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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5

       경지에 이른 환검은 상대의 오감을 장악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화산파의 매화검법을 예로 들 수 있다.

         

       화산에 흐드러지게 핀 매화나무를 보며 창안한 이 검술은 일정 경지에 도달했을 때 검이 지나간 자리마다 매화 향기가 남게 된다.

         

       화산파에서는 이를 두고 검향경(劍香境)이라 칭한다.

         

       고작 향기가 전투에 무슨 영향을 미칠 수 있겠냐 말할 수도 있다. 허나, 이 향기가 전투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안정적인 향기는 긴장감을 해소하고, 마음에 평온함을 가져다준다. 효과 자체만 놓고 보면 무척 이로운 것 같지만, 이 향기를 내뿜는 순간이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적절한 긴장감을 전투를 이끌어가는 데에 필수적인 요소다. 그런데 이 긴장감이 원치도 않는 상황에서 풀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크허억…!”

         

       그 답이 백우진의 주변에 펼쳐졌다.

         

       공동을 경비하는 그림자 일족 열 명 중 여덟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그들의 조장이었던 중년의 사내 또한 지금 막 무릎을 꿇었다.

         

       “어휴, 오랜만에 몸 좀 풀었더니 개운하네.”

         

       마혈을 제압당한 채 바닥에 널부러진 조장은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대체 저 괴물은 뭐란 말이냐.’

         

       일족의 젊은 친구들이 모인 탓에 그 경지가 일류 상위에서 절정 초입에 불과했다지만, 그들은 하나하나가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암살자다.

         

       그런 이들을 단숨에 깨부수고 하는 말이 고작 몸이 개운한 정도라니.

         

       그는 이를 악물었다.

         

       빠득!

         

       ‘최악의 상황이다.’

         

       온갖 박해에 시달린 일족은 실패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대규모로 밀고 들어온 적도 아니고 고작 한 명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을 전한다면 부하들은 어떨지 몰라도 자신의 죽음은 거의 확정적이라 봐야 했다.

         

       ‘어떻게든 만회해야 한다!’

         

       조장은 백우진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놈은 분명 문을 열고자 할 터.’

         

       실험실의 문은 기관진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문 옆에 설치된 아홉 개의 단추를 정해진 순서대로 누르지 않으면 열리지 않게 되어 있다.

         

       이 문을 열 방법을 알고 있는 이는 이곳의 주인인 진미연과 당연신, 그리고 자신들 뿐.

         

       또한 문을 여는 단추를 잘못 누르는 순간 이곳과 연결된 외부 비처에 경보가 울리고, 외부에서 열리기 전까지 내부에서는 문을 열 수 없게 된다.

         

       실험실이 망가진 순간부터 처벌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백우진을 붙잡아둘 수만 있다면 적어도 죽음만은 면할 수 있으리라.

         

       “십영(十影)!”

         

       그는 백우진에게 당하지 않은 유일한 일족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개폐기를 차단해라!”

         

       단 한 순간의 틈을 노리기 위해 그림자 속에 숨어 상황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그녀, 십영은 자신이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음을 직감했다.

         

       기회라고 생각해 단검을 손에 쥘 때마다 눈이 마주쳤다. 여덟이나 되는 일족과 싸우는 와중에도, 그는 자신을 보고 있었다.

         

       ‘나를 주시하고 있었어.’

         

       그가 하고자 마음먹었다면 자신 또한 다른 일족과 마찬가지로 산산조각이 나 흩뿌려진 실험체들 사이에 널부러져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을 공격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는 것은.

         

       ‘그때의 얘기가 아직 유효하다는 의미일까.’

         

       사로잡힌 포로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편을 만들기 위한 헛소리에 불과하다고 여겨 단호하게 거절했던 그 제안이, 지금은 그녀의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어댔다.

         

       ‘석아….’

         

       지금도 진미연의 그림자에 숨어 조금씩 빛을 잃어가고 있을 동생의 이름을 속으로 불러본다.

         

       희미하게 남은 감정을 지켜주기 위해 목숨을 내거는 것이 과연 맞는 길일까.

         

       고민이 깊어질 무렵, 백우진의 음성이 귓가에 닿았다.

