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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6

       

       연구실 문 뒤에 숨어있었던 것은, 분홍 머리를 귀 옆에서 둥글게 말아감은 여학생—

       

       그러니까, 양복자였다. 나는 칼을 내리고는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네가 왜 여기있어?”

       “에헷, 그게…… 소레네(그게 말이야),”

       

       양복자는 머쓱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었다. 그런 양복자의 모습을 가만히 보니, 게다마 한 마리가 양복자의 몸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부유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까모리 교수가 죽고 이계생물학 강의실의 관리자가 없는 틈을 타서 게다마 한 마리를 슬쩍하러 들어온 모양이었다. 하긴, 21세기에서도 좀 특이한 애완동물로 인기가 많았던 마수였으니까.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게다마 훔치러 왔구나.”

       “후, 훔치다니! 그저, 그…… 있지! 이제 밥 주는 사람도 없는데, 갇혀있는 것이 불쌍해서, 잠깐 풀어주고 놀아준 것 뿐이라고! 오해하지 말아줄래? 나는 다른 일 때문에 온 거야!”

       “다른 일?”

       “응응! 실은, 부활동 때문에……”

       

       부활동이라면, 그 ‘미스테리- 연구부’를 말하는 것일 터. 나는 눈살부터 찌푸렸다. 또 뭔가를 들쑤시러 온 것일까?

       

       내가 더 설명해보라는 듯 쳐다보자 양복자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목에 건 사진기를 들어보였다.

       

       “그것은 바로바로…… 나까모리 교수의 심령 사진을 찍는 것!”

       “……죽은 나까모리 교수를?”

       “모오, 그렇다니까라! 여기, 심령 스폿트(spot)잖아!” 

       “심령 스폿트…… 심령 스팟? 귀신이 나오는 자리라고?”

       “그래! 저번에 웬 처녀귀신도 여기서 봤지않아? 내가 두 눈으로 확실히 보고, 사진까지 찍었었다쟝!”

       “지금와서 말하지만, 그건 렌까-“

       “맞아맞아! 시마즈 아가씨가 그 사진을 슷까리 태워버렸지 뭐야? 한 장뿐인 사진이었다노니, 흑흑……”

       

       우는 시늉을 하던 양복자는 다시 고개를 들고, 흐흐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있잖아, 히힛…… 어쩌면 나까모리 교수의 원혼도 여기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지! 죽은 사람의 영혼은 자기가 애착을 가졌던 곳에 돌아온다고 하잖아?”

       “글쎄.”

       

       창경원에서 마수화된 상태로 뒤진 나까모리 교수의 원혼이 다시 여기로 돌아올까…… 

        

       “그러는 시라바야시 군은? 여기에 왜?”

       “구로베 선생이 시킨 게 있어서.”

       “으윽, 도라큐라 백작이?” 

       

       흐음. 얘한테 말해줘도 되려나.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생각해보니, 학사 차원에서 보자면, 죽어 없어진 교수의 물품을 정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

       

       원래 구로베 교수가 할 일이었으나 내가 대리한다고 해서, 이것이 딱히 정당하지 못한 일이라거나 숨길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연구실 안쪽에 나까모리 교수가 숨겨둔 밀실이 있는데, 그 결계를 열어달래.”

       “오오옷……! 스고이! 나도 볼래! 네에네에, 함께 있어도 되지?”

       

       양복자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숨겨진 공간을 탐험한다는 것에 흥분하는 것이, 참 미스테리- 연구부다운 습성이었다. 

       

       “그러든가.”

       “요시-!”

       

       나는 폴짝폴짝 뛰며 환호하는 양복자의 민망한 무브먼트로부터 시선을 돌려, 연구실 내부를 둘러보았다. 

       

       양복자가 풀어놓은 게다마가 부유하는 연구실 내부에는, 한쪽 구석에는 레버도 있고…… 저번에 마수 축사의 지하통로를 여는데에 쓰였던 레버였지.

       

       수업에 쓰이는 괘도(掛圖) 따위의 각종 교보재가 곳곳에 놓여 있었고, 별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눈을 감고 마력 감응에 집중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나까모리 교수의 연구실 한쪽 구석에 구축된 결계를 발견할 수 있었다.

       

       ‘흐음.’

       

       다시 마력 감응에 집중하며, 결계를 가까이에서 살펴보던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러면 조금 골치아픈데……’

       

       내가 결계를 해제하는 능력이 딱히 전문적인 것은 아니었다.

       

       현실의 자물쇠도, 단순한 구조의 것들은 클립을 구부려서 잘 쑤시면 어쩌다 아귀가 맞아서 열리곤 하지 않던가? 일부 못되쳐먹은 아이들이 그런 방법으로 자전거를 훔쳐가듯 말이다.

