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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6

       “앞으로 피치블렌드 마석을 다루실 땐 방사파 방지 스크롤을 먼저 사용하시고 연구하세요. 연구 재료는 가능하면 한 곳에 뭉쳐 있지 않도록 해 주시고, 부산물이 발생하면 강에 버리는 대신 납과 콘크리트로 된 용기에 밀봉해서 땅에 묻어놓으시길 바랍니다.”

         

        이것으로 살리에르 백작에게 말해 줄 주의사항은 끝이었다. 나는 짐을 챙겨서 저택을 나왔다.

         

        “그럼 저흰 올라가 보겠습니다.”

        “그래, 조심해서 가렴.”

         

        로테, 프레이와 함께 마차에 올랐다. 자리에 앉으니 자동으로 잠이 쏟아진다.

         

        피곤할 법도 하다. 방학 동안에 많은 일을 했으니까.

         

        태풍으로부터 요호족을 구하고 식량 문제까지 해결해주었다. 그 대가로 요르문간드에게선 고농축 우라늄을 얻어냈으며, 나와 똑같이 닮은 소녀에게서 전설급 스크롤을 얻어내기까지 하였다.

         

        일을 하면 보상이 따라온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관리자 모드 : 텔러-울람 설계의 첫 단계를 완성했습니다.]

         

        “응?”

         

        양장본을 펴자마자 웬 예상치 못한 문구가 떴다. 

         

        “이상하다.”

         

        요르문간드에게 받은 건 우라늄 40kg 정도다. 핵분열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질량보다 많은 양이긴 하지만, 스톡을 쌓아놓고 여러 번 실험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모자란 양이었다.

         

        그런데 1단계를 완성했다니. 이거면 못 해도 원폭 두 발을 만들 분량이 가방 안에 있다는 소리인데….

         

        여기서 배낭을 열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고농축 우라늄과 플루토늄은 색만으로는 구별하기도 어렵거니와, 여기서 용기를 열었다간 두 친구가 피폭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럴 땐 유용한 비파괴 검사법이 있다. 바로 양장본이었다.

         

        [배낭 내 구성요소]

        [1. 우라늄-235 == 농축도 : 92% / 질량 : 27.0kg]

        [2. 플루토늄-239 == 농축도 : 99.7% / 질량 : 13.0kg]

         

        “뭐야.”

        “왜? 무슨 문제 있어?”

         

        로테와 프레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두 사람에게 숨길 필요는 없었다. 로테는 물론이고, 프레이에게도 펑펑 터지는 폭탄을 만들 거라고 얘기했었다. 이제 우리는 한배를 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뭔가 잘못 싸 온 것 같은데?”

        “그럼 어떡하지? 다시 돌아갈까?”

        “아냐, 됐어.”

         

        오히려 좋아.

         

        그럼 그렇지. 플루토늄을 고작 80g 줘서 뭐 하겠어. 아무래도 방사룡이 선심을 써 준 모양이다.

         

        [그냥 짬처리 한 거 아닐까요? 우라늄을 재처리하면 플루토늄이 더 많이 나오니까….]

         

        알아 새끼야.

         

        어디까지나 좋게 좋게 봐주자는 거지. 얘는 왜 이리 눈치가 없을까.

         

        [아오.]

         

        이 말이 화근이 됐는지, 양장본은 수도로 돌아갈 때까지 계속 구시렁거렸다. 

         

        그래봤자 뭘 어쩌겠는가. 애당초 날 여기로 떨궈놓은 놈이 누구인데.

         

        상관없는 일이었다. 뜻하지 않게 바로 1단계를 완성했으니 다음은 2단계겠지. 최종 단계인 4단계까지는 아직 멀지만, 시기를 따져 본다면 크나큰 도약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제 당분간은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겠지?”

         

        네. 그렇게 생각하던 시절이 제게도 있었습니다.

         

        “네가 에테르 맞지? 너랑 호르데 군이랑 서로 사귄다며?”

        “응원할게! 교내에서만 걸리지 마!”

         

        아카데미 근교에 도착해서 찌뿌둥한 몸을 풀던 중, 몇몇 소녀가 대뜸 다가와서는 그런 소리를 하고 지나갔다.

         

        “어?”

         

        내가 얼빠진 감탄사를 흘리고 있던 사이, 프레이와 로테의 표정이 덩달아 멍청해졌다.

         

        “너 버멜이랑 연애해?”

         

        먼저 정신 차리고 물어본 건 로테였다. 그녀의 동공은 수성이 세차 운동하는 것처럼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닌데?”

