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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5

       원형으로 지어진 감옥이 있습니다.

       

       파놉티콘과 비슷한 구조이나, 다른 점이 있다면, 중앙의 감시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원형 감옥은 희생자가 서로를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

       1번 방은 작열지옥입니다. 바닥과 벽면 모두, 단백질을 익히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가열되어 있습니다. 1번 방에 갇힌 아이는 시시각각 익어갑니다.

       

       화상을 입고, 물집이 생겨나고, 그것이 터져 다시 피부에 눌어붙는 과정이 반복됩니다. 1번 방에는 지속적인 치유 주문이 활성화되고 있어, 희생자가 목숨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익어가고 태워지기를 반복한 몸은, 파괴와 수복을 거듭한 끝에 서서히 형체를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하반신은 이미 슬라임처럼 보입니다. 

       

       ※

       2번 방은 기아지옥입니다. 2번 방에는 모든 것이 제공됩니다. 재미있는 책, 편안한 침대, 깨끗한 화장실과 목욕 시설. 그러나 단 한 가지, 먹을 것만큼은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굶주림은 이어집니다. 그러나 2번 방의 희생자에게는 마력을 통한 영양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므로, 먹지 않아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무언가를 먹도록 진화한 인체는 끊임없이 신호를 보냅니다. 바로 옆 방에서 잘 익은 고기의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으니까요. 그녀는 친구가 익어가는 냄새에 군침을 흘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역겨워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

       3번 방은 온 바닥에 가시가 돋아나 있습니다. 누워도, 앉아도, 고통스럽지 않은 편안한 자세는 없습니다. 희생자는 선인장처럼 보입니다.

       

       4번 방은 천장에서 물이 샙니다. 희생자가 잠이 들기 직전, 하늘에서 떨어진 한 방울의 물이 이마를 치고 지나갑니다. 희생자는 지금까지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5번 방은 주기적으로 악몽이 나타나 놀래킵니다. 희생자에게 있어서 가장 끔찍했던 기억을 반복하고 나서 사라집니다. 

       

       6번 방은⋯⋯.

       

       ※

       12번 방은 매듭지옥입니다. 그녀에게는 그 어떠한 고문도 이루어지지 않지만, 그녀의 정신은 모든 방의 아이들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모두의 고통과 괴로움이 조금씩 흘러들어왔습니다.

       

       익어가고, 굶주리고, 가시에 찔리고, 잠들지 못하는 감각을 느끼면서도, 그녀는 비명을 내뱉을 수 없었습니다. 괴롭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친구들에게 미안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눈앞에서 비명을 지르는 친구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차라리 죽여달라며 애원하는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간접적으로 느껴지는 통증도 이토록 괴로운데.

       

       실제로 당하고 있는 아이들은, 얼마나 괴로울까. 

       

       엄살 부리지 말자. 내게는 울 자격이 없어. 내가 받는 고통은 일부에 불과하잖아. 가장, 가장 고통스럽지 않은 내가, 참아내야 해. 

       

       이겨낼 수 있다고 알려줘야 해. 다른 친구들 모두에게 희망이 되어줘야 해. 

       

       울면 안 돼.

       

       ⋯⋯⋯⋯.

       

       우는 사람을 보면 울적해지고, 괴로워하는 사람을 보면 슬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감정은 어느 정도의 전염성을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소녀는, 고통과 비명으로 가득한 이 감옥 속에서. 자신이라도 웃어서. 다른 친구들의 마음에 힘을 보태주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억지로라도 웃었습니다.

       

       열한 명의 친구들은 웃고 있는 소녀를 보고, 그녀는 아무런 고문도 받지 않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증오했습니다. 어째서 혼자 그렇게 편하게 있을 수 있냐면서. 

       

       적어도,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며 웃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니냐면서.

       

       작은 오해였습니다.

       

       ⋯⋯⋯⋯.

