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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6

    시간은 흘러흘러, 루크가 기다리던 마법경시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온 어느날.

    루크는 마지막으로 참가를 확정하기 위해 아카데미에 도착했다.

    “그래, 그동안 공부는 충분히 했어?”

    “물론이지.”

    “알겠어, 선생님은 루크를 믿으니까.”

    “하하. 그래. 부디 내 걱정은 말게나.”

    당당한 루크의 표정과 말투에 엠마는 더이상 별다른 조언을 할 게 없어서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충분히 설명은 끝냈고, 참가자격도 충분하다.

    이제는 루크가 정할 일이지, 선생으로서 아이의 앞길을 막아선 안되리라.

    엠마는 컴퓨터에서 추천서를 출력하여 루크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루크의 목소리는 상당히 고양되어 있었다.

    엠마가 건네는 스크롤을 바라보는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루크는 이런 표정도 지을 줄 알았구나.’

    그동안 애가 무척이나 무뚝뚝해서 걱정이었는데, 아무래도 괜한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엠마는 알 수 없는 뿌듯함을 느끼며 루크에게 방금 인쇄된 스크롤을 건네며 말했다.

    “자, 이 추천서를 잘 갖고 있어야 해. 입장할 때 제출해야 하니까. 아, 학생증도 꼭 챙겨두고.”

    “며, 명심하지.”

    루크는 뭔가 대단한 거라도 받은 것 처럼 두손으로 공손하게 추천서를 받아든다.

    그 모습을 보며 엠마는 생각했다.

    ‘추천서가 저렇게 좋을까.’

    그냥 경시대회출전 확인증에 가까운 추천서를 받고도 저렇게 눈을 반짝거리다니, 어지간히도 마법경시대회가 기대되는 모양이었다.

    루크는 평소에도 마법과 공부에 관심이 많으니까.

    그런 엠마의 생각과는 달리, 루크는 정말로 추천서가 신기해서 마력시를 운용하면서까지 그것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오, 맙소사. 순식간에 종이에 인쇄까지 마쳤다. 이 시대에 도대체 어떻게 그토록 다양하고 많은 인쇄물이 있었는지, 이제야 알겠군.

    게다가, 이것은 그냥 종이가 아니야……. 위조방지를 위해 미세하게 인챈트가 들어가있어. 이런 데 쓰기엔 꽤 정교한 술식이로군. 이정도의 스크롤을 한 순간에 제작해낸다니…….’

    하지만 루크의 머릿속을 알 리가 없는 엠마였다.

    “이거, 한장 더 인쇄해 줄순 없나?”

    “그건 안돼.”

    “왜지?”

    “추천서는 항상 일이 있을때마다 한사람당 한번이야. 그러니까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 알겠지?”

    “그거 참 아쉽군.”

    엉뚱한 루크의 질문에 답해주니, 루크는 여전히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추천서를 살피며 교무실을 나갔다.

    엠마는 잠시 루크의 뒷모습과 살랑이는 꼬리를 지켜보다가 웃음이 새어나오는 것을 느꼈다.

    얼마나 좋았으면 평소에 잊지않고 꼭 하던 인사도 빼먹었을까, 해서.

    역시, 뭔가에 신경을 쓰면 다른건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 아이의 모습이겠지.

    루크도 어쩔 수 없는 아이인 것이다.

    의자를 돌려서 창 밖의 풍경으로 시선을 향했다.

    엠마의 초점에는 쉬는시간을 놓치지 않고 운동장으로 나와 즐겁게 놀고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맺힌다.

    그 모습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10살부터 경시대회 참여라니…….’

    같은 나잇대의 애들은 저기서 놀고 있지만, 루크는 언제나 특별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아이들과도 잘 어울렸다면 참 좋았을텐데.’

    ——-

    방금 받은 스크롤과 스크롤이 인쇄되는 광경을 눈에 담은 루크는 그답지 않게 꽤 흥분한 상태였다.

    -신기해-?

    “그럼, 물론 신기하지 않겠느냐? 방금 그대도 봤잖은가, 그 사각형의 마도기기에서 스크롤이 몇초도 안되는 시간에 인쇄되는 모습을!”