         

       “숨이 붙어있다고 살아있는 건 아니지.”

         

       마치 자신의 고민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며, 그는 그녀가 숨어 있는 그림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맛있는 것도 먹고, 죽이는 술도 한 잔 마시고, 하고 싶은 일도 하고, 보고 싶은 건 보고.”

         

       그래야 진짜 살아있는 거지.

         

       “지금 네가 있는 자리에서, 그런 게 가능할까?”

         

       마교가 중원 무림을 깡그리 쓸어버리고 천하를 이룩하게 되는 날이 오면.

         

       ‘그때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거기까지 가는 길에 자신은, 동생은 죽지 않을 수 있을까.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을 그저 도구 취급하는 이들의 밑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까만 먹물을 들이부은 것처럼 미래가 그려지질 않는다.

         

       “십영! 뭐 하고 있는 거냐!”

         

       우스꽝스럽게 쓰러진 채로 소리치는 조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

         

       ‘개폐기를 차단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이미 자신이 숨어 있는 곳을 명확하게 보고 있는 백우진을 제치고 개폐기에 도달할 수나 있을지 의문이다.

         

       십영은 그림자를 빠져나왔다.

         

       싸우는 와중에도 손에서 놓지 않은 호리병이 그녀의 시야를 사로잡았다.

         

       “…제게 그 술이란 것을 맛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이지. 술은 나눠 마실 때 더 맛있는 거거든.”

         

       그는 웃는 얼굴로 흔쾌히 대답했다.

         

       밖을 돌아다닐 자유를 빼앗기고, 음식의 가짓수를 빼앗기는 와중에도 강짜를 부리며 지켜낸 술병이었다.

         

       분명 소중한 것일 텐데, 그는 너무나도 쉽게 자신에게 호리병을 건네주었다.

         

       “십여어엉!”

         

       또 한 번 다급한 외침이 들려온다.

         

       가뿐히 무시한 채, 백우진을 향해 물었다.

         

       “술이란 것을 마시면…, 복잡한 일도 명쾌해진다 들었습니다.”

         

       한 번도 술을 마셔본 적 없는 그녀였다. 포만감과 만족감 같은 한때의 쾌락이 복수로 벼려진 칼날을 무디게 만든다며, 일족의 어른들은 그것들을 매우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작 본인들은 끼니마다 기름진 음식과 비싼 술로 배를 가득 채웠으면서.

         

       반발심이 일었다. 그녀는 곧장 호리병을 입에 가져가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쌉싸름한 맛에 인상을 찡그리는 십영.

         

       “…쓰군요.”

         

       백우진이 혀를 찼다.

         

       “애송이구만.”

         

       묘한 불쾌감을 느낀 그녀가 호리병을 다시 입으로 가져갔다. 이번에는 제법 많은 양을 들이켰다.

         

       뱃속이 화끈해지더니 머리가 핑 돌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조금식 비뚤어졌다.

         

       “십영!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빨리 개폐기를…!”

       “닥치십싀오.”

         

       얼굴이 빨개진 십영은 돌맹이를 하나 주워 제 귀를 시끄럽게 만드는 조장을 향해 냅다 던져버렸다.

         

       뻐억!

         

       “끄하악!”

         

       조장은 쌍코피를 터뜨리며 침몰했다.

         

       언제나 차분했던 감정이 이토록 날뛸 수가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녀의 시선이 백우진에게로 향했다.

         

       “당싄에게는 빛이 납늬다….”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검은 먹물을 들이부은 것처럼 캄캄했던 미래가 조금씩 벗겨진다.

         

       “정말…, 나와 동생의 안식처가 되어주싈 겁늬까….”

         

       그녀가 간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얼마든지.”

         

       백우진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죠습니다. 당신을 믿겠습늬다.”

         

       꼬부라진 혀로 배신을 택했다.

         

       “거, 일단 운기조식을 좀 하고 있어.”

         

       백우진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그녀가 곧장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첫 번째 명이군요. 알겠습늬다.”

