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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6

    <106 – 반성했어요>

     

    명호스님은 각오했다.

    오크노디의 시체를 치우는 일까지도.

    이 앞이다.

    균류몬스터 특유의 꿉꿉한 냄새가 먼저 바람에 실려 날아왔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진입한 명호스님.

    그의 눈에 들어오는 광경은 오크노디의 목에 대고 칼날손톱을 들이대는 <클로맨>이었다.

     

    “악!”

     

    비명을 지르는 오크노디.

    명호스님의 손이 번개처럼 출수했다.

     

    “어딜 감히!!”

     

    지옥의 야차처럼 사납게 일그러진 얼굴로 일장을 내지른 명호스님.

    그의 손을 따라 클로맨의 시체가 한 줌의 육편이 되어 던전 벽에 흩뿌려졌다.

    혹여라도 포자가 퍼질까봐 <집적>으로 주변공기와 함께 그러모아 벽면에 찍어 바르다시피 내지른 일격에 클로맨은 단숨에 절명했다.

     

    “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상황을 따라잡지 못하고 눈만 깜빡거리는 오크노디.

    그 가엾은 모습에 명호스님은 가슴이 아팠다.

    이 어린 것이 흉악한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여서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이젠 괜찮습니다. 저 기억하시죠? 입학시험에서 1차시험을 담당했던 명호스님입니다.”

    “죽이면 어떡해요!!”

    “포자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혹여나 균류몬스터에게 지배당하는 상태일지 몰라서 입자하나 새어나갈 틈 없이 해치웠습니다.”

     

    그러니 안심해도 좋다.

    그렇게 말하려던 명호스님의 인자한 미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오크노디가 어떻게 이런 심한 짓을 할 수 있냐는 얼굴로 그를 비난하고 있었다.

     

    “왜 그러셨어요!”

    “…혹시 위기상황이 아니었습니까?”

    “당연히 아니죠!”

     

    그룹수석을 너무 얕잡아본 걸까.

    오크노디는 몬스터들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두려움을 넘어서 마치 애완동물을 잃은 것처럼 슬퍼하기까지 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어떻게 이런 대담한 태도를 보일 수 있지?

     

    “대체 여기서 뭘 하고 계셨습니까?”

    “머리 자르고 있었어요!”

    “머리를 자른다니요…?”

    “아이 참. 스님은 대머리라서 괜찮을지 몰라도 저는 머리카락이 길단 말이에요!”

    “…….”

     

    오크노디.

    그녀는 클로맨을 이발사 대용으로 쓰고 있었다.

     

     

    * *

     

     

    야생몬스터들은 흔히 피도 눈물도 없이 눈만 마주치면 서로 죽이고 잡아먹는 관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의외로 공생관계를 누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가령 동패급 모험가들이 주로 상대하는 클로맨의 경우, 강약약강이 아주 뚜렷하다.

    약한 몬스터 상태로는 손톱의 칼날을 촤라락 펼치면서 여포처럼 날뛰지만 강한 몬스터 앞에서는 자신의 무해함을 증명하기 바쁘다.

    자기는 착한 몬스터라고.

    죽이지 않으면 편리할 거라고.

    그렇게 어필하는 부분이 바로 칼날손톱을 이용한 미용이었다.

     

    “마침 잘됐네. 머리카락 좀 잘라봐!”

     

    클로맨이 멀뚱멀뚱 서 있다가 눈을 돌리며 빨간이빨버섯들을 쳐다봤다.

    빨간이빨버섯들은 고개를 설래설래 저으며 저놈 하자는 대로 하라고 한숨을 쉰다.

    이들에게는 인간이 ‘강자’로 인식되었기에 일어난 결과였다.

     

    ‘선배들이 모조리 생포해다가 실험까지 했던 마당에 사람이 포식자로 보이면 보였지 먹잇감으로 보이겠어? 절대 아니지.’

     

    사실 몬스터도 동물이랑 크게 다를 건 없다.

