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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5

       수백 년을 묵은 영혼.

        ​

        영혼이 이승에 머무는 이유는 미련과 한 때문이다.

        ​

        수백 년 동안 이승에 머문다는 것은 그 한이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만큼 강하다는 것.

        ​

        거기다 세월이 지날수록 그 미련은 더욱더 강해진다.

        ​

        강하기에 버틴 것이고, 버텼기에 강한 것이다.

        ​

        “….”

        ​

        “취익?”

        ​

        지금의 경우엔  조금 더 복잡한 사정이 있는 듯했다.

        ​

        오랜세월을 기다리느라 지쳐 버린 영혼.

        ​

        이미 낡아버려 넋을 잃고 있었다.

        ​

        지금은 그저 존재만 하는 것이란 소리다.

        ​

        그런데도 영혼의 존재감이 굉장했다.

        ​

        “이거 무슨 불이야?”

        ​

        저 푸른색의 불.

        ​

        저것이 영혼의 상태를 회복시켜 주고 있었다.

        ​

        불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태우는 것이 아닌 영혼을 달래주고 치유해 주는 것.

        ​

        “취익! 신성한 불꽃이다.”

        ​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

        “위대한 선조들이 머무는 불꽃이다.”

        ​

        역시나 오크들에게 전해지는 것도 나에게 보이는 것과 비슷했다.

        ​

        “취익! 지금도 샤먼의 선조가 불꽃에 머무른다!”

        ​

        “맞아.”

        ​

        “냄새가 난다.”

        ​

        샤먼의 선조.

        ​

        저번에 로메넬이 말한 적이 있었다.

        ​

        오백년쯤 전에 특별한 오크들이 있었다고.

        ​

        “오백년까지는 아닌 거 같고… 그 뒤에 죽은 건가?”

        ​

        “최후의 샤먼, 사백년전에 죽었다.”

        ​

        “음?”

        ​

        “지금은 내가 마지막으로 남은 샤먼의 후예다.”

        ​

        샤먼의 대가 끊긴 것.

        ​

        그렇다면 저 영혼을 깨워야 일이 풀린다는 소리다.

        ​

        저 불을 피우는 이유 중에 하나가 그것인 것 같았으니까.

        ​

        저 영혼의 뒤로 제대로 된 샤먼이 탄생하지 않았다는 건, 철저하게 대를 끊어 놓았다는 뜻.

        ​

        그리고 그건 아마.

        ​

        “네크로맨서 짓이지?”

        ​

        “그렇다. 내 형제들도 모두 그들에게 죽거나, 잡혀갔다.”

        ​

        “잡혀갔다고?”

        ​

        “얼마 전에 마지막 형제들이 모두 죽었다.”

        ​

        스윽 –

        ​

        고개를 돌리니 나를 안내했던 오크의 영혼이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

        이놈도 죽고 나서야 나를 만났었으니, 같은 처지였으리라.

        ​

        “왜 잡혀갔는데?”

        ​

        “….샤먼의 힘 때문이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힘.”

        ​

        머릿속을 스치는 게 하나 있었다.

        ​

        산에서 보았던 낡은 책.

        ​

        오크샤먼들만이 읽을 수 있다는 글자.

        ​

        “책에 적혀있는 거 맞지?”

        ​

        “취,취익!! 역시 인간샤먼, 그것도 위대한 영혼이 알려주었나?”

        ​

        “하여튼 무당이 뭘 맞추면 다 신기한 능력으로 맞추는 줄 알아요.”

        ​

        점집에 찾아와서 ‘점보러 왔슈?’ 하고 물어보면 다들 놀란다.

        ​

        미리 알고 있던 것인데도 바보같이 착각을 하는 것이다.

        ​

        이런 걸 이용해서 사기를 치는 사람들도 있지만.

        ​

        “그걸 읽어야 해서 다끌려간 거야? 네크로맨서들은 그걸로 뭘 하는데?”

