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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5

       초월 마법사가 직접 새긴 노예 각인이 풀렸다. 그저 손가락 한 번 튕기는 거로 간단하게.

         

       ‘소유권은 이미 넘어갔을 텐데?’

         

       각인의 주인은 프란체에게 양도된 상태다. 아무리 그 할멈이라도 소유권이 넘어간 초월의 각인을 손가락 튕기는 거로 해제하는 건 힘들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으로 틈을 만들어뒀군.’

         

       이게 아니라면 설명이 안 된다. 초월 마법사는 처음부터 이 각인을 풀기 쉽게 만들었다.

         

       ‘이러면 그걸 쓸 필요가 없어서 좋긴 한데.’

         

       원래 계획은 도망치기 직전 프란체를 구슬려 ‘정화의 말뚝’을 구한 뒤 각인을 해제하려 했다.

         

       ‘정화의 말뚝’은 몸에 새겨진 모든 해로운 효과를 없애주는 대신, 얇은 말뚝을 심장으로 받아내야 한다. 죽지는 않지만, 가슴이 관통당하는 고통은 느껴진다.

         

       “후우.”

         

       일단 다행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말뚝으로 심장이 관통당하는 고통은 안 느껴도 되지 않나.

         

       ‘근데 이걸 안 들키려나?’

         

       예전과 달리 지금의 프란체는 노예 구속구를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굳이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나에 대한 신뢰가 두터워졌기 때문이다.

         

       ‘아마 구속구가 침대 옆 서랍에 있었지.’

         

       그걸 어떻게든 숨겨야 한다. 불빛을 보면 각인이 해제된 걸 알 수 있을 테니. 계획은 이거로 됐다마는.

         

       “이제 어쩔까.”

         

       당장이라도 도망칠 수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흠…….”

         

       탑은 완성만을 기다리는 상황. 이는 카자르에게 설명을 마쳤으니 알아서 운영될 거고.

         

       사업은 이미 한참 전에 성공해 프란체는 제국의 대부호가 되었다.

         

       ‘문제는 프란체가 내 도움 없이 공작가를 차지할 수 있냐인데.’

         

       정해진 후계자는 에덴. 결정권자는 공작. 라인은 뭐, 없는 사람이니 넘어가고.

         

       ‘내 도움 없이는 힘으로만 밀고 들어가야 해.’

         

       하지만 무작정 힘으로만 하기엔 쉽지 않은 문제다. 장자 승계 원칙을 고수하는 가신이나 원로들도 있으니 말이다.

         

       “어쩔 수 없나.”

         

       내가 도와주는 수밖에.

         

       마지막. 정말 마지막이다.

         

         

       * * *

         

         

       현재 시각은 저녁. 파티가 무르익어가는 시간이다.

         

       나는 약속보다 더 이른 시각인 지금 황궁으로 들어와 파티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넓고 광활한 홀에 수많은 귀족이 담소를 나누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중심은 당연히 소미레와 라면 사리 황태자.

         

       천장에서 화려한 샹들리에가 반짝이고 곳곳에 놓인 커다랗고 새하얀 탁상에는 뷔페처럼 음식들이 즐비해 있다.

         

       그리고, 그 탁상의 앞에서 라데아가 음식을 미친 듯이 주워 담고 있다.

         

       ‘쟤 뭐 하는 거야?’

         

       근처에서 테이블에 앉아있는 프란체와 케일이 보였다.

         

       ‘아니, 케일도?’

         

       음식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포도주로 속을 적시고 있는 케일. 프란체는 그저 권태로운 얼굴로 턱을 괸 채 파티장을 지켜보고 있다.

         

       ‘개판이군.’

         

       나는 고개를 휘저으며 프란체에게 다가갔다.

         

       “공녀님, 저 왔습니다.”

         

       휙! 프란체는 재빠르게 고개를 돌리더니 나와 눈을 마주했다.

         

       “진!”

         

       많이 반가운 듯 방긋 미소를 짓는 프란체.

         

       “케일과 라데아가 임무는 잘 수행했습니까?”

       “수행할 것도 없지. 여기서 누가 나를 건드리겠어.”

         

       소미레가 또 이상한 짓을 꾸몄을지도 모르잖아. 뭐, 지금까지 별일 없었으면 괜찮겠지.

         

       “근데 라데아와 케일을 이렇게 둬도 됩니까? 파티장 음식을 거덜 낼 생각인가 본데요.”

         

       케일은 입안에 가득한 음식을 삼키곤 포도주를 들이켜더니 나를 쏘아봤다.

         

       “나를 무슨 돼지로 아는 건가? 이 음식들을 어떻게 거덜 내나.”

         

       그 접시에 쌓인 음식들만 30cm가 넘는 거 같은데. 심지어 네 접시나 있다.

         

       “그냥 두렴. 황실 주방장의 음식을 먹어볼 기회는 적으니까.”

         

       프란체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것보다 목적은 이뤘니?”

       “예.”

       “어땠니?”

       “음.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프란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답답하기만 했다고?”

