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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6

       내가 자꾸 원작에서 보지 못한 인간들을 마주치는 이유는, 역시 내가 원작의 내용을 그만큼 비틀었기 때문일까?

        

       솔직히, 조금 억울했다.

        

       내가 이야기의 뒤편에서 했던 일들이 조금 있기는 했지만, 다른 빙의물의 주인공들처럼 아예 주인공이 바뀌어버릴 만큼 서사를 비틀어버리지도 않았고, 히로인들을 공략한 것도 아닌데.

        

       아니, 뭐, 그래. 황제가 오는 것까지야 이해한다. 내가 좀 유능해 보였고, 그래서 그 유능한 딸을 돕기 위해 황제가 직접 움직였다고 하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레나야 뭐, 내가 북부 전선에서 친 난리가 있었으니 나를 감시하기 위해 보냈다고 하면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쟤는?

        

       아무리 법국이 눈치가 빨라도, 베라티가 잡혀서 자기가 알고 있던 정보를 줄줄 불었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는 없다. 노스우드는 제국 안쪽에 있는 영지였고, 법국까지 하룻밤 만에 갈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으니까.

        

       자동차를 타고 가도 법국까지 이어진 차도가 완벽하게 정비되어 관리되는 것도 아니었고, 이 밤중에 법국으로 가는 기차가 있을 리가 없다.

        

       설령 정보를 알아차렸다고 해도, 지원 병력이 여기까지 오려면 한참 걸리는 데다가…… 이 안에 들어오려면 지보가 있어야 하는데.

        

       하지만 상대의 옷에서 밝은 빛이 새어 나오지는 않았다.

        

       “사실은 아까부터 대화라는 것을 시도해보고 있었는데 말이다, 저쪽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구나.”

        

       황제는 여유로운 태도로 그렇게 말했다.

        

       “…….”

        

       그런 황제를 흘겨봤지만, 그에게도 정보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나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것인지, 황제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지.”

        

       황제는 정체불명의 여인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 유적 안에 있어야 했을 지보는 이미 저자의 손에 넘어갔다. 우리가 쓰러뜨려 빼앗지 않는 이상은 우리 손에 들어오지는 못할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여기까지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문 앞을 막은 채로?

        

       만약 저자가 유적의 지보를 가지고 가는 것이 목표라면, 굳이 황제를 상대하지 않고 도망가는 방법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저기 그저 서 있었다는 것이 영 꺼림직했다.

        

       “…….”

        

       나는 한 발짝 앞으로 나갔다.

        

       그자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혹시 살아있는 것이 아닌가? 그냥 황제가 우리를 놀리려고 세워둔 동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상대는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내가 한 걸음 앞으로 가는 것과 동시에, 내 뒤쪽에 있는 다른 이들도 한 발자국씩 앞으로 다가왔다. 조금 넓게 퍼져서 부채꼴로 상대를 감싸고, 포위하듯 전진한다.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사람 사이의 틈은 꽤 크긴 했지만.

        

       가장 먼저 움직인 쪽은 벨라였다.

        

       그 길게 늘어지는 사복검을 순간 채찍 형태로 만들어서, 마치 죄인을 내려치듯 휘두른다. 채찍 자체도 상대에게 끔찍한 고통을 내리는 형벌 무기였지만, 저건 그 채찍보다 더한 물건이다. 검날에 베이면 단순히 베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살이 찢어지고 뼈가 보이겠지.

        

       그리고 그때까지도 미동도 하지 않던 상대도 움직였다.

        

       곧장 앞으로.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던 내 쪽으로.

        

       “실비아……!”

        

       앨리스가 반사적으로 그렇게 외쳤다. 클레어가 서 있던 쪽에서 빠르게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도 가만히 있던 것은—

        

       —아니려고 했지만—

        

       안 돼.

        

       견착한 산탄총을 상대에게 겨누는 순간, 내 머릿속에서 그런 소리가 울렸다.

        

       아니, 그런 소리가 들린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마치 나의 본능이 내 움직임을 잡아서 멈췄다는 것에 더 가까우리라.

        

       쏴서는 안 된다. 

        

       저 사람을 쏘면, 나는 분명히—

        

       후회하게 된다.

        

       “……!”

        

       순간 소름이 돋았다. 방아쇠에 걸쳐졌던 손가락이 경련하듯 앞으로 당겨졌다. 마치 누군가가 내 손가락만 잡아서 반대로 당기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움직임 자체가 거부되는 것 같은 느낌.

        

       “언니, 안 돼……!”

        

       상대가 나에게 달려드는 것을 보고, 클레어가 검을 휘두른다. 마치 채찍처럼 뒤따르는 검기가 눈에 보였다. 클레어가 휘두르는 검보다 반 박자 정도 느리게, 그 검기는—

        

       그 검은 로브를 입은 자에게—

        

       닿■으려고○야¿어야했다?

        

       *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분명 클레어가 검을 휘두르고, 클레어의 장기인 그 검기가 그자의 팔에 닿았다.

        

       닿았어야만 했다. 피할 틈은 없었다. 내 동체시력으로도 볼 수 있을 만큼 확실했다.

        

       하지만, 검기는 닿지 않았다.

        

       “어……?”

        

       클레어가 당황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내 산탄총이 뒤로 밀리는 것이 느껴졌다. 총구는 그자의 복부에 닿아있었다. 그냥 닿은 것이 아니라, 내 쪽으로 끊임없이 전진하는 그 이름 모를 인간의 배가 총구 모양으로 안쪽으로 살짝 들어가 있을 정도였다.

