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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5

       “-8왕자가, 아, 아니 제1기사단 단장이 그 ‘백사자’였다니…. 놀라운 일이군요.”

         

       올해 입단한 신입 기사가 새로운 사실을 알았음에 눈을 끔뻑거렸다.

       설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왕족이 기사단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듯이.

       그러자 선임 기사로 보이는 이가 그의 심정을 이해한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무래도 신인들은 대부분 놀라더라. 그래도 드문 일은 아니야. 알게 모르게 왕족들 중 기사단에 입단하는 분들이 많거든. 특히 제1기사단으로.”

       “…왕당파.”

       “그렇지, 제1기사단의 경우 왕당파 귀족들이 모인 곳이니 그들을 이끌려면 아무래도 왕족이나 고위 귀족 정도는 돼야지. 해서 제1기사단의 요직은 대대로 왕족이 맡는다더군. …왕족이 단장까지 오르는 경우는 드물지만.”

       “실력이 엄청 뛰어난가 보군요.”

       “왜 겨루고 싶어?”

       “……한 번쯤은.”

       “아하하! 솔직하긴.”

         

       선임 기사는 왕족과 붙고 싶다는 당돌한 패기를 보이는 후임의 발언에 웃음이 다 나왔다.

       후임 기사의 객기를 비웃은 게 아니다.

       도리어 호승심에 불타는 것은 칭찬할 만한 사안이었지.

         

       또한.

         

       ‘실력자의 객기는 객기가 아니라 자신감의 발로라 할 수 있겠지. 이 녀석은 충분히 자격이 있고.’

         

       그가 아는 한 올해 신입 중 최고의 실력자라 할 만한 이가 제 앞에 있는 후임 기사였다.

       하루도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이미 3기사단에서도 몇몇을 제외하곤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으며, 매일 대련을 외치는지라 선임 기사들이 도리어 그를 회피하려 급급하다면 믿겠는가?

         

       ‘그 녀석이 있을 때도 대련인지 스파링인지 때문에 시끄럽긴 했는데, 그 녀석이 가고 나니 똑같은 후임이 나왔어.’

         

       이런 걸 보면 별종이란 건 끊임없이 나오는 게 맞다.

         

       …물론 ‘그 녀석’ 정도로 별종이 나오는 일은 드물 테지만.

         

       어쨌든, 다른 선임 기사들은 이 기운 넘치는 신입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지만, 그는 응원하는 편이었다.

       기사라 하면 응당 저토록 독해야 한다고 여기는 편이었기에.

         

       …다만, 안타깝게도.

         

       “아쉽게도 그쪽에서 상대해주지 않을 거다.”

       “어째서입니까?”

       “아무래도 1기사단은 3기사단을 상대해주지 않거든.”

         

       때로 현실은 잔혹한 법이었고, 제 뜻대로 되는 경우가 없음을 선임 기사는 알려줘야 했다.

         

       “으음….”

         

       후임은 선임의 말에 침음을 삼켰다.

         

       백은사자 제3기사단.

       고위 귀족들로 이루어진 1·2기사단과 달리 하위 귀족, 혹은 몰락 귀족 등이 많은 기사단.

       이 때문인지 기사단 내부에서 3기사단에 대한 취급은 떨이와 마찬가지인지라 무시당하는 처지였다.

         

       이를 상기하고 나니 후임 기사는 불만 어린 기색이 역력했다.

         

       “하아…. 이놈의 기사단은 겪으면 겪을수록 치가 떨립니다. 물론 궁전에서 정치가 빠질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이 정도로 지독할 줄 몰랐습니다. 과거엔 그냥 실력만 있으면 부단장까진 쉽게 갈 줄 알았는데.”

       “건방지긴. 여기서 부단장이 되는 게 쉬운 줄 알아? 그리고 엄살 부리지 마. 아직 입단한 지 반년도 안 됐잖아, 넌.”

       “…선배님이 새삼 존경스럽습니다. 이런 곳에서도 깨끗하신 것을 보면.”

         

       아부를 떠는 것 같지만,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가 아는 한 기사단에서 정치와 연관 없이 깨끗한 두 사람이 있는데, 그중 한 명이 선임이었으니 말이다.

