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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5

        

       “러시아가 주술사 놀이터도 아니고 말이야.”

         

       빅토르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장애물 제거해.”

         

       빅토르가 명령을 내리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군인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그들은 익숙한 듯 박격포를 조립해서 놀이공원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숲을 향해 발사했다.

         

       콰아아앙!

         

       귀청을 찢어버리는 소리와 함께 박격포는 우거진 숲을 모조리 박살 냈고, 어느 정도 안전해졌다 판단되자 그들은 장비를 들고 차례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압용 방패를 들고 있는 군인들이 벽을 만드는 것처럼 일행을 사방으로 감싸서 움직였고, 그들의 곁에는 기다란 검과 도끼를 패용한 군인들이 따라갔다. 그리고 중앙에는 비싸 보이는 장비를 든 인원이 있었다.

         

       그리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은 박격포와 저격 소총, 유탄 발사기를 들고 그들을 엄호하고 있었다.

         

       놀이공원을 향해 앞장선 군인들은 입구까지 위험 요소가 없자 안전하다 신호를 보냈고, 그제야 빅토르는 검을 뽑고 뚜벅뚜벅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부아아앙.

         

       그리고 그의 뒤에 장갑 트럭 두 대가 따라붙었다. 장갑 트럭 한 대에는 접시 안테나라고 불리는 커다란 파라볼라 안테나(parabolic antenna)가 붙어서 느릿한 속도로 회전하고 있었고, 다른 한 대에는 피뢰침같이 기다랗게 솟아난 뿔이 파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 영체 간섭으로 인한 노이즈 현상! 악령 접근 확인! ]

       [ 전자파 확인! 최하급 악령 13개체, 중하급 악령 2개체입니다! ]

       [ 자기장이 강해집니다! 곧 악령이 출몰합니다! ]

         

       뒤에 따라붙은 장갑 트럭은 각기 전자파와 자기장을 측정하고 군인들에게 경고를 날려주었고, 군인은 경고에 따라 품에서 신성술사에게 받아온 성수를 뿌려 축성하고 다가올 악령에 대비했다.

         

       그리고.

         

       [ 감히! ]

         

       악령이 나타났다.

       간수 복장을 한 악령은 반쯤 썩어버린 얼굴에서 툭 튀어나와 있는 파란색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대고 있었고, 드문드문 붙어있는 치아를 보이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 이 반동 놈들이 어딜 무장하고 오느냐! ]

         

       악령은 분노에 찬 몸짓을 하며 쩌렁쩌렁 소리를 질렀고, 옆에 차고 있던 권총을 뽑아 들었다.

       떼떼(TT) 권총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토카레프 권총이었다.

         

       악령은 권총을 높이 치켜들고 소리쳤다.

         

       [ 위대한 사상의 한 걸음, 위대한 인민의 깃발! 우리 인민은 결코 부르주아와 제국주의자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

       [ 정치범을 노리고 왔느냐? 너희 동료를 구하고자 왔더냐?! ]

       [ 무장하고 찾아왔다 한들 우리는 비키지 않는다. 우리의 목숨을 넘고 가도록 해라! ]

       [ 다만 서기장 동무께서 우리의 복수를 해줄 것이니! ]

       [ 우라(Ура)! 소비에트 우라(Ура)! ]

         

       간수 악령의 소리침에 빅토르는 짜증이 난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외진 곳은 이게 문제란 말이야.”

       “그렇습니다.”

       “세계 대전 때 뒤진 놈들이 많아서 악령이 튀어나온다고 하면 꼭 이런 족속들이란 말이지.”

         

       죽은 숫자가 압도적이다 보니 러시아에도 악령이 꽤 자주 출몰하는 편이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의 사망자만 하더라도 최소 2,900만 명. 최대 4,000만 명이다.

       게다가 통계에 잡히지 않은 사망자나 포로, 범죄 피해자 등까지 생각해본다면 그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죽은 이유가 대부분 전쟁과 관련이 있기에 항상 출현하면 레퍼토리가 비슷비슷해서, 그에 대한 대처법 역시 널리 알려져 있다는 것.

         

       빅토르는 군인 한 명에게 눈짓했고, 그러자 군인은 조용히 목을 가다듬고 앞으로 나섰다.

         

       군인은 꼿꼿하게 서서 악령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당에서 왔다.”

         

       그 말에 권총을 뽑아 들고 당장이라도 돌격할 것 같았던 악령이 얌전해졌다.

         

       “반동분자 놈들을 잘 관리하고 있는지 불심검문을 왔으니 문을 열도록.”

         

       군인은 고압적인 어투로 악령을 대했고, 악령은 그 말에 권총을 다시 집어넣었다. 하지만 무언가 의심이 가는지 푸른 눈을 뒤룩뒤룩 굴리더니 그를 향해 물었다.

         

       [ 검문을 오신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는데….]

       “하! 미리 알려주면 그게 불심검문인가? 당장 문을 열도록!”

         

       악령이 망설이는 것 같자 군인은 표정을 싹 굳혔다.

         

       “지금 뭐 하는 거지? 당의 명령으로 왔다고 했는데 뭐 하는 거야!”

         

       그는 노성을 터뜨렸다.

         

       “이거 수상하군! 당장 열어!”

         

       그러자 악령들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 박살 나버린 철창이 있기라도 한 듯 허공을 만지작거리며 문을 여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힘겨운 몸짓을 하는 것이 악령은 거기에 진짜 문이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듯했다.

         

       이는 현실과 괴리되어 있는 악령의 행동 양식 중 하나였다.