       

       개인이 느끼는 고통을 수치로 환산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일이,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는 것처럼. 고통이란 저마다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녀에게 설정된 동조율은 50%. 열한 명의 희생자 모두의 고통을 절반씩 느끼고 있었으므로, 자색 마탑의 마법사들이 산술적으로 예측한 스트레스 수치는 다른 희생자의 5배에 달했습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견뎌낼 수 있다는 건. 역시 유렌스토 공작가의 혈통에는 우수한 인자가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미래의 마탑을 이끌어나갔을 천재를 희생자로 삼은 보람이 있었던 것인가.

       

       의식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며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

       

       “⋯⋯⋯⋯.”

       

       “졸았어요?”

       

       “아, 응⋯⋯.”

       

       자색 마탑주 유나는 졸린 척 눈을 비볐다. 그러나 실은, 하나도 졸리지 않았다. 다만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기억에 홀려 있었을 뿐.

       

       어떤 기억은 망각과는 거리가 멀었다.

       

       위에 뚜껑을 덮어 숨겨 놓고 괜찮은 척을 하지만, 사소한 계기만으로도 언제고 범람할 수 있었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였다.

       

       “무슨 얘기⋯⋯ 하고 있었더라.”

       

       “2황자님에게 보고했어요. 빨간맛 공작의 저택에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그래서⋯⋯.”

       

       탕. 드르르륵.

       

       “그래서, 수도기사단을 유인할 거다.”

       

       2황자가 문을 열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여러 방위국 요원을 대동한 채였다. 요원들은 척척척 화이트보드를 조립한 뒤에, 간략한 지도와 자료들을 붙였다.

       

       “작전지역인 레드번 공작의 별장 인근에는 수도기사단 본부가 있다. 미친 마법사, 네놈이 잡혀 들어갔던 건물 말이다.”

       

       “아, 그러면 그 옆옆옆에 있던 시뻘건 저택이?”

       

       “그래. 더는 사용되지 않고, 달에 한 번 정도 사람을 보내 청소를 시키는 정도로 느슨하게 관리되는 저택이다. 그곳에서 흑마법사들의 의식이 진행된다고 했지?”

       

       “예. 얻어낸 정보에 따르면요.”

       

       2황자는 손가락으로 지도 위의 어느 한 점을 짚어내며 말했다. 

       

       “내가 직접 움직일 수는 없어. 다만, 소란을 일으켜 수도기사단의 인원을 빼 두겠다. 그러니 들키지 말거나. 혹은 들키더라도⋯⋯ 확실한 정황 증거를 찾아라. 그러면 커버할 수 있으니까.”

       

       “옙.”

       

       “아니면, 역시 그만두는 쪽을 권하고 싶군. 황제 폐하에게는 연락을 넣었다. 흑마법사 세력에게 승화급 전력이 추가되는 건 비상사태니까. 시일은 걸리겠지만, 아마도 ‘소년 기사’가 투입될 거다.”

       

       “⋯⋯⋯⋯.”

       

       그럼에도 가겠나. 2황자는 눈빛으로 그렇게 물었다.

       

       자색 마탑주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악몽이 외치고 있었다. 기억 속 친구들이 여전히 외치고 있었다. 지워달라고.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든 이들과, 고통과, 고통을 느끼는 자신을 모조리 지워달라고. 그렇다면 이는 그녀의 사명이었다. 

       

       그녀가 그 참극을 기억하는 한, 결코 물러설 수는 없는 복수행이다. 타인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복수는 복수가 아니었다. 그러니, 내가. 

       

       유나는 손톱이 살을 파고들도록 주먹을 쥐었다.

       

       “⋯⋯황실 친위대는 황금의 고리 바깥으로 나오지 않는다. ‘소년 기사’ 또한 출장 중이지. 그러니 위험 요소는 두 가지. 하나는, 흑마법사의 전력. 그리고⋯⋯ 다른 하나는, 수도기사단장이다.”

       

       “수도기사단장⋯⋯ 어떤 사람인데요?”

