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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5

       게임에서 나온 그녀의 첫인상은 비호감이라 할 수 있었다.

       부담스러운 크기의 꽃장식을 머리에 달고 나타나 용사들에게 원더스타인과 부두교는 자신들이 해치울 테니 너희들은 꺼지라는 식으로 말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공주병에 걸린 오만한 아가씨의 것이었다.

         

       덕분에 부두교의 함정에 빠져 토벌대가 붕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의 한심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런데 막상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드러나는 그녀의 진짜 모습은 정반대의 것이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검은 마도사를 쫓아온 덕분에’라는 설정으로 TT1과 TT2에서 플레이어들이 알 수 없었던 이야기를 그들에게 들려주었다.

       TTT 세계관 전체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서 많이 풀렸다.

         

       그렇다고 그녀의 역할이 단순히 정보 셔틀에서 끝나는 건 아니었다.

       그녀는 TTT에 등장하는 인간 중 최강이라는 말에 가장 가까운 존재였다.

         

       전투 연출부터 다른 인물들과 그 격을 달리했다.

       하늘에서 빛의 기둥이 번쩍하고 내려와 주변을 쓸어버리거나 집채만 한 바위를 손바닥 치기 한 방에 가루로 만들어버리는 등 그 힘을 드러내는 것은 몇 안 되는 이벤트 장면에서가 다였지만, 그것만으로도 플레이어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시리즈 최종 보스인 원더스타인조차 갓 부활한 상태에서는 그녀를 완전히 꺾는 게 힘들어 쇠사슬로 묶어놓고 도망쳤을 정도니 할 말 다 한 것이다.

         

       그렇게 한없이 강인한 모습만 보이다가도 그동안 검은 마도사를 추적하면서 죽어 나간 동료들을 떠올리며 슬픔에 잠기거나 인질 때문에 세 마녀 중 한 명에게 수세에 몰리는 등 인간적인 모습도 충분히 보여줬다.

         

       그녀가 살아온 삶을 보면, 그녀는 사실상 용사들의 선배격이라 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런 그녀의 희생과 함께 TT3 최종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부분은 TTT에서 가장 비장미 넘치는 장면으로 플레이어들의 심금을 울렸다.

         

       물론 그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TT3의 이야기는 앞으로 6, 7년 뒤를 배경으로 했다.

         

       그동안 그녀가 어떤 일을 겪는지는 나도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저 전해들은 몇 가지 이야기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검은 마도사를 추적하면서 많은 동료를 잃었다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나는 개막식에서 ‘검은 마도사’의 기원을 듣고 나서 세상 사람들이 원더스타인의 존재에 대해 막연하게만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심했다.

       적어도 내가 조심하기만 하면 검은 마도사라는 혐의로 뒷목 잡힐 일은 없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설마 이런 곳에서 그녀와 마주칠 줄은 몰랐다.

         

       “무슨 속셈으로 이곳에 들어온 겁니까!”

         

       분홍색 머리칼의 여인은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나를 노려보는 그녀의 두 눈동자가 이글거렸다.

         

       바이오맨서의 힘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 하필 성녀와 마주치다니.

         

       어떻게 대항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웃고만 있는데, 이바넨코 경이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자, 잠시 멈추시오. 이분은…….”

         

       당장이라도 내게 덤빌 것처럼 다가오던 그녀는 이바넨코 경에게 몇 가지 말을 듣더니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앗, 그런 거였습니까? 죄, 죄송합니다!”

         

       그녀는 주먹을 풀고 나를 향해 허리를 숙여 보였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니 그녀가 나를 향해 덤볐던 이유는 내가 수도사 복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보기에 마도사가 틀림없는 인간이 성직자로 위장한 것을 보고, 무언가 음모를 꾸미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바넨코는 그녀에게 내가 했던 일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줬다.

       그녀는 크게 감탄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렇게 훌륭한 분을 제가 오해하고 말았습니다……. 다시 사죄드립니다!”

         

       그녀가 씩씩한 목소리로 외치며 고개를 숙였다.

       목청 하나는 수탉 미노바와 견주어도 될 정도였다.

         

       “단장님은 대회 일정이 바쁘신데도 기꺼이 사람을 돕는 데 나서주셨소.”

       “대회……? 에엣! 그럼 서커스 그랑프리 참가자란 말입니까?”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뺨은 그녀의 머리카락과 비슷한 핑크빛으로 고조되었다.