        

       힘은 나보다 강했다. 내 팔이 뒤로 밀리고, 총을 들고 있던 내 팔도 아래로 내려갔을 만큼.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나의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조차 위험하다는 듯, 검지부터 중지, 약지, 새끼손가락이 차례대로 손잡이에서 떨어졌다.

        

       총을 완전히 놓쳤다. 마치 포옹이라도 하려는 듯, 아니, 물론 그런 자세라고 하기에는 영 이상했지만, 그자는 내 쪽으로 계속 와 붙었다.

        

       하얀 가면이 내 얼굴 가까이 다가온다.

        

       검은 구멍 안으로, 눈동자가.

        

       휘익, 바람 가르는 소리가 났다. 앨리스의 검일까? 아니면 벨라의 채찍 같은 검일까? 확인하고 싶었지만, 고개가 돌아가지 않았다.

        

       눈동자의 색은, 그림자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안쪽에서 빛나는 것은 분명히 사람의 눈이었다.

        

       “실 ㅂㅣ 아.”

        

       마치 사양 낮은 컴퓨터에서 게임을 억지로 돌렸을 때처럼, 소리가 프레임을 늘린 듯 늘어져 들렸다.

        

       이 인간과 내가 있는 시간의 위치가 맞지 않는 것처럼.

        

       그 순간.

        

       그자의 말이 끝나기 전에, 내 쪽으로 클레어가 달려들었다.

        

       클레어는 그대로 어깨로 그자를 들이받아서—

        

       *

        

       다시 한번 프레임이 중간에 뚝 잘린 것처럼, 시야가 바뀌었다.

        

       나는 아까와는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 그자의 목소리가 가면 너머로 선명하게 들릴 만큼 가까운 곳이기는 했다.

        

       클레어는 허공을 들이받았다. 중심을 잃고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발로 바닥을 긁으며 드륵, 하는 소리를 내면서, 클레어는 명백하게 당황한 소리를 흘렸다.

        

       “—절대로—”

        

       절대로, 뭐……?

        

       하지만, 내가 그 뒷이야기를 듣기 전에,

        

       “——!”

        

       그자는 옆에서 달려든 앨리스의 어깨에 받혀 날아갔다.

        

       “괜찮아!?”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앨리스의 얼굴이 시야 안을 가득 찼다. 아무래도 나는 그자를 따라 옆으로 넘어지려던 모양이다. 앨리스는 넘어지던 나를 받아서 든 상태였다.

        

       “괜찮—”

        

       하지만, 앨리스 뒤쪽에 금세 그자가 나타났다. 마치 허공에서 일어난 것 같은 모습으로. 손에 들고 있던 양손검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그 대신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리볼버.

        

       내가 쓰는 것과 같은 모델.

        

       지난번 전투에서 몇 번 땅에 구르고 긁히면서 난 상처에, 그 위로 몇 개 더 새로운 상처가 나 있는.

        

       하지만……

        

       나는, 저걸 오늘은 가지고 오지 않았었는데—

        

       내가 어떻게 반응하기도 전에, 이번에는 이 방의 높다란 천장까지 닿을 정도로 긴 검기가 마치 죄인을 참수하듯 아래로 떨어졌다.

        

       카가각,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면서 천장과 벽과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리고, 당연히 그 검기가 지나간 자리에 있던 그 손은 그대로 아래로 떨어■□했다.

        

       하지만 마치 그 현상 자체가 취소되기라도 한 듯 손에는 여전히 총이 들려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다시!

        

       *

        

       쩌적, 하고, 공간이 깨졌다.

        

       머리가 웅웅 울렸다.

        

       마치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벽에 부딪힌 것처럼, 피잉— 하고 귀에 이명이 감돌고, 뇌가 흔들린 듯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시야가 흐렸다. 눈에서 스며 나온 눈물 때문일까.

        

       내 옷깃을, 무언가가 잡고 있었다. 마치 그 안쪽으로 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듯이.

        

       멱살을 잡아 끌어올리듯, 공간 너머에서 나를 끌고 가는 그 손은 하얀색.

        

       깨진 공간의 경계는 마치 유리가 깨진 듯 날카로웠다.

        

       그 유리에 긁히는 것도 상관없이, 팔은 피를 흘리면서도 나를 잡아끌었지만—

        

       나는, 아무래도 그 팔이 잡고 있기에는 너무 무거웠던 모양이다.

        

       북, 하고 그 손이 잡고 있던 옷깃이 찢어졌다.

        

       나는 그대로 아래로 추락했다.

        

       *

        

       “—비아!”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한동안 산소공급이 중단되었던 폐에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며 시야가 탁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누군가의 무릎 위에 누워있었다.

        

       눈을 몇 번 깜빡이자, 흐렸던 시야가 맑아졌다. 눈에 고여있던 액체가 옆으로 흘러내린 덕분이다.

        

       나를 걱정스럽다는 듯 내려다보던 사람은 앨리스, 그리고 클레어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옷깃을 만졌다.

        

       마치 강제로 뜯어낸 듯 찢어진 옷깃의 불규칙한 표면이 손에 만져졌다.

        

       ……진짜로 벌어진 일이다. 악몽이 아니라.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클레어가 내 양어깨를 꽉 눌러서 나를 다시 앨리스의 무릎 위에 눕혔다.

        

       “그자는?”

        

       “사라졌다.”

        

       황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쓰러지는 것과 함께.”

        

       “전투는?”

        

       “전투라.”

        

       그렇게 말하는 황제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어려있었다.

        

       “우리가 그자와 싸웠나?”

        

       “…….”

        

       황제의 물음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2.11.25-중간에 [[후회하게 된다.]] 부분을 볼드체로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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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1. Sitidara says:

    Aaahhh astaga, MC gak kompeten membuatku bosan+jengkel baca 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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