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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5

   EP.105

     

   내가 세상을 살아본 바로, 모든 것을 다 잘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모든 예체능에 재능이 있고 공부도 잘하고 심지어 잘 생기기까지 한 사람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막상 돌아보면 그런 사람에게도 부족한 점이 하나씩은 반드시 존재한다.

     

   그들 모두 각자가 힘들어하는 분야가 있다는 것.

   그것은 인간이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도록 신이 계산한 고도의 설계가 아닐까.

     

   그리고 나는…

   누군가와 친해지는 것에 대한 재능이 멸망하다시피 된, 극도의 아웃사이더였다.

     

   ‘하필이면 내용도 이런 내용이……’

     

   타인과 친해지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이것보다 쉬운 일이 없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검을 휘두르고 무공을 배우며 비무를 펼치는 것보다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더 까다로운 일이었다.

     

   “뭔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요?”

   “……”

     

   게다가 이 임무를 보낸 존재가 도우미도 성좌도 아닌 것 같았다.

   이쯤이면 한마디씩 했을 성좌들은 전혀 반응이 없었고 토끼 또한 내 눈앞에 떠오른 임무를 공유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이번 임무의 주체는 다른 무엇도 아닌 ‘탑’이었고 멸망 직후부터 지금까지 이런 유형의 임무가 떠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실패 페널티도 그렇게 극단적이지는 않고…’

     

   내 앞에 서 있는 용이 격을 잃고 나는 용족들의 적대감을 얻게 된다는 것.

   물론 적이 늘어나는 것이 부정적일 수는 있으나, 애초에 매번 사망이라는 페널티만 줄줄 달고 다니던 나로서는 딱히 아쉬울 것도 없는 조건이었다.

     

   ‘그나저나 탑의 임무라……’

     

   탑은 성좌들이 만든 놀이터가 아니었나?

   플레이어들을 키우고 자신들의 권속으로 거느리기 위한 기초적인 발판 같은 게 아니었던가?

     

   뭔가 다른 플레이어들은 알지 못 하는 새로운 비밀 하나를 알게 된 것 같아 기분이 묘하다.

   그리고 이 불확실한 비밀을 자세히 파헤치기 위해서는 처음으로 받게 된 이 임무를 제대로 완수할 필요가 있었다.

     

   “음……”

     

   생각해 보면 친해진다는 건 별게 아닐지도 몰랐다.

   대화를 통해 관심사와 공통점을 찾아가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에 대한 이해관계를 쌓아가는 것.

     

   그냥 대화를 나누고 서로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까워질 수 있었다.

   하지만.

     

   [‘크레센도’와의 친밀도가 하락합니다.]

   [현재 : -14%]

     

   녀석의 ‘짜잔’에 반응을 해주지 않아서 그랬던 걸까?

   갑자기 1% 감소한 친밀도를 보니 이 일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닐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

     

   나는 호수 주변에 적당히 야영을 할 수 있도록 간단한 캠프를 구축했다.

     

   물론 마을로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한 시간 이상을 전력으로 질주한 거리를 되돌아가는 것도 번거로웠을뿐더러,

   옆에 있는 이 와이번이 호수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기에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래서…… 너는 5층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존재라고?”

     

   하지만 덕분에 녀석과 대화를 나눌 시간이 차고 넘쳤다.

     

   서로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

   간단하게 친해지기 위한 이유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임무의 성공 여부를 떠나 5층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가치가 있었다.

     

   -발생했다고 하니까 이상하잖아요. 태어났다고 해주세요.

     

   알에서 부화한 것도 아니고 그냥 어느 날,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했다는 블루 와이번 크레센도.

   하지만 녀석의 대답에 반응한 것은 다름 아닌 토끼였다.

     

   “조금 전에 그 말, 사실이에요?”

   -……내가 왜 거짓말을 해요?

   “아뇨. 아뇨. 추궁하려는 게 아니라. 조금 말이 안 돼서 그래요. 어떻게 그러지? 기억할 리가 없는데?”

     

   토끼의 반응에 크레센도가 푸른 눈썹을 찡그리며 녀석을 바라봤다.

