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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5

        요르문간드는 입속에서 작은 돌 하나를 꺼냈다.

         

        “이게 뭔가요?”

        “그대라면 알고 있을 텐데?”

         

        자세히 보니 그냥 돌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게, 마수의 체내에서 나온 물질이다. 백이면 백, 마석이겠지.

         

        은빛을 띠는 마석이었다. 하급 마수만 잡아도 볼 수 있을 만큼 흔해빠진 색깔이었다.

         

        그렇지만 이걸 내놓은 상대는 다름 아닌 요르문간드다. 수많은 강철 드래곤과 드레이크로 구성된 마왕군 제1군을 이끄는 방사룡의 요르문간드 말이다. 급이 높은 마수일수록 쓰러뜨렸을 때 희귀한 마석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건 보통 물건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물질 감정 결과 ─ 플루토늄-239(80g) / 순도 : 99.97%]

         

        “그대에게 줄 보상을 만들면서 나온 부산물이다. 당장 여에겐 필요 없는 것이니 알아서 처리하도록.”

         

        우라늄과 마찬가지로 원자폭탄 제작에 사용하는 원소. 비록 우라늄을 직접 사용하는 폭탄보다는 만들기 어렵지만, 일단 기술과 시설만 확보되고 나면 가성비가 더 좋은 재료였다.

         

        “그, 그런데 그걸 왜 입에 넣고 있었어요?”

        “저번에도 봤으면서 뻔한 걸 물어보는군. 여의 위장에서 작업하여 나온 것이니 그렇지.”

         

        나는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플루토늄 조각을 받아들였다.

         

        얼마 안 되는 양이었다. 핵반응이 일어나지 않도록 알아서 양을 쪼갠 건가? 어쨌거나 이만한 양으로는 대대적인 연구에 사용할 수 없었다. 아마 시험용으로 가지고 있으라는 소리겠지.

         

        이어서 요르문간드는 프레이에게로 갔다. 꼬맹이에게는 품에서 또 무언가를 꺼내 건네주었다.

         

        “자, 열심히 해준 것에 대한 선물이다. 받아서 가렴.”

        “우와 고맙습니다!”

         

        프레이는 앙증맞게 고개를 숙였다. 꼬맹이의 손에는 유리병 하나가 들려있었다. 

         

        나는 플루토늄을 안전한 곳에 넣은 뒤 프레이에게 물었다.

         

        “그건 뭐야?”

        “이건 마력수야! 일 잘하면 신령님께서 주시는 거! 스크롤을 강화하거나 마력초 재료로 쓸 수 있어!”

        “마력초?”

         

        마력초 제작에 이 액체가 쓰인다니.

         

        일반적인 마력초는 자연에서 마력이 담긴 풀을 뜯어다가 말려서 만드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마력수를 사용한다니.

         

        그러고 보니 금안족이 마력초의 공정 일부를 담당한다는 얘길 저번에 들었었지. 아까 프레이와 나눠 피웠던 ‘골든슈타인’이 그런 종류겠지. 확실히 싸구려 담배와는 격이 다른 물건이었다.

         

        “그럼 신령님! 저흰 겨울 방학 때 다시 올게요!”

         

        프레이와 나는 꾸벅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요르문간드의 말대로 동굴 입구에는 마감 처리가 된 우라늄이 드문드문 떨어져 있었다. 연쇄 반응이 일어나지 않도록 신경을 써 준 모양이다.

         

        “어때? 우리 신령님 좋으신 분이지?”

        “그러네.”

         

        실제로 본 요르문간드의 모습은 버멜이 말해 주었던 것과 대부분 일치했었다. 위압감이 넘치고, 자기 휘하에 있는 종족을 사랑하며, 아무리 못해도 약속은 지키는 존재였다. 이렇게만 보면 1석이라는 위상에 비해 그렇게까지 위협적인 존재는 아닌 것 같았다.

         

        그래, 적어도 ‘중반부’까지는 이렇다는 말이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저택 코앞까지 와 있었다. 분명 대낮에 출발했는데, 어느덧 해가 산 너머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저택에 돌아온 뒤로는 별거 없었다. 백작의 허락을 받아 프레이도 개학 전까지 머무르기로 하고, 편하게 식사를 마쳤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프레이는 다음 날 영지가 입은 침수 피해를 모조리 복구해 놓았다.