    -그래-? 미안, 나, 마법은 잘 몰라서.

    “마법이 아니어도 그것은 혁명적인 것이었다. 그런 게 있다면야, 확실히. 이 시대의 도서량도 이해가 가는군. 일일이 손으로 작성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는가? 게다가, 그렇게 빠른 속도로 이토록 정교한 마법진까지 인챈트하다니, 파이. 그대는 방금 이 문명의 정수를 본 것이라네.”

    -루크, 지금 정령어 하는거 맞지?

    파이가 질린듯이 고개를 젓는다.

    ‘역시 마법사들은 이래서 싫다니까.’

    항상 마법사들은 정령들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고, 매번 독선적이었으며 그들의 마법은 정령들을 아주 귀찮게 굴었다.

    루크도 마법사가 섞여있기 때문일까, 아무리 그녀가 ‘에레’라고 해도 그런 싫은 특징들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대체, 심장에 마나를 얼마나 많이 모아둬야 루크는 만족하는걸까?’

    파이는 그것도 사실 이해하기 어려웠다.

    처음엔 어느정도 마나를 모으면 그만 만족하고 끝낼 줄 알았는데, 2서클을 쌓고, 3서클을 쌓고서도 여전히 루크는 만족할 줄 몰랐다.

    마나란건 그냥 필요할때 아무데서나 빌려서 사용하면 되는건데, 현대에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사용하고 있잖은가?

    굳이 생물의 심장에 그토록 마나를 쌓아둘 필요가 있을까?

    그것은 자연적이지 못하다.

    -…….

    뭐, 불만은 있지만. 그렇다고 ‘에레’가 싫어질리는 없다.

    정령은 결국 에레를 싫어할 수가 없으니까.

    그리고 드디어, 루크의 기나긴 설명이 끝났다.

    “……그래서, 어떤가?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충분한 설명이 되었나?”

    중간부터 전혀 듣고있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설명하는 루크의 감정은 굉장히 들떠있었기에 대충 얼마나 그것을 좋아하는 것인지는 전해져왔다.

    파이는 그냥 이해하지 않고 공감하기로 했다. 

    많은 평범한 정령들처럼.

    -루크가 좋다면 나도 좋아.

    그러나 파이의 정령어에 담긴 감정을 읽어내지 못할 루크도 아니었다.

    “그렇느냐……? 이런, 나 혼자서 너무 들떠버린 모양이로군. 미안하네.”

    루크가 그렇게 파이에게 사과하는 순간, 누군가 말을 건다.

    메리 아이델이었다.

    “안녕-! 또 학교에 왔구나!”

    “그래. 반갑구나, 메리.”

    루크의 얼굴엔 평소보다도 훨씬 상쾌해보이는 미소가 담겨져 있었다.

    마치 전염될 것 같은 그 미소를 바라보며 메리도 살짝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그런데, 뭘 그렇게 보고 있었던거야?”

    “아, 엠마에게서 추천서를 받았단다. 이게 있으면 드디어 마법경시대회에 나갈 수 있다더구나.”

    루크가 손에 든 스크롤을 보여주자, 메리는 한없이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추기 위해서 손으로 살짝 입을 가렸다.

    ‘저것때문에 그렇게 신나서 콧노래를 불렀던 거구나, 루크도 귀여운 면이 있네!’

    정령어를 알 리 없는 메리의 귓가엔 루크가 파이에게 열정적으로 토해낸 그 설명이 그저 즐거운 콧노래소리로만 들렸기 때문이었다.

    “아, 마침 잘 되었군. 메리, 시루드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는가?”

    “음, 아마 지금은 반에 있을 거야!”

    “알려줘서 고맙구나, 메리.”

    “그런데, 시루드는 왜?”

    “고백할 말이 있어서.”

    “……응? 고, 고백……?”

    “메리, 혹시 시루드는 사탕을 좋아할까? 아이들은 다들 좋아하던데.”

    “그……럴걸……?”

    메리는 전율했다.

    드디어 올것이 왔구나, 해서.

    ————

    루크의 부름에 불려나온 시루드는 살짝 긴장한 모습이었다.