       그녀는 두 팔을 붕붕 휘두르면서 외쳤다.

         

       “대단합니다! 저는 서커스를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왜 그렇냐고 되물었다.

       그녀는 부끄러운 듯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헤헤, 속세와 동떨어진 곳에서 수련해서 그렇습니다! 탐차카의 트롬스 수도원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트롬스 수도원은 TT3의 후반에 등장하는 스테이지 중 하나였다.

       나는 괴물이 된 수도사들을 괴로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그녀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마(魔)를 퇴치하는 훈련을 받는 곳이죠? 많은 퇴마사가 거기 출신이라고 들었습니다.”

         

       퇴마사는 어비스의 마귀나 범죄를 저지른 마도사들을 상대하는 자들이었다.

       그러니까 트롬스 수도원은 일종의 전투승 사관학교라 할 수 있었다.

       성녀 발렌티나는 어릴 때 그곳에 들어가 20년 가까이 그곳에서 살았다고 했다.

         

       그녀는 산등성이 시골에 있는 자기 고향이 이렇게 유명한 줄은 밖에 나오고 나서야 알았다고 말했다.

         

       “저는 얼마 전에 거기서 나왔습니다! 원래 장로님들이 완벽하게 힘을 통제하기 전까지는 절대 저를 내보낼 수 없다고 했습니다……. 헤헤, 그런데 저의 힘이 필요한 곳이 있어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 대목에서 긴장했다.

       그녀가 수도원을 나와서 들어간 곳이 어딘지 알고 있었다.

         

       검은 마도사 추적대.

       그들은 나에 대해 어디까지 알아냈을까?

         

       원더스타인 얼굴도 모르는 걸 보면, 별로 아는 게 없는 것 같긴 한데…….

         

       나는 조심히 운을 뗐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검은 마도사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윽.

       순간적으로 혀를 깨물 뻔했다.

         

       저쪽에서 대놓고 언급하다니.

       비밀스럽게 움직여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침착함을 가장하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서커스를 하는 사람으로서 모를 수 없는 이름이죠.”

       “아, 맞습니다……. 서커스 그랑프리……. 검은 마도사가 유명해진 게 그거 때문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는 말입니다. 그 사악한 자를 쫓고 있습니다!”

         

       갑자기 소리치는 그녀의 뒤로 커다란 성정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 크기로 보아 그건 말뚝이 아니라 투창이라 불릴 만한 물건이었다.

         

       그녀는 내 시선이 향하는 곳을 알아채고는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우리 수도원은 마신 숭배자라고 무조건 때려잡지 않습니다! 제가 있는 추적대도 그렇습니다! 우리 대장님도 마도사이십니다!”

         

       마도사가 대장이다?

       설마 교황청에서 꾸린 추적대에 마도사가 끼어 있을 줄은 몰랐다.

         

       어쩐지 게임에서 성녀는 교황청 토벌대의 다른 인간들과 달리 아군 마도사들에게 적대적이지 않았는데.

       이런 이유에서 그랬던 건가?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 대장이라는 자의 정보를 캐내기 위해.

         

       “그 마도사라는 분이…….”

       “대장님은 마신 카이랄의 사도입니다! 정말 대단하신 분입니다! 저번에도…….”

         

       그녀는 한참을 대장님이라는 자에 대해 떠들어댔다.

       덕분에 나는 그가 선호하는 비빔밥의 고명에 대한 정보까지 알 수 있었다.

         

       “아, 그렇군요…….”

         

       그동안 만난 인물 중에 게임 속에 나왔던 것과 성격에 차이를 보이는 경우는 꽤 있었다.

       그러나 성녀 발렌티나만큼 괴리감이 크게 느껴지는 캐릭터는 없었다.

         

       강인하면서도 우수에 찬 선배님이 과거엔 이렇게 허당에 떠벌이였다니.

         

       덕분에 나는 별다른 힘을 들이지 않고 검은 마도사 추적대에 대한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나는 그녀가 불러주는 신상명세를 하나하나 곱씹으며 머릿속에 저장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

       그들은 검은 마도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러나 이번에는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마야가 먼저 나서서 질문했다.

         

       “검은 마도사에 대해 뭔가 알아낸 게 있나요?”

         

       그녀의 눈빛은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째서인지 거기서 증오의 감정이 느껴졌다.

         

       내가 그에 대해 미처 의문을 갖기도 전에 발렌티나가 그녀에게 와락 달려들었다.

