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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4

        

         국경 수비대(Frontier Guard).

         암호명 FG 시리즈를 할당 받는 이들은 전투 경찰 내에서도 여러모로 특수한 병과였다.

         

         어차피 노른자 땅은 기업과 상위층이 갈라 먹었고, 별 효용성 없는 바깥은 깃발 꽂으면 자기 땅이 되는 망한 세상에서 무슨 국경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존재했다.

         

         아무리 관문과 포탑들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고 해도.

         메트로폴리스 근방으로 외부 사람들의 무분별한 접근을 방치해서 좋을 게 없었기에 개설된 경비 부문이었다.

         

         더군다나 하베스트 플래닛의 경우엔 사막 쪽에 지열 및 태양열로 돌아가는 무인 플랜트까지 있어서 배정된 예산도, 운용도 훨씬 활발했고.

         

         가끔 업무 시간에 보면, 경찰용 출입구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서 막사 구역에 있는 자판기로부터 음료수나 스낵바 같은 걸 한가득 사서 나가는 모습이 왕왕 보였다.

         아, 어쩌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서로 고개나 까딱거리는 수준에서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그래서 국경 수비대의 주요 업무가 뭐냐고?

         어… 그러니까, 다른 경찰들이 편하게 관문이나 도시 안에서 거들먹거리면서 공무원의 삶을 즐기고 있을 때 지급받은 호버바이크 타고 모래바람 쐬면서 죽어라 뺑이 치기?

         

         관문 경비대나 엔지니어 보직이 상대적으로 편했다고 기만하려는 게 아니라, 경찰 조직도를 훑어봐도 그들보다 기본 업무가 지랄맞은 곳은 없었다.

         

         전용 호버바이크와 냉방 기능이 완비된 제복이 지급되는 데다가 기본급이 압도적으로 높기는 해도 대체 누가 기껏 도시 공무원이 됐는데, 스캐빈저 마냥 하루에 거의 열 시간씩 싸돌아 당기는 걸 좋아하겠어요.

         

         심지어 농땡이 방지 명목으로 다른 부서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할당량 개념도 있었다.

         분명… 시간당 몇 킬로미터 이상 주파하면서 순찰해야 된 댔나?

         

         오죽하면 사내 소문으로도 FG 새끼들은 하나같이 항상 화가 존나 많으니까. 어쩌다 어깨라도 부딪히면 닥치고 사과부터 박으라는 암묵적인 규칙도 있었다.

         

         잡소리가 길어졌지만 결국 하고싶은 말이 뭐였냐면….

         

         “…하베스트 플래닛 국경 수비대 소속, FG-01와 예하 탐색 로봇입니다. 무장 강도 및 폭발 사고 조사에 긴밀한 협조 부탁드립니다.”

         

         한껏 음산하게 변조된 내 목소리가 고막을 울린다.

         

         전파를 타고 제로에게, 음성 모듈을 통해 일그러진 소리가 외부 스피커로.

         최종적으로 다시 진동판을 타고 나에게 돌아온 그 문장은 누가 들어도 속에서 이글거리는 온갖 짜증을 억누른 게 딱 국경 수비대처럼 들렸다.

         

         그리고… 무법자로서 가장 마주칠 확률이 높은 위험 인자와 정면 대결했다는 사실을 재확인한 녀석들은 경기를 일으켰고.

         

         “인생 좆같네 진짜!”

         “…시벌, 수색 로봇? 저딴 게? 왜??”

         “기업 새끼들은 독하다는 게 괜히 나온 말이 아니라더니….”

         

         “…얌마, 칼은 좀 이따가 손질해.”

         

         여기서 더 위압감을 주려는 건지, 그저 전투에 대비하는 건지는 몰라도. 장내 모든 인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아내는 와중에 태연하게 팔을 휘둘러 칼날에 묻은 이물질을 털어내는 제로를 만류했다.

         

         제복은커녕 행색 자체가 경찰과 거리가 먼 아시프 때문에 약간의 의심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워낙 제로가 시선을 사로잡아서 그런가? 아니면 당한 게 있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아무도 거기엔 의문을 가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지금은 가능한 약해 보여야 한다.

