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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4

       

       

       

       

       이것은 조금 과거의 시점.

         

       본선의 무대를 끝마친 강예린은 상당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관람석에 앉아 다음 무대를 기다렸다.

         

       조금 자화자찬이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방금 ‘완벽하지 않아도’라는 연극은 최고였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무려 몇 달 동안 고심 끝에 적은 대본이고, 연습 기간까지 충분히 거쳤다.

         

       연극부의 모두가 자신을 믿고 열심히 따라와 주었다. 덕분에 한 치의 실수 없는 완벽한 무대였기에 더더욱 뿌듯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이번 연극제의 본선은 판까지 제대로 깔렸다.

         

       생방송도 그렇고, 오늘 공연장을 방문한 엄청난 사람들까지.

         

       이 정도면 자신의 능력과 연극을 세간에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겠지.

         

       어쩌면 박하준이 연극·영화부를 만든 목적대로 그 사람 역시 자신의 무대를 봤을지도 모른다.

         

       ……그래.

         

       은퇴하신 927 작가님이.

         

       강예린이 대본을, 정확하게는 각본가를 꿈꾸게 된 원인은 단순히 자신의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재미없게 느껴졌고, 차라리 자기가 대본을 쓰면 저것보다 더 재밌게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계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강예린은 재능이 있었다.

         

       아마 몇십 년 뒤에는 그녀가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각본가가 되었을 확률이 높았겠지.

         

       물론.

         

       927 작가가 세상에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다.

         

       그의 등장은 세간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고 강예린 역시 그에게서 많은 영감과 동시에 충격을 받았다.

         

       시시하게 그지없던 작품들 속에서 유일하게 강예린을 미소 짓게 만든 사람이 바로 927 작가의 작품이다.

         

       그것도 고작 하나가 아니라 그의 모든 작품은 언제나 신선한 충격을 준다.

         

       그렇기에 강예린은 순수하게 그의 작품을 보며 기쁘다는 감정을 느꼈고, 어느샌가 그를 향한 동경이라는 것이 생겼다.

         

       하지만 강예린은 동경에서 멈춰 서지 않고 더 나아가보자고 생각했다.

         

       그것은 언젠가는 그를 뛰어넘고 싶다는 강렬한 목표로 변했다. 고작 몇 년 사이에 강예린의 재능이 만개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927 작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돌연 은퇴를 선언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순식간에 강예린의 동경과 목표를 무뎌지게 만들었다.

         

       강예린이 올해 초부터 유독 삐뚤어지기 시작한 이유 역시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설마 천하의 강예린 선배님이 고작 1학년 신입생이 쓴 대본에 질까 봐 불안하신 건 아니죠?

         

         

       한 학년 후배의 도발이 식어있던 강예린의 감정에 다시 불을 지폈다.

         

       강예린은 의문이 들었다.

         

       저 자신감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만큼 박하준, 설소영이라는 배우를 등에 업고 잘해낼 자신이 있다는 건가?

         

       이윽고, 연극·영화부가 당당하게 본선에 올라왔을 때는 그 의문이 흥미로 바뀌었다.

         

       이제 강예린은 그 후배가 어떤 무대를 그렸을지 조금 궁금해졌다.

         

       하지만 꿈꾸는 아이들이라는 연극이 시작되고, 강예린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마치 자신이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는 듯이.

         

       스스로가 자부했던 자신의 연극은 후배가 그린 연극에 비하면 어느 것 하나 잘난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 나아가 그녀는 무대로부터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순수하게 너무 재밌었으니까.

         

       스토리부터 시작해 연출, 배우들의 연기까지.

       꿈꾸는 아이들이라는 연극은 보는 이를 몰입시키고, 감정을 뒤흔든다.

       과연 지금 보고 있는 공연이 자신과 같은 고등학생이 만들었다는 것에 의문이 들 정도로.

         

       자신의 패배를 직감한 강예린은 분한 마음에 주먹을 꽉 쥐었다. 어찌나 세게 쥐었는데 손톱이 살을 조금 파고들었을 정도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녀의 시선은 무대에 고정되어있었고, 꿈꾸는 아이들이라는 연극에 몰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상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언젠가 강예린은 이것과 비슷한 기분이 든 적이 있다.

