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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6

        

         

       사천성의 중심 도시, 성도.

       촉나라의 도읍으로 유명하지만, 그 이전부터도 사천 땅의 중심으로 성세를 이룬 고도이기도 했다.

       산중에 둘러쌓인 거대한 분지인 사천 땅 중에서도 가장 비옥한 땅과 천혜로운 산을 가까이 두었으니, 가히 하늘이 내린 위치에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개중에서도 성도의 서쪽 구역, 숭주현은 민강에 인접하여 발전한 거리였다.

       

       물살이 약하고 부드러운 민강은 등불 붙이고 배 띄워 놓기에 최적의 장소다.

       그런 나루에 붙어 발전했다고 하면, 당연히 흥취 높은 유람객을 위한 온갖 주루며 다관, 그리고 붉고 푸른 기루와 도박장 따위가 밀집되는 것이다.

         

       

       만약 성도에 유람객이 왔다고 치자.

         

       얼얼한 사천 음식에 눈물 콧물 짜다가 이후로 개운해진 신체로 이것이 진정한 마라, 매운 맛의 즐거움임을 깨닫는 것이 첫째 날.

       다만 밤에 고생을 좀 해야 한다.

         

       둘째 날에는 청성산에 들러야 한다.

       앞산엔 그 유명한 청성파가 자리를 잡았다.

       뒷산은 둥글둥글 험하지 않은 산세에 식생이 다양하게 어우러진 모습이 세상 가장 그윽한 풍광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재수가 좋으면 대웅묘를 볼 수도 있다!

       거대한 곰 고양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고양이가 아닌 곰의 한 종류였다.

       청이 이 사랑스러운 생물을 보았다면 당장에 감탄을 참지 못하고 소리치고 말았을 것이다.

       와, 팬더! 팬더 아시는구나! 하고.

         

       그리고 셋째 넷째 날에 도강언이나 부후사, 문수원 등등 볼거리를 즐기고 나면 그 후에는 이제 뭘 해야 할지 막막할 수도 있다.

         

       그럴 때 숭주현에 가면 된다.

       민강에서 배 띄워 놀고, 술 먹고 도박장 돌며 질펀하고 화끈하게 놀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 슬슬 질릴 때쯤에 이르면, 그제서야 수상하게 접근하는 사내가 있었다.

         

       형씨. 보아하니 좀 노시던데.

       혹시, 진짜 화끈한 볼거리를 좀 보실라우?

         

       그렇게 호기심 반 의심 반으로 사내의 뒤를 쫓아가면, 어느새 지하로 뻗은 계단을 넘어 긴 통로를 지나 거대한 무대를 중앙에 둔 드넓은 지하 광장에 닿았다.

         

       아는 사람은 전부 다 안다는 사천의 명물, 성도 지하 투기대회장인 지하생사박이다.

         

       닭을 싸움 붙이는 도박을 투계라고 했다.

       그리고 사람을 싸움 붙이는 도박을 투기라고 했으니, 이곳이야말로 매일 생사투가 벌어지는 결투 도박의 최고봉이었다.

         

       

       오늘도 지하생사박은 뜨거웠다.

       청석 바닥으로 피가 흥건하고 인간의 잔해가 남았으니 그 열기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사회를 맡은 매담자가 구수한 입담으로 관객들을 홀렸다.

         

       “드디어 오늘에서야 우리의 도전자가 사천왕에게 도전첩을 올리고 말았습니다! 꼬박 열흘, 하루에 한 명씩 십 일 동안 매일 절정의 투사를 베어버린, 해남에서 온 도전자입니다! 모두 목청을 높혀 환대하여 주십시오!”

         

       동혈 아래의 철문이 열렸다.

       한 사내가 뚜벅뚜벅 걸어 모습을 드러냈다.

         

       “귀신같은 좌수검, 해남에서 온 검귀, 낭야차 역태강!”

         

       관객들이 뜨거운 함성으로 화답했다.

       

       그러자 매담자가 목이 터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성량으로 이어 외쳤다.

         

       “그의 도전첩을 받아준 지하생사박의 사천왕은 과연 어떤 대협이실까요. 지금 등장하십니다!”

         

       반대쪽 철문이 열리며 전신을 꽁꽁 싸맨 이가 등장했다.

       뚫린 것은 눈구멍뿐이나 그마저 면사로 가려 보이지 않았다.

       여인 치고는 상당한 키를 하고서는, 어지간한 장정도 쓰지 못한 거대한 대도를 쥐고 질질 끌며 다가오는 것이다.

         

       “지하생사박 사천왕 서열 삼 위, 여항적 대협께서 도전에 응하여 나오셨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얼굴을 알지 못하는 신비의 여인이자 인세에 환생한 항우장사의 재림! 여! 항! 적!”

         

       “—-!!!”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반응이 터져나왔다.

       거의 집단 광증이 도진 것 같은 성화였다.

         

       여항적이 그 묵직한 등장과는 다른 경박한 태도로 손을 번쩍 들고 이리저리 흔들며 그 성원에 화답했다.