         저것들이 투지 아닌 생존 의지를 불태울 수 있도록.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품을 수 있도록.

         

         “세부적인 조사는 추후 이루어질 예정이니, 시민증 제시 및 바깥 호버크래프트에 무단 적재된 기업 소유 물품들에 대해 소명하길 바란다.”

         

         “그건 저 쉐끼들부터 다 잡아넣고 차근차근 따지면 될 문제 아니오?! 하필 이렇게 고지식한 경찰이 와서는…!”

         

         이런 비상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너무 느긋한 대처가 아니냐며 승객 중 일부가 아우성을 쳤다.

         

         지당한 항의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대부분의 경우, 범인들이 무장한데다 교전 의사도 남아 있다면 호쾌하게 탄창부터 비운 다음 ‘남은 것’들을 찾아서 검사하는 일이 허다하다.

         

         하지만 지금에 한해선, 적들을 일소하면서도 최대 다수의 안전을 챙기는 데에는 이만한 길이 없다고 믿는다.

         

         아니, 애당초 이대로 들이박으면 댁들이 위험하다니까요? 퇴로를 살인 병기 둘이서 틀어막았는데 싸우던 강도들이 밀려나면 어디로 향하겠어!

         

         “저희는 어디까지나 규정에 의거해서 행동합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가깝던 저희 팀만 먼저 왔을 뿐, 본대는 아직…… 이런.”

         

         건너편에 있는 승객의 불만에 대응하다가, 마치 실수인 척 미끼를 던지고는 입을 다물었다.

         행여나 경찰 사정에 빠삭한 똘마니가 있을라, 교묘하게 진실과 거짓을 섞은 핑계에 더해 예상치 못한 활로까지.

         

         이만하면 없던 용기도 생겨났겠다! 싶어서 놈들을 바라봤지만.

         

         “…꿀꺽.”

         “…….”

         

         머뭇머뭇, 이쪽의 눈치를 보면서 주춤거리기만 하지 적극적으로 앞길을 뚫으려는 놈이 없었다.

         이것들은 이렇게 돌려 말해줬는데도 눈치를 못 채?!

         

         최후에 최후까지 등을 떠밀어줘야 하다니…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마음에 안 드는 녀석들이다.

         

         “…로잘린? 미안한데 저기 갱단 우두머리 행세하는 인간 사이버웨어로 아군 행세하는 통신 한 통만 넣어줄 수 있어? 지금 당장 호버크래프트로 안 돌아오면 먼저 튀겠다는 식으로 약간 긴박하게.”

         

         “!! 얼마든지요, 언니!”

         

         1인 3역을 수행하기엔 꽉 막힌 속이 답답했기에 혹시나 하고 부탁해본 건데, 그녀는 싫은 기색조차 없이 그저 도울 일이 있다는 것에 마냥 기뻐하며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당연하다는 것처럼 준비되어 있는 음성 변조를 위한 프로그램과 사이버웨어 방화벽 우회용 툴(Tool)은 굳이 지적하지 않도록 하자.

         

         안 그래도 아까 어떤 프로그램을 주로 쓰냐느니~ 혹시 직접 개발한 작품(Masterpiece)이 있다면 염치 불구하고 구경해봐도 되냐느니~ 하며 달라붙는 걸 나는 잘 모르겠다며 떼어낸 참이니까.

         

         “이익…!”

         

         어쩌다 일이 여기까지 틀어졌냐는 듯, 별의별 악감정이 한군데로 뒤섞인 대장이 안면 근육이 뒤틀린다.

         하지만 바로 밑까지 핏발이 설 정도로 힘을 주고 부들부들 떨어봐야 내릴 수 있는 결론이 하나밖에 없다면… 글쎄 저런 게 폭발한다고 겁을 먹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씨—발!! 뚫어! 아니, 그냥 쏘면서 달려!! 포위되기 전에 저것들만 제끼면 튈 수 있다!!”

         

         “진짜 빨리도 결정하네. 됐어, 둘 다 적당히 놀아주면서 길을 트고 빠져버리면 끝이야.”

         

         고함과 함께 개시된 결사의 돌진.