     

   -내가 지금 기억하고 있잖아요. 당신 예전에 사람들이랑 호수에 온 적이 있었죠? 그때랑 복장만 바뀌었지 말투나 행동은 똑같은 거 같은데.

   “그러니까 그게 말이 안 된다고요!”

     

   토끼의 불편한 반응에 나는 오히려 녀석을 추궁했다.

   꽤 똑똑한 녀석이 대화의 맥락도 없이 무작정 고집을 부릴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

     

   “뭐가 문제야? 기억을 할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그럴 수가 없어요. 탑은 플레이어를 시험하기 위한 장소라 그 시스템 안에 있는 모든 것은 플레이어가 떠나면 리셋되어야 하니까요.”

     

   나는 잠시 고개를 끄덕이며 녀석의 말을 일부 공감했다.

     

   “납득은 돼. 다수의 자격이나 능력을 확인하고 싶다면 모두에게 같은 환경에서 같은 시험을 치르게 해야 능력을 알아볼 수 있는 거니까.”

     

   하지만 문제라면 그 공평성이라는 것은 애초에 플레이어들에게 주어진 게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불평등함이 일어나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성좌들’이었다.

     

   “공평한 건 전체적인 보상 정도야. 노력한 자는 노력한 만큼의 보상을 받는다. 하지만 그 이후에 있을 성좌들이 주는 보상은 그들의 관심을 얼마나 잘 끌었는가에 따라 결정되지.”

     

   내가 이곳까지 오며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빠른 성장을 이룬 것도 성좌들의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수많은 도전과 노력에 대한 보상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

     

   ‘응?’

     

   그때 나의 머릿속을 스쳐 가는 하나의 의문.

     

   “지금 여기 탑 5층 맞지?”

   “……네? 아 예. 5층이죠?”

     

   나의 물음에 토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이곳은 탑의 5층.

   하지만 지금껏 내가 올랐던 다른 층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이곳은 계약을 한 성좌들에 따라 플레이어들을 분리해 클리어를 진행한다는 점이었다.

     

   “……세영 씨가 성좌 계약을 진행했다고 했던가?”

     

   나는 서세영이 토끼와 계약했다는 말은 자연스럽게 숨긴 채, 녀석에게 조용히 질문했다.

   성좌들이 이 대화를 듣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에 두루뭉술하게 말한 것이었다.

     

   “……했죠?”

   “그럼 세영 씨가 도전하는 5층을 관리하는 성좌가 따로 있겠네?”

   “네, 그렇죠?”

   성좌들은 플레이어를 자신의 성향에 맞도록 성장시켜 그들로부터 힘과 격을 얻는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이 그들에게 임무를 부여하고 보상을 하는 것.

     

   “특정 플레이어와 계약한 성좌가 그 플레이어에게 어느 정도나 관여할 수 있어?”

   “음……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임무 정도는 내릴 수 있을걸요? 보상이 충분하다면 페널티도 조절할 수 있을 거고요.”

   “임무를 부여한다는 건, 그 층 자체에 대한 결정 권한을 들고 있는 거랑 다를 바가 없겠네.”

     

   토끼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계약을 진행하지 않은 플레이어였다.

   그 말인 즉, 이곳은 그 어떤 성좌도 관리 하지 못 하는 공간이라는 의미.

     

   그리고 그것은 곧, 이곳이 다른 5층과는 달리 내가 도전하는 이곳은 성좌들의 손을 타지 않은 근본적인 장소일지도 모른다는 의미였다.

     

   ‘도우미도 탑을 올라야 하는 존재다. 하지만 녀석도 세영 씨 같은 다른 플레이어들과 계약을 해서 격이 올랐어.’

     

   토끼의 말에 따르자면 5층 어느 구간에서, 플레이어가 도우미가 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온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도우미가 성좌가 되기 위해 경쟁을 하는 구조.

     

   “……”

     

   애초에 성좌가 신적인 존재라는 전제가 잘못되었던 것이다.

     

   ‘성좌들도 우리랑 같은 플레이어였다.’

     

   그리고 그들 또한 나와 같은 5층을 경험했을 가능성이 다분했다.

