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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6

       * * *

       

       

       

       

       잔잔하게 흐르는 차리나의 목소리가 라디오를 통해 라디오가 보급된 모스크바 시민들의 귀에 흘러 들어갔다.

       

       

       -“그날은 끔찍했죠. 제게 있어서는 그래.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날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저택에 감금된 처지였던 나는 볼셰비키들의 손에 가족과 함께 이파티에프 하우스에 감금 되었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차리나의 이야기는 반공의 일대기였다.

       

       처음엔 차리나께서? 하는 마음으로 많은 이들이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으나, 잔잔한 목소리와 다르게 차리나가 하는 말들은 충격적이었다.

       

       

       -“볼셰비키들은 아무런 재판도 없이 내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사격을 하였습니다. 범죄자일 뿐이었던 자칭 볼셰비키들은 내 어머니와 자매들에게도 끔찍한 짓을 했죠. 그들은 어린 알렉세이는 총을 쐈으며, 끝까지 우리 가족을 지켜준 하인들도 우리를 모셨다는 죄로 처단당했죠.”

       -“제 아버지는 차르로서는 무능했습니다. 신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총과 칼로 대답했었죠. 그러나 그날의 처형은 아버지나 우리 일가의 업보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볼셰비키에 반기를 백군 세력의 구심점이 될 수 있기에 제 가족들을 처형했습니다.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죠. 선동으로 권력을 잡은 볼셰비키들이 국민들에게 어떠한 짓을 했는지는 모두가 아실 것이니 가타부타 말은 아끼겠습니다.”

       

       -“그날 제 가족들을 처형한 볼셰비키들을 보고 볼셰비키는 결코 이 러시아를, 수많은 러시아인들을 보듬을 세력이 아님을 알아챈 저는 그 무덤 속에서 홀로 살아남아 에카테린부르크에서 의용군을 모아 그들에게 맞섰습니다.”

       

       

       내전이 끝나고 10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산천초목, 강과 산이 바뀌지도 않은 세대인만큼 모스크바의 시민들은 적백내전 세대여서 잘 알고 있었다.

       

       다른 도시에서 온 사람이든, 애초에 백군세력에 있던 사람이든, 볼세비키 치하에서 신음하던 사람이든 모두. 내전을 겪은 세대였다.

       

       그들은 차리나가 겪은 것을 실시간으로 라디오로 들을 수 있다.

       

       내전의 끝맺음 끝에 볼셰비키가 쓸려나가고 온건사회주의자가 차리나의 정책을 지지하면서 많은 이들은 왕정주의자는 아니더라도 차리나를 칭송하고 있었고, 이들은 차리나의 경험담을 계속해서 듣고 싶었다.

       

       

       “라디오 들을래!”

       “나도. 나도 라디오 살 거야!”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시작된 일대기는 모스크바 시민들은 물론, 먼저 라디오방송국이 열린 예카테린부르크의 시민들에게도 퍼졌으며, 당연히 라디오를 사려는 이들이 점차 늘어났다.

       

       당연히 기존에 니콜라이2세 때부터 차르가 신민들을 무시하고 간절한 외침을 외면하던 시절에도 무조건 차르를 따르던 제국의 신민들도 라디오를 샀다.

       

       

       “차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제국의 신민이면 사야지. 암!”

       

       

       그저 차르의 목소리를. 죽은 선대 차르의 마지막 핏줄이 흘리는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그 마음이 간절했다. 

       

       각자 다양한 이유로 라디오를 사는 사람들이 늘었으며.

       

       그저 지금 보급된 라디오 수준에서 반공선전, 반공선전을 위한 자신의 적백내전기를 털어놓던 아나스타샤의 의도와는 다르게.

       

       

       “오. 국장님. 차리나께서 하신 라디오방송이 반응이 엄청납니다! 라디오 보급률도 올랐다고 하더군요!”

       “역시. 역시 차리나시다!”

       

       

       라디오의 보급률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 * *

       

       

       시베리아 수용소

       

       

       아나스타샤의 라디오방송은 시베리아 수용소에도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만. 러시아합중국의 차르 아나스타샤였습니다.”

