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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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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크흠…아뇨 잘 들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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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의 얼굴이 사색이 되기 전에 다행히 오해는 쉽게 풀렸다. 리안이 상체를 일으켜 앉으려 하자 주변에서 난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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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어쩔 수 없이 침대에 몸을 뉘인 채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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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러지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시나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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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반사적으로 떠오른 기억에 얼굴 하관에 손을 올렸다. 코 안쪽이 시큰거리는 게 또 코피가 터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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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몇 번 코피를 터뜨린 덕분에 내성이 생겼는지 코피가 흘러나오진 않았다. 리안은 눈동자를 도르륵 굴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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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음, 네. 기억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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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칸은 침대를 에워싼 릴리와 네로, 노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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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료를 위해 잠시 다들 나가주셨으면 합니다.”
    “네?”
    “하지만…”
    “저는 옆에서 보조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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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정도 치료에 관한 지식을 가진 릴리를 제외한 두 사람은 의료실에서 쫓겨났다. 뮤칸은 차분한 얼굴로 침대 옆에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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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가 길게 이어질 거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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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자분 몇 번이고 토혈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언제부터 그러셨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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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칸의 말에 조용히 뒤에 서 있던 릴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리안은 곤란하다는 얼굴로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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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음, 굳이 기간을 정하자면 태어날 때부터? 그랬던 거 같아요.”
   “…기억이 형성되었을 때부터 이미 그런 상태였다는 거군요.”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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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환생자답게 갓난아기 시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니 ‘기억이 형성되었을 때부터’와 ‘태어났을 때부터’는 리안에게 같은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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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뮤칸에겐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매우 어렸을 때 실험당했다.’라는 뜻으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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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에도 자주 토혈하시는 편입니까?”
    “아뇨, 그러진 않아요. 정신적 충격을 받거나, 새끼발가락을 찧으면 그래요. 아,그… 이상하게 들린 순 있지만 제 체질 같은 거라…”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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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칸이 담담한 얼굴로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자 리안의 표정이 한결 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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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끔찍한 것들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건 놀라운 정신력 덕분인가 보네. 새끼발가락을 찧으면 피를 토한다는 건 아마…거기가 역린이라서 그렇겠지.’
    ‘역시 그대로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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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은 동상이몽을 하고 있었지만, 지적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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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토혈을 했을 때 어떤 상황이었나요?”
    “어,음… 뭔지 모르고 이상한 음식을 먹었을 때나, 가슴이 쿡쿡 찌르는 듯한 말을 들었을 때, 예상하지 못한 장면을 봤을 때… 였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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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료실에 들어가면 자신도 모르게 미주알고주알 전부 털어놓게 되는 것처럼 리안은 술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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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마는 어쩌다가 다치신 겁니까? 자해를 한 것처럼 보이는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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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얘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주는 뮤칸의 모습에 모든 걸 진실되게 말할 수 있었지만, 이것만큼은 정직하게 이유를 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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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의..그 장면 때문에 욕정이 치솟아서 벽에 이마를 박았다고 말할 순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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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귓바퀴를 붉히며 머리를 마구 굴리기 시작했다. 떠오르는 말이 마땅히 없었다. 길게 생각을 이어가기엔 뮤칸의 시선이 너무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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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요즘 고민이 생겨서 저도 모르게 그랬네요.”
   “아무리 고민이 있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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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에서 입을 꾹 닫고 있던 릴리가 반사적으로 목소리를 높였지만, 뮤칸의 손짓에 결국 입을 다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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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에도 자주 그러시나요?”
    “아뇨,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흠, 무슨 고민인지 혹시 알려주실 수 있나요? 속 시원하게 털어놓으면 마음이 편하실 거예요.”
   “아,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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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눈이 마구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말랑하고..하얗고..봉긋한 그 장면이 눈앞을 떠나지 않는다는 말을 차마 꺼내놓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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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뭐라고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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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답하지 않는 방법도 존재했지만, 그런 행동을 하면 도리어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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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민, 고민…다른 고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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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문득 최근에 가지고 있던 새로운 고민을 떠올렸다. 그 고민이 이 상황에 어울리는지 아닌지 한 번 더 생각해보기도 전에 입 밖으로 꺼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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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번 습격 사건에서 제가 마왕..군에게 찍힌 것 같아서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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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도 하지 못한 말에 릴리는 탄성조차 뱉지 못하고 멍하니 입을 벌렸고, 뮤칸은 경악 어린 얼굴로 리안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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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번 말이 트이자 줄줄 제 고민이 쏟아져나왔다. 뮤칸과 릴리 모두 여정에 함께할 사람이라 더 그랬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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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왕이라는 사람을 마주쳤었는데 하는 말을 들어보니까 마왕군이 이유를 알 순 없지만, 저와 네스트 조직을 노리고 있다더라구요. 언제 어디서 습격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여서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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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의 새 하얀 가슴이 눈앞을 떠나지 않아요.’ 라는 이유보다는 훨씬 건전하고 정상적인 내용이었기에 리안이 만족스럽게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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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얘기를 했어야지!”
   “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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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의 호통에 리안의 웃음이 흐트러졌다. 뮤칸도 이번만큼은 릴리를 막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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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는 리안을 잔뜩 혼낸 후 노아와 네로를 방으로 데려왔다. 노아가 무거운 표정으로 릴리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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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리안은..”
    “하아…이 오빠는 항상 사고만치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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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을 째려보는 릴리의 모습에 노아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무수히 생겨났다. 리안이 더듬거리며 아까 했던 말을 그대로 하자 노아와 네로도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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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은 정말!”