         

       곧장 소주천에 들어가는 그녀를 보며 백우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술 깨고 나면 오리발 내미는 건 아닌가 몰라.”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

         

       백우진은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그림자 일족을 모두 모아 자신이 머물렀던 방 안에 모두 때려 넣고 문 역할을 하는 석벽에 온갖 무거운 것들을 쌓아두었다.

         

       “대충 정리는 끝났고.”

         

       앞으로 큰 힘이 되어줌과 동시에 문을 열 방법을 알고 있는 십영을 포섭해 두었으니 나가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당장 문을 열지 않은 것은 이곳에서 확인하지 못한 숨은 공간이 몇 개 더 남아 있기 때문이다.

         

       ‘분명 거기에 뭔가가 있어.’

         

       진미연에 의해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된다고 허락을 받았음에도, 그림자 일족이 막아서는 바람에 들어가지 못한 공간 중에 무언가 중요한 것이 있으리라.

         

       좌측 석벽 윗부분을 주먹으로 때리자 그곳이 쑥 들어가면서 석벽 일부분이 돌아갔다.

         

       어두컴컴한 공간이 드러났다.

         

       안력을 돋우며 안으로 들어서자 어둠에 가려져 있던 것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온다.

         

       무척이나 두꺼운 쇠창살이 보인다. 그리고 그 안에는.

         

       크륵!

         

       크워어어!

         

       마물들이 오랜만에 보는 인간을 향해 포효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들을 본 백우진의 안색이 어둡게 변했다.

         

       “실험은 이미 거의 성공했었던 건가.”

         

       마물들은 백우진을 향해 포효성만 내지를 뿐,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성도에 들어서기 전에 보았던 마물들에 비해 한층 뛰어난 자제력이 엿보였다.

         

       진미연에게 약간의 시간이 더 주어지면 거대한 재앙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백우진은 쇠창살 너머에 서 있는 마물들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몇몇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려 했으나 공간이 무척 협소한 탓에 원하는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다음 생에는 이딴 세상 말고, 좋은 곳에서 태어나라.”

         

       짧은 말로 명복을 빌어주며 그들의 시체 위에 술을 뿌려준 뒤, 그는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또 다른 공간의 문을 열어젖혔다.

         

       대체로 비슷했다. 인간을 맞이함에도 이성을 잃지 않고 차분한 눈빛을 내비치는 마물과 마인들이 가득하게 쌓여 있었다.

         

       “미친년, 미친년….”

         

       그것들을 전부 처리한 뒤, 백우진은 포로일 적에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찾아낸 마지막 공간에 다다랐다.

         

       마찬가지로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거대한 쇠창살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 또한 동일했다. 하지만, 이쯤 되면 응당 들려와야 할 마물의 포효성이 들려오지 않았다.

         

       기감을 활짝 열어둔 채로 앞으로 나아갔다.

         

       쇠창살 너머, 주렁주렁 매달린 두꺼운 쇠사슬들이 보인다. 얽히고설킨 그것들은 한 방향을 따라 떨어져 내려갔다.

         

       두꺼운 쇠사슬로 이루어진 둥근 뭉치가 보인다. 그리고 그 안에 언뜻 살색이 내비친다.

         

       “…….”

         

       속도를 높여 앞으로 더욱 빠르게 나아갔다. 이윽고 쇠창살의 앞에 도달한 백우진은 보았다.

         

       쇠사슬 뭉치 위로 빼꼼 내밀어진 사내의 얼굴을.

         

       봉두난발의 거지꼴을 하고 있었지만, 분명 낯익은 얼굴이었다.

         

       “당연신….”

         

       영락없이 죽은 줄로만 알았던 진짜 당연신이 쇠사슬 속에 봉인되다시피 파묻혀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무리 급해도,,, 장인어른은 모셔야지요,,, 음음,,,

    댓글로 많은 분들이 응원의 말씀과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모든 말씀 귀담아 듣고 무럭무럭 성장하여 여러분의 입맛 돋우는 글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생각해둔 내용대로, 소신대로 쓰기는 하겠지만, 오직 소신만을 부르짖으며 여러분의 니-즈를 무시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쌍방으로 소통이 가능한 웹소설의 묘미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주말도 이제 끝이 났네요… 다들 월요병 잘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고, 저는 내일 또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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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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