         

        압도적인 지계마도 실력에 백작가를 포함한 영지민 모두가 놀란 건 재미있는 볼거리였다. 그날 밤, 프레이는 저택의 메이드에게서 알사탕 세 봉지를 받았다.

         

        그동안에 나는 다른 일을 했다. 바로 아버지와 로테에게 나름의 강의를 해 주는 것이었다.

         

        “이 폭발력을 좋은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수는 없어?”

        “충분히 가능하지. 다만 시설 자체를 짓는 데 돈이 많이 들 거야.”

        “어느 정도로 자금이 필요한지 알고 있나?”

        “못해도 금화 수백만 장일까요.”

         

        나는 잠시 침음을 흘렸다.

         

        “지금 인플레이션이 너무 심해서 자세한 값어치는 판단하기 힘들어요. 재료비나 뒤처리 비용도 고려해야 할 거고요.”

        “그렇겠구나. 그래도 곧 화폐개혁을 한다고 하니까 경제적인 문제는 괜찮아질 게다.”

         

        살리에르 백작 식구들은 가르칠 맛이 나는 사람들이었다. 질문을 끊임없이 하고, 하나를 알려주면 둘을 안다. 내가 없었더라도 이런 사람들이 미래를 만들어 나가겠지, 분명.

         

        “그런데 설명 정말 잘하는구나.”

        “맞아. 교수님 같아.”

         

        낯간지러운 소리였다. 내가 짧게 웃음소리를 내는 사이에 두 부녀는 대화 주제를 변경했다.

         

        “그렇지. 일리야드 아카데미에선 학위가 없어도 교수로 뽑힐 수 있잖아. 그렇죠, 아버지?”

        “음, 들어본 적 있다. 거긴 학력보다는 실력과 정령 감응력이 우선순위라고 하더구나.”

         

        이건 또 뭔 소리야. 대학원을 안 나온 사람도 뽑는다니.

         

        “엘프는 인간보다 평균 수명이 기니까 그렇겠지. 석·박을 단다고 해서 다 우러러 보는 것 같지는 않더구나.”

         

        뭐…. 생각해 보면 아예 개연성이 없는 건 아닌가. 지구에는 최종 학력 학사로 노벨상을 받은 사람도 있으니까 말이다.

         

        딱히 중요한 이야기는 아닌 듯 보였다. 두 사람이 이래저래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나는 홍차로 목을 축였다. 

         

        “좋아, 에테르 양. 자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생겼어.”

         

        갑자기 뭐지.

         

        “네. 말씀해 주세요.”

        “우리 가문에서 자금을 댈 테니 로테와 함께 큰 연구를 해 보지 않겠니?”

         

        탁.

         

        반사적으로 찻잔을 내려놓았다. 예상치 못한 백작의 말에 내 눈가가 가늘어지는 순간이었다.

         

        “네…?”

         

        잠깐만 기다려 봐.

         

        이거 어디서 한 번 겪어본 상황인데.

         

         

        **

         

         

        방학, 원래라면 학업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자기 계발을 하는 시간.

         

        버멜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에게는 지옥 같은 나날의 연속에 불과했다.

         

        그럴 법도 했다. 하루가 멀다고 수도 곳곳을 쏘다녔으니 말이다.

         

        헤를라인 교수가 하스펠트 교수를 찾으러 떠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막았다. 그 과정에서 로즈마리의 눈총을 사게 된 건 덤이었다.

         

        로즈마리는 방학 연회에 자신을 초대했다. 블랜튼 공작의 이름으로 초대장이 온 터라서 거절은 불가능했다.

         

        “어우.”

         

        거기서 공녀님과 추었던 왈츠를 생각하면 몸에 소름이 쫙 돋는다.

         

        ─ 그 차석 금안족과는 무슨 관계죠?

        ─ 같은 반 친구일 뿐입니다.

        ─ 정말로 그뿐인가요?