        ​

        “취익, 나도 모른다.”

        ​

        “….?”

        ​

        “난 잡혀간 적이 없다. 강하기 때문이다.”

        ​

        이놈도 거의 죽기직전에 나를 만나지 않았었나?

        ​

        실제로 옆에 형제라는 놈이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면 그대로 죽었을 테고 말이다.

        ​

        “살아남은 오크. 강한 오크다.”

        ​

        “….”

        ​

        “이곳에 있는 오크. 전부 강하다.”

        ​

        저 논리 대로라면 강한 게 맞다.

        ​

        무려 바다를 땟목으로 횡단하는데 성공한 오크들이니까.

        ​

        약한 놈은 도착도 못한다는 것이다.

        ​

        “그러다 종족이 다 죽겠는데?”

        ​

        굴락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

        저 흉악한 얼굴이 불쌍해 보일 정도로.

        ​

        “지금의 오크는 힘이없다.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다. 취익…”

        ​

        “그래서 여기에 숨어있는 거야? 아니면 저 영혼때문에?”

        ​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나?”

        ​

        그럼 그걸 누구한테 물어보겠는가.

        ​

        자리를 잡은 당사자에게 물어봐야지.

        ​

        “직접 나에게 방향을 알려주지 않았나?”

        ​

        “….?”

        ​

        “그 방향을 따라 쭉 걸어왔다.”

        ​

        굴락의 사정을 들어 보니 정말로 구구절절했다.

        ​

        시도 때도 없이 덮치는 몬스터들.

        ​

        그리고 따라붙는 네크로맨서의 추격.

        ​

        그 속에서 살아남은 샤먼의 후예는 굴락이 유일한 모양이었다.

        ​

        “취익! 많은 오크가 죽었다.”

        ​

        나름대로 오크들을 모아 부족을 만든 모양이지만 역부족이었던 것 같았다.

        ​

        하기야 오크들이 네크로맨서에게 대항할 방법이 없지 않겠는가.

        ​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오크들에게서 죽음의 냄새가 나지 않을때까지.”

        ​

        굴락의 말이 끝나자 이곳저곳에서 곡소리가 들렸다.

        ​

        “취익… 죽음의 예언.”

        ​

        “…취익.”

        ​

        지난번에 만났던 오크에게 들은 적이 있었던 것 같다.

        ​

        그것 때문에 내 방울을 무서워하기도 했었지.

        ​

        “약한 오크, 죽음의 냄새가 날 때마다 알려 줬다. 내가 도움을 받았을 때처럼.”

        ​

        “잘했네.”

        ​

        제법 무당과 가까운 행동이지 않은가.

        ​

        다가올 흉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니까.

        ​

        “하지만 모두 죽었다.”

        ​

        “….?”

        ​

        “취익! 오크가 아직 힘이 없기 때문이다.”

        ​

        어쩐지 오크가 과하게 죽음의 예언이라는 걸 두려워한다 했다.

        ​

        이놈들의 처지에서는 사형선고와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

        굴락이 말하는 족족 죽어 나갔을 테니.

        ​

        “그렇게 오크들에게서 냄새가 나지 않는 곳을 찾아온 것이다. 그들은 아직도 나를 쫓아온다.”

        ​

        “고생했네.”

        ​

        못 보던 사이에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고 있었을 줄이야.

        ​

        이놈들 몬스터 답게 기구한 삶을 살아온 것 같다.

        ​

        “인간샤먼, 알려 준 방향대로 오니 최후의 샤먼과 만날 수 있었다.”

        ​

        척 –

        ​

        당당하게 가리키는 푸른색의 불길.

        ​

        자랑을 하는 듯 어깨가 올라와 있었다.

        ​

        “그때 보여 준것을 따라 하며 불을 피워내는 것에 성공했다.”

        ​

        “날 따라 해?”

        ​

        난 저 불꽃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

        ​

        제대로 된 것을 보는 것도 오늘 처음.