         

        나 또한 당황해서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부정부터 했다.

         

        실제로 그랬다. 버멜과 내가 며칠 내내 밀회를 가진 적은 있어도, 사귄다니. 어떤 새끼가 루머를 퍼뜨린 게 분명하다.

         

        “아니, 진짜 아니라니까.”

         

        나는 필사적으로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나를 올려다보고 있던 프레이의 눈이 그믐달처럼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연애? 그거 하면 뭐 좋은 거 생겨?”

         

        이 꼬맹이는 가끔가다 대화 핀트를 못 잡는단 말이지.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다시 한번 부정의 의사를 전했다.

         

        “으, 응. 그럴 수도 있지 뭐. 연애, 연애라니. 교내에서만 안 하면 선생님들도 터치 안 한다고 하시니까….”

         

        로테는 적잖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아니, 아니다. 자세히 보니 홍조를 띠고 있었다. 사춘기 망상에 젖어 들어 익사 직전까지 간 소녀의 얼굴이나 다름없었다.

         

        “그러고 보니 로테는 가끔가다 중앙도서관에서 로맨스 소설 빌려 읽더라?”

        “그, 그걸 어떻게…!”

        “괜찮아! 이해는 해. 자세히는 잘 모르겠지만!”

         

        프레이는 살리에르 저택 메이드에게서 받은 알사탕을 한입에 털어 넣으며 쓸데없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연애, 연애라! 애들끼리 막 사랑한다고 말해주면서 꼬리 비비는 것까진 봤는데! 다들 그러는 걸까?”

        “…꼬리?”

         

        헉, 하며 프레이가 입을 닫았다.

         

        “비유적인 의미겠지.”

         

        거참, 이렇게 훅 치고 들어오면 어떡하냐.

         

        곁눈질하니 프레이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입을 우물거렸다. 오도독, 하고 굴려 먹던 알사탕이 씹혀 바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날 흘겨보더니, 이내 엄지를 세우고는 도망치듯 걸어갔다.

         

        진짜 쉴드 쳐주기 힘드네. 2학기 시작 전부터 이렇게 불안해서야 쓰겠나.

         

        그 뒤로도 나는 가는 길목마다 바람잡이들에게 한 번씩 붙잡혀야만 했다. 그중 대부분은 자신을 문예부 혹은 신문부 소속이라고 밝혔다.

         

        “안녕! 명문 틸레트 아카데미의 자랑스러운 금안족 후배야!”

         

        바나나 롤케이크처럼 생긴 이 사람은 또 누구일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귀찮은 예감부터 들었으니까.

         

        “또 연애 이야기인가요? 됐어요. 저 사귀는 사람 없으니까요.”

         

        애초에 이런 몸으로 누구랑 연애를 한다고. 남자에서 여자가 된 건 그렇다 치더라도, 금안족이라는 종족 자체가…. 좀 그러니까 말이다.

         

        “에이, 무슨 섭섭한 말씀을! 저 안젤리카 토츠펠의 취재 능력을 물로 보고 계셨던 것 같군요!”

         

        그녀가 나에게 사진 몇 장을 내밀었다. 그곳에는 늦은 밤에 동아리 부실을 나오는 나와 버멜이 찍혀있었다.

         

        “…….”

         

        나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마른세수를 하며 정신을 최대한 가다듬었다.

         

        그리고 할 말을 골랐다.

         

        ‘이런 미친 파파라치 새끼야아아아아아아!! 누가 사람 도촬하고 다니래에에에!!!’

         

        “공녀님, 정말 유감입니다. 사대공작의 성씨를 가지고 계신 분께서 이런 염치없는 일을 벌이시면 안 되죠. 이러시면 가문의 위상에 흠집이 갈 수도 있지 않으시겠어요?”

        “어머, 걱정해 주시는 건가요? 괜찮아요. 부모님께서도 허락해 주셨거든요! 오호호!”

        “…그, 혹시 졸업하시고 언론고시 볼 생각 있으신가요?”

        “당연하죠! 제 꿈은 아렌스 대륙 최고의 저널리스트 겸 종군기자가 되는 거예요!”

       

       반드시 낙방하시길 바랍니다.

         

        이걸로 확실히 알았다. 뜬소문을 퍼뜨린 장본인이 이 사람이라는 것을.

         

        “가짜뉴스를 함부로 퍼뜨리시면 안 됩니다.”

        “어허, 가짜뉴스라뇨! 저널리즘의 명예를 걸고 그런 일은 절대로 안 벌입니다!”