       

       

       차리나의 목소리는, 그녀의 내전의 일대기는 시베리아 수용소를 지키는 병사들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나 마찬가지였다.

       

       

       “크. 차리나께서 라디오 방송을 하시네.”

       “근데 여기서도 들을 수 있구나.”

       “라디오 방송이라는 게 대단한 모양이지. 그 테슬라 박사란 사람이 유수포프 공작과 라디오도 개발했다던데?”

       

       

       라디오의 개발은 그만큼 혁신적이었다.

       

       특히 러시아 라디오는 드넓은 러시아 땅덩어리를 하나로 잇기 위해 무선혁명을 하려는 테슬라에게는 매우 적당한 소재였고, 유수포프 공작의 자본과 테슬라의 기술이 접목되어 라디오의 성능은 더 좋아졌다.

       

       

       “이런 말하긴 뭐하지만 차르가 바뀌니 세상이 바뀌는 거 같네.”

       “뭐 라디오 들으면 차리나께서도 아쉽긴 합니다. 선대 차르가 그렇게 비명에 갔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막무가내 처형도 무능한 볼셰비키 놈들이 백군 견제를 위해 저질렀다고 하니 얼마나 처참해?”

       

       

       솔직히 왕정주의자들도 선대 차르에 대해서는 평가가 갈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볼셰비키의 무능함, 폭정. 그리고 정의로운 심판도 아닌 권력을 지키기 위해, 백군의 구심점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죽였다고 알려지니, 니콜라이 2세의 치세는 좋지 못했어도 동정표를 받기에는 충분했다.

       

       한편, 병사들의 이야기를 수용소 벽 너머로 듣고 있던 한 남자는 병사들의 대화에 코웃음 쳤다.

       

       

       “허. 정말 선대 차르의 죽음이 그렇게 만든 건가.”

       

       

       설마하니 그 정도로 변할 줄이야.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단순 무식한 것이다.

       

       스탈린은 아무리 봐도 그 아나스타샤란 인물 자체가 수상했다.

       

       아니지. 아니야. 올가라면 모를까. 아나스타샤 나이를 생각해 보라. 그게 가능이나 할까?

       

       정치에 정자도 모를 거 같은 황녀가?

       

       심지어 아나스타샤는 어릴 때부터 악동으로 불린 황녀가 아닌가.

       

       그런 사람이 그날 가족들이 죽었다고 그렇게 변한다?

       

       잘 봐줘야 복수심에 미쳐 날뛸 뿐일 텐데. 이건 마치 모든 것을 파악한 듯 움직였다.

       

       더군다나 아나스타샤 혼자 살아남았다는 게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있을까?

       

       어떠한 이유인지 몰라도 살았다. 이건 차라리 죽었던 사람이 살았다고 볼 수 있었다.

       

       심지어 폴란드에서 폭탄 테러에도 살아남았다던데. 이건 정말 죽지 않는 마녀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마치 무언가가 황녀의 가죽을 쓴 것은 아닐까.

       

       그날 고자가 된 스탈린을 비웃은 그 악녀는 그 또래 여자애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멀었다.

       

       

       “뭐. 의미는 없겠지.”

       

       

       스탈린은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정말로 아나스타샤가 무언가에 의해 되살아나거나, 무언가가 그 몸을 차지해서 러시아를 여기까지 이끈 것이라면. 뭐.

       

       그래. 뭐가 되었든 러시아는 볼셰비키 시절보다 잘 돌아간다. 이것만 봐도 이미 혁명은 실패한 것이다.

       

       여전히 그 못다 한 혁명은 안타깝긴 하지만, 이 수용소에서 스탈린 혼자 혁명을 부르짖는다고 스탈린을 따라 이 얼음덩어리 땅에서 혁명을 일으킬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물론 그전에 오흐라나의 총구가 스탈린의 머리에 시원하게 구멍 하나 만들어 주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혁명은 실패하되 스탈린은 죽지 않았다.