   “그런 걸 혼자서만 알고 있으면 어떡해!”
    “그..나도 축하 파티가 끝나면 말하려고 했지. 아! 그것보다 축하 파티! 빨리 가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나 이제 팔팔해! 그렇죠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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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절실하게 뮤칸을 바라보자, 팔짱을 낀 채 약초를 질겅질겅 씹던 뮤칸의 시선이 리안의 배 쪽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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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상태가 나빠 보이진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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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치료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고, 블러 처리된 것처럼 자세히 살펴볼 순 없었지만, 상태가 나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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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뭣보다 당장 죽을 것 같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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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혹한 마왕의 땅에선 당장 쓰러져 죽을 것 같은 상황이 아니고서야 병실에 누워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 이유로 뮤칸은 선뜻 리안의 뜻에 긍정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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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봐봐! 자, 어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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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사람은 리안을 침대에 눕혀두고 싶었지만, 그를 진료한 뮤칸이 괜찮다고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함께 파티장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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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깜짝 파티를 하려고 했는데..”
    “오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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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자 릴리가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노아는 어느새 가벼워진 분위기를 느끼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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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이게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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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의 근처에 있으면 모든 문제가 정말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피를 쏟아내던 문제도, 마왕 군이 네스트를 노린다는 것도 전부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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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개그 필터와 리안의 여유 있는 분위기 때문이었지만 노아가 이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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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중간에 피 묻은 옷을 갈아입고 세 사람과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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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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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끄러운 파티장에 들어오자 조금 전에 겪었던 무거운 분위기는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가 버렸다. 그 사실에 노아는 도리어 착잡해졌지만, 모두의 웃음을 마주하고 있자 정신이 명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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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실수는 하지 않겠다고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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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감정에 매몰되어 그 어떤 것도 지키지 못했던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며 노아는 정신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녀는 어느새 단단해진 눈으로 리안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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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대로 마주하고 이야기하자. 모르는 게 있다면 물어보면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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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까지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노아가 결심을 굳히고 있을 때, 리안은 제스에게 붙잡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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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쮠님 이거 맛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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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사냥감을 물어오는 것처럼 제스는 자신이 먹어봤던 음식 중 맛있는 걸 전부 가져와 리안의 접시에 올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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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 입에 묻었잖아.”
   “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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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테이블 위에 놓인 냅킨을 들자 제스가 습관적으로 리안에게 얼굴을 내밀었다. 눈을 내리 깐 채 가까워지는 얼굴을 보며 리안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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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눈썹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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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슥슥, 입가를 닦아주자 말랑한 입술이 뭉개졌다. 기름진 음식을 먹은 탓에 입술이 반짝거렸다. 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제스의 입술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조용히 입을 닫고 눈을 내리깐 제스는 이미 성숙해질 대로 성숙해진 모습이라 굉장히 섹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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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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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엑?! 쮠님?!”
    “아,음. 별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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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제 오른손으로 얼굴을 가격하곤 왼손을 들어 가볍게 흔들어 괜찮다는 뜻을 전했다. 경악한 제스가 귀를 쫑긋 세우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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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쮠님 왜? 왜 때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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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리안의 얼굴을 확인하고자 제스가 덥석 리안의 얼굴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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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어? 잠깐만 제스야아?”
    “볼 빨개졌어!”
    “아니, 그…조금만 떠, 떨어져 주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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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몸이 점점 뒤로 물러나고 제스의 얼굴이 빠르게 가까워졌다. 제스의 짐승을 닮은 눈동자를 마주하자 목덜미가 물린 먹잇감처럼 몸이 굳어버렸다. 숨결이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졌다고 느낀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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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켜.”
   “흐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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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제스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허공을 날아오른 제스가 가볍게 빙글 몸을 회전시킨 후 바닥에 훌륭한 자세로 착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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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제스 묘기 부린 거야?”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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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작스러운 제스의 묘기에 사람들이 손뼉을 쳤다. 그 사이 리안의 곁으로 다가온 아이리스는 도도한 귀족가 아가씨의 얼굴을 하곤 자연스럽게 리안의 무릎 위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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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기 아이리스?”
   “응?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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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순하게 풀린 얼굴로 리안을 올려다보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있어도 예쁜 얼굴이 사랑스러운 미소까지 머금자 눈이 부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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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것도 아니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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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아이리스도 다 컸으니까 무릎 위에 앉고 그러는 거 아니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초롱초롱한 시선을 마주하니 모든 말이 사그라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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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아 -.”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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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아이리스가 먹여주는 음식을 먹으며 찔끔 눈물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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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엊그제만 해도 내가 다 먹여줬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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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아이리스에게 효도 받으며 감격에 잠겨 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노아를 시작으로…주변을 의식하기 시작한 리안.

