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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5

     나는 아르윈을 떠나 훈련장을 한번 확인한 뒤, 아담 형의 집을 찾았다.

    그는 오늘도 서류더미 속에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뻑뻑한지 눈을 한참이나 깜빡이던 그가 묻는다.

    “…무슨 일 있었냐?”

    “왜?”

    “…”

    애매하게 침음성을 흘리던 그는 이내 신경을 끊었다.

    나도 굳이 그 주제를 붙잡지는 않았다.

    대신 익숙하게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회담도 끝났으니 다음 의뢰나 줘.”

    “안그래도 몇 개 추리고 있었다.”

    그는 몇 장의 서류를 내게 건네왔다.

    “골라.”

    나는 형이 건네준 몇 장의 서류를 들여다보았다.

    제대로 읽을 수는 없었지만, 익숙해진 글자들도 있었다.

    “…사…란…”

    홀로 아르윈이 가르쳐준걸 떠올리며 중얼거리는 동안, 아담 형이 묻는다.

    “뭐야, 베르그. 요새 글자 공부해?”

    “…”

    형이 놀라는 게 부끄러울 정도로 아직은 부족했다.

    읽을 수 있는 글자들이 얼마 없었기에 나는 서류를 내려놓았다.

    그러며 형에게 답한다.

    “노력중이야.”

    아담 형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무슨 바람이 분 거야? 그렇게 배우라고 할때는 안하더만.”

    “..”

    아르윈과 일어났던 모든 일을 설명하기에는 귀찮았던만큼, 나는 주제를 돌렸다.

    “어쨌든 여기로 갈게.”

    “사릭 마을이네.”

    “드워프?”

    내가 묻자,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며 코를 긁적이고는 말한다.

    “근데 왜 이렇게 급하게 나가려는 것 같냐. 조금 쉬었다가 출발해도 되잖아.”

    나도 그에 대한 명확한 대답은 해 줄 수 없었다.

    네르와의 서먹했던 사이를 풀고 싶은만큼 이러는 걸지도 몰랐다.

    물론 어제의 술자리로 그런 분위기도 많이 풀렸지만…지난 뎀스 마을에서 많은 추억을 쌓았다.

    그런 휴식을 이제 다시 바라고 있었다.

    형은 침묵하는 나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쨌든 갔다 와. 저번에도 아내들과 사이가 좋아진 것 같아 보기 좋던데.”

    “…”

    나는 형 몰래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그런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네르에게는 어떠한 상대가 있다고 듣게 된 참이라…새로운 장애물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내게 마음을 줄 생각이 없는 그녀다.

    점지 받은 운명의 상대도 있다고 했다.

    물론 나와 혼인을 올리며 이미 끝이 난 문제였다.

    나 또한 평소와 같았다면 신경쓰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상대가 나의 아내여서 그럴까.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를 마음으로 품어봤기에 이러한 걱정을 하고 있는걸지도.

    “…”

    따지고 보면 아르윈도 장수종이라 나를 사랑할 수 없다했다.

    그녀와는 친해졌지만, 그게 사랑은 아니었다.

    예상했던 일이었어도…왜일까.

    나는 마음을 교류했다 느껴서일까.

    과거와는 다르게, 이 주제가 가볍게 다가오지만은 않았다.

    어쩌면 이랬기에 나는 빨리 다음 의뢰를 맡고 싶은걸지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며 형에게 말했다.

    “…내일 바로 출발할게.”

    “…”

    그 말에 형이 다시금 인상을 찌푸렸다.

    “…너 진짜 뭐 있냐?”

    “…있긴.”

    내가 둘러댔다.

    “갈게.”

    ****

    그렇게 집으로 귀환하던 중, 마을 중앙에서 두리번거리는 네르를 발견한다.

    흰꼬리와 쫑긋한 귀, 아름다운 미모가 눈에 띈다.

    평소에는 저 꼬리를 부끄러워해 밖을 돌아다니는 성격은 아니었던만큼, 저기서 그녀가 혼자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아해진다.

    그렇게 그녀에게 다가가고 있자니, 네르가 나를 발견한다.

    환하게 펴지는 얼굴. 흔들리기 시작하는 꼬리.

    “베르그!”

    행복해 보이는 목소리.

    “…”

    나는 피식 웃었다. 요새는 그녀의 얼굴만 보면 이랬다.

    그녀는 저 멀리서부터 깡충깡충 뛰어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얼굴에 담긴 미소가 아름다워진다.