    덩치가 크면 쫄고, 울음소리가 위협적이면 또 쫄고, 행동이나 색깔이 이상하면 불안함을 느낀다.

    장담컨대 티토소가가 조명대를 들고 빛만 반짝거려도 전 세계 몬스터들의 상위 20%까지는 조명대 하나로 쫄게 만들 수 있다.

     

    석패. 상위 90%. 동네북.

    동패. 상위 50%. 몬스터.

    철패. 상위 10%. 위험대상.

    은패. 상위 1%. 지역대피령 발령.

    금패. 상위 0.1%. 국가재난.

    백금패. 상위 0.01%. 세계위기.

     

    몬스터라는 놈들은 퍼센테이지로 따지면 대충 이런 구도가 그려진다.

    이중 클로맨의 입지는 아 이놈부터는 몬스터라고 부를 수 있겠구나, 하는 수준.

    위험하긴 한데 힘의 차이를 한 번 보여주면 낑낑거리는 강아지처럼 말을 듣게 된다.

     

    “1센치만 더 잘라봐!”

     

    싹둑.

     

    “야!! 누가 바가지 머리로 자르래!!”

     

    빽 소리를 치니 어깨가 움츠러들며 잔뜩 주눅이 든 모습을 봐라.

    인간이 해코지를 할까봐 눈치 보는 꼬락서니가 딱 동패급 몬스터답다.

     

    “너희 그래가지고 이 험난한 아카데미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어? 머리카락이라도 잘 잘라야 미용사로 취직도 하고 그러지. 응?”

     

    위험천만한 몬스터끼리도 공존할 수 있는데, 인간하고는 못할 이유가 없다.

    머리를 자르게 시키는 것은 머리카락이 너무 길어서 머리 감는 시간이 너무 길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불쌍한 녀석들의 무해함을 조금이라도 아카데미에 어필해서 취직시켜주기 위함이다.

     

    ‘몬스터 교화도 자주 시키면 테이밍 칭호가 붙는걸!’

     

    칭호작 내지 업적작을 위한 선의!

    불순한 동기야 어쨌든 서로 득을 보는 일이다.

    나야 칭호나 업적을 달성해서 능력치나 보너스를 받아서 좋고, 몬스터는 선배들의 실험재료로 죽을 신세에서 월급까지 받는 신세가 되어서 좋다.

     

    “악!”

     

    그러니 머리라도 잘 잘라야 하는데, 이 멍청한 몬스터들은 또 지들 맘대로 삐뚤삐뚤 조심성 없이 머리카락을 잘라놨다.

    열이 뻗쳐서 소리를 지르는데 슈슉 하고 나타난 스님이 클로맨을 산채로 터뜨렸다.

    그것이 내가 겪은 사건의 전말이었다.

     

     

    * *

     

     

    “반성문은 다 쓰셨습니까?”

    “네에.”

     

    결국 본관까지 끌려와서 졸지에 반성문을 제출하는 신세가 되었다.

    사유는 함부로 위험한 짓을 해서.

    전문 테이밍 훈련을 받지도 않은 학생이 몬스터를 조교하려 시도하는 것은 어엿한 규칙위반이다.

     

    “대머리를 놀리는 것은 자칫 아카데미에서 살해당할 수도 있는 끔찍한 모욕죄입니다. 위험한 마수를 친구처럼 여긴 것보다 더 반성해야 할 일입니다.”

    “네에.”

    “대답만 잘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뉘우치셨길 바랍니다.”

     

    명호스님은 어지간히도 화가 났는지 반성문을 받고도 거듭 주의를 주었다.

    졸지에 2교시 <은퇴한 전직용사의 모험기담> 강의를 째버리게 되었지만, 다행히도 명호스님이 따로 연락을 주신 덕분에 벌점까지는 받지 않았다.

     

    “모험학부 지망생 아니랄까봐 아주 기가 막히는 모험을 했군.”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은 친히 반성실까지 찾아와서 한 소리 했다.