        ​

        도대체 날 보고 뭘 어떻게 따라 했길래 저걸 만들어냈다는 말인가?

        ​

        그리고 한번 보고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아니, 절대로 따라 할 수가 없다.

        ​

        생각보다 복잡한 것이니까.

        ​

        “취익! 지팡이를 가져다 달라.”

        ​

        “신성한 의식!”

        ​

        한쪽을 향해 달려간 오크가 기다란 지팡이를 가지고 왔다.

        ​

        굴락보다 긴 지팡이.

        ​

        그 지팡이의 끝에는 두개골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

        “약해진 오크의 머리다. 나와 함께 싸운다!”

        ​

        “….?”

        ​

        “크리스, 소문을 듣고 연구했다. 보아라 나의 성장을.”

        ​

        푸른색의 불 앞에 걸어가서 지팡이를 들어 올리는 오크.

        ​

        “얼씨구?”

        ​

        그 모습이 제법 그럴싸했다.

        ​

        저 앞에 있는 불이 촛불이라 치면 용도조차 비슷했다.

        ​

        신령님들께 촛불로 위치를 알리고 방울을 흔들면서 모시는 것이니까.

        ​

        심지어 정말로 저 불 속에 오크의 영혼이 자리 잡고 있지 않던가?

        ​

        굴락이 지팡이를 한번 흔들었다.

        ​

        “오…?”

        ​

        해골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지만 소리가 나지 않는 지팡이.

        ​

        그것보다 영기와 비슷한 것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

        뭐랄까, 사람이 아니라서 쌓이는 영기라고 해야 하나?

        ​

        근원이 조금 다른 기운.

        ​

        “취익!”

        ​

        기운들이 움직이며 푸른색의 불꽃으로 쏟아졌다.

        ​

        화르륵 –

        ​

        조금 더 크기가 커진 불꽃.

        ​

        아까보다 더 강한 기세로 타오르고 있었다.

        ​

        이놈, 분명히 소질이 있다.

        ​

        영감이 있다는 소리다.

        ​

        “허…”

        ​

        나처럼 신령을 통해 공수를 받는 느낌은 아니지만 얼추 비슷했다.

        ​

        제대로 된 영혼만 있으면 도움을 받아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

        순간, 굴락이 다리를 굽혔다 피며 몸을 띄워 올렸다.

        ​

        내가 굿을 할 때처럼. 

        ​

        “흐음…”

        ​

        이번에는 불꽃에 변화가 없었다.

        ​

        당연한 일이다.

        ​

        저건 애초에 잘못된 방법이니까.

        ​

        “잠깐만.”

        ​

        “취익?”

        ​

        “너 그거 왜 뛰는 거냐?”

        ​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닌가?”

        ​

        저렇게 하는 게 맞기는 하지만….

        ​

        동작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

        “그러니까 뛰는 이유는 모르지?”

        ​

        “…취익, 그렇다.”

        ​

        참나, 살다 살다 오크한테 굿하는 법을 가르칠 줄이야.

        ​

        하지만 그렇게 싫은 느낌이 아니었다.

        ​

        처음으로 만난 나와 비슷한 존재.

        ​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냄새를 맡고 죽음을 구별할 수 있다는 것.

        ​

        잡귀나 잡신을 모시는 무당들보다 용한 면이 있었다.

        ​

        반푼이 치고는 제대로 된 반푼이였다.

        ​

        “혼자서 해낸게 용하네.”

        ​

        “…틀렸나?”

        ​

        간만에 흥이 올랐다.

        ​

        이런 자리에서 참을 수가 있겠는가.

        ​

        “알려줄 테니까 잘 들어. 어디 가서 못배우는 거야.”

        ​

        “알겠다! 집중한다!”

        ​

        “몸을 띄우며 춤을 추는 건 다양한 이유가 있어.”

        ​

        굿에 빠지지 않는 것은 풍악과 춤.

        ​

        이것들은 흥을 돋구기 위함이다.