         

       왕실 기사로 있어 보니 저러한 것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 깨닫게 되는지라, 존경심마저 생긴다.

         

       기사의 모범이 아닐 수 없기에.

         

       “아서라, 존경할 놈을 존경해야지. 난 딱히 깨끗한 게 아니야. 그저 적당히 타협하면서 기사 일을 하는 것뿐이지.”

         

       존경의 시선을 받은 선임 기사, 제이크 파먼은 후임 기사인 요르드에게 자신을 너무 높게 평가하지 말라며 고개를 저었다.

         

       “난 단지 정치에 낄 수도 없을 정도로 몰락한 기사 가문의 후예인 거고. …무엇보다 친구를 잘못 만든 탓에 윗선에게 밉보인 것도 있으니, 이미 출세는 포기한 거기도 하지.”

       “…어어.”

       “그렇게 불쌍하게 보지 마라. 그래도 쓸데없는 곳에 시간 투자 안 해서 실력은 올랐으니까.”

       “……확실히 제이크 선배님과의 대련은 항상 재밌지요.”

       “난 항상 살이 떨린다만.”

         

       제이크는 쓴웃음을 지었다.

         

       ‘신분만 좀 더 높았으면 빠르게 출세했을 녀석일 텐데.’

         

       제이크는 요르드의 실력이 아까웠다.

       신입들 중에선 분명 제일가는 실력자임이 분명한데, 안타깝게도 3기사단이란 이유로 저평가당하는 그였으니까.

         

       모처럼 마음에 드는 후배가 좀 더 높이 날아올랐으면 어떨까 싶은 아쉬움이 드는 제이크였다.

         

       ‘이런 녀석이 백은사자를 대표하는 녀석이어야 하거늘….’

         

       각각 명문 기사단을 대표하는 젊은 기사들.

         

       트리스탄의 베일 경이나 라이오넬의 막시무스 경 같은 기사들은 젊은 기사들을 대표하는 자들이었다.

       이처럼 왕실 기사단을 대표하는 자가 다름 아닌 8왕자인데, 제이크는 과거 먼발치에서 보았던 8왕자의 실력을 관측하며 ‘괜찮은 재능이다’ 평가할 뿐, ‘대단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해는 하지 마라.

       왕족이란 이유로 선입견이 생긴 게 아니었다.

       지극히 느낀 바를 말하는 거지.

         

       ‘기사단을 대표한다는 건 [압도적인 능력]을 보여야 하는 거니까.’

         

       단순히 재능이 뛰어난 이들은 기사단에도 널리고 널렸다.

       하여 기사단을 대표하고 싶다면 널리고 널린 재능을 뛰어넘을 압도적인 성과나 능력을 보여야 하는 것이 옳다.

         

       허나 그가 보았던 1기사단장….

       흔히 ‘팬드래건의 백사자’라 불리는 이의 실력은 압도적인 것과 거리가 멀었고, 제이크는 불경하지만, 몇 가지 추측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왕실은 부족한 정통성을 채우려는 걸지도?’

         

       현 왕실.

       그러니까 현 국왕은 정통성이 부족한 자다.

         

       왕족이 왕족이지, 무슨 정통성이 부족하냐고 할 수도 있지만, 아마 이 의견은 모두가 동의할 터.

         

       ‘형이 너무 위대한 게 문제지….’

         

       선왕, 군신이라 불린 위대한 왕에겐 아쉽게도 자식 복이 없었다.

       두 명의 자식을 낳았으나, 하필 첫째 아들은 지병이 있어 오래 살지 못하였고, 둘째는 대단한 왕재(王才)를 지녔으나, 마검의 선택을 받아 갈라하드의 이름을 이었으니까.

         

       그 때문에 선왕은 마땅한 후계자를 낳지 못한 채 승하했고, 결국 그 뒤를 이은 건 군신의 하나뿐인 ‘동생’이었다.

         

       그나마 군신이 신임했던 왕자가 왕위를 물려받은 것이었으나, 이로 인해 내부에서 말이 많았다고 한다.

         

       ‘현왕께서 무능한 것은 아닌데, 참….’

         

       감히 기사 따위가 왕의 능력을 재려는 것은 건방지다 못해 불경한 것이지만, 아마 지금 상황에서 제이크만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한 번쯤은 왕의 능력을 가늠했으리라.

