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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5

       이런저런 생각이 들긴 했다. 이 장치가 과연 상처만 치유할까? 혹시 난치병 같은 것이 있던 사람이 이 장치 주변으로 오면 그 병도 치료할 수 있을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도 들었지만, 무엇보다 신경쓰이는 것이 하나 있었다.

        

       이 장치에 상점 기능이나 대장간 기능이 없다는 거야 그럴 수 있다고 친다. 물건을 판다면 돈은 누가 받을 것이며, 무기를 개조하는 기능이 있더라도 최소 몇 시간에서 최대 며칠은 걸릴 텐데, 그걸 여기 가만히 서서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을 테니까.

        

       그보다는 다소 신경 쓰이는 점이 있었다.

        

       게임에서 던전 중간중간 설치된 회복 장치는 길을 잃지 않게 하는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보통은 정면으로 계속 가면 목적지가 보이는 게임이긴 하지만, 후반부에서 다소 복잡해진 던전을 끝도 없이 헤매는 플레이어들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가장 최근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시리즈에서 도입된 것이 바로 이런 이정표 시스템이었다.

        

       회복 장치는 처음에는 가동되지 않은 상태로 있다가, 플레이어가 다가가면 그제야 가동된다.

        

       그리고 던전을 클리어할 때까지 그대로 가동된 채로 빛을 내며 서 있는다.

        

       회복 장치가 빛나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 길은 이미 지나간 길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솔직히, 친절하게 미니맵까지 제공하는 게임에서 던전 안을 헤맬 정도로 길을 잃을 사람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것도 게임이 현실이 되면서 바뀐 부분일까?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이 회복 장치가 가동되고 있었다고 생각해도 되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누군가가 이미 이곳을 지나갔다는 뜻이다.

        

       나는 보스 방으로 들어가는 문을 보았다.

        

       양쪽으로 열리도록 되어있는 거대한 돌문이었다.

        

       원작에서는 딱히 잠겨있지는 않았다. 플레이어가 일정 범위로 다가가면 자동으로 열리도록 되어있었다. 무슨 원리인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 마법이겠지.

        

       “준비되셨습니까?”

        

       나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던전 내부를 신기하다는 듯 살펴보던 클레어, 회복 장치를 유심히 바라보던 앨리스와 레오가 모두 나를 바라보았다.

        

       별다른 관심 없다는 듯 유적 벽에 등을 기대고 있던 벨라도 마찬가지였다. 벨라는 어느 틈에 손에 들고 있던 지보를 다시 가방 안에 넣어둔 모양이었다. 가방에서 지보의 빛이 끊임없이 흘러나왔지만, 회복 장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워낙 강렬해서 그렇게까지 티가 나지는 않았다.

        

       “이 안이 최심부인 듯합니다. 만약 이 유적을 지은 고대인들이 유적을 보호하고 싶었다면—”

        

       “……저 안에는 분명 아주 강력한 보안장치가 있거나, 수호자가 있겠지.”

        

       앨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번 회복 장치를 흘끗 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지나가서 재가동되었건, 아니면 이미 오래전부터 계속 가동된 채였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도 제대로 가동할 수 있을 정도로 내구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은 변함없다.

        

       저 장치뿐만이 아니었다. 이 유적이 이 정도로 상태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유적에 걸린 인식 저해 마법이 아직도 작동하고 있다는 것.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한 문명이 제국 이전에도 이미 존재했다는 증거.

        

       다시 한번 총기 상태를 확인하는 나를 보고, 세 사람도 자기 무기를 살펴보았다. 셋 모두 사용하는 것은 검이지만, 스타일은 다르다. 앨리스는 어느 정도 방패로 쓸 수도 있을 정도로 날이 넓은 양손검이었고, 레오와 클레어의 것은 그보다는 얇아서 한 손으로도 휘두를 수 있을 것 같은 크기였다.

        

       같은 그레이스류의 검술이더라도 레오와 클레어는 서로 검기를 휘두르는 방식이 달랐다. 따지자면 레오 쪽은 직선적이고, 클레어 쪽은 다소 트리키한 쪽이었다.

        

       그래도 세 사람 모두 검을 다룬다는 사실은 변함없지만.

        

       ……따지자면 내가 제일 나중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가도, 내가 들고 있는 산탄총을 생각하면 또 그게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마법을 제어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라서 뒤쪽에서 쏘면 세 사람이 휘말릴 수도 있으니까.

        

       벨라의 검술은 다른 사람들과 완전히 다르다. 검이기는 하지만, 공격하는 거리로만 따지면 중거리에 가까우니까. 후방은 벨라한테 맡겨도 크게 문제없으리라.

        

       뭐, 만약 잘못된다면 시간을 돌리면 되겠지.

        

       “준비는 되셨습니까?”

        

       내가 물어보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 모두 검을 양손으로 단단히 잡아드는 것을 보고, 나는 천천히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문에 손을 대자,

        

       “아.”

        

       뒤쪽에서 그런 탄성이 들렸다.