        ─ 네 그렇습니다.

        ─ 흐응. 아닌 것 같은데.

         

        그때의 대화를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위장이 뒤집힌다.

         

        버멜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 몸을 눕혔다. 매트릭스에 등을 붙이자 그동안의 피로가 쑥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건 게으름 피우는 게 아니다. 여태까지 잘 버텨온 자신을 위한 나름의 포상이었다. 이런 식으로라도 피곤을 덜어내지 않으면 과로사로 죽어버리고 말 거다.

         

        물론 대낮부터 이러고 있는 게 부지런한 행동은 아니겠지만….

         

        -똑똑

         

        “누구지?”

        “아, 안녕하세요!”

         

        현관문을 열자 웬 롤빵 머리를 한 여자애가 앞에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한 명이 아니었다. 수첩이나 마이크 따위의 취재 도구를 들고 서 있는 학생이 한 무더기였다.

         

        귀찮은 예감이 든다.

         

        “…누구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같은 학교의 신문부 소속인 안젤리카라고 합니다! 버멜 호르데 군 맞으시죠? 오늘 학생을 취재하고 싶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찾아왔어요!”

        “저를요?”

         

        버멜의 손가락이 자기 자신을 향했다. 안젤리카는 손에 든 수첩을 고쳐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갑자기 저를 왜….”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설마 로즈마리가 보낸 애들인가?

         

        어쩌면 자신의 시간을 빼앗으려는 4석의 장난질일 수도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경계를 하고 있자니, 안젤리카가 놀란 기색으로 대꾸했다.

         

        “어엇? 못 들으셨나요?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틸레트의 교정을 뜨겁게 달군 연애 스캔들의 중심에 당신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전 누구랑 연애한 적 없는데요?”

         

        제국에 오고 난 뒤로는 ‘히로인’이라는 관계를 정립할 틈이 없었다. 나이트메어 이상의 모드에서 연애를 즐긴다고? 세상 망하는 꼴 보고 싶으면 그러라고 하지.

         

        “저런.”

         

        버멜의 반응에 안젤리카를 포함한 취재진 전원이 탄식을 내질렀다.

         

        “호르데 군만 모르고 나머지는 다 아는 사실이었네요. 이것 이상의 호외는 없겠죠!”

        “아니, 그보다도 교칙상 교내 연애는 금지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취재하러 오시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몰래 온 거잖아요! 교칙은 깨라고 있는 거랍니다!”

         

        척, 안젤리카의 검지가 버멜의 가슴팍을 향한다.

         

        “그리고 교칙을 어긴 건 오히려 당신이죠! 금안족 동급생과 진득한 밀회를 나누셨잖아요?”

         

        그 말을 시작으로 안젤리카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자신이 모르는 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대충 요약하자면, 에테르와 자신이 사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머리를 오함마로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것도 굿거리장단으로.

         

        “낭설입니다.”

        “후훗, 숨기려고 해도 이미 늦으셨어요. 보세요! 이미 소설까지 나왔는걸요!”

         

        다른 부원이 버멜에게 50페이지 정도 되는 원고를 내밀었다. 대강 훑어보니, 수석 엘프와 차석 금안족의 사랑을 담은 소설이었다.

         

        현기증이 났다.

         

        “이건 또 뭡니까?”

        “문예부에서 만든 시대의 걸작! 이야, 이거 영화로도 내면 대박 나겠어요!”

         

        눈앞이 캄캄해졌다. 실신한다는 게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었다.

         

        “자, 그럼 취재를 시작해보도록 하….”

        “돌아가세요.”

         

        가뜩이나 시간 없는데 이런 곳에 소모할 감정 따위 남아있지 않았다. 버멜은 기레기들의 방 침입을 필사적으로 저지하고는 다시 침대에 몸을 눕혔다.

         

        [문 열어주세요오오오!]

        [선배, 이거 후배한테 민폐예요…!]

         

        잠깐 소란이 있었지만, 금세 잦아들었다. 어느덧 단칸방은 평화를 되찾았다. 버멜은 두통약을 하나 까먹고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쓰읍….”

         

        어째 몸살이 오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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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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