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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6

       반마족 정서는 제국민의 심장에 자리 잡고 있다. 마계와 대적한 역사가 역사다 보니 경쟁국 심리가 정서로 자리 잡아 버린 것이다.

         

       다만 경쟁이 제국의 압도적 승리로 끝난 지금 시점엔 그것도 많이 완화됐다. 승전국이자 패권국으로써 패배자 때문에 괜히 머리 아플 이유가 없으니.

         

       현재는 나름 온화한 분위기다. 마계는 속국 비슷한 상태니 마족은 2등 시민 정도는 됐다. 군사 요충지인 하늘섬에 마족이 평화롭게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완화된 분위기를 누구나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대신전에서 마왕이 등장할 거라는 예언을 공표한 지금은 애국자의 뚜렷한 경계심이 마족을 향했다.

         

       모든 마족의 하늘섬 추방을 외칠 만큼.

         

       “이건 엘리의 복수!”

         

       파스텔은 마석을 투척했다. 폭발이 일었다. 나무가 둥글게 분쇄되며 쓰러졌다.

         

       “이건 억울한 내 마음의 복수!”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에!

         

       마석이 슝 날아가 바위를 터트렸다.

         

       “억울! 억울!”

         

       크래프트는 반마족 행보로 애국자를 정하면 가장 선두에 있을 가문이었다. 마계 정복을 완수한 가문인 것도 그렇고 정복 과정의 악랄한 방식도 그렇다.

         

       당장 이 아카데미가 마족의 하늘섬 성지였는데 마계를 침략할 사관학교로 탈바꿈했던 곳이잖아!

         

       그것도 합리적이고 군사적인 이유로 세운 게 아니라 일부러 성지를 능욕해 마족의 전의를 상실시키겠다는 악랄한 의도로!

         

       얼마나 삐뚤어진 의도였는지 괜한 증오심만 극대화시켜 결국 마계 측에서 종전 협상에 못 나오게 만들어 버렸다는 사후 평가까지 있다.

         

       “조상님들 왜 그러고 사셨어요!”

         

       덕분에 웬 모르는 교수님이 마족 추방을 주장하자마자 이건 크래프트 각하의 우회적 발언이 아닌가 의심받게 됐잖아요!

         

       엘리한테 미안해서 어떡해!

         

       앞에선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뒤에선 자신을 헐뜯는다는 얘기를 들은 것과 마찬가지잖아!

         

       휴학 사유를 생각하면 소문이 휘둘린 거 같진 않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이성만으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오.

         

       흐트러진 분홍 머리카락이 떨렸다.

         

       분홍 눈동자가 부서진 나무 잔해를 차갑게 노려봤다.

         

       “날 견제하려는 의도는 이해한다 쳐도 방식이 너무 악독해.”

         

       내가 총장 대행으로 내정한 호레이스 교수님을 놔두고 일부 교수진이 마리우스 교수를 민다라.

         

       왜 조용하다 지금 나서는지는 이해가 된다.

         

       기사단과 갈등 중이다. 그리고 크래프트 상단이 슬슬 사병 유지에 힘이 벅차다는 소식도 들렸을 거다. 상황상 시기적절하게 힘을 보여주면 타협할 것이라는 판단이겠지.

         

       좋은 판단이다.

         

       정작 교수진이 움직인 그 며칠 사이에 캐머롯의 황실령 특권으로 기사단을 손에 넣은 상태지만.

         

       “멜리사가 아니었으면 골치 아프긴 했겠어.”

         

       두 명뿐인 학생회 인력 중 사무를 전담하는 엘리를 정책으로 저격해서 학생회를 마비시키다니.

         

       친위 세력 마비부터 시작되는 하극상?

         

       정말 당했다면 일단 혼비백산했을 거다.

         

       그 뒤 분노한 파스텔 러브 크래프트가 진심 업무 모드로 철야를 수행했겠어도.

         

       “악독해, 악독해.”

         

       효과적인 방식인 건 알겠지만 엘 리가 받을 상처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잖아.

         

       더 화나는 건 타협이 목적인 교수진 쪽에서 엘리가 이런 처우를 받는 게 별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는 점이다.