         그마저도 가까이 있던 놈들은 선두에 서기 싫었는지 물러나려 했지만, 두목이 엉덩이를 걷어차자 마지못해 다리를 움직였다.

         

         드득! 드득!! 드가가갓—!

         

         누군가를 노린다기보단 그냥 공간 그 자체에 퍼부어지는 총탄 소나기를 제로는 적당히 튕겨내며 대부분은 회피했고, 아시프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내 부탁을 따라주었다.

         

         “……뭐, 굳이 다 죽일 필요는 없겠지.”

         

         “…….”

         

         아뇨. 딱히 살려줄 생각도 없는데요?

         

         적은 뒤가 아니라 앞에 있음에도, 흡사 유령의 집에서 쫓기는 손님 마냥 우당탕! 쿵탕! 하는 소음을 연주하는 그들에게서 나는 아예 시선을 치워버렸다.

         

         괜히 더 쳐다봐야 세상에서 제 목숨만 가장 귀한 줄 아는 역겨운 태도에 구역질이 날 뿐이다.

         

         조용히. 꼰 다리를 까딱거리며 시간을 죽인다.

         ‘다음은 뭘 할까요!’ 라던가. ‘아니, 이제 다 끝났는데.’ 같은 사소한 문답이 있었지만 그걸 제외하면 객실은 평화로웠다.

         

         요란하게 기차 복도를 울리던 괴한들의 발소리가 하나 둘 빠져나가고, 바깥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으로 소란이 옮겨간다.

         

         막상 도착해서 보면 연락을 건네 온 운전병은커녕 따로 떨어졌던 인원 중 그 누구도 안 보인다는 걸 알았을 텐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동을 거는 모습이 창문 너머로 보였다.

         

         온전히 자신들의 운과 힘으로 사지에서도 활로를 찾아냈다고 착각해서 신난 모양인데.

         

         이쯤 되니 저것들이 다 탑승한 게 맞나 싶어서 오히려 내가 더 신경 쓰였다.

         …모르겠다. 남은 잔당이 있으면 모래 언덕 너머 저~ 멀리 보이는 우리 민중의 지팡이들께서 당도하면 알아서 해결해 주시겠지.

         

         – 목표물, 성공적으로 우리에 유도했습니다. 곧바로 작업대를 준비하겠습니다. –

         “내 고집 때문에 다들 괜한 고생 많았네. ……그런데 우리? 작업대?”

         

         왠지 과하게 친근해진, 풀어진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오는 아시프에게 맞인사를 건넸다.

         이런 식으로 모두가 지켜보는 와중에 마무리를 지을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이거 본의 아니게 오픈 키친 비스무리한 상황이 되어버렸네.

         

         딱히 자랑할거리도 아니니, 마음 같아서는 내 객실로 돌아가서 일을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더 시간을 끌 순 없었다.

         머뭇거리는 사이 호버크래프트가 신호 증폭기의 사거리 밖으로 나가버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철컹….

         

         제로의 등판이 개방된다.

         흡사 비행기 의자의 뒷면이 열리는 것처럼, 감춰져 있던 자판과 모니터가 나타나고 내부에 수납되어 있던 접이식 안테나가 펼쳐진다.

         

         소규모 교전을 연달아 치룬 만큼 외부엔 흠집이 좀 생겼지만 다행히 내부 장비들은 멀쩡해 보였다.

         

         “…무선망 한계 고도에 근접하면 알려 줄래? 그전에 터트려야 하니까.”

         

         말을 마치자마자 정신을 집중시킨다.

         요령은 어비스 다이브와 비슷했다. 몸에 새로운 팔이 추가된 것처럼 연결된 기관 자체를 의식해서 저 사막을 향해 뻗는다.

         

         설치된 증폭 회로와 제로의 연산 보조가 내 신호만으로는 절대 닿을 수 없는 간극을 잇는 가교가 되어 쭉쭉 뻗어 나가… 기어이 도망치는 호버크래프트 옭아맸다.

         

         거미줄에 걸린 나비조차 반항하는 법이거늘, 이미 밑작업까지 마친 차량은 아무런 저항없이 운전사와 갱단원들의 뜻을 무시한 채 공중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

         

         다수의 노호성으로 인해 울리는 진동이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안에서 대체 어떤 아비규환이 펼쳐지고 있었냐고 물어도 난 대답할거리가 전무했다.