       

       내가 결계를 뚫는 수준도 딱 그정도의 수준이었고, 이 시대의 마력 결계라는 것도 그런 수준이었기에, 대강 취약한 부분에 가장 기초적인 형식의 마력 구조물을 넣고 열릴 때까지 돌려보는 무식한 방법으로 구로베 교수의 연구실에 있던 결계를 해제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까모리 교수의 연구실에 구축된 이것은 그런 방식으로는 곤란했다. 

       

       이 시대의 흔한 주먹구구식 결계들과는 달리 어느정도 기초적인 문법을 갖추고 구축된 결계였는데, 현실로 비유하자면 4자리 비밀번호를 돌려맞춰야 열리는 자물쇠 정도일까.

       

       물론 이것도 번호를 마구 돌리다보면 어쩌다 열리는 경우가 있었고, 가능한 경우의 수를 전부 투입해 본다면 어떻게든 열 수 있겠지만 시간이 장난 아니게 걸릴 터. 날이 새도록 시도해도 모자르리라.

       

       ‘이래서 구로베 교수, 그 놈이……’

       

       자기도 해제하지 못할 것은 없지만 시간이 없다고 한 게 그 뜻이었나. 그래서 나에게 귀찮은 일의 짬처리를 맡긴 것이었다.

       

       ‘역시 좆 같은 놈이 맞다……!’

       

       하지만 별 수 없이, 나는 속으로 구로베 교수를 욕하며 해제 작업을 시작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루한 작업이었기에, 나는 잡담이나 할 생각으로 지나가듯이 양복자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너 혼자 왔어? 아이까와는?”

       

       아이까와와 친해진 양복자는 무슨 일이 있으면 아이까와를 데리고 다니곤 했었다. 오늘처럼 부활동을 한답시고 이렇게 나왔으면, 평소의 양복자였다면 무섭다는 아이까와를 억지로라도 끌고 나왔을텐데.

       

       하지만 양복자의 대답은 퉁명스러웠다.

       

       “몰라! 기숙사에 틀어박혀 있겠지……”

       

       으음. 아침에도 둘이 뭔가 서먹서먹하고 이상하더니, 결국 서로 뭔가 삔또가 상해버린 걸까.

       

       ‘하여간 여자애들이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양복자에게 말했다.

       

       “야, 그러지 말고 너라도 잘 챙겨줘야지. 네가 제일 친하잖아.”

       “흥! 걔가 먼저 피하는데 나더러 어떻게 하라고? 엊그제 이후로 나하고 얘기도 안 하려고 드는 걸!”

       

       양복자는 토라진 듯, 양 팔을 모아 팔짱을 끼며 투덜거렸다. 팔짱을 끼자 그렇잖아도 세라복 밑으로 꾸준히 자기주장을 하던 가슴이 몹시 부각되었다.

       

       “모오, 걔도 결국은 잘난 ‘니혼진’이라 이거지! 다른 일본 애들이 아이까와를 두고, ‘쟤는 조센징이랑 친하게 지낸다’ 뭐다 하니까, 이제와서 나를 피하는 거야!”

       “잠깐.”

       “하여간, 이 놈의 조선인으로 태어나서는 도무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나마에(이름)가 도미꼬면 뭘 하냐고! 나도 시라바야시 군처럼, 진작부터 일본 묘지(성씨)를 가졌더라면—우웁?!”

       

       나는 손으로 양복자의 입을 틀어막았다.

       

       양복자의 헛소리 때문이 아니라, 뭔가 심상치 않은 소음을 캐치했기 때문이었다. 창문 밖, 그러니까 강의실 건물의 외부에서 들려온 그 소리는…… 

       

       “자동차 엔진 소리야.”

       

       트럭인지 승용차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자동차의 엔진 소리였다. 게다가 이곳을 향해 가까이 들려오고 있었고.

       

       나는 양복자의 머리채를 잡고 아래로 수그렸다.

       

       “꺅!”

       “쉿! 조용! 누가 온다.”

       

       나 역시 몸을 한껏 숙이고는 창가로 다가갔다. 창문을 통해서 바깥을 살펴보니, 과연 어둠 속에서 검은 승용차 한 대와, 그 뒤를 따르는 트럭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뭐하는 놈들이지?’

       

       헤드라이트도 안 켠 채로 이 밤중에, 학교의 으슥한 시설에 차를 끌고 온다는 것만으로도 몹시 수상한 일이었는데. 더 수상한 것은 따로 있었다.