모쏠아다라서 아직은 화들짝 놀라기 바쁘지만 나중엔 천연 플러팅 달인이 될 리안, 오늘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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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흠…아뇨 잘 들려요.”

모두의 얼굴이 사색이 되기 전에 다행히 오해는 쉽게 풀렸다. 리안이 상체를 일으켜 앉으려 하자 주변에서 난리가 났다.

리안은 어쩔 수 없이 침대에 몸을 뉘인 채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쓰러지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시나요?”

“아…”

리안은 반사적으로 떠오른 기억에 얼굴 하관에 손을 올렸다. 코 안쪽이 시큰거리는 게 또 코피가 터질 것 같았다.

그래도 몇 번 코피를 터뜨린 덕분에 내성이 생겼는지 코피가 흘러나오진 않았다. 리안은 눈동자를 도르륵 굴리며 말했다.

“어음, 네. 기억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그럼…”

뮤칸은 침대를 에워싼 릴리와 네로, 노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진료를 위해 잠시 다들 나가주셨으면 합니다.”

“네?”

“하지만…”

“저는 옆에서 보조할게요.”

어느 정도 치료에 관한 지식을 가진 릴리를 제외한 두 사람은 의료실에서 쫓겨났다. 뮤칸은 차분한 얼굴로 침대 옆에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대화가 길게 이어질 거라는 뜻이었다.

“환자분 몇 번이고 토혈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언제부터 그러셨죠?”

“아..”

뮤칸의 말에 조용히 뒤에 서 있던 릴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리안은 곤란하다는 얼굴로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으음, 굳이 기간을 정하자면 태어날 때부터? 그랬던 거 같아요.”

“…기억이 형성되었을 때부터 이미 그런 상태였다는 거군요.”

“그렇죠?”

리안은 환생자답게 갓난아기 시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니 ‘기억이 형성되었을 때부터’와 ‘태어났을 때부터’는 리안에게 같은 의미였다.

하지만 뮤칸에겐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매우 어렸을 때 실험당했다.’라는 뜻으로 들렸다.

“평소에도 자주 토혈하시는 편입니까?”

“아뇨, 그러진 않아요. 정신적 충격을 받거나, 새끼발가락을 찧으면 그래요. 아,그… 이상하게 들린 순 있지만 제 체질 같은 거라…”

“그렇군요.”

뮤칸이 담담한 얼굴로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자 리안의 표정이 한결 풀어졌다.

‘저 끔찍한 것들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건 놀라운 정신력 덕분인가 보네. 새끼발가락을 찧으면 피를 토한다는 건 아마…거기가 역린이라서 그렇겠지.’

‘역시 그대로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구나!’

두 사람은 동상이몽을 하고 있었지만, 지적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지금까지 토혈을 했을 때 어떤 상황이었나요?”

“어,음… 뭔지 모르고 이상한 음식을 먹었을 때나, 가슴이 쿡쿡 찌르는 듯한 말을 들었을 때, 예상하지 못한 장면을 봤을 때… 였던 것 같아요.”