       청의 지인이라면, 굳이 온몸을 가릴 필요가 있겠느냐고 물었을 장면이었다.

         

       마침내 피와 잔해로 너저분한 생사투장 위로 두 사람이 나란히 마주보고 섰다.

         

       “여항적이라니, 웃기는 계집이로군.”

         

       으레 생사투에 앞서 던지는 가벼운 견제였다.

         

       그러나, 아가리로 싸우자면 청은 이미 자연경을 지나 등선하여 신선과 상대해야 할 판이다.

       여항적의 입담이 이미 여러 관중이 본 이후라 유명하기도 했고.

         

       여항적이 상대를 가리는 것도 유명했다.

         

       “에이, 별 놈 아니네……. 빨리 끝내자.”

         

       청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그에 역태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 좋다. 여항적이라더니, 얼마나 그 용력이 강대하길래 그 오만한 이름을 쓰는지 한 번 보자꾸……”

         

       역태강이 말끝을 흐렸다.

         

       부웅! 부우우웅!

       무거운 것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살벌했다.

         

       길이는 오 척이요, 도신의 넓이가 한 척이니 그 무게만으로도 능히 스무 근은 너끈할 듯한 거병이었다.

       그 거병을 한 손으로 쥐고 나뭇가지라도 되는 양 가볍게 휘두르니 소리만으로도 오금이 저렸다.

       

       심약한 이라면 진작에 무릎을 꿇을만한 정면이었다.

       무공의 고하를 떠나, 애초에 인간이 가능한 행위가 아닌 것이다.

         

       “히, 힘 하나는 확실히 여항적이라 할 만하구나. 하지만 무공이란 것이 그 차이를 뛰어넘기 위한 방책이니, 진정한 무인은 내가 공부로 그 우열을……”

         

       역태강이 또다시 말끝을 흐렸다.

         

       거대한 도신으로 피어오르는 도기.

       

       도기가 맞나?

       도에서 무슨 황하강이 흐르지 않아?

         

       청의 내기는 순수한 양으로는 화경의 수준 중에서도 가장 끝자락에 자리잡은 것이다.

       깨달음이 모자라 압축하여 성강을 이루지 못하니, 그저 무식한 출력으로 꺼내 쓸 수밖에는.

         

       그 결과가 한 치나 솟아오른 두터운 내기의 칼날이었다.

         

       역태강이 그에 당당하게 소리쳤다.

         

       “정저지와라! 오늘 소인 역 모가 우물 안의 개구리에 불과함을 크게 깨닫고 말았습니다! 모름지기 사람이 모자람을 아는 때에 물러나야 한다고 하겠으니, 소인이 이만 물러남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그에 관중들이 일시에 욕설과 조롱으로 난동을 부렸다.

         

         

       —-

         

         

       지하생사박 부관주 척발성은 아주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그야, 오늘의 최고 흥행을 이루어야 할 경기가 맥없이 끝나버리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안 죽였군?”

         

       그러나 청이 대답했다.

         

       “아니, 척발 씨. 누가 들으면 내가 맨날 사람 죽이는 마두인 줄 알겠어. 내가 얼마나 선량한 사람인데. 나도 정파의 여협이거든요?”

         

       “……? 항상 그리 주장이야 하다마는.”

         

       척발성이 눈만 끔벅거렸다.

       지하생사박의 관중들은 투사가 잔혹하고 잔인할수록 더 열광하여 매달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여항적은 지하생사박 최고의 인기를 가진 투사였다.

         

       여항적의 경기에서는 도박의 종목 자체가 달라지는 판이다.

       오늘 상대는 몇 조각으로 썰릴 것인가, 하고.

         

       여항적이 분명 절정 후기가 맞으니 절정 경기에 내보내긴 했다.

       하지만 애초에 격이 다른 실력으로 전승 중이라 승패로 거는 투전으로 영 재미를 못 본다.

         

       그래서 아예 다른 쪽에서 금전을 버는 것이 바로 오늘은 몇 조각, 몇 합을 버티느냐 하는 내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따금 오늘처럼 상대를 건들지 않고 얌전히 내려보내는 때가 있으니 오늘도 손님들의 항의로 곤욕을 치른 참이었다.

         

       “아무튼 이런 식이면 곤란해. 이쪽도 땅 파서 장사하느냔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다음부터는 초절정으로 경기를 올리지.”

         

       “뭐에요, 내가 절정인데 왜 초절정들 경기에 나가요? 그냥 그만두고 말지.”

         

       그러차 척발성이 살살 손바닥을 비볐다.

         

       “그러지 말고, 초절정에 막 든 놈으로 한 번 잡을 테니 싸워 보게나. 타고난 용력에 거병을 더하면 그 정도는 충분히 이길 수 있어.”

         

       “흠. 그런가?”

         

       청이 복면의 턱 부근을 살살 매만졌다.

         

       아직도 경지는 오르지 않고, 어쩌면 약한 놈 말고 초절정 이상을 상대해야 할지도 몰랐다.

         

       본래 초절정을 상대할 때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검강이라서, 검기로는 대적이 불가능하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할아범의 강기를 몇 번 정도 막아내 보니 모자란 깨달음은 무식한 내기의 출력으로 때울 수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교환비가 형편없기는 했다.