       

       승용차에서 내린 것은, 얼굴에는 정화통이 주둥이처럼 길게 튀어나온 방독면을 쓰고, 전신에 흰 실험복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어딘가의 연구원 같은 사람들.

       

       뒤이어 트럭의 짐칸에서 내린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방독면과 실험복 차림이었지만 검은 색이라는 점이 달랐다. 거기다 소총을 들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군인은 아닌 것 같았다.

       

       차에서 내린 그들은 바로 이 건물을 향해 다가왔다.

       

       ‘……젠장.’

       

       저 녀석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들키면 곤란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양복자도 말했다.

       

       “우, 우리 숨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이 이미 건물을 둘러싸고 문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불가능했고 당장은 숨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리 넓지도 않은 이 교수연구실에서 어디에 숨어야 할 것인가.

       

       숨을 곳을 찾던 나는 연구실 벽 한켠에 세워진, 캐비넷 네다섯 개를 발견했다. 각종 교보재와 자료 보관용으로 쓰이던 것이었다. 나는 양복자에게 외쳤다.

       

       “저기 숨자!”

       “응응! 저기라면……”

       

       하지만……

       

       “어떡해! 여기도 가득 찼어!”

       

       당연하다면 당연할까. 네다섯 개의 캐비넷은 수업에 쓰이는 각종 샘플과 교보재로 가득 차 있었다. 

       

       “어떡해, 시라바야시 군! 밖으로 빼놓을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캐비넷 안에 들어있는 것을 죄다 밖으로 꺼내놓으면 도리어 의심스러울 터. ‘여기 사람 숨어있소!’ 라고 놈들에게 알리는 꼴밖에 안 될 것이다. 나는 양복자에게 말했다.

       

       “다른 캐비넷에 몰아넣자.”

       

       결국, 한 캐비넷에 들어있던 교보재를 다른 캐비넷에 나눠서 몰아넣어, 그럭저럭 성인남성 한 명은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비어냈다. 하지만 그 이상 비우기에는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무리.

       

       “시, 시라바야시 군! 어떡해? 도오시요!’

       

       양복자도 겁에 질려 안절부절 못하는 그 때, 마침내 문고리를 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놈들이 목전까지 당도한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나는 양복자와 함께, 캐비넷에 몸을 밀어넣었다.

       

       “으앙, 좁아……!”

       “쉿, 조용히 해!”

       

       좁은 캐비넷 안에 두 명이나 우겨들어가자, 또래 여학생들에 비해 성숙된 양복자의 신체부위가 내 몸에 밀착되었다. 

       

       ‘으윽……’

       

       게다가 은은하던 향수 냄새와, 건강한 여학생의 체취가 바로 코앞에서 물씬 풍겨오자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정신이 아득해졌으나,

       

       나는 그런 신체의 자극을 애써 무시하고는, 캐비넷의 좁은 틈새에 눈을 갖다붙이고 캐비넷의 바깥, 그러니까 연구실을 엿보았다.

       

       검은 병정들이 총을 든 채 곳곳을 지키고 있었고, 흰색 연구원들은 결계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연구실의 결계를 쉽게 해제하더니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저 녀석들이 구축한 결계였나?’

       

       저렇게 곧바로 해제하는 것을 보면, 억지로 뚫은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여는 방법을 알았다는 것이다.

       

       나까모리 교수와 어떤 관계가 있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긴, 마술학에 조예가 없었을 나까모리 교수가 결계를 구축하려면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겠지.

       

       결계를 해제한 흰색 연구원이 검은 병정 몇에게 무어라고 지시를 내리자, 검은 병정들은 결계 안에 있던 물건들을 박스채로 들고나가 바깥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마치 21세기의 정치계 뉴스를 보다보면 종종 볼 수 있는, 물건을 상자에 담아 압류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잠깐…… 뭘 옮기는 거야? 제길, 잘 안 보여.’

       

       그렇잖아도 어두웠던데다가 좁은 틈새로는 잘 보이지 않아, 나는 틈새에 최대한 눈을 갖다붙이기 위해 몸을 움직이자 양복자가 당황해서 속삭였다.

       

       “시, 시라바야시 군?! 좁아……”

       “조금만 참아. 금방 끝나니까……”

       “맛떼…… 야바이…… 꺅!” 

       

       양복자가 이상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나는 나대로 물러설 수 없었고, 나와 더 밀착하게 된 양복자가 당황하며 그 큰 엉덩이를 뒤트는 바람에,

       

       “앗……!”

       

       크게 삐걱거리는 쇳소리와 함께 캐비넷 문이 열리고 말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여기까지!

    그럼 저는 월요일에 뵙겠습니당…… 즐거운 주말 되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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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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