       정녕 현왕이 군신의 뒤를 잇기에 적합한지.

         

       그리고 비교할 대상이 너무 거대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현왕의 능력은 사람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그에 대한 반동처럼 현왕께서도 자주 ‘실수’를 하시니 그로 인해 여럿 재앙이 일어나는 상황….

         

       해서 현 왕실은 그 어느 때보다 힘과 명분이 떨어진다.

       그나마 아이시스 왕녀란 걸출한 후계자가 등장했으니, 다음 세대가 기대되긴 했지만.

       아직은 정정한 현왕인지라 왕녀가 다음 왕위를 계승하는 건 훗날의 일일 따름이다.

         

       어쨌든, 이런 상황이다 보니 왕실은 명분 쌓기와 권위 등을 강제로라도 끌어올리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중인데,

       아마 8왕자가 왕족 중 최초로 기사단장에 오르거나 기대주로 떠받들어지는 이유에는 이러한 왕실의 사정 때문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제이크의 추측이었다.

         

       그러니 실상.

         

       ‘백은사자를, 아니 팬드래건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는 8왕자는 아니다.’

         

       당장은 요르드도 아니다.

       분명 잠재력은 있지만, 아직은 여물지 않았으니까.

         

       하기에 제이크가 떠올리는 최고의 기사는….

         

       ‘…그놈은 명성 따윈 필요 없다고 하겠지만, 아무래도 생각나는 건 녀석밖에 없네.’

         

       입단과 동시에 선배 기사들 전원을 신전 침대로 보내버리고, 발타르 경과 무려 3년이 넘도록 대련을 지속했음에도 몸이 불구가 되지 않은 유일무이한 기사.

       최근엔 학술원의 영웅 소리마저 듣는…!

         

       ‘그래, 그놈 정도 돼야 팬드래건을 대표하는-.’

         

       “-어? 너 여기서 뭐하냐?”

         

       “……?”

         

       “이야, 간만이다.”

         

       “이, 이한…?”

         

       …저놈이 왜 여기 있지?

         

       제이크는 조금 전까지 떠올리던 친구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당황한 건지 눈을 끔뻑거렸다.

       반갑기는 했다.

       그의 말대로 오랜만에 보는 것이니까.

         

       다만, 반가운 것과 달리….

         

       “저…, 선배님.”

       “응? 누구였지?”

       “요, 요르드 데커입니다. 왜에…, 선배님이 전출 가시기 전 검을 겨루었던….”

       “……아! 그때 제법 하던 놈이구나. 너 오랜만이다.”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 한데 그것이….”

         

       요르드는 제이크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며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분명 만나고 싶은 선배와의 만남임에도 차마 반가워할 수가 없는 상황.

         

       그도 그럴 게….

         

       “그, 그거 뭐냐?”

         

       어느 사내의 목덜미를 잡고 질질 끌고 가는 이한을 확인하며 차마 냉정하게 구는 것도 어려운 일일 터이니.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후배에 물음에 이한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그냥, 못 본 척하지 않을래?”

       “…….”

       “괜히 끼어들었다간 너희도 골치 아파질 것 같은데.”

       “…….”

       “크흠.”

       “…미친놈.”

         

       제이크는 자신의 생각을 정정하기로 했다.

         

       저놈은 그냥 재앙이 분명하다고….

         

       * * *

         

       ……변명하는 것 같지만, 그도 억울한 구석이 있다.

         

       “갑자기 미친놈처럼 덤벼드는데, 그럼 내가 맞고만 있으랴?”

         

       얌전히 길 가는 놈한테 시비 건 놈 잘못이지, 그걸 대응한 놈에게 잘못이 어디 있겠는가?

       이한은 중세 로판식 힘의 논리를 펼칠 따름이었고, 타당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싶었다.

         

       다만.

         

       “그래, 이유는 알겠는데, 왜 하필 그게 왕족이냐고!”

       “…….”

       “왕족한테 그런 논리가 통할 것 같냐!”

       “…끄응.”

         

       그래, 힘의 논리로 밀고 가고 싶어도 상대는 권력이 너무 세다.