    “여기서 뭐해?”

    나도 슬며시 웃으며 물었다.

    네르가 말한다.

    “널 찾고 있었지!”

    “날?”

    어제의 그 서먹함 때문일까? 그녀도 노력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기쁘게 그 노력을 받아들이며 말했다.

    “무슨 일인데.”

    “어제 산책 가기로 했잖아. 그래서 산책이나 가자고.”

    나는 머리를 뒤적였다.

    그녀와 산책을 나가자고 약속한 기억은 없었다.

    “내가 그런말을 했다고?”

    네르가 나를 바라보다 시선을 피한다.

    밝았던 그녀가 순간적으로 소심해진다.

    이내 기어가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왜, 내…내 아내 화 어떻게 풀어줄까, 말하면서 제안했잖아.”

    “아.”

    나는 턱을 쓸었다.

    “그래서 어제 술을 마신 거였잖아.”

    네르가 숨을 불만스럽게 픽, 내뱉었다.

    그리고는 퉁명스레 중얼거렸다.

    “…가지 말자고?”

    그녀가 물었다.

    “…”

    그 모습에 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렇게 노력해주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아니야. 나도 좋지. 가자.”

    그리고는 익숙하게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

    순간 몸이 멈칫한다. 

    생생한 상처처럼, 자꾸만 그녀가 받았던 예언의 말이 떠오른다.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떠오른다는게 고역이었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조차 망설이게 되는게 싫었다.

    -스윽.

    “…”

    하지만 그 순간, 네르가 손을 가볍게 풀더니…나와 깍지를 끼웠다.

    그 가벼운 행동에 잠시 굳어있자, 네르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르윈님이랑은 이렇게 한거 아니었어?”

    장난스러운 표정은 덤이었다.

    그녀의 말에, 나는 또 미소를 지었다.

    “그랬지.”

    내가 답했다.

    .

    .

    .

    “그러면 다음은 드워프 마을인거야?”

    네르와 깍지를 끼운채 마을 내에 있던 작은 숲을 돌아다니며 우리는 대화를 나누었다.

    사실 여기까지 와서야 손을 놓아도 상관은 없었지만, 어제의 일을 더욱 깔끔히 덮고 싶은 마음에 내가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도 이런 내 억지는 큰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는 듯 그에 대한 말을 꺼내지 않았다.

    “드워프 마을이지.”

    나는 그녀의 질문에 답하며 걸었다. 

    “…엘프랑 드워프랑 사이가 안좋다는데…”

    네르가 걱정스레 중얼거렸다. 아르윈에 대한 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내가 말했다.

    “아르윈은 먼 미래에 홀로 여행해야 할 텐데, 나랑 먼저 경험해 보는 편이 나을지도 몰라.”

    그 말에 네르가 잠시 침묵한다. 이내 말한다.

    “아, 베르그.”

    “말해.”

    “저번에 그래서 뭘 했던 거야?”

    “…?”

    “아르윈님이랑 둘이 사라졌을 때 있잖아. 그때 뭐했어?”

    “사냥.”

    “그 이후에는? 비와서 계획이 틀어진거 아니었어? 어디서 쉰 거야?”

    원래도 네르가 이렇게나 궁금한게 많았나…싶었지만, 나는 당시의 상황을 회상했다.

    그리고는 네르를 바라보았다.

    네르가 내게 마음이 없다하더라도, 그녀는 일부다처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입장이다.

    종족에 각인된 특징이 그렇다.

    그런 그녀에게 다른 아내와 무얼 했는지 알려주는게 옳을까?

    “…”

    하지만 동시에, 또 숨겨서 뭐하나 싶다.

    어차피 그녀에게는 큰 타격도 없을터였다. 

    “순간적으로 비가 와서 나무 밑동에 난 작은 틈에서 쉬었어.”

    “뭐?”

    “…”

    “…붙어서 쉬었다는 이야기지? 그거.”

    “아르윈이 감기라도 걸리면 안되니까.”

    “…최근에 아르윈님 걱정을 많이 해주네.”

    “아내잖아.”

    “…”

    무언가 곱씹던 네르가, 분위기를 바꿔 물어왔다.

    네르의 걸음이 점차 느려지더니…그렇게 굳는다.

    우리의 깍지 낀 손이 쭉 늘어져 긴 다리를 만든다.

    “네르?”

    내가 묻자, 네르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조금은 날카로워진 듯한 동공.

    “…베르그.”

    “응?”