       

       “승화에 도달한 자다. 그를 수식할 수 있는 단어는 많지. ‘예산파괴자’, ‘걸어 다니는 지진’, ‘아귀’,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투광’.”

       

       “전투광⋯⋯ 입니까.”

       

       2황자는 머릿속으로 수도기사단장을 떠올렸다. 소년 기사에게도 몇 번이고 도전하고, 강해 보이는 놈이 얽혔다 싶으면 들이박고 보는 전투에 미친 여자. 

       

       거의 전원이 투철한 정의감을 품은 수도기사단이었지만, 그녀는 혼자서 툭 튀어나온 이단아였다. 

       

       그러니 자색 마탑주가 수도기사단장의 눈에 띈다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싸움이 일어나게 될 터.

       

       살해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치고받는 걸 좋아하는 것이기에, 목숨을 노려온다든가 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겠지만⋯⋯ 문제가 될 것이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수도기사단장은 마력량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높다더군. 체급으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2황자는 방위국 요원들을 시켜 알아낸 정보들을 간단하게 브리핑했다. 저택 내부의 구조도, 비교적 사람이 적고 안전한 루트, 그리고 유사시 이용할 수 있는 거점의 위치.

       

       “행운을 빌지.”

       

       그리고 작전의 성공을 빌어주는 말.

       

       계획은 완성되었고, 이제 움직일 일만이 남았다.

       

       ===============================================================

       

       『어린양』이 떠난 자리, 레드번 공작 막시무스는 혼자서 체스를 두었다. 판 위에는 흑색 말뿐이다. 백색 말은 공작의 머릿속에만 있었다. 

       

       툭. 흰색 퀸이 전장을 종횡무진한다.

       

       “지하수도의 거점이 파괴되었다면, 다음은 내 저택으로 오겠지. 어떤 길을 골랐어도 저택으로 유도되었겠지만⋯⋯.”

       

       툭. 미끼를 던져 흰색 퀸을 끌어들인다.

       

       “수도기사단장은 성난 멧돼지같은 녀석이니 살짝 등을 밀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기사단 안에 심어 둔 폰을 써서, 자색 마탑주가 무단으로 침입했다는 사실과⋯⋯ 곧 레드번 공작의 저택으로 향할 거라는 정보를 흘린다.”

       

       툭. 흑색 퀸을 이용해서 흰색 퀸의 동선을 제한한다.

       

       “단장은 내버려두더라도, 수도기사단 자체는 이목을 돌릴 필요가 있어. 표적을 사냥할 때 주변에 방해꾼들이 있어서는 안 되니까.”

       

       툭. 폰을 이용해서 시선을 흔든다. 

       

       “수도기사단장은 최근에 큰 사고를 쳤지. 이제는 그 멍청한 머리에도 ‘기물파손은 삼가해야겠다’는 개념이 박힐 때가 됐어. 그렇다면, 기사단장은 자색 마탑주를 먼 곳으로 데려가 싸울 가능성이 높다.”

       

       툭. 흰색 퀸이 흰색 킹의 곁을 떠났다.

       

       이제 왕을 지킬 수 있는 기물은 없다. 레드번 공작은 조용히 검은색 나이트를 전진시켰다. 

       

       “기사단장이 자색 마탑주를 표적과 멀찍이 떨어트려 놓으면, 네가 가서 죽여라. 아들아.”

       

       그림자 속에서 주홍색 머리카락을 올백으로 넘긴 사내가 한 발짝 앞으로 나와 레드번 공작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예, 아버지. 레드번 공작가 차남, 『마법사의 악몽』로데루스가 명을 받듭니다.”

       

       그는 마력을 직접 타격해 부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표적이 마법사인 지금 기용할 수 있는, 틀림없는 최적의 인선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러분 그거 아시나요? 예쁜 사람을 보면 기억을 잃어버린대요. 제가 얼마전에 아크릴 스탠드 하나를 구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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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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