       

       그조차도 고자가 되었다며 두 번 죽일 수는 없는 일이라고 살려준 것이지만. 포살 당하는 대신 자신의 남성성을 내놓은 격이었다.

       

       그렇게 여전히 불만은 많지만, 스탈린은 그 패배로 첨칠된 이 부조리한 상황에서도 당당히 일어섰다.

       

       물론 공산주의자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지만.

       

       

       “스탈린 신부님 미사 시간입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스탈린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고자가 되고 몇 년이 지났을까.

       

       

       -“그러게. 왜 공산당인가 뭔가해서 이 모양이냐.”

       -“여기다 이름을 써라. 백지 전향서야. 전향하는 거다.”

       

       

       이제 스탈린은 수용소까지 찾아온 어머니의 권유와 오흐라나의 전향 압박으로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성호를 그으며 신부로 생활하고 있었다.

       

       레닌이나 트로츠키가 보면 배를 잡고 웃을 일이겠지만.

       

       고자가 되고 함께 수용소에 갇혀 있는 아내에게 마저 외면 당한 그는 할 일이 이것 밖에 없었다.

       

       그나마 전향서에 이름을 쓰지 않은 게 어디인가.

       

       스탈린은 오흐라나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래. 굳이 불만이 있다면.

       

       자신을 고자로 만든 그 빌어먹을 독일놈의 면상이라도 한 번 보고 싶을 뿐이다.

       

       

       * * *

       

       

       방송은 성공적이었을까?

       

       괜히 “아~ 차리나. 방송 멋대로하는거 주옥같네.” 이러는 말이 뒤에서 나오는 건 아니겠지?

       

       라디오 방송국에 여직원들도 많던데. 여자들 뒷담 같은 거 잘하지 않냐?

       

       나 뒤에서 뭐 이상한 말 나오는 건 아니겠지.

       

       

       “최근 합중국 신민들의 라디오 구매량이 엄청 늘었습니다.”

       “합중국 신민이 아니고 국민이라 하지.”

       “크흠. 합중국 국민들의 라디오 구매력이 엄청 늘었습니다.”

       

       

       라디오 구매력이 늘어났다.

       

       라디오를 살만한 경제력을 갖춘 러시아인들이 많아졌다는 소리인가.

       

       아니지. 이 경우에는 라디오에 이제 관심을 둬서 사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

       

       아무렴 수많은 러시아인 중에 라디오 살 수 있는 사람은 그래도 좀 있을 테니까.

       

       나중에 컬러 텔레비전도 구매해야 할 텐데, 라디오 정도면 충분하지.

       

       

       “그런데 그걸 왜 나한테?”

       “그야 라디오 사업은 유수포프 공작께서 폐하 앞으로 돌려놨으니까요. 쉽게 말해서 폐하의 성함을 위에 올려놨습니다.”

       “명의를 올려놨다 그건가.”

       

       

       뭐 나 챙겨주는 건 열심히 하네.

       

       모르긴 몰라도 유수포프 공작은 지금 내가 아이디어를 준 만큼 열심히 일하는 것이겠지. 돈 냄새는 제대로 맡는 인물 같으니까.

       

       

       “폐하의 인기는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왜? 라디오에서 내 목소리를 흘렸다고?”

       

       

       그게 왜 내 인기와 관련이 있는 건지 모르지만.

       

       

       “그야 지금 합중국의 국민들은 오로지 폐하를 따르고 칭송하니까요. 마땅히 라디오로 폐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겠습니까.”

       “라디오를 살만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가?”

       

       

       일단 라디오 비쌀 거라고.

       

       내가 라디오 살 만한 러시아인들이 꽤 있지 않을까 한 것은 인구비율로 볼 때 살 사람들은 좀 있겠지 이 정도 수준이고, 지금 마리아가 하는 말을 보면 무슨 내가 아이돌이라 나 하나 보겠다고 라디오 사는 사람이 많다는 거 같으니까.

