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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6

       엘라가 잠에서 깬 것은 원더스타인과 마야가 마을로 떠난 지 3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어둠 속을 더듬거리던 그녀는 눈가에서 끈적거리는 흔적을 발견했다.

         

       눈물 번진 자국이었다.

       자는 동안 그녀가 울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엘라는 한숨을 내쉬며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울보 엘라.

       넌 툭하면 우는구나?

         

       바보같이…….

       그동안 잘 참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원인은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다.

       그녀가 꾼 악몽 때문일 것이다.

         

       원더스타인이 두 번째로 마을을 방문했던 날.

       그날 마을에서 벌어진 참극.

       오랜만에 그 기억을 마주했다.

         

       ‘네가 데려온 그 남자……. 그건 사람이 아니야. 악마였어…….’

       ‘그 괴물이 마을 사람들을……. 친구들을…….’

       ‘왜 너는……멀쩡한……거지?’

         

       부풀고 뒤틀리고 일그러진 시체들 사이에서 웃고 있는 그 남자.

         

       ‘아, 봤군요. 후후, 당신에겐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원더스타인.

       그래. 그 개자식.

         

       엘라는 좌석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한동안 그것을 잊고 살았다.

       아니, 최대한 잊으려 했다.

       안 그러면 2년을 도저히 버틸 자신이 없었기에.

         

       그런데 하필 왜 오늘 다시 악몽을 꾸게 됐을까?

         

       그녀는 마차 구석에 놓인 잡지를 바라봤다.

       낮에 읽었던 기사가 떠올랐다.

         

       서커스 명문 레카체프 학교의 26기 수석 졸업생.

       기사에 따르면, 그는 매년 1명만 입단 가능하다는 엘리트 서커스단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기사에는 그의 신상에 대해서 자세히 나오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갈색의 곱슬 머리에 큰 키, 가슴팍을 흩날리는 긴 머플러, 그리고 방풍 코트가 떠올랐다.

       찰리.

       그는 그녀와 같은 서커스 학교에서 자란 친구였다.

         

       사부님은 16세 이상 된 아이 중 일부를 선별해서 외부 서커스단에 자리를 소개해주었다.

       엘라는 아기 때부터 학교에 있었기 때문에 유소년 시절에 학교에 들어온 친구들이 먼저 졸업하는 모습을 계속 지켜봐야 했다.

         

       뒤처진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녀는 기예, 연기력에 있어서 학교 최고였다.

       졸업생 중에도 그녀를 뛰어넘는 사람은 없었다.

         

       딱 한 명 빼고는.

         

       찰리.

       그는 엘라보다 4살 많았다. 그는 그녀가 9살 때, 서커스 학교에 들어왔다.

         

       ‘재워주고 먹여준다면서요? 식구 많은 집에 입이라도 하나 줄여야죠.’

         

       고향을 떠나 머나먼 길을 걸어와서 담담한 얼굴로 입학시켜 달라고 사부님께 말하던 그 녀석.

       엘라는 처음엔 그를 싫어했었다.

         

       짬밥(?)으로 대장 행세를 하던 그녀에게 있어서 온화한 태도와 부드러운 지도력으로 아이들에게 인기를 얻는 그는 질투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곡예 연습마다 괜한 심술을 부려서 그를 골탕 먹이곤 했다.

         

       물론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그의 재능은 자신에 필적할 정도였다.

       모든 면에서 그녀와 대등한 실력을 보였고, 나이나 체격 덕에 기술 자체는 그녀보다 더 뛰어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고만고만한 재능들 사이에서 지루해하던 엘라에게 그는 최초로 그녀의 가슴에 불을 지핀 경쟁자였다.

       둘은 서로 절차탁마해가며 실력을 키워갔다.

         

       그의 나이 16살.

       그의 또래 대부분이 서커스단행을 택했지만, 그는 레카체프에 입학하기로 했다.

       더 가혹한 환경에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1년 뒤 첫 번째 방학 때, 알라모로 돌아와서 엘라에게 이런 말을 했다.

         

       ‘서커스 명문 명문 하는데……글쎄? 다 우리보다 못하던데? 사부님이 대단한 건가……. 너도 3년 뒤에 여기 들어오지 않을래? 너도 충분히 1등을 할 수 있을걸?’

         

       그의 말에 엘라는 고개를 저었다.

       명문이고 나발이고 그녀는 관심 없었다.

         

       ‘싫어. 나는 길들이기 전문 서커스단에 들어갈 거야.’

         

       찰리는 아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하. 엘라 너는 변함 없구나. 길들이기 외길 인생. 하하, 다행이야. 다행……. 어, 그, 나는 있지……. 그런 네가 좋더라…….’