         

       “와! 이 꼬마는 누구입니까? 인형 아닙니까? 귀엽습니다!”

         

       발렌티나는 마야를 붙들고 가슴에 꽉 끌어안고 부비댔다.

         

       “읍, 떠, 떨어져. 이거 놔, 읍.”

         

       마야는 그녀를 밀쳐내려 듯 버둥거렸지만, 그녀보다 키도 체격도 월등한 상대를 떨쳐낼 수 없었다.

         

       발렌티나는 그녀의 하얀 머리카락과 볼을 마구 잡고 흔들어댔다.

         

       “헤헤, 이것 좀 보지 말입니다! 피부도, 머리카락도 눈처럼 새하얗습니다……. 정말 예쁜 꼬마입니다! 아앗!”

         

       그때, 번쩍하는 섬광과 함께 무언가가 발렌티나의 손을 할퀴고 지나갔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자신을 공격한 대상을 가리키며 벌벌 떨며 외쳤다.

         

       “고, 고양이입니다! 가, 갑자기 나타났지 말입니다!”

         

       그녀는 두 주먹을 불끈 앞으로 내세우고 또 다시 싸움을 할 태세를 취했다.

       그녀의 앞에는 청색 바탕에 적색과 백색의 줄무늬를 가진 고양이가 털을 바짝 세우고 있었다.

         

       고양이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녀석은 예전에 환상 시연회에서 마야가 어릴 적에 키운 적 있다면서 소환했던 녀석이었다.

         

       마야는 씩씩 숨을 내뱉으며 발렌티나를 노려봤다.

         

       “누구보고 꼬마야. 이 덜떨어진 여자.”

         

       그에 맞춰 고양이가 이빨을 드러냈다.

       소리는 없었지만 충분히 공격적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발렌티나는 손에 난 상처를 보며 울상을 지었다.

         

       “우웃, 마귀 고양이가 틀림없습니다! 이 꼬마가 소환했습니다!”

       “진정하세요……. 이건 마야 양이 만든 환상입니다. 발톱에는 염동력을 가한 것이고요. 마야 양도 그렇게 공격적일 필요는 없지 않나요.”

         

       나는 둘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발렌티나는 내 두 손을 꼭잡고 외쳤다.

         

       “역시 마도사라고 다 나쁜 분들만 아닌 건 확실합니다! 우리 대장님도 그렇고, 원더스타인 단장님도 그렇습니다! 사람은……겉으로만 판단하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그녀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마야를 흘겨봤다.

       마야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지만 단장님은 겉으로만 판단해도 좋은 사람입니다, 헤헤! 아까 잘생긴 남자분이라고 한 건 진심입니다!”

         

       발렌티나는 그렇게 외치더니 로브 자락으로 얼굴을 가리더니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멀리 뛰어갔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마야는 그녀의 천방지축으로 설치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코웃음을 쳤다.

         

       “저, 마법사님? 수녀님?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이바넨코 경이 교회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우리가 발렌티나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가 마을 사람들을 위급한 순서대로 선별하고 치료받을 차례를 정한 것이다.

         

       덕분엔 나는 그동안 지난 30명 분의 데볼루트의 종속화를 마칠 수 있었다.

         

       나는 쏟아져 들어오는 대량의 데볼루트와 지난 3주 동안 축적한 데볼루트를 모두 사용했다.

         

       우선 몸이 견딜 수 있는 부하를 늘리기 위해 3대 기초능력치를 한 단계씩 올리고 나머지는 전부 데볼루트의 최대수용량에 투자했다.

       혹시나 170명 분의 데볼루트를 정화하면서 수용량 부족 때문에 버려야 하는 양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였다.

         

         

       이름: 프랑크 원더스타인

       나이: 27

       직업: 바이오맨서

       -데볼루트: (0/1966)

       -근육 강도: 5.0 (헬스장 다니는 고릴라)

       -조직 경도: 5.0 (단단한 차돌)

       -세포 재생력: 5.0 (연고 바른 도마뱀 꼬리)

       특성

       : [웃는 남자]

         

         

       “그럼 열심히 해보는 겁니다! 단장님!”

         

       어느새 내 옆으로 돌아온 발렌티나가 손바닥을 내밀었다.

       나는 조심스레 그녀와 손바닥을 마주쳤다.

       그녀가 활짝 미소를 지었다.

         

       예배당의 문이 열리고 환자들이 들어왔다.

       이걸로 이번 퀘스트는 순탄히 해결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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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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