    “…”

    그녀가 입술을 달싹였다. 분위기가 한순간 무거워진다.

    “…하아.”

    이내 네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야.”

    어떠한 말을 삼킨 그녀가, 굳은 표정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뭔데.”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를 멈춰 세웠다.

    맞잡은 손을 당겨 그녀를 돌린다.

    찝찝하게 넘어가고 싶지는 않은 순간이었다.

    “가끔은 네가 잊는 것 같아.”

    그리고 그렇게 네르를 멈춰 세우자, 그녀는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내게 말했다.

    이렇게 물어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뭘?”

    “아르윈님은 장수종이라는 걸.”

    나는 의아해져 말했다.

    “잊은적 없어. 그래서 방금도 드워프 마을을 나랑-”

    “-그게 아니라, 베르그.”

    네르가 한발자국 내게로 걸어왔다.

    목에 걸려있던 아르윈과의 세계수잎을 상의에서 꺼내어 매만진다.

    그 세계수잎을 관찰하던 네르가 말했다.

    “…정말 아르윈님이랑 친해질 생각을 하는거야?”

    “…뭐?”

    “…생명에 대한 기준이 우리와는 달라.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란 말이야.”

    이내 그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웃음기를 뺀 채 말했다.

    “…단명종인 우리는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걸? 그러니 네가 그렇게 걱정해줄 필요가 없어. 아무리 아내더라도. 아르윈님은 너를 걱정하지 않는데, 왜 너는 그토록 아르윈님을 걱정해?”

    “…”

    네르의 공격적인 말에 나는 놀란다.

    이러한 말을 할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둘의 사이는 좋았던게 아니었나 의아해진다.

    또한, 아무리 아르윈이 엘프라고 해도, 지금은 나의 아내이자, 친구다.

    나를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는 말은 어폐가 있어보였다.

    그러니 네르에게 일러두었다.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르윈을 고정관념에 가두고 바라보지 마. 아무리 다른 엘프들이 그렇더라도, 아르윈은-”

    “-아르윈님은 셀레브리엔이잖아. 가장 엘프다운 핏줄을 이으셨는걸?”

    “…”

    “수명도 여타 엘프들이랑은 다르게 굉장히 길다고 들었어. 너와 헤어진 이후 천년 이상을 살거라고 자랑하시잖아. 그 어떠한 엘프보다 생명을 경시할 가능성이 있다는 걸 모르겠어?”

    네르에 이어 아르윈까지.

    최근 들어 왜 이토록 갑작스레 서로에 대한 안좋은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었다.

    노력할수록 수렁에 빠지는 듯한 느낌.

    “…네가 너무 엘프를 모르는것 같아서 걱정돼.”

    나는 그저 네르의 이야기를 치워두려 했다.

    “…됐어. 그만해. 갑자기 아르윈에 대한 근거 없는 험담을 듣고 싶지 않아.”

    “…..걸.”

    “뭐?”

    “…근거 없지 않다고.”

    그 말에 굳어있는 사이, 네르가 조용히 다가왔다.

    몸을 더 가까이 붙인다.

    목에 걸린 세계수잎을 잡아당긴다.

    나는 자연스레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사실 숨겨두려고 했던 이야기야.”

    한 뼘도 안되는 거리에서 네르가 나를 바라본다.

    과거 나와 눈만 마주하면 겁을 집어삼키던 그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네르는 내게 말했다.

    “…난 아직도 기억나, 베르그. 네가 셀레브리엔의 영지 밖에서…우두머리를 사냥하던 날.”

    “…”

    “아르윈님과 나는 함께였잖아. 그때, 난 가만히 있었지만…아르윈님은…”

    좋은 예감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인상을 찌푸리며 거부감에 상체를 들어올리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네르는 아르윈의 세계수잎을 놓지 않았다.

    억지로 들어올렸다가는 목걸이가 끊어질 판이었다.

    꼬리로는 내 허리도 감쌌다. 

    “…아르윈님은…”

    방어기제였을까.

    아르윈이 그 날, 나무밑에서 비를 피하며 해주었던 말이 떠오른다.

    ‘좋아한다고요……친구로서.’

    동시에 네르가 속삭였다. 

    나에게만 똑똑히 들리게끔.

    “…아르윈님은 네가 죽기를 바랬어, 베르그.”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모코박스님! 1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ㅎㅎ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흔재한생님! 5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시엔을 좋아하시는군요ㅋㅋ 기대에 부응할수있도록 힘내보겠습니다.

    여러분, 밤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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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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