         굳이 그걸 지켜보는 취미도 없었고, 이제 와서 베풀 자비도 없었기에.

         

         거의 수직으로 곧추선 탓에 대부분의 강도들은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고 호버크래프트의 뒤편으로 굴러 떨어져 박혔지만, 그 와중에도 눈치가 빠른 몇몇은 출입문에 매달리는데 성공.

         

         다급하게 문을 열고 뛰어내리려고 했으나…. 음, 혹시나 그럴까 봐 개폐 장치도 꼼꼼하게 설정을 바꿔 놨지.

         

         조종간은 이미 제어에서 벗어났고, 문은 절대로 열리지 않는다.

         계기판을 볼 여력이 남은 사람이 있다면 과열 수준은 진작에 넘어 노심 융해(Meltdown) 상태에 돌입한 동력원과 엔진, 그리고 적색 경보로 새빨개진 화면을 구경할 수 있었을 것이다.

         

         …늘어놓고 보니 상당히 공포스럽지만, 나로서는 그나마 온건한 처벌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일순간에 끝나서 고통도 느끼지 못할 테니까.

         

         – 임계점 붕괴 관측, 작업 종료하겠습니다. –

         

         “아, 제로도 고생 많았….”

         

         투콰아아아앙——!!

         

         확산하는 충격파에 기차가 살짝 흔들렸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니 하늘만큼이나 푸르고, 작열하는 사막만큼이나 뜨거운 고농도 플라즈마 폭발이 일렁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로서 운행 기록도 증발, 획득처에 대해서 증언할 인물도 전부 말소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이제야 좀 속이 후련하네.

         

         한데? 모든 문제가 확실하게 해결되는 걸 같이 구경한 둘은 조금 다른 감상을 품은 것 같았다.

         

         “확실해서 나쁠 건 없지. …우리 관계가 불확실했던 건 꽤 다행일지도 모르겠고.”

          “…아나스타샤 언니는 후환을 남기지 않는 무서운 타입이었네요.”

         

         영문모를 소리를 하는 아시프 씨는 둘째 치더라도. 나 때문에 냉방을 너무 강하게 틀었는지 몸을 부르르 떠는 로잘린의 엉뚱한 오해는 좀 풀어야겠다.

         

         “아니…? 오히려 흘리고 다니는 게 많아서 뒤늦게 주워담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

         

         실수로부터 배우고 가까스로 주워담는 게 일상이었던 그간의 도시 생활 경험을 애써 반추해서 진솔한 대답을 내놨거늘.

         

         둘 다 건성으로 납득하는 모양새라 기분이 영 찝찝했지만 어쨌거나, 숫제 난장판이나 다름없던 기차 납치 사건이 드디어 마무리되었다.

         

         

         

         

         ★ ☆ ★ ☆ ★

         

         

         

         

         …똑!

         

         티끌 하나 없는 투명한 유리판 위에 조심스럽게 제어된 핏방울이 떨어져 맺힌다.

         곧이어… 또 한 방울이 똑. 하지만 이번에는 나노봇이 듬뿍 함유된 의료용 수액이다.

         

         행여나 자신의 분비물이나 체액 등으로 소중한 표본이 오염될라, 선생은 아예 멸균실 밖에서 의료 장비만을 조작해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있었다.

         

         “…반응은 어때?”

         

         – 검체 로봇 손실률 0%로 일반적인 혈액과 동일한 상태입니다 선생님. –

         

         “그것 참… 다행이라 해야 할지, 재미없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구마아안…!”

         

         투덜거린 선생은 의자 등받이를 뒤로 젖히고는 있는 힘껏 기지개를 폈다.

         

         사실 이런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채혈한 혈액에 투여된 나노봇이 멀쩡했다고 반드시 뇌파가 원인이 아닐 수도 있었고, 단순히 개인의 특이체질과 우연이 겹쳐서 일어난 괴현상에 집착하느라 시간을 낭비한 걸 수도 있었다.