    ‘고백할 말이 있으니, 잠시 시간을 내어주겠느냐?’라며, 얼굴을 붉혀오는 루크의 모습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탓이었다.

    ‘고백……? 루크가……?’

    어안이 벙벙하고 심장이 쿵쾅댔다.

    비록 불안정한 1서클이던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두개의 서클이 시루드의 심장박동에 맞춰 맹렬하게 회전하는 중이었다.

    루크는 그 마나의 흐름을 제어하기 위해 시루드의 손을 붙잡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남들에겐 또 어떻게 보였을지 모를 일이다.

    실제로 메리는 굉장한 눈빛을 보내왔으니, 남들에게 어떻게 보였는지는 자명한 사실이다.

    시루드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니 도리어 더욱 진정하기가 어려웠다.

    여기에 오기 전에 미리 감정억제제 한 알을 집어먹고 왔는데, 그럼에도 심장은 도저히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루드는 눈을 꽉 감고 되뇌인다.

    ‘정신차려, 또 루크가 루크하는걸지도 몰라.’

    그래, 시루드는 이런 패턴에 너무 많이 당했다.

    하지만 이 분위기는 뭐지?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해오는 루크의 모습은 평소와 달라도 너무 달랐으니까.

    ‘혹시, 진짜로?’

    심장이 멈추든, 시간이 멈추든. 

    아무튼 둘중 하나는 분명히 멈출 거라고 생각 될 정도로 긴장된 순간.

    그토록 뜸을 들이던 루크의 입이 열렸다.

    “그, 너무 놀라지 말고 듣거라, 시루드.”

    “으, 응.”

    “그……. 그대가 빌려준 슈퍼매직리그의 계정이 정지당했다.”

    “……응?”

    엄청난 분위기에서 나올만한, 전혀 예상치 못한 헛소리.

    시루드는 머리끝까지 올랐던 피가 도로 쭈욱 내려가는것을 느꼈다.

    감정억제약의 효과가 도는건지, 그냥 어이가 없어서 그런건지 잘 모르겠지만.

    시루드가 차가워진 두뇌만큼이나 차가운 시선으로 루크에게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자, 루크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뭔가. 내가 불법을 저질렀다던 모양이로구나. 그대의 계정이었는데, 내가 잘못을 해서 그대에게 폐를 끼치고 말았어…….”

    “……뭐?”

    아니, 고작 그것 때문에?

    “……그거 말하려고 굳이 여기로 불러낸거야……?”

    시루드는 허탈함을 넘어서 허무함을 느끼고 있었다.

    루크에게 아무리 ‘내 두근거림을 돌려줘!’라고 외쳐봤자 씨알도 먹히지 않겠지.

    원래 루크는 그런 애니까.

    놀랍도록 무신경한 여자애.

    시루드의 허탈한 표정을 보며, 루크는 괜스레 뿔과 이어지는 턱선을 긁었다.

    과거에도 루크가 굉장히 곤란하거나 부끄러워지면 하던 버릇이었다.

    평소엔 그런 버릇을 억눌러왔지만, 지금은 그조차 신겅쓰지 못 할 정도로 시루드에게 미안했으니까.

    “그……. 비록 내가 몰랐다지만 불법을 저지를 것이잖느냐? 공공연히 떠들만한 주제는 아니겠다 싶어서 말이다.”

    루크는 주위를 살피다가 더욱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시루드에게 말했다.

    “혹시, 네 계정으로 벌어진 일이니 네게 피해가 가는게냐? 만약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그들에게 네 탓이 아니라, 내 잘못이라 말할 수 있을까?”

    맙소사.

    시루드는 찹, 소리가 나도록 손으로 치듯이 얼굴을 가렸다.

    루크는 계정정지를 당하고 나온 안내문을 보고 분명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줄 알고 이렇게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끌고와서 비밀스럽게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정말 루크다운 엉뚱한 발상이기는 하지만…….

    ‘무슨, 사람을 죽인것도 아니고…….’

    이렇게 심각할만한 일인가?