         

       그래. 아마도 그것은 927 작가님의 작품을 처음 본 순간.

         

       그렇다면 자신은 고작 한 학년 후배와 그 927 작가님을 겹쳐서 보고 있다는 건가?

         

       연극이 점점 막바지로 흘러갈수록 그러한 감정은 더더욱 커지게 되었고, 무대가 완전히 막이 내렸을 때 강예린은 솔직히 전율했다.

         

       강예린이 연극·영화부에 다급히 방문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비록 대회의 결과가 발표되는 것은 며칠 뒤지만, 이미 승부가 났다는 것은 그녀 역시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단순히 꿈꾸는 아이들의 대본을 적은 서은우와 대화라는 것을 나눠보고 싶었다.

         

       어떻게 그런 대본을 적을 수 있었는지, 무엇에 영감을 받았는지, 지금까지 적어온 다른 대본이 있는지 등등.

         

       강예린은 이번 청소년 연극제를 통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서은우나 927 작가, 자신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넘어서려면 자신의 안에서 무언가 큰 변화가 필요하다고.

         

       그러니 그들에 비해서 아직 자신은 한참 멀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겸손해질 생각이다.

         

       또한, 가능하다면 그들을 통해 배움과 조언이라는 것을 얻고 싶다.

         

       그것을 위해 강예린은 현재 연극·영화부의 구석 빈자리에 앉아있었고, 처음부터 계속 서은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저한테서 조언을 얻고 싶다고요? 그럼 성의를 먼저 보여주시던가요.”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그를 보니 어째 잘못 찾아온 것 같기도 하다.

         

         

         

       ***

         

         

         

       부실의 구석에서 뭔가 홀로 불쌍하게 앉아있는 강예린을 보니 의문이 먼저 생긴다.

         

       아직 대한청소년연극제의 결과가 발표되기까지 기간이 조금 남았다.

         

       즉, 내기의 결과를 논하기는 조금 이르다는 뜻.

         

       그때 강예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진지한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서.”

         

         

       갑자기 진지한 대화?

         

       누구랑?

       

       그리고 강예린은 마치 내 의문에 답해주듯이 누군가를 빤히 쳐다봤다.

         

       ……누가 봐도 나였다.

         

       그것도 약간 쑥스럽다는 얼굴로.

         

       아니. 이 사람 안 어울리게 왜 갑자기 이렇게 겸손해진 건데?

         

       더군다나 강예린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자 부원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된다.

         

       마치 내게 해명을 요구하는 눈빛이었다.

         

       문제는 해명이고 뭐고 나도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거다.

         

       그렇기에 더 이상 오해를 만들지 않기 위해 나는 강예린에게 서둘러 물었다.

         

         

       “그… 저랑 무슨 대화요?”

       “우리의 미래에 관한 거.”

         

         

       어딘가 상당히 진지한 강예린의 얼굴.

         

       음. 오해를 만들지 않기 위해 질문했는데 어째 더 커지게 생겼다.

         

       특히 내 뒤쪽에서 슬슬 차가운 한기가 느껴진다.

         

       ……굳이 안 돌아봐도 그녀들이 앉아있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하… 조금만 자세하게 얘기해주세요. 선배나 저를 위해서요.”

       “그냥 꿈꾸는 아이들이라는 연극을 보고 조금 충격받아서. 아마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미래에 한국을 대표하는 각본가가 되겠지. 그리고 너는 오랫동안 내 위에 서 있을 거고. 그런 의미에서 나보다 앞서 걸어가고 있는 너에게 배움이나 조언을 조금 구하고 싶어.”

       “오?”

         

         

       상당히 의외인 얘기였다.

         

       지금까지 강예린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려보면 상당히 솔직하고 겸손해진 것을 느껴질 수 있는 말.

         

       애초에 본선의 무대를 하기 전, 나는 강예린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꿈꾸는 아이들이 그녀에게 있어서 부디 좋은 교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근데 이게 내 생각보다 훨씬 크게 영향을 줬던 모양이다.