         

         결국 가설은 어디까지나 가설이었고.

         통제되지 않은 변인과 동일하지 못한 전제 조건이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이 과한 관심을 표했던 건… 묘한 기시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억은커녕, 헬레나가 데려오기 전에는 분명 만나본 적도 없을 여성. 아나스타샤 발렌타인.

         요 근래 노숙하려는 그녀를 머물게 한 뒤, 자주 마주하며 재차 확인한 거지만 느껴진 기시감의 원인은 적어도 외형이 아니었다.

         

         좀 더 근원적인… 처음 적합도 검사를 했을 때 느꼈던 그 아득함. 경외.

         거창하게 표현해보자면, 존재의 본질(Identity)을 관측한 순간 팍! 하고 튀었던 전류가 데자뷰를 유발했다고 보는 게 맞겠지만.

         

         “…에잉.”

         

         하지만 그런 위험한 미지의 영역에 남은 인연 같은 건 없었다. 자신은 더는 특별한 인물이 아니었기에.

         

         메가 코프에서 퇴사할 때 맺었던 비밀 유지 서약도 이미 만료되었고, 현역 시절 참가했던 프로젝트들은 벌써 상용화가 끝나서 일반인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굳이 따지자면… 이제는 보잘것없는 사람(Nobody). 그렇기에 단순한 선생(Doc)을 자칭하며 유유자적 살아가던 것인데….

         

         쿵쿵쿵…!

         

         오늘 치 폐점 이후의 작은 연구놀이도 끝났겠다. 세팅해 놨던 표본들을 폐기하고 장비 레코드를 초기화하던 찰나 가게 문이 아주 거칠게 두들겨졌다.

         

         매너 없음의 레벨로 따지면 거의 공습에 가까울 정도로 무례한 손님이었기에, 멋대로 하우스 와이프의 자리를 넘보는 제니의 눈이 치켜 올라갔다.

         

         만사가 귀찮은 선생이 이런 걸 원할 리가 없으니, 나긋나긋하지만 명료한 거절 의사를 담아 그녀는 불청객을 안내했고.

         

         – 본 임플란트 샵의 금일 영업은 종료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용무가 있으시다면 내일 다시 찾아주시길… “……에나마에서 나왔소이다.” ……아? –

         

         별다른 수식어조차 없지만, 그럼에도 상대방이 알아들어야 한다는 듯 오만한 소개말.

         

         단 한 문장만에. 그녀는 참견이라는 이름의 배려를 멈춰야만 했다.

         선생의 당부 중 하나가 어떤 식으로든 ‘전 직장’과 연관된 문제는 자신이 직접 해결한다는 것이었으니까.

         

         “…문은 열려있으니 알아서 밀고 들어오시오.”

         

         – ……. –

         

         문가에서 물러난 제니는 조용히 선생의 책상 옆에 시립했다.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를 위한 안드로이드였기에,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움직임이었지만… 손님의 모습을 확인하고 나니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일색의 컴뱃 아머가.

         슬쩍 드러난 피부에는 최신 학술 데이터로 가득한 제니도 감별하기 어려운 임플란트 문양들이.

         결정적으로 안드로이드보다도 더 무기질적인 분위기도.

         

         그것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건 한 개밖에 없다. 에나마 코퍼레이션이 자랑하는 추적자다.

         

         “닥터 보리스 마카로비치의 형제, 닥터 알렉세이 마카로비치가 맞소?”

         

         “…형님에 비하면 닥터라 불리기도 우습지만. 찾는 게 나라면 맞네.”

         

         성큼성큼, 주변 물건 따위는 신경 쓸 가치도 없다는 것처럼.

         드물게 자세를 바로 한 선생의 책상 앞까지 다가온 추적자가 곧바로 용건을 꺼냈다.

         

         “먼저 유감을 표하지. 보리스 마카로비치가 죽었소이다. 복잡한 내부 사정 때문에 이제야 부고를 알리게 된 점, 본사에서 이례적으로 사과를 전하라 명령받았소. 은퇴 연구원인 당신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거라는 말과 함께.”

         

         “…….”