       하필 왕족이고, 그런 왕족을 팼으니 아무래도 그가 불리할 수밖에.

       아마 왕자가 깨어나서 맞았다고 말만 해도 백은사자 절반이 그의 적이 될 것이며, 재판으로 밀고 가도 자기만 무조건 죽일 놈이 될 테지.

         

       ……하니.

         

       푸욱, 푸욱!

         

       “…선배님들,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나한테 묻지 말고, 사고 친 놈한테 물어…!”

       “…이한 선배님?”

         

       요르드는 의심 가는 시선으로 이한을 보았고, 그는.

         

       “됐어, 책임은 내가 진다. -묻어.”

         

       “…….”

         

       요르드 데커.

       그는 설마 기사가 되어 야산에 올라 삽질을, 그것도 이토록 큰 구덩이를 파게 될 줄 몰랐다며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며 다시금 의문이 치솟는다.

         

       …이게 정말 맞나 싶어서.

         

       “이거 범죈데요….”

       “하아, 아버지가 이걸 알면 날 죽이려고 들 거야.”

         

       요르드의 중얼거림이었고, 제이크는 친구 잘못 사귄 죄라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허나 이한은 묵묵히 땅을 팠고, 기사 세 명이 흙을 파니 엄청나게 큰 구덩이를 파는 건 순식간이었다.

         

       “사람 인생 뭐 있냐. 죽을 땐 다 땅으로 돌아가는 법이지. 이놈은 그날이 좀 더 빨리 왔을 뿐이야.”

       “…….”

       “후배야 기억하렴. 원래 사고를 칠거면 철저하게 쳐야한다는 걸.”

       “…그다지 배우고 싶지 않은 교훈이군요.”

         

       후배 기사의 어처구니없다는 읊조림.

         

       허나 이한은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이놈은 묻는 게 답이다.’

         

       행방불명.

       최악이 아닌 차악의 수단이 아닐 수 없는 바.

         

       아무렴 걱정은 마라.

       요르드에게 장난 식으로 말한 것처럼 진짜로 죽이기야 하겠는가.

         

       ‘협박은 원래 극단적으로 해야 먹히는 거지.’

         

       얼굴만 빼놓고 한 일주일만 굶기다 보면 순순히 협조(?)해 줄 것이다.

         

       아마 이를 알기에 제이크도 그에게 협력하는 게 아닐까 싶다.

         

       “자, 이제 보내볼까.”

         

       움찔!

         

       “…?”

         

       “…….”

         

       “…흠.”

         

       …이한은 일순 느껴지는 기척에 삽으로 은발머리의 남성을 툭툭 쳤고, 남성은.

         

       움찔!!

         

       …크게 몸을 들썩거렸다.

         

       이를 확인하며….

         

       “야, 너 정신 차렸지?”

       “…….”

       “…묻히고 나면 입 열래?”

       “…꿀꺽.”

       “3초 준다, 3,2,1….”

       “…기, 기회를 주마. 지금이라도 사죄한다면 모든 일을 함구하도록 하겠다.”

       “…….”

       “특별히 주는 기회다. 지금이라면….”

       “일단 팔이랑 다리부터 떼버리면 되나? 어차피 쓸모도 없을 텐데.”

       “─이노오오옴! 감히 나 아렌 드 팬드래건을 어찌 알고! 그따위 협박에 내가 굴복할 것 같으냐!”

       “…….”

       “죽여라! 이따위 굴욕을 받으면서까지 살아있을 이유는 없다!!”

       “…….”

       “어서…!”

       “…오.”

         

       이한은 감탄했다.

         

       놈의 기개 어린 태도에?

         

       아니다.

         

       다름 아닌.

         

       “…무릎 꿇는 것도 못 봤는데, 언제 꿇었지?”

         

       자신의 눈으로도 미처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무릎을 꿇는 놈이었고, 이한은 제법이란 시선을 주었다.

         

       역시 권모술수에서 살아남은 왕족.

         

       ‘눈치는 없는데, 생존본능 하나는 넘쳐나네.’

         

       반항하면 진짜로 사지 중 하나를 자를 마음이었던 그였다.

         

         

       이한, 그는 농담 섞인 진담을 자주 하는 편이었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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