         

        안젤리카는 자신의 풍만한 가슴팍에 척, 하고 손을 올리며 대꾸했다.

         

        “증거 있어요?”

        “증거? 증거라면 얼마든지 댈 수 있어요!”

         

        그녀가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안젤리카가 증거랍시고 내놓은 건 음성을 재생하는 공계마도 스크롤이었다. 그녀가 마력을 흘리자 스크롤 내부에서 생생한 육성이 튀어나왔다.

         

        ─ 남녀 둘이서 온종일 붙어 다니는데 그게 연애가 아니면 뭐니?

        ─ 우리에게만 슬쩍 얘기해 줘. 학생회에는 말 안 할 테니까!

         

        어째 싸하다.

         

        “이게 뭔 녹음인데요.”

        “쉿! 잠자코 들어 보세요.”

         

        ─ 학생회?

         

        누군가가 되묻는 소리. 안젤리카는 여기서 스크롤을 일시 정지했다.

       

        “자, 이건 누구 목소리죠?”

        “저와 비슷한 목소리네요.”

        “비슷한 목소리라뇨. 이건 정확하게 당신 목소리예요. 정확히 73일 전, 중앙분수대 앞에서 문예부 학생 둘과 나누었던 자료죠.”

         

        탁, 하고 스크롤이 다시 재생된다.

         

        ─ 교내에서는 연애 금지잖아. 꼰대 같은 교칙 지키는 학생회 애들 때문에 짜증 나.

         

        그리고 잠시간의 침묵. 이어서 나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 너희만 알고 있어. 다른 애들한테는 비밀이다.

         

        그 뒤로는 10초간 괴성뿐이었다. 여자애 둘이서 꺅꺅거리는 소리에 귀청이 떨어질 것 같았다.

         

        “…….”

         

        기억났다.

         

        인생 시발.

         

        그때 문예부 애들한테 붙잡혔던 걸 어떻게든 빨리 빠져나오려고 걔네들 구미에 맞는 소리를 했던 게 이렇게 돌아오는구나. 역시 사람은 입조심하고 살아야 한다.

         

        “대체 누가 녹음한 거예요, 이런걸.”

        “글쎄요? 제보자가 누구인지는 알려주지 않는 것이 원칙이랍니다!”

         

        제2황자 이후로 살인 충동이 느껴지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렇다고 이게 내 책임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라서 쌍욕을 박아버리기도 뭣하고. 그냥 업보라고 생각하면서 달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아니. 그럴 수는 없는데.

         

        “이제 이걸로 인정하시나요?”

        “아뇨?”

        “어쩔 수 없군요. 마지막으로 영상 스크롤을….”

        “그보다도 왜 이런 가십거리에 심력을 쏟으세요? 아카데미 신문에 이런 거 말고 취재할 게 없나요?”

        “네. 방학이라 취재할 게 없었어요.”

         

        아이고 머리야.

         

        “그나저나 등 뒤에 멘 가방은 뭔가요? 혹시 남자친구 전해 줄 선물?”

        “일단 선물은 맞는데요. 남자친구라는 표현은 안 써 주시면 안 돼요?”

        “으흠! 안에 든 게 뭔지 한 번 보고요. 봐도 돼요?”

        “여태 벌이신 일로 봐서는 억지로라도 열어보실 생각이신 것 같은데요.”

        “아니죠! 아무리 그래도 타인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댈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안젤리카는 허리춤에 손을 얹으며 가슴을 쭉 폈다.

       

       그러자 틱, 하고 단추 하나가 떨어져 나왔다. 나는 그만 얼탱이가 없어서 코웃음을 치고 말았다.

         

        [잠깐만. 주인님…? 뭐 이상한 생각 품으신 건 아니겠죠?]

         

        그래. 아주 잠깐 정도는 보여줘도 괜찮겠지.

         

        [아뇨, 안 괜찮거든요!]

         

        나는 씩 웃으며 손을 거들었다.

         

        “마음대로 하세요.”

        “오! 그럼 실례할게요~”

         

        지이익. 등 뒤로 지퍼가 열리는 소리. 동시에 안젤리카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음색도 들려온다.

         

        그러나 그 콧노래는 오래가지 못했다.

         

        “…….”

        “왜 말이 없으세요.”

        “이거…. 이게 선물이라고요……?”

        “네. 남친이 퍽이나 좋아하겠어요.”

       

        나는 비릿한 미소와 함께 뒤를 돌아보았다.

         

        지이익.

         

        지퍼가 다시 닫혔다.

         

         

        **

         

         

        “야, 블랜튼. 저게 대체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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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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