         

         무심코 벌어졌던 선생의 입이 무언가를 말할 것처럼 뻐끔거리다… 이내 닫혔다.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끓어오르는 것 같기도, 한편으로는 너무 오랜 시간 잊고 지낸 가족이라 별 감흥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니, 후자는 절대 아니다. 그저 추적자에게 할 말이 없을 뿐이지 분명 탁한 격류가 그의 내면에서는 흐르고 있었다.

         

         “보리스 마카로비치와는 연락을 끊긴 지 얼마나 되셨소이까?”

         

         “…! 비밀 유지 서약과 동시에 연락처도 지우고, 이후로는 같은 지역내에 있지도 않았으니 십년은 됐겠…!!”

         

         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하냐며 역정을 내려던 선생이 고개를 들어서 마주친 건, 미동도 없는 검은 헬멧과 그 너머의 차가운 눈동자.

         

         선생은 자각했다. 오랜만이라 잠시 잊었는데, 연구소 내부도 아닌 단순한 외부 심부름에 추적자가 나서진 않는다. 그러니… 방금 자신은 시험당한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뒤질 위기를 넘겼다는 것도 되겠고.

         

         “…바이탈 체크 완료. 혈압, 맥박, 호흡, 체온, 동공 확대를 비롯한 분노와 역정.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 범행과의 연관성은 매우 미흡한 것으로 사료되니 리크루트 프로토콜로 넘어가겠소이다.”

         

         “염병….”

         

         안절부절 못하는 제니에게 손을 흔들어 안심시킨 선생은 면전에다 더 집어 던질 볼일이 있으면 어디 마음껏 던져보라는 듯 욕이나 내뱉고는 평소처럼 의자에 축 늘어졌다.

         

         어떤 얘기가 나오더라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겠다는 결심을 시각화해서 보여준 셈이지만, 약간 흥미가 생기는 건 그도 인간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

         

         “닥터 마카로비치가 진행하던 미완성 프로젝트의 재가동 가능 여부를 따져보고 있소이다. 나는 권한이 없어서 명칭조차 듣지 못했으나, 경력자인 귀하는 이쯤만 말해도 알아들을 거라 브리핑 받았소.”

         

         “…형님의 프로젝트.”

         

         선생의 뇌까림에 따라 무수한 기억의 서랍장으로부터, 무한한 정보의 서류철이 펼쳐졌다가 닫힌다.

         

         신앙, 해방, 무결성 등등 과학과는 양립하기 어려운 표제어들이 마구잡이로 튀어나왔다가 가까스로 재조립된다.

         

         “…프핫!”

         

         그제야 기억 밑바닥으로부터 기시감의 근원을 퍼올리는데 성공한 선생은 나지막이 웃었다.

         

         혈육의 이별은 슬프나, 연구자의 최고의 기쁨 또한 평생 쫓던 진리가 결실을 맺는 것 아니겠는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선생은, 에나마의 재입사 제안을 흔쾌히 거절했다.

         

         이미 완성된 프로젝트를 모자란 자신이 다시 만질 필요도 없을뿐더러, 그 과실조차 손에 쥐지 못하고 헛다리 짚는 전 직장의 추태는 멀리서 구경하는 게 더 재밌을 것 같았기에.

         

         …뭐, 언젠가는. 감시의 눈길이 좀 떨어지면 죽은 형님을 대신해 네오 헤이븐으로 돌아가 그녀를 다른 시선으로 만나보는 것도 괜찮은 추모식이 되리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걸로 모든 등장인물들의 머리가 어질어질한 문제투성이 기차 에피소드가 끝났습니다…!

    그리고 먼저 무단 휴재에 대해 사과드리겠습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수면 장애가 심해져서 업로드가 어려울 것 같기는 했는데, 지각하더라도 올리는 게 맞으니 휴재 공지는 쓰지 말자고 마음 먹고 끙끙대다가 미친 날짜를 넘겨버렸습니다.

    결국 사고친 김에 작정하고 써서 이틀치를 합쳐버렸습니다. 흑.

    다음 연재분은 새 에피소드가 시작되기 전, 시간을 살짝 되감은 단편 외전을 예정하고 있으나… 일단 자고 와서 쓰겠습니다.
    항상 재밌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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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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