       강기로 쓰는 내기가 10이라 하면, 검기만을 그저 무식하게 뽑아 밀어내는 데에는 50, 60의 내기가 들었으니.

         

       그래서 예로부터 절정과 초절정의 벽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 것이기도 했다.

       애초에 교환비도 형편없는데, 진기의 양 역시 초절정이 훨씬 많았다.

         

       영약을 무식하게 처먹었거나, 청 같은 특수한 사항이 아니라면 절정의 내기 수준이야 거기서 거기 또이또이하기에.

         

       게다가 이젠 청의 근력이 사람을 한참 넘은 상태에 이르렀다.

       제아무리 내공 공부가 뛰어난 무인이라 한들, 압도적 중량의 차이를 무시할 수는 없었으니.

         

       “좋아요. 다음 경기는 초절정 초입하고 한 번 싸워 보지, 뭐.”

         

       “잘 생각했네. 받게, 오늘의 대전금이네.”

         

       척발성이 한눈에 보기에도 꽤 묵직한 주머니를 툭 내던졌다.

         

         

       —-

         

         

       청이 사천에 들었을 때는 계획이 있었다.

       일단 성도에 들러 서문희가 무사한지 확인한 후에, 잠시 최리옹을 맡기고 아미파에 다녀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다섯 번째로 큰 기루에 소식을 맡겨놓겠다더니, 온 동네 기루를 다 뒤져도 소식이 없다.

         

       왜 그러느냐는 최리옹의 물음에 털어놓았더니, 혀를 쯧쯧 차며 말하는 것이었다.

         

       ‘네 말대로라면 네가 먼저 교를 나서서 출발한 것이 아니냐? 거기에 천마총에서 또 내달려 사천에 닿았으니, 녀석들이 아무리 빠르다고 한들 이미 성도에 있을 리가 있나.’

          

       그렇다.

       청이 먼저 도착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미파로 향할 수는 없었다.

       현재 최리옹이 너무 연약한 상태였으니까.

       육십 년 내공을 흩어버리고 새로운 심공으로 대체하는 중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결코 유난히 입에 맞는 사천 음식과 빈둥거리기가 너무 즐거워서가 아니라.

       최리옹 때문에라도 정말 어쩔 수 없이 성도에 머물 수밖에는.

         

       그런데, 성도의 물가가 너무 비쌌다.

       

       본래 명승지의 물가는, 게다가 외지인에게는 특히 더 비싼 법이었다.

       중원에서 외지인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행위는 아주 당연한 상식이기에 더욱 그랬다.

       상인에게는 당연하고, 당하는 이마저도 아주 당연하게 여겼다.

       

       청이 바가지에 화를 내도 대체 뭐가 문제냐는 최리옹의 뚱한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으니까.

         

       돈은 없고 나올 구석도 없고 이젠 어찌해야 이 빈둥거리는 삶을 지속할 것인가 고민하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지하생사박을 알게 되었다.

       

       그게 벌써 한 달 반도 지난 일이었다.

         

       

       

       청이 돌아오자 최리옹이 혀를 쯧쯧 찼다.

         

       “쯧. 또 그 천박한 곳에서 매검이나 하고 온 것이냐.”

         

       최리옹의 입장에서야 영 수상쩍은 투기판에서 칼을 휘두르는 것이 못마땅할 수밖에는.

         

       청이 인상을 바락 찌푸렸다.

       내가 누구 때문에 밤마다 이 고생인데.

         

       물론, 투사들 거진 대부분이 악인이기 때문에 선업 점수를 주고 싸움이라 수련점도 얻었다.

       악인 죽이는 손맛과 그에 화답하여 날아드는 환호까지 직업 만족도가 최상이기는 했다.

         

       아무리 재미있고 유익해도 노동은 노동이다.

         

       “원래 직업엔 귀천이 없는 법이랬거든요?”

         

       “……? 그게 무슨 해괴한 소리냐? 어찌 직업에 귀천이 없을 수가 있어.”

         

       “앗. 이쪽엔 있었지. 헷갈렸네.”

         

       여기는 원시 고대 미개 중국이었다.

       직업의 귀함과 천함이 아주 명확하게 표로 정리된 세상이었다.

         

       “어쨌거나, 할아범. 빨리, 빨리. 내가 미리 준비하고 있으라고 했잖아요. 돌아오면 바로 갈 거라고.”

         

       “이대로 가면 된다. 그런데, 대체 먹는 것이 그렇게도 좋으냐?”

         

       “아니, 궁극의 마라탕이라잖아요. 궁극. 궁극을 어떻게 참아요?”

         

       그렇다.

       청이 예약을 잡아놓은 그날이었다.

         

       성도에 와선 꼭 먹어야 하는 요리.

       죽기 전에 꼭 먹어봐야 한다는 요리.

       한 그릇을 위해 중원을 가로지르는 한이 있더라도 성도에 들러야 한다는 그 요리.

         

       천하제일숙수 백창자가 만드는 궁극의 마라탕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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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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