         

       수줍게 꺼낸 그의 말에 13살의 엘라는 발끈해서 외쳤다.

         

       ‘그야 내가 길들이기에 집중하면 나머지 부문에서 네가 앞설 수 있기 때문이겠지! 안 그래?’

       ‘……어……하하! 맞아! 들켰네!’

         

       그렇게 방학 때마다 얼굴을 보다가 마지막으로 본 게 작년 8월.

       비극이 벌어지기 딱 한 달 전에 그는 마지막 학년을 마치기 위해 레카체프로 다시 떠났다.

         

       그는 이번에 고향에 돌아와 무엇을 봤을까.

       사부님과 살아남은 친구들은 그에게 무슨 얘기를 했을까.

         

       뒤에 남겨두고 온 친구들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던 것은 그들이 원더스타인의 괴물 같은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절대 복수하겠다고 덤비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찰리는 어떨까.

       서커스 학교 아이들의 맏형 노릇을 하던 그라면…….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항상 올바름을 추구하던 그라면…….

       그가 친구들의 죽음을 외면하고 현실과 타협해서 살 수 있을까?

         

       그의 그런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원더스타인에게 덤벼서 개죽음을 당하는 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만 있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울적해진 마음에 한숨을 토하려던 그때, 밖에서 와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잠을 깨웠던 그 소리였다.

         

       이 밤중에 단원들끼리 모여 뭔가 신나게 놀고 있는 것 같았다.

         

       엘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표정을 고쳤다.

         

       일단 당장 주어진 일만 생각하자.

       단원들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일 순 없지.

       안 그래?

         

       그녀는 마차의 문을 활짝 열며 나갔다.

       살짝 짜증을 곁들인 미소를 지으며.

         

       “아이, 참! 다들 왜 이렇게 시끄러운 거야?”

       “어, 엘라가 일어났다!”

       “부단장!”

       “이것 좀 봐!”

         

       단원들은 숲 한중간에 비좁은 공간이나마 둥글게 모여 앉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있었다.

       그들의 중간에는 작은 솥이 놓여 있었다.

         

       단장과 마야는 마을에 잠자리를 빌리러 갔다고 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둘이 고생하는 와중에 먼저 밥을 먹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그들은 점심 시간에 먹다가 남은 닭과 감자를 대강 데워서 때우기로 했다.

         

       얼마 없는 양인 데다가 어차피 좀 있다가 제대로 된 저녁을 먹을 생각이라. 먹을 것을 두고 그들은 게임을 하기로 했다.

         

       바로 서로의 연기를 얼마나 잘 흉내 내냐는 것이었다.

         

       “이건 스벤한테 너무 유리한 거 아냐?”

       “맞아. 따라 하기의 귀신이잖아.”

       “핫핫, 그럼 저는 제일 나중에 남는 사람을 고르겠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음식 내기.

       절반 이상의 찬성표를 받으면 대상자는 요리를 한 국자 떠먹을 수 있었다.

         

       당연히 진지하게 판돈을 걸고 하는 내기가 아닌 여흥에 불과했기에 서로 재미난 그림이 나올 때까지 반복해서 시켰고, 덕분에 각자 돌아가며 공평하게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게임에 중도 난입한 엘라는 모포를 활용한 눈속임으로 머리가 떨어진 스벤 흉내를 기가 막히게 해내서 단원들의 박수를 받으며-심지어 멀뚱히 바라보던 랫맨들도 입을 쩍 벌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바로 한 국자를 받아먹었다.

         

       그녀는 감자와 닭고기를 으적대며 그녀가 잠들었던 동안 일어난 일을 들었다.

         

       “그럼 그 두 사람만 보냈단 말이에요?”

         

       엘라는 마을에 원더스타인과 마야만 내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능력적인 면에서는 흠잡을 데 없는 두 사람이었지만, 사람과 교섭하는 현장에 가장 보내서는 안 될 것 같은 조합이 그 둘이었다.

         

       유라크네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스벤의 말로는 내려간 지 무려 3시간이나 됐다고 하던데 말이야.”

         

       엘라는 수풀 너머를 바라봤다.

       불빛의 크기와 연기의 방향으로 보아 밤의 숲길이라고 해도 넉넉잡아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을 거 같았다.

         

       3시간이라니.

       이렇게 오래 끌 일인가?

         

       그때, 그녀는 수풀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을 봤다.

       그 형태와 크기로 보아 사람이 분명했다.

         

       “누구야?”

         

       엘라는 먹던 그릇을 내려두고 폴짝 뛰어 바위 위에 올랐다.