         

       2등 시민 좀 괴롭힌다 해서 그 크래프트가 겨우 그것 때문에 화낼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는 거지.

         

       “날 어떻게 보고?!”

         

       진짜 가문 타이틀이 문제야!

         

       난 완전 착하게 생겼고!

         

       마음도 진짜 세상 착한데!

         

       정작 아무도 안 믿어줘……!

         

       “모두 해고해 버릴 거야!”

         

       애국자도 있겠지만 몰라몰라!

         

       나는 어차피 제국에 소속감 안 느끼니까!

         

       “저기…….”

         

       홱 돌아보자 더스틴이 움찔했다.

         

       “마리우스 교수님, 데려왔는데.”

         

       떨어지는 뒤쪽에 교수가 서 있었다.

         

       저 사람이 원흉인가.

         

       “수고했어. 이만 가봐.”

         

       파스텔은 손을 휘젓다가 멈췄다.

         

       “아니다. 교수진 정리해서 가져와 줘. 조금 있다가.”

       “알겠어.”

         

       더스틴이 떠났다.

         

       파스텔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대충 정리했다.

         

       얼마나 강골인 사람이길래 교수 중에서 총대를 메고 나선 건지 모르겠네.

         

       아니면, 아카데미 정상화에 결사반대한 인원은 이미 퇴직 처리됐으니 본인 몸값을 불리려는 얍삽한 사람이려나.

         

       “교수님. 제가 어디 서운한 일이라도 했었는지 모르겠네요.”

         

       운을 띄우며 교수를 돌아봤다.

         

       모습을 자세히 보자 이름과 별개로 정말 어디선가 본 듯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디서 봤더라?

         

       기억을 곰곰이 되새겼다.

         

       아, 맞아!

         

       입학 실기 시험 때!

         

       밀무역하느라 지각한 파스텔이 비공정을 질주시키다 실기장에 추락했을 때 파스텔 학생을 구하겠다고 제일 먼저 달려온 교수님이었다.

         

       교수가 굳은 얼굴로 다가왔다.

         

       중요한 순간을 앞둔 자의 각오가 느껴진다.

         

       싸우자는 것?

         

       파스텔은 검 손잡이에 살며시 손을 댔다.

         

       “후작 각하!”

         

       교수가 대뜸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털썩.

         

       “제 불충을 벌해주십쇼!”

         

       으에?

         

       “어릴 적부터 크래프트 가문의 명성을 익히 듣고 흠모했던 저입니다! 결코 각하의 심기를 거스를 의도는 없었습니다!”

         

       교수가 지면에 머리를 박았다.

         

       으에에?!

         

       파스텔은 머리 박는 소리에 기겁했다.

         

       “갑자기 왜 이러세요?!”

         

       크래프트의 못된 명성을 흠모했다는 굉장한 경력을 뽐내면서……!

         

       “제 어리석은 판단으로 총명하신 각하의 계책에 훼방을 놓아버렸습니다!”

         

       정말 자책하는지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언뜻 살짝 울먹이는 듯도 했다.

         

       “반마족 아젠다를 형성한 뒤 테러범을 하늘섬에 출입시킨 기사단에게 책임을 물으려 했던 제 부족한 머리는! 각하께서 이미 캐머롯 가문의 황실령 특권을 염두에 두셨다는 점을 미처 몰랐습니다!”

         

       으에에?

         

       그건 나도 몰랐는데?!

         

       “또한 각하께 불만을 품은 아카데미의 불순분자를 손보기 쉽게 양지로 모으려 했던 것! 이 또한 각하의 심모원려가 존재했으리라 믿습니다! 멋대로 가늠해 행동한 저를 벌해주십쇼!”

         

       그런 계획 없었는데?!

         

       “그러니까아 그러니까아.”

         

       급격히 마음이 약해졌다.

         

       내가 모르는 곳에 이런 충신이?

         

       어느 권력자 건 그 곁엔 충신이 존재하는 법.

         

       내가 똑똑하다는 걸 이렇게 잘 아는 충신이 나쁜 사람일 리 없어!