        ​

        굿을 하는 무당도, 굿을 보는 망자와 생자도 마찬가지다.

        ​

        흥이 올라야 신이 난다.

        ​

        “왜 흥이올라야 신이 나냐면.”

        ​

        무당과 연예인의 팔자가 비슷한 이유.

        ​

        남들에게 감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 말고 결정적인 것이 하나가 있다.

        ​

        달아오른 흥 속에서 빠져드는 무아지경이다.

        ​

        “신령님의 생각을 받고, 의지를 받아야 하는 거야.”

        ​

        딸랑 –

        ​

        “여기에 니 생각이 섞이면 공수가 변질돼. 잘 안 보이기도하고.”

        ​

        딸랑 –

        ​

        나를 잊고 그 속으로 빠져든다.

        ​

        가수들이나 배우들이 완전히 몰입해 무아지경에 이르는 것처럼 말이다.

        ​

        딸랑 –

        ​

        어깨를 한번 흔들고.

        ​

        딸랑 –

        ​

        몸을 띄워 올린다.

        ​

        마음과 생각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나를 지워간다.

        ​

        마치, 실제로 들려오는 듯한 장단들이 귓가에 맴돌았다.

        ​

        “몸을 움직이는 게 아니야. 알아서 움직이게 흥에 맡기는 거야.”

        ​

        그렇게 흥에 취해갈때쯤.

        ​

        정신이 아득해져 왔다.

        ​

        예술인이 이르면 무아지경.

        ​

        무당이 이르면 접신이라 불리는 것.

        ​

        말 그대로 신이 났다.

        ​

        딸랑 –

        ​

        딸랑 –

        ​

        흥이 나고 신이나면 보는 사람이 즐겁다.

        ​

        영혼도 즐겁고, 나도 즐겁다.

        ​

        원혼들과 같이 놀면서 달래주고 한을 풀어 주는 것.

        ​

        그게 굿의 본질이다.

        ​

        딸랑 –

        ​

        순간, 입이 열리며 공수가 터져 나왔다.

        ​

        “좋구나!”

        ​

        몸주신의 시선이 방울을 따라 나에게 오고.

        ​

        나와 연이 닿은 신들의 눈이 스쳐 지나갔다.

        ​

        딸랑 –

        ​

        한바탕의 강신.

        ​

        적당히 놀고 마음을 가라앉힐때쯤.

        ​

        몸주신의 여운에 나도 모르게 손이 뒷짐을 지고 있었다.

        ​

        그리고 그 순간.

        ​

        화르륵 –

        ​

        팟.

        ​

        타오르던 푸른 불길이 꺼져 버렸다.

        ​

        그 안에 있던 샤먼의 영혼 역시도 같이 사라졌다.

        ​

        “….취,취익….! 위대한 영혼…!”

        ​

        어느샌가 일제히 바닥에 엎드려 있는 오크의 영혼들.

        ​

        굴락은 처음 점괘를 봐줬을때처럼 넋이 나가 있었다.

        ​

        “시, 신성한 불이 꺼졌다!”

        ​

        스윽 –

        ​

        굴락을 쳐다 보니 화들짝 눈을 피하는 것이 보였다.

        ​

        영감이 있는 놈이니 눈을 마주치기가 더 힘들 것이다.

        ​

        “아직 기가 약해서 그래. 당연한 거야. 눈도 못마주치겠지?”

        ​

        “취익?”

        ​

        굴락이 내 앞에서 쉽게 촛불을 밝힐 수 있을 리가 없다.

        ​

        지금도 기를 못펴고 주눅이 들어 있으니 말이다.

        ​

        어쨌든.

        ​

        “다 봤지?”

        ​

        “똑똑히 봤다.”

        ​

        “해 봐.”

        ​

        “…취익?”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뉴비를 만나서 크리스 신남!

    – 주 의 –

    혹시나 꿈을 자주 꾸시거나하는 분은 따라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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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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