       수풀 속에 있던 청년은 그녀와 눈을 마주치더니 화들짝 놀란 얼굴로 달아났다.

         

       “괴, 괴물……괴물들이다…….”

         

       남자의 뒤를 쫒아가려던 엘라는 그의 중얼거림을 듣고 발걸음을 멈췄다.

         

       야밤에 숲속에서 괴물 단원들을 마주쳤다면 놀라서 달아나는 게 당연했다.

         

       괜히 쫓아갈 필요성은 못 느끼고 돌아서려는 그때, 그녀는 남자가 도망친 방향이 마을 쪽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그녀는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

         

         

       드발체프의 거리는 밤이었지만 축제를 연상케 할 정도로 활기를 띠었다.

       그만큼 절망 속에 비쳐진 희망이 주는 힘은 컸다.

         

       병사들의 부름에 따라 차례차례 성당 쪽으로 불려간 이웃들이 완치된 모습으로 하나둘 내려오는 걸 보면서 그 기쁨은 점점 더 커져 갔다.

         

       그렇게 다들 성당만 바라보며 내 차례는 언제 오나 기다리는 가운데, 몇 사람이 은밀하게 마을 뒷골목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품에 숨겨온 천 자락을 꺼냈다.

       천 자락은 얼룩져 있고 비릿한 냄새를 풍겼다.

       다들 그것을 조심히 펼치며 경견한 표정을 지었다.

         

       “오오, 이게 바로 그……!”

       “그래! 성자님의 피야!”

         

       1시간 전, 다른 주민들이 원더스타인이 베푼 아량과 선보인 기적에 놀라 고개를 조아리고 있을 때, 약삭빠른 몇몇은 천으로 바닥에 고인 그의 피를 먹여서 보관했다.

       그들이 방금 꺼낸 천들이 바로 그것이었다.

         

       “정말 이거 먹어도 되는 건가?”

       “딱 손대는 것만으로 병을 고치신 법력 높은 수도사님의 피야.”

       “예전부터 그런 설화도 많잖아. 덕을 많이 쌓은 사제의 피를 마시면 마귀도 인간이 될 수 있다든가.”

         

       이 시대는 공개처형을 구경거리로 여기며, 처형당한 사람의 목에서 쏟아져 나온 피에 빵을 찍어먹기 위해 달려드는 풍습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었다.

       그걸로 죽은 사람의 수명을 나눠받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배운 사람들은 그런 풍습을 구습이라 부르며 경멸했지만, 하층민들은 그렇지 않았다.

       특히 이번 같은 대단한 성직자의 피는 그들이 어딜 가서 한 번 본 적이라도 있겠는가.

         

       다들 원더스타인의 피를 머금은 천 자락을 나눠가며 입에 대고 쭉쭉 빨았다.

       그들은 시뻘게진 서로의 입가를 돌아보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로 무병장수할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이 들어.”

       “크으, 성자의 피도 피는 피구먼. 비려. 비려.”

       “가서 술이라도 한잔 하자고. 이런 건 탁 한 잔 털어주면 흡수가 더 잘 돼.”

       “가자, 가자.”

         

       그들은 술집으로 향했다.

       그 귀한 성자의 피를 마시다니.

       몸에 원기가 돌고 정력이 불끈 솟는 기분을 느꼈다.

         

       물론 실제로 그들의 몸 속에서 그런 작용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원더스타인의 피 속에 있던 데볼루트들이 눈을 떴을 뿐이다.

         

       원래 생물의 몸 밖에 나온 데볼루트는 힘을 잃고 사라지게 된다.

       그런데 사멸하기 직전에 그들은 사람의 생체 조직과 다시 접촉하면서 가까스로 힘을 회복했다.

         

       데볼루트에는 의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제멋대로 날뛰거나 혹은 주인에게 종속되거나, 둘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종속화 도중에 버려진 이 녀석들은 자유로운 동시에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데볼루트의 양을 늘렸으면 좋겠다.’라는 종속자의 의지를 계승했다.

         

       양을 늘리라니.

       우리는 어떻게 수가 늘어날 수 있을까?

         

       그들은 숙주의 몸을 탐색했다.

       이들의 몸을 먹고 영양분으로 삼는다면?

         

       아니, 그건 효율이 너무 떨어졌다.

       기존의 자유롭게 날뛰던 야만적인 그들과 다를 바 없었다.

         

       외부의 생체물질을 섭취해야 했다.

       그걸 바탕으로 더 흡수하고 몸을 더 키워야 했다.

         

       고민 끝에 데볼루트들은 스스로 명령을 창조해냈다.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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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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