 이렇게까지 대단한 조회수가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전부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의 덕분입니다. 사실 그 숫자가 모두 여러분께서 한 번씩 읽어주신 숫자이니 어러분 덕일 수 밖에 없죠.

    만약 이곳에 글을 올리지 않았다면, 그저 텍스트 파일에 쓰여있는 소잿감으로 어느 폴더 구석탱이에서 그대로 썩었을 소설입니다. 이 소설이 이렇게 빛을 보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저의 소설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 덕분입니다. 어떤 공모전도 아니고, 출판사의 제안을 받은 것도 아닌, 제가 직접 글로 올리고 여러분이 읽어주신 결과라는 것이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요. 아마 저는 이 감각을 잊지 못해서 계속해서 글을 쓸 것 같습니다.

    언제나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님께서 제 글을 선택해 읽어주시는 것 만으로도 이미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데, 이렇게 큰 후원을 받아서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앞으로도 저의 글을 읽는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앞으로도 꾸준히 좋은 글을 써내려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후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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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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