         

       파스텔은 그렇게 생각하다가 순간 정신을 차렸다.

         

       허엇.

         

       근데 사과의 말에 엘리가 없어.

         

       “그리고요?”

         

       교수가 머리를 박았다.

         

       “또한 각하께서 자애를 베푸신 마족이 그리 무책임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아무리 각하께서 길들이신 마족이라 하나 검은 머리 짐승을 잠시나마 믿은 것! 이 또한 제 과오입니다!”

         

       아하!

         

       이 교수님 마족은 사람 취급 안 하는구나!

         

       왜 크래프트를 흠모했는지 잘 알 거 같은 마인드!

         

       마음이 복잡복잡 미묘미묘해졌다.

         

       내게 충성하는 노예상을 만나는 기분.

         

       으아아.

         

         

         

       #

         

         

         

       소통이 안 되는 상대가 있을까?

         

       나이 차이가 커서?

         

       경험 차이가 커서?

         

       어느 쪽이건, 소통이 안 돼.

         

       “엘리는 친구예요.”

         

       마리우스 교수가 굳은 얼굴로 끄덕였다.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앞가림도 못하고 마족에 연민을 느끼는 자가 많으니 그리 알려지는 게 나을 겁니다.”

         

       아니아니.

         

       “정말 친구예요.”

         

       만나자마자 성 대신 이름으로 부른 사이.

         

       서로 이름 부르기는 멜리사조차 오래 걸린 걸 생각하면 굉장한 사이인 거다.

         

       마리우스 교수가 주먹을 심장에 댔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사명감까지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그 크래프트 가문이 마족을 친구로 여길 리 없다는 확신.

         

       카페에서 1시간째 반복 설명하고 있는 파스텔은 눈을 질끈 감았다.

         

       조상님들……!

         

       과거에 뭔 짓을 했길래 대놓고 해명하는데도 이미지 관리로 받아들이는 건데요!

         

       다 식은 코코아를 꿀꺽 마셨다. 마석 가루와 코코아의 진한 단맛이 마음을 진정시켰다.

         

       후우!

         

       이렇게 된 거 내 착한 마음씨를 오해받을지라도 엘리에게 편한 길을 선택하는 게 낫겠어.

         

       파스텔은 잠시 생각했다. 각종 정보가 취합되고 이어지며 가짜 계획을 만들었다.

         

       “잘 아시네요. 마음이 어떻건 간에 외적으론 엘리에게 빈틈없이 친절하게 대하세요. 사과도 하시고요. 마왕의 등장이 예언된 지금은 엘리트 마족과 친분을 쌓는 게 더 중요하거든요.”

         

       마리우스 교수가 흠칫했다.

         

       “설마 마계의 무역 금지령이 너무 견고하자 당시 크래프트 가주께서 대악마 데모니우스를 속여 밀무역을 돕게 했던 계책을 쓰시려는 겁니까?”

         

       으아?

         

       악마님에게 그런 과거가?

         

       헛, 이게 아니지.

         

       “우리 가문엔 이런 격언이 내려와요.”

         

       들은 정보로 즉석에서 거짓말을 조정했다.

         

       “배신은 성공보다 후속 처리가 중요하다.”

         

       턱을 괴고 스푼을 움직였다. 하얀 알갱이가 떠져 잔에 넣어졌다.

         

       “원하는 걸 손에 넣은 다음 내부 분열을 유도하라. 그리고 한쪽 편을 들며 다시 동맹을 권유하라.”

         

       소녀는 잔을 들어 향기를 맡았다.

         

       “강력한 방법은 현 가주가 배신하고 후대 가주가 진심 어린 사과로 재동맹을 권유하는 것이다. 세대를 거친 모략을 꾸며라. 상대는 속절없이 당할 것이다.”

         

       분홍 눈동자가 눈웃음쳤다.

         

       “세대가 바뀌었으니…….”

         

       어디선가 벚꽃 향기가 났다.

         

       “사과를 해야죠.”

         

       진심을 다해.

         

       “그러니 교수님도 사과하세요.”

         

       우리 좋은 세상을 만들어 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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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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