         

       분명 좋은 일이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강예린이 가지고 있던 오만이나 자만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그리 좋은 것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차라리 저렇게 당당히 배움을 갈구하는 것이 재능이 있는 강예린에게 있어서 훨씬 도움이 되겠지.

         

       ……하지만 말이다.

         

       갑자기 이렇게 착한 아이 코스프레를 덥석 받아들이기에는 업보가 조금 많지 않나?

         

         

       “저한테서 조언을 얻고 싶다고요? 그럼 성의를 먼저 보여주시든가요.”

       “……성의?”

       “네. 대회 전에 나눴던 내기 기억하시죠? 들어보니 패배를 인정하시는 것 같은데.”

       “아.”

         

         

       미쳐 그 부분은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탄식을 내뱉는 강예린.

         

       그러던지 말든지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뭘 해야 할까요?”

       “그, 그건…….”

       “알면서 뭘 그렇게 머뭇거려요? 빨리 매점이나 뛰어갔다 오세요.”

         

         

         

       ***

         

         

         

       현재 한빛예고의 학생들 사이에선 괴상한 소문이 돌고 있다.

         

       인기 남배우 박하준에 이어, 무서울 것 하나 없어 보였던 천하의 강예린이 수치를 무릅쓰고 1학년의 노예가 되었다는 것.

         

       이 때문에 한빛예고의 학생들은 언제 그다음이 될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문제의 1학년을 피해 다닌다고 한다.

         

       심지어 이 모든 일이 고작 하루 만에 일어났다……

         

         

       “라는 내용의 소설 없냐? 아, 내 바로 옆에 이 모든 소문의 원인인 그 미친 1학년이 있었지 참.”

         

         

       동아리 활동 시간, 옆에서 깐죽거리는 차무식을 보며 서은우는 못 들은 척 머리를 긁적였다.

         

         

       ‘……누가 보면 강제로 시킨 줄 알겠네.’

         

         

       솔직히 서은우는 소문이 너무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전의 박하준 건은 진짜 불가항력으로 자기 스스로가 자처한 거고, 강예린 쪽은 내기의 패배를 인정했으니 사실상 정당방위였다.

         

       근데 그 와중에 노예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단어냐고.

         

       몇 번이나 빵셔틀이라고 말한 것 같은데. 시바.

         

         

       “디저트로 먹던가.”

         

         

       그때 이제는 우리 부실에 있는 게 익숙하다는 듯, 강예린이 내게 잔뜩 생색을 내며 무언가를 건넸다.

         

       콘 아이스크림이었다.

         

         

       “오, 감사히 먹겠습니다.”

       “흥! 그럼 선배가 주는데 감사히 먹어야지. 그래서 오늘은 언제 피드백해 줄 건데?”

       “어차피 동아리 활동 시간에 할 것도 없는데 지금 하죠.”

       “그, 그래?”

       “네. 선배가 만든 ‘완벽하지 않아도’.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조금 더 고칠 부분이……”

         

         

       서은우의 얘기를 들으며 약간 설레는 표정을 짓는 강예린.

         

       어제부터 눈앞의 후배에게 먹을 걸 갖다 바치고 있지만, 지금처럼 보상이 확실하다는 점이 강예린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항상 주는 걸 맛있게 먹어주니 뭔가 이쪽이 뿌듯해지는 것 같기도?

         

       하지만……

         

         

       “…….”

       “…….”

         

         

       설소영, 이다혜.

         

       어제부터 뭔가 계속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1학년의 여학생 두 명.

         

       분명 표정은 웃고 있지만, 분위기는 거의 뭐 자기 영역 안에 멋대로 들어온 불청객 취급을 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강예린은 최대한 그 두 명과 눈을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서은우의 조언을 들었다.

         

       ……솔직히 조금 무서웠으니까.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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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여배우에게 집착 받는 천재작가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She likes me enough to win an award. Meet Seo Eun-Woo, a passionate K-Drama fan turned writer, whose life takes an unexpected twist when he awakens in a world of mediocre dramas. Frustrated and desperate for the perfect storyline, he stumbles upon a former actress who sparks his creative genius. Watch as their fateful encounter turns his life into a captivating drama of it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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