진료실에 들어가면 자신도 모르게 미주알고주알 전부 털어놓게 되는 것처럼 리안은 술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마는 어쩌다가 다치신 겁니까? 자해를 한 것처럼 보이는데..”

“아.”

제 얘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주는 뮤칸의 모습에 모든 걸 진실되게 말할 수 있었지만, 이것만큼은 정직하게 이유를 말할 수 없었다.

‘노아의..그 장면 때문에 욕정이 치솟아서 벽에 이마를 박았다고 말할 순 없지.’

리안은 귓바퀴를 붉히며 머리를 마구 굴리기 시작했다. 떠오르는 말이 마땅히 없었다. 길게 생각을 이어가기엔 뮤칸의 시선이 너무 뜨거웠다.

“그, 요즘 고민이 생겨서 저도 모르게 그랬네요.”

“아무리 고민이 있다고 해도..!”

뒤에서 입을 꾹 닫고 있던 릴리가 반사적으로 목소리를 높였지만, 뮤칸의 손짓에 결국 입을 다물고 말았다.

“평소에도 자주 그러시나요?”

“아뇨,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흠, 무슨 고민인지 혹시 알려주실 수 있나요? 속 시원하게 털어놓으면 마음이 편하실 거예요.”

“아,으음…”

리안이 눈이 마구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말랑하고..하얗고..봉긋한 그 장면이 눈앞을 떠나지 않는다는 말을 차마 꺼내놓을 수 없었다.

‘뭐, 뭐라고 하지!’

대답하지 않는 방법도 존재했지만, 그런 행동을 하면 도리어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았다.

‘고민, 고민…다른 고민이..’

리안은 문득 최근에 가지고 있던 새로운 고민을 떠올렸다. 그 고민이 이 상황에 어울리는지 아닌지 한 번 더 생각해보기도 전에 입 밖으로 꺼내졌다.

“사실… 이번 습격 사건에서 제가 마왕..군에게 찍힌 것 같아서요.”

“..예?”

상상도 하지 못한 말에 릴리는 탄성조차 뱉지 못하고 멍하니 입을 벌렸고, 뮤칸은 경악 어린 얼굴로 리안을 바라보았다.

한번 말이 트이자 줄줄 제 고민이 쏟아져나왔다. 뮤칸과 릴리 모두 여정에 함께할 사람이라 더 그랬을지도 몰랐다.

“사천왕이라는 사람을 마주쳤었는데 하는 말을 들어보니까 마왕군이 이유를 알 순 없지만, 저와 네스트 조직을 노리고 있다더라구요. 언제 어디서 습격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여서 하하!”

‘보스의 새 하얀 가슴이 눈앞을 떠나지 않아요.’ 라는 이유보다는 훨씬 건전하고 정상적인 내용이었기에 리안이 만족스럽게 웃어 보였다.

“얘기를 했어야지!”

“어어?”

릴리의 호통에 리안의 웃음이 흐트러졌다. 뮤칸도 이번만큼은 릴리를 막지 않았다.

릴리는 리안을 잔뜩 혼낸 후 노아와 네로를 방으로 데려왔다. 노아가 무거운 표정으로 릴리를 바라보았다.

“그래서…리안은..”

“하아…이 오빠는 항상 사고만치는 것 같아.”

리안을 째려보는 릴리의 모습에 노아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무수히 생겨났다. 리안이 더듬거리며 아까 했던 말을 그대로 하자 노아와 네로도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형은 정말!”

“그런 걸 혼자서만 알고 있으면 어떡해!”

“그..나도 축하 파티가 끝나면 말하려고 했지. 아! 그것보다 축하 파티! 빨리 가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나 이제 팔팔해! 그렇죠 선생님?”

리안이 절실하게 뮤칸을 바라보자, 팔짱을 낀 채 약초를 질겅질겅 씹던 뮤칸의 시선이 리안의 배 쪽을 향했다.

‘뭐, 상태가 나빠 보이진 않네.’

여전히 치료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고, 블러 처리된 것처럼 자세히 살펴볼 순 없었지만, 상태가 나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뭣보다 당장 죽을 것 같지도 않고.’

잔혹한 마왕의 땅에선 당장 쓰러져 죽을 것 같은 상황이 아니고서야 병실에 누워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 이유로 뮤칸은 선뜻 리안의 뜻에 긍정해주었다.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봐봐! 자, 어서 가자!”