     

   “그럼 결국에는……”

     

   크레센도가 기억을 잃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탑과 임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했고 과거에 탑을 오른 플레이어들이 성좌가 되어 다른 플레이어들을 맞이한다.

   그리고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당시 성좌들이 올랐던 시초의 5층이라는 것이었다.

     

   “이거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 것 같은데.”

     

   멸망 이후, 처음으로 탑의 근본이 되는 장소에 도달했다.

     

   성좌들이 플레이어들을 마음대로 컨트롤 할 자격이 없는 장소.

   세상이 리셋되지 않으며 세월에 따른 자원들이 풍부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장소.

     

   “성장하기 딱 좋은 곳이네.”

     

   나는 토끼와 크레센도를 바라봤다.

   갑작스럽게 얻게 된 성장의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었다.

     

   ***

     

   마왕이 본신의 힘을 회복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약 7일.

   하지만 크레센도를 만난 덕분에 5일이라는 시간이 추가로 주어졌으니, 이제는 12일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김시인 씨! 코앞이 마왕성인데 이렇게 놀고 있어도 되는 겁니까요?”

   “걱정 마. 5층은 빠르게 클리어한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니까.”

     

   호숫가에 만든 간의 의자에 반쯤 누워 여유를 즐기고 있던 토끼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미소를 짓는다.

     

   “뭐,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 거면 이유가 있겠죠! 저는 그럼 맘 편히 쉬고 있겠습니다!”

     

   뻔뻔한 녀석의 말.

   평소에는 뭔가 열심히 했다는 듯이 말하는 녀석을 보니 조금 얄밉기도 했지만, 지금 내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조금 전에 잡은 화리의 영단을 꺼내는 작업이었다.

     

   -거기 반짝이는 그거. 그게 시인님이 말하는 그거 일걸요?

   “고마워.”

     

   토끼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고는 눈치껏 시인님이라 부르기 시작한 크레센도.

   적당히 대화를 나누며 영단을 제거한 물고기를 요리해 주니 차근차근 친밀도가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왜 안 가는 거예요? 저 사람이 말하는 거 들어보니까 마왕이라는 걸 잡는 게 늦어질수록 그것도 더 세지는 거 아니에요?

   “똑똑하네. 그런 것도 이해하고.”

   -아휴, 뭘요. 헤헷.

     

   [크레센도의 친밀도가 1% 상승합니다.]

     

   녀석은 애초에 사람과 대화를 해본 적이 없는지 칭찬에 매우 약한 모습을 보였다.

   좋게 말해서 순수하고 나쁘게 말하면 좀 많이 단순한 모습.

     

   “맞는 말이지만, 사실 그걸 기다리는 거야.”

   -네?

   “쉽게 말하자면 네가 똑똑해지고 강해진 이유를 나도 실현해 보려는 거지.”

   -……아아, 그렇구나!

     

   이해를 못 한 얼굴이지만 칭찬을 듣고 싶어서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의 순수함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나의 의도는 간단했다.

     

   크레센도는 이곳에서 탄생한 한 마리의 몬스터였다.

   하지만 호수에서 영약을 먹고, 몬스터들을 사냥했고 그 결과로 도우미였던 토끼와 별 차이가 없는 격을 가지게 된 것이다.

     

   ‘힘을 회복하지 못한 반쪽짜리 마왕을 잡아봐야 남는 게 없다 이 말이지.’

     

   반대로 힘을 회복한 마왕을 잡아내면 그만큼의 격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쿵! 쿵! 쿵! 쿵!

     

   “이, 이게 무슨 소리래요?”

   “올 줄 알았다.”

     

   멀리서부터 들리는 육중한 발소리.

     

   -쿠윅! 근처라! 호수!

   -음식! 오크 강해진다!

     

   스스로 호수를 찾은 오크 무리가 서서히 우리의 시야에 잡혔다.

     

   “그간 몰랐는데 저게 다 경험치였어.”

   “……이런 미친 인간.”

     

   당황한 토끼와 크레센도를 뒤로한 나는, 곧장 검을 뽑아 들며 앞으로 나섰다.

   호수에 맛집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오크들.

     

   앞으로 며칠간은 놈들과 쉬지 않고 칼춤을 출 예정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일이 생겨서 너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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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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