        

       내가 손을 댄 곳을 중심으로, 빛이 퍼져나갔다. 마치 컴퓨터 기판의 회로 같은 기하학적인 선을 그리며 퍼진 빛은, 그렇게 길게 가지는 않고 금세 사라졌다.

        

       하지만 그 빛이 어떤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문이 낮은 소리를 내며 땅을 긁으며 옆으로 열렸으니까.

        

       바닥에 미미한 진동이 느껴지고, 천장에서 모래가 조금 떨어졌다. 혹시 무너지는 건 아닐까, 하고 조금 걱정이 들던 찰나에, 문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완전히 열렸다.

        

       그리고, 환하게 밝혀진 내부가 보였다.

        

       던전을 오는 내내 만나왔던 슬라임들을 보며 이 안쪽의 보스도 분명 슬라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어느 정도 맞았다. 바닥을 질척하게 적시고 있는 것은 일전에 레나가 상대했던 슬라임의 사체가 녹은 흔적과 비슷하게 보였다.

        

       그렇다. 사체였다.

        

       “……사람?”

        

       바닥이 질척하게 젖은 그 방 안에, 사람이 서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허, 참.”

        

       벨라가 중얼거렸다.

        

       “……아버지……?”

        

       그 뒤에 들려온 목소리는 앨리스의 것이었다.

        

       “……아버지라고? 앨리스의?”

        

       클레어가 놀라는 목소리가 들리고—

        

       “그렇다면…….”

        

       레오가 경악해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흠.”

        

       던전 제일 안쪽의 한 인간과 마주 서있는, 나보다 머리가 한 개 이상은 더 커 보이는 그 어깨가 넓은 남자는, 이런 곳에서조차 그 빛나는 황금빛 머리카락을 말끔하게 다듬어서 가르마를 따라 좌우로 정리해둔 모습 그대로였다.

        

       수염을 완전히 다 깎아내지는 않았지만, 턱선을 따라 짧게 다듬은 그 모습은 무척 깔끔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다소 젊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그렇다고 가벼워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푸른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아 있어서 무척 진중한 사람이라는 분위기를 풍겼다.

        

       “딸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기 위해서 나름 준비를 했다만, 이것 참, 불청객 때문에 환영 인사도 해주지 못하겠구나.”

        

       심상찮은 분위기의 적을 앞에 두고서도 황제는 짐짓 유쾌하게 말했다.

        

       “폐, 폐, 폐, 폐 폐……”

        

       레오는 마치 흠집 난 엘피판을 올려둔 축음기처럼 같은 소리만 반복하다가,

        

       “폐하!?”

        

       분명 황궁에서 그랬다면 불경하다고 호통을 받았을 법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황제께서는 그런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분위기였다.

        

       “그레이스 가의 자녀인가. 실제로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군.”

        

       그렇게 묻는 황제의 모습은 다소 천연덕스럽게 보이기까지 했다.

        

       황제가 입은 붉은 외투 안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니, 저쪽은 저쪽대로 제국의 지보를 가지고 온 모양이었다.

        

       “……적은 일부러 두고 오신 겁니까.”

        

       “내가 지나갔다는 표시를 남기면 너희들이 이렇게 놀라지는 않았을 테니까.”

        

       내가 놀란 표정을 알아보기라도 했다는 듯, 황제는 웃었다.

        

       “…….”

        

       “회포는 잠시 뒤에 풀기로 하지.”

        

       황제가 그렇게 말하자 레오가 숨을 헐떡이는 소리가 들렸다. 참, 귀족으로 태어나는 것도 마냥 마음이 편한 일은 아니다.

        

       뭐, 어중간하게 피가 이어지는 것보다는 저렇게 제대로 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는 것이 훨씬 낫기는 하지만.

        

       나는 그런 딴생각을 하면서도 약실에 총알이 장전된 산탄총을 상대에게 겨눴다.

        

       황제가 대치하고 있는 인물은…… 나이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덩치를 보면 남자 같지는 않았다. 만약 상대가 일부러 여장을 한 것이 아니라면, 저자는 분명하게 여성이었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그저 검은 눈구멍만 뚫린 하얀 가면. 그 가면 뒤로 이어지는 검은 후드.

        

       후드는 아래로 이어지는 로브와 연결되어 있었다. 얼핏 보면 그 유명한 스페이스 오페라 프랜차이즈의 광선검 휘두르는 기사단이 입고 다닐 법한 모습이었다. 밑단이 많이 해지긴 했지만.

        

       어깨부터 골반까지 내려오는 선이 가느다랗다. 로브에 가려진 흉부도 꽤 앞으로 튀어나와 있어서, 한눈에 보여도 여성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인상이었다.

        

       상대는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한 손에는 검이 들려있었다. 황제가 쥐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앨리스가 양손에 들고 휘두르는 검처럼 긴 양날검이었다. 여기저기 이가 빠져있는 것이 상당히 낡은 것 같았다.

        

       “…….”

        

       그리고 나는 제국의 황제를 앞에 두고도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는 저 상대를 보고 생각했다.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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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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