세 사람은 리안을 침대에 눕혀두고 싶었지만, 그를 진료한 뮤칸이 괜찮다고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함께 파티장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깜짝 파티를 하려고 했는데..”

“오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니까?”

리안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자 릴리가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노아는 어느새 가벼워진 분위기를 느끼며 생각했다.

‘그래, 이게 문제야.’

리안은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의 근처에 있으면 모든 문제가 정말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피를 쏟아내던 문제도, 마왕 군이 네스트를 노린다는 것도 전부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는 개그 필터와 리안의 여유 있는 분위기 때문이었지만 노아가 이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리안은 중간에 피 묻은 옷을 갈아입고 세 사람과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보스 축하드려요!””

시끄러운 파티장에 들어오자 조금 전에 겪었던 무거운 분위기는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가 버렸다. 그 사실에 노아는 도리어 착잡해졌지만, 모두의 웃음을 마주하고 있자 정신이 명료해졌다.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실수는 하지 않겠다고 했잖아.’

제 감정에 매몰되어 그 어떤 것도 지키지 못했던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며 노아는 정신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녀는 어느새 단단해진 눈으로 리안을 바라보았다.

‘제대로 마주하고 이야기하자. 모르는 게 있다면 물어보면 되는 거야.’

언제까지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노아가 결심을 굳히고 있을 때, 리안은 제스에게 붙잡혀있었다.

“쮠님 이거 맛있어요!”

마치 사냥감을 물어오는 것처럼 제스는 자신이 먹어봤던 음식 중 맛있는 걸 전부 가져와 리안의 접시에 올려주었다.

“제스 입에 묻었잖아.”

“으응?”

리안이 테이블 위에 놓인 냅킨을 들자 제스가 습관적으로 리안에게 얼굴을 내밀었다. 눈을 내리 깐 채 가까워지는 얼굴을 보며 리안은 생각했다.

‘속눈썹 길다.’

슥슥, 입가를 닦아주자 말랑한 입술이 뭉개졌다. 기름진 음식을 먹은 탓에 입술이 반짝거렸다. 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제스의 입술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조용히 입을 닫고 눈을 내리깐 제스는 이미 성숙해질 대로 성숙해진 모습이라 굉장히 섹시 -…

퍼억!

“흐엑?! 쮠님?!”

“아,음. 별거 아니야.”

리안은 제 오른손으로 얼굴을 가격하곤 왼손을 들어 가볍게 흔들어 괜찮다는 뜻을 전했다. 경악한 제스가 귀를 쫑긋 세우며 말했다.

“쮠님 왜? 왜 때려요?”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리안의 얼굴을 확인하고자 제스가 덥석 리안의 얼굴을 붙잡았다.

“어어? 잠깐만 제스야아?”

“볼 빨개졌어!”

“아니, 그…조금만 떠, 떨어져 주면 안 될까?”

리안의 몸이 점점 뒤로 물러나고 제스의 얼굴이 빠르게 가까워졌다. 제스의 짐승을 닮은 눈동자를 마주하자 목덜미가 물린 먹잇감처럼 몸이 굳어버렸다. 숨결이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졌다고 느낀 순간.

“비켜.”

“흐냑!”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제스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허공을 날아오른 제스가 가볍게 빙글 몸을 회전시킨 후 바닥에 훌륭한 자세로 착지했다.

“오!”

“제스 묘기 부린 거야?”

“대단하다!”

갑작스러운 제스의 묘기에 사람들이 손뼉을 쳤다. 그 사이 리안의 곁으로 다가온 아이리스는 도도한 귀족가 아가씨의 얼굴을 하곤 자연스럽게 리안의 무릎 위에 앉았다.

“저기 아이리스?”

“응? 왜?”

아이리스는 순하게 풀린 얼굴로 리안을 올려다보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있어도 예쁜 얼굴이 사랑스러운 미소까지 머금자 눈이 부실 정도였다.

“..아무것도 아니야.”

“응.”

이제 아이리스도 다 컸으니까 무릎 위에 앉고 그러는 거 아니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초롱초롱한 시선을 마주하니 모든 말이 사그라들고 말았다.

“오빠, 아 -.”

“아아..”

리안은 아이리스가 먹여주는 음식을 먹으며 찔끔 눈물을 보였다.

‘엊그제만 해도 내가 다 먹여줬었는데…’

리안은 아이리스에게 효도 받으며 감격에 잠겨 들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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