       “예. 지금까지 생각한 게 다 틀렸더군요.”

       “응? 그건 무슨 소리야?”

         

       내가 묻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도 알아낸 건 있습니다.”

       “뭐니?”

         

       나는 주변을 둘러본 뒤 프란체에게 다가가 귓가에 속삭였다.

         

       “성녀가 공녀님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게 확실해졌습니다.”

         

       번뜩! 프란체의 눈이 한순간에 휘둥그레졌다.

         

       “역시 그런 거였지?”

       “예. 제가 확인하고 왔습니다.”

       “근데 어떻게 확인했는데?”

       “초월 마법사를 만났습니다.”

         

       아까는 한순간에 휘둥그레진 눈을 보여줬다가 이번에는 떡 벌어진 입을 보여주는 프란체.

         

       “초월 마법사?”

         

       나는 프란체에게 모든 것을 설명했다. 셀다스가 성녀의 뒷조사를 하고 있는데, 대신 움직이는 놈이 마력 흔적만 남기고 정체를 들키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모옥의 마스터와 싸우면서 의뢰자를 유추했는데, 그게 초월 마법사가 맞았다는 것까지.

         

       “초월 마법사가 왜 성녀랑?”

       “저도 당혹스럽습니다.”

         

       프란체의 안색이 단번에 무거워졌다. 심란함이 엿보인다.

         

       ‘내가 있으면 문제는 없는데…….’

         

       나중이 문제다. 내가 떠난 이후 초월 마법사가 프란체를 노리면 어쩌나?

         

       ‘카자르의 성취를 기대하는 수밖에.’

         

       초월자의 경지를 직전에 둔 카자르다. 시간만 조금 있다면 충분히 초월 마법사가 될 수 있을 터.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된 나는 프란체에게 미소를 보였다.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가 있지 않습니까? 여차하면 도와줄 엑시드도 있습니다.”

         

       이제는 남들을 믿어보기로 한 프란체다. 특히 카자르는 많은 신뢰를 받고 있다.

         

       “그래, 그렇지. 지금의 나라면 아무리 초월 마법사라도 나를 쉽게 건드리진 못할 거야.”

       “맞습니다. 페델리안 사자 패도 있으신 공녀님을 건드리면 문제가 될 게 한둘이 아니니까요.”

         

       지금 프란체는 제국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인물. 쉽게 건드릴 순 없다.

         

       ‘성녀가 황실의 일원으로 들어간 게 걸리긴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프란체는 견제하지 못하겠지. 내가 만들어놓은 프란체의 권력은 압도적이니까.

         

       “저희가 있으니 걱정을 덜어내셔도 좋습니다. 그를 위해서 저희가 존재하는 거니까요.”

         

       내 말에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프란체. 나는 적당한 미소를 보여주곤 시선을 돌렸다.

         

       그러던 그때.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어, 오셨네요?”

         

       라데아였다. 두 접시를 들고 왔는데, 음식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라데아, 빨리 자리에 앉아라.”

       “설마 먼저 드시고계셨어요?”

       “기다리느라 지쳤다.”

       “포도주도 먼저 드셨네!”

         

       사이 좋은 남매처럼 보인다. 프란체도 이 모습을 보며 픽 웃었다.

         

       “잘 지내니 다행이네.”

       “그러게 말입니다.”

         

       라데아는 접시를 내려놓곤 포도주를 잔에 따랐다.

         

       “와, 저 술 처음 먹어봐요.”

       “뭐?”

       “맥주도 비싸서 못 먹었는데.”

         

       잠깐, 그럼 주량이랑 주사를 모르는 거 아닌가? 여기는 황궁이라 좀 위험한데.

         

       “적당히 마셔라. 취하면 큰일이니까.”

       “저도 소드 마스터인데 쉽게 안 취하죠.”

         

       보통 그런 말을 하는 애들이 제대로 취한단 말이다.

         

       “자, 술 들어가자!”

         

       술잔에 가득 찬 포도주를 그대로 원샷하는 라데아. 저러면 속 쓰린데.

         

       “크이아! 와, 이거 진짜 맛있어요!”

         

       마치 신문물을 처음 맞이하는 사람처럼 눈을 번뜩이는 라데아.

         

       “그렇지? 황실 포도주가 기가 막힌다고. 이걸 어찌 참지 않고 기다리나?”

         

       케일은 이미 포도주 세 병을 비운 상태다.

         

       “와, 음식까지 맛있네. 저 눈물 나요…….”

         

       이윽고 라데아는 감동의 눈물까지 흘려 버렸다.

         

       “크흡, 저 공녀님을 모시게 되어서 영광이에요. 근데 이거 라이아에게도 먹여주고 싶은데…….”

         

       그리 말하곤 힐끔 내 눈치를 본다. 설마 음식 가져가려고?

         

       “허튼 생각하지 마. 차라리 돈 받은 거로 고급 레스토랑을 가라.”

       “아니, 황실 주방장의 요리는 레스토랑에서 못 먹잖아요…….”

       “그래도 품위 떨어지는 짓은 용납 못 해. 공녀님의 체면이 있잖아.”