     

    “명호스님. 이 아이는 이만 제가 데려가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저야말로 교수님의 수강생을 붙잡아두어서 미안하게 됐습니다.”

    “아닐세. 스님 몫까지 내 따끔하게 혼쭐을 내두도록 하지.”

     

    인수인계라도 받는 것처럼 내 신변을 넘겨받은 디스트로이어 교수님.

    그가 까끌한 턱수염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죄송합니다…”

    “됐다. 딱히 나한테 잘못한 것도 아니고.”

    “화 안나셨어요?”

    “이 정도로 화를 낸다면 니알라토텝은 내 손으로 백번도 더 죽였어. 그놈은 정말 사고뭉치였지.”

    “무슨 사고를 치셨는데요?”

    “날개가 꺾인 비행몬스터를 교배시키면 후손들도 날개가 꺾인 채로 자라날지 시험해보겠다며 급속배양실에서 실험을 하다가 토룡 드레이크를 탄생시켰지.”

    “오.”

    “좋아하지 마라. 그 드레이크는 지금도 서부곡창지대에서 연간 10억 톤의 곡물을 처먹고 다니니깐. 그놈이 무슨 재단을 만들어서 돈을 많이 벌어서 매년 배상금을 농민들에게 지급하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용사파티는 국가지명수배를 당하고도 남았어.”

     

    이번 회차의 전대용사 니알라토텝은 참 인생 재밌게 사시는 것 같다.

    근데 그 재단이 와이히엠하이 재단은 아니겠지?

     

    “친구가 왔군. 설교는 이쯤 해두지. 많이 놀랐을 텐데 알아서 달래라.”

     

    멋진 어른은 적당히 물러날 때를 안다.

    디스트로이어는 짧은 이야기 끝에 바지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고 제 갈 길을 갔다.

     

    “오크노디!”

    “으 아 아 앗-!”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아 아 아 앗-!”

    “몬스터한테 이발까지 맡겼다면서! 해적 중에도 너만큼 또라이는 없었어!”

    “그 만 흔 들 어 요-!”

    “그러다 죽기라도 하면 날 죄책감에 미치게 만들 작정이야?”

    “…….”

     

    몬스터한테도 안 입었던 부상을 지금 입을 것 같다.

    머리가 하도 흔들려서 뇌진탕 걸릴 것 같애!

     

     

    * *

     

     

    복도 모퉁이에서 오크노디와 지고쿠의 해후마저 지켜본 학생은 조용히 걸음을 돌렸다.

     

    “학생도 무사했군요. 수로에 빠지는 사고를 겪지 않도록 앞으로는 주의하십시오.”

    “감사합니다, 명호스님.”

     

    하급반 학생은 명호스님의 인사를 받으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스님의 염려어린 시선이 떨어져나가자 학생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차갑게 변했다.

     

    ‘운이 나빴네. 손 안 대고 코 풀기 딱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오크노디의 주변에는 높은 빈도로 명호스님이 곁을 맴돌고는 했다.

    감시인지 보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지켜보는 동안은 그녀에게 손을 쓸 수 없는 상황.

    이번 기회를 살리고자 적절한 타이밍에 명호스님의 집중을 흐트러뜨렸건만, 오크노디는 마수창고를 열고도 멀쩡히 살아서 돌아왔다.

     

    ‘과연 재단의 수석장학생은 쉽지 않네.’

     

    익명의 하급반 학생은 아쉬운 마음을 추슬렀다.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너만 아니었다면 이번 기수에서 가장 성공한 장학생은 내가 될 수도 있었어. 언제가 되었든 기회만 오면 반드시 해치워주겠어, 오크노디.’

     

    익명의 학생의 정체는 와이히엠하이 재단의 장학생.

    오크노디를 노리는 재단의 경쟁자였다.

     

    “호오. 저 아이에게 적의를 품는 학생이 있다니, 신기한 일이군.”

     

    그리고 그런 학생의 모습을 천장에 매달려 거꾸로 걷던 디스트로이어가 지켜보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머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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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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