    음, 혹시 욕설이나 그런거라면 고소를 당할수도 있겠다 싶어서 시루드는 살짝 긴장한채로 루크에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불법을 했는데?”

    “음, 내 컴퓨터에서 게임을 최적화하기위해 코어배열 몇개를 좀 건드렸다. 그렇게 몇판정도 하니까……. 갑자기 내게 불법을 저지른 흔적이 보인다며 계정의 권한을 빼앗아버리고 말더구나.”

    “…….”

    그야 슈퍼매직리그는 유저들간의 네트워크게임이니까, 프로그램의 코어배열을 건드리면 정지를 당하겠지.

    불법프로그램 사용이나 정보변조로 정지를 당할만 했다.

    만약 루크가 자신의 계정으로 회원가입을 했고, 그 과정에서 ‘사용자 계약’에 관한 문서를 충분히 읽고 숙지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촌극이다.

    ‘그런데, 그걸 또 변조를 했구나…….’

    루크는 대체 머리가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는데, 지금이 딱 그 상황이다.

    시루드는 한숨을 푸욱 쉬면서 손을 내저었다.

    “됐어, 별 일 아니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 어차피 부계정이었고.”

    “휴우……. 그것 참 다행인 일이구나. 마음의 짐을 덜었어.”

    시루드의 대답을 들은 루크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안주머니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럼, 이 사탕이라도 받거라. 원래 같이 주면서 용서라도 구할 생각이었는데, 필요 없었구나.”

    루크는 품 속에서 꺼낸 포장된 사탕묶음을 시루드에게 건넸다.

    “계속 품 안에 넣고 있었던거야……?”

    “걱정말아라, 마법으로 온도를 적당히 조절해서 녹진 않았으니.”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시루드는 얼결에 사탕을 받아서 사탕을 바라보다가, 적어도 사탕은 받았네 싶어서 한알을 꺼내 입 안에 넣었다가 곧바로 뱉었다.

    너무나 이질적이고 강렬한 맛이었으니까.

    “……루크, 이거 대체 무슨 사탕이야?”

    “홍삼과 계피, 그리고 박하……인데, 혹시 싫어하나?”

    “이런걸 대체 누가 좋아해! 할아버지도 아니고. 이건 가져가. 마음만 받을게. 난 이미 용서했으니까, 그건 딱히 신경쓰지 말고.”

    “……하하…… 그러지.”

    옛날엔 다들 좋아하는 맛이었는데…….

    루크는 또 곤란하게 웃으며 턱선을 긁었다.

    ——–

    개운한 표정으로 돌아오는 루크를 본 메리.

    여기서 결과를 묻지 않는다면 메리 아이델이 아니다.

    그녀는 곧바로 날듯이 달려가 루크의 팔짱을 끼워올리며 물었다.

    “루크, 어땠어? 고백은 잘 끝났어?”

    “아, 말은 다 전했다. 고맙구나, 메리.”

    “내가 뭐얼~! 그래서, 어땠어? 시루드가 뭐래?”

    “나는 딱히 신경쓰지 말라더군.”

    루크의 대답을 들은 메리는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

    힘이 풀리며 끼웠던 팔짱도 함께 풀렸다.

    ‘설마, 차였다고……?’

    루크가 차이다니?

    ‘그럴리가 없는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메리에게 쐐기를 박는 듯, 루크는 무심하게 무언가를 건네왔다.

    “아, 메리. 혹시 사탕 좋아하나?”

    “…….”

    루크가 건네는 예쁘게 포장된 사탕묶음을 보니, 결과가 더욱 확실하게 느껴졌다.

    저 사탕은 분명 시루드에게 주려고 손수 포장을 했을 물건인데, 지금 루크의 손에 있다는 건…….

    루크는.

    확실히 차였구나.

    “아니야……. 내가 그걸 어떻게 먹어…….”

    “…….”

    루크는 도로 사탕을 품 속으로 집어넣으며 생각했다.

    ‘이 시대의 아이들은 홍삼맛과 계피, 박하맛을 싫어하나보구나.’

    이맛도 익숙해지면 맛있는데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대체 홍삼캔디는 뭐가 좋아서 먹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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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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