         

       축 늘어지는 라데아. 그 와중에 음식은 꾸역꾸역 입에 집어넣는다. 처음 인상과 많이 달라진 거 같은데.

         

       ‘뭐, 원래 이런 성격이었겠지.’

         

       나는 피식 웃곤 라데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라이아는 황실 주방장의 음식보다 너랑 같이 레스토랑에서 단둘이 식사하는 걸 좋아할 거야.”

         

       오, 좀 멋있었어.

         

       “라이아는 착해서 그럴 거 같긴 해요.”

       “그래, 언니인 네가 잘 알겠지.”

         

       까칠하면서 가끔은 다정하고 어린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나이 차 많이 나는 여동생이 생긴 거 같다.

         

       “사이가 좋아 보여…?”

         

       옆에서 들려오는 프란체의 말과 동시에 서늘해지는 공기.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눈을 부릅뜨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프란체.

         

       ‘설마 마법을 사용했나?’

         

       마력의 흐름을 읽어보니 딱히 마법은 사용하진 않았다. 나는 서둘러 변명했다.

         

       “그냥 여동생 챙겨주는 느낌입니다. 공녀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게 아니에요.”

         

       심상치 않은 걸 느꼈는지 라데아는 입안에 들은 음식을 삼키지도 않고 변명했다.

         

       “맞아요, 저도 이 사람한테 관심 없어요. 그냥 의지할 수 있는 오빠로 생각하지.”

         

       케일도 거들었다.

         

       “공녀, 내 남녀 간의 관계에는 눈치가 더럽게 빠른데 이 둘은 아무런 사이도 아니야.”

         

       고맙다. 근데 너 그런 분위기를 잘 읽었구나. 그런 설정이 있는 줄은 몰랐네.

         

       “흐응…….”

         

       그러나 쉽게 의심을 멈추지 않는 프란체. 그저 눈을 얕게 뜨고 우리를 응시할 뿐이었다.

         

       “…….”

       “…….”

         

       심상치 않은 기류에 바짝 긴장된다.

         

       ‘아니, 진짜 왜 저러는 거야?’

         

       의존? 사랑? 소유욕? 집착?

         

       흑마법 때문에 여러 감정이 증폭된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저 넷 중에 뭐가 증폭된 건지 모르겠다.

         

       ‘설마 넷 다인가?’

         

       나에게 향하는 의존, 소유욕. 그에 따른 집착이 사랑으로 발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생각보다 큰일이군.’

         

       나는 애써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공녀님밖에 없습니다. 어찌 제 주인을 두고 다른 여성을 눈에 두겠습니까?”

         

       일단 질러봤다. 이게 통하면 프란체가 내게 가진 감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흐응, 그러니?”

         

       표정이 풀렸다.

         

       “그래, 그래야지. 너는 평생 나만의 것으로 남아야 하니까.”

       “맞습니다. 저는 다른 누구의 것이 되지 않아요.”

         

       살기가 거둬지자 라데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은 뒤 무슨 일 있었냐는 듯 평소로 돌아왔다. 덕분에 무거워졌던 분위기가 환기됐다.

         

       “백귀 아저씨. 이것도 먹어봐요.”

       “나는 아저씨가 아니다.”

       “저랑 비교하면 아저씨지, 뭐예요?”

       “너랑 나랑 고작 8살 차이다!”

       “28살이면 아저씨죠.”

         

       티격태격하는 라데아와 케일을 놔두고. 나는 프란체의 옆에 앉았다.

         

       “공녀님.”

       “왜?”

       “제게 따로 바라시는 게 있으십니까?”

       “바라는 것?”

         

       프란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를 들면 마음에 관한 것 있잖습니까.”

         

       대놓고 찔러봤다. 꿀꺽. 긴장감에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침이 돌덩이처럼 느껴졌다.

         

       “흐음…….”

         

       턱을 어루만지며 고민에 잠긴 프란체.

         

       “바라는 건 있네.”

       “무엇입니까?”

       “네가 평생 나와 같이 있는 것.”

       “그 마음의 근원은요?”

         

       근원이라 하니 다시 고민에 잠긴 프란체.

         

       “일단 소유욕이 크지. 너는 내가 샀고 내 첫 아군이면서 은인이니까. 아무한테도 주고 싶지 않아.”

         

       후, 그저 고마움과 주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이었던 건가.

         

       “근데 네가 다른 여자랑 있으면 불편하고, 가슴이 시큰거리면서 분노를 참을 수가 없는 거 아니겠니?”

         

       어…?

         

       “나도 모르게 질투를 하게 되네. 나는 이게 소유욕 때문에 그런 줄 알았어. 네가 다른 여자와 엮이면 온전히 내 것이 되는 게 아니니까.”

         

       왠지 불안하다.

         

       “근데 지금 곰곰이 생각하면서 말하다 보니 내가 느끼는 이게 무엇인지 짐작이 가네.”

         

       프란체는 눈썹을 좁힌 채 고개를 주억였다.

         

       “이건 사랑이 아닐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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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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