         

       “쯧. 진작 이럴 것이지. 변방에서 근무하는 놈들은 빠릿빠릿하지가 않아.”

         

       군인은 문을 다 열었다는 듯 양옆에 군기 잡힌 자세로 서 있는 악령들을 타박하듯 그렇게 말했다.

         

       “다만 체제 붕괴를 위해 움직이는 놈들도 많으니 눈감아주도록 하겠다. 하지만 만약 문제가 보인다면 지금의 일까지 더해서 엄벌을 내리겠다. 알겠나!”

       [ 네! ]

       [ 네! ]

         

       그 말과 함께 군인은 따라오라는 듯 뒤의 일행에게 손짓했고, 군인들은 앞장서는 군인의 뒤를 따라 놀이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군인들이 지나가는데도 악령들은 꼿꼿이 서서 그들을 제지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다가, 모두 안으로 들어가자 자신을 따라온 누더기를 입은 악령들에게 무어라 재촉하듯 손짓을 했다. 그러자 악령은 느릿느릿한 몸짓으로 노역을 하는 것처럼 몸을 움직였다.

         

       빅토르는 군인이 모두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는 무전기를 켜서 톡톡 세 번 두들겨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장갑 트럭의 꽁무니가 열리더니 안에서 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나오기 시작했다.

         

       연기는 매캐한 냄새와 함께 입구를 가득 메웠다.

       그리고 연기가 입구 전체를 가리자 장갑 트럭에서 군인 한 명이 내려 자기장 상쇄장치를 꺼내 곳곳에 설치했다. 그리곤 등에 메고 있는 장치를 바닥에 내려놓고 마력을 넣어 가동했다.

         

       장치는 삐이이익 하는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가동되었고, 장치 뒤편에 꽂혀있는 특수 제작된 습전지에서 부글부글 끓는 듯한 소리와 덜덜거리는 진동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것이 정점이 달했을 때.

         

       퍼어어엉-!

         

       악령을 일시적으로 무력화시키는 충격파가 터졌다.

         

       빅토르는 충격파에 악령들이 정신을 못 차리자 검기를 불어넣어 휘둘렀고, 신성술사에 의해 축성 받은 은으로 코팅된 검은 악령들을 종이 찢어버리듯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역시 기습으로 죽이면 이렇게 쉬운 것들이 없지.”

         

       악령은 사람을 속인다.

       기만하고, 기망하며, 농락한다.

         

       이는 귀(鬼)와 달리 물리력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영의 특성에 의한 것.

       하지만 물리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만큼 이들은 사람의 정신을 가지고 노는 것에 능하며, 제 능력으로 사람에게 환상을 보여주고 속이며 그들을 현혹한다.

       사람이 현혹에 빠지면 그들의 몸을 차지해 빙의자(憑依者)가 되기도 하고, 그들의 머리를 자기 뜻대로 농락해 자신에게 온전히 봉사하는 부마자(付魔者)로 전락시키기도 한다.

       대악령의 수준에 이르면 사람 수천, 수만을 홀려 군세로 만들거나 시체를 부리는 등의 끔찍하고 사악한 이적을 선보이기도 하니 참으로 위협적인 존재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기꾼 역시 사기꾼에게 당할 수 있는 법.

       사람은 악령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들을 상대할 방법을 연구해왔고, 정보가 넘치는 현대에 이르러서 이 연구는 결실을 보았다.

         

       그리하여 악령에게 대처하기 위한 매뉴얼이 생겨났으니.

         

       방금 군인이 보인 것이 바로 그 방법의 하나였다.

         

       정신이 약한 사람을 홀려서 잡아먹는 악령을, 도리어 방심하게 만든 뒤 후려치는 방법이었다. 이 방법은 악령이 도망칠 틈도 주지 않고 이렇게 순식간에 없애버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물론 연기를 잘못하면 연기자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으나, 이미 악령을 상대하는 데에 이골이 난 군인들을 곁에 둔 데다가 악령과 악귀에 대응하기 위한 장비까지 몸에 차고 있는 상황인데 무슨 위험이 있으랴?

         

       “연기 실력이 점점 늘어나는군. 만족스럽다.”

       “감사합니다!’

       “돌아가서 보드카 한 병 주지!”

         

       빅토르는 군인을 칭찬하곤 만족스러운 듯 장갑 트럭에서 비추는 조명에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자신의 검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악령의 잔재를 털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두어 번 검을 허공에 털었다.

         

       하지만 빅토르가 검을 털어 부정이라도 탄 것일까?

         

       [ 한다네~ ]

       [ 초….]

       [ 한다네~! ]

         

       폐허가 된 놀이공원 저 멀리에서 음악이 들려왔다.

       

       스피커로 트는 것도, 목으로 부르는 것도 아닌.

       악기 비슷한 것을 쥐어뜯어 목소리 비슷한 음성을 짜내 만든 듯한 소리.

         

       “경계.”

         

       척!

         

       빅토르의 명령과 함께 군인들이 일제히 진형을 갖추었다.

         

       빅토르 역시 검을 치켜들고 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았다.

         

       [ 헝-글! 맛있는 식사가 좋다네! ]

       [ 헝-글! 즐거운 식사가 좋다네! ]

       [ 맛을 보면 포자가 내리고! ]

       [ 내린 포자로 피어나는 버섯이 말하지! ]

       [ 훌륭한 식사! ]

       [ 대단한 식사! ]

         

       빅토르의 눈에 보인 것은 버섯의 군단.

       사람 머리통만 한 버섯이 찢어진 틈을 입처럼 움직이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건 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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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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