       

       

       “설령 비싸서 집안이 거덜난다고 해도, 폐하의 목소리만으로 위안을 삼는 국민들이 아마 굉장히 많을 것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할까.

       

       그래도 조금은 궁금하네.

       

       정말 인기가 오른다면 이건 그냥 내가 권위로 찍어 눌러 생긴 인기는 아니란 뜻이니까.

       

       

       “얼마나?”

       “아마 제국 시절부터 로마노프 황실을 따르는 나이 지긋한 분들은 다 사지 않겠습니까?”

       

       

       제국시절부터 로마노프 황실을 따르는 인물이라.

       

       그러니까 노인들이 손녀뻘 되는 차르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라디오를 사겠다 이말이지.

       

       오 하느님 맙소사.

       

       상상해보니 내가 너무 엄청난 짓을 저지른 것 같다.

       

       괜히 그런 거 아닌가. 이 시대의 라디오 상당히 비쌀 텐데.

       

       

       “내가 괜한 잘못을 저지른 기분이 드는데.”

       “뭐 어떻습니까? 어차피 폐하의 시대이고. 당장 유럽 국가들도 라디오를 보급하고 있는데, 동서양에 이르는 땅을 가진 우리 러시아는 더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마리아 얘는 뭔가 단순한 거 같은데, 맞는 말은 한단 말이야.

       

       그래 라디오 같은 것으로 러시아 전역에 내 목소리를 흘려 이곳이 바로 러시아다! 라는 걸 알려줄 필요가 있다.

       

       문제는 그러자면 테슬라가 지금 머리를 다 쥐어 짜내서 그가 목표로 하는 무선 혁명을 이루어야 한다.

       

       

       “그걸 해 먹으려면 확실히 무선 혁명이 이루어지는 게 맞는데. 음.”

       

       

       잠깐, 고민했지만, 이쪽은 되었다.

       

       이건 뭐 시간이 지나면 테슬라가 해결해 주겠지.

       

       나 진짜 그쪽은 사람 이름만 알지 아는 거 하나 없다.

       

       당장 나 먹고 살기도 빠듯한데, 망한 세상에서 뭘 연구하고 그러겠냐. 심지어 나 문과라고.

       

       그럼, 다음 문제는 역시 그거잖아.

       

       텔레비전이다. 텔레비전.

       

       라디오가 보급된다면 그 다음은 역시 텔레비전 테크 타는 것이 좋지 않겠냐.

       

       적어도 이 아나스타샤의 인생에 21세기의 컴퓨터를 바라는 건 많이 어렵겠지만, 그래도 컬러 텔레비전까지는 가능할 거다.

       

       본격적으로 텔레비전을 다루려면 그쪽 관련 인물도 들여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 역시 그게 좋겠네.

       

       팔로 판즈워즈라는 인물이었지?

       

       세계 최초로 전자식 텔레비전을 발명한 사람이 그 사람으로 알고 있다.

       

       아포칼립스 세상에서는 그래도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작동시켜보겠다고 공부하다가 이쪽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러시아에는 블라디미르 코스마 즈보리킨이란 인물이 있었지.

       

       이 사람은 적백내전기에 미국으로 가서 눌러 앉아버린 인물이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백군 쪽에서 일한 것 같은데, 결국 그가 미국에 가버려서 그의 성과는 미국에서 빛을 발하지.

       

       그럼, 이곳은 다르지 않을까?

       

       아니면 어떠한 스노우볼로 인해 실제 역사와 비슷하게 그냥 미국으로 가버렸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심영 드립을 해볼까 하다가.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너무 드립성이 강해서. 접었습니다.

    뭔가 외전이 하나 더 생각이 났는데.

    주인공이 본래 차르일가를 처형하는 볼셰비키 중 한 명이 되어서 반대로 차르 일가를 구하고, 러시아의 권신자리까지 오르는 것도 좀 재미있을 거 같습니다.

    팔로 판즈워즈는 세계 최초로 전자식 텔레비전을 발명한 미국의 발명가 비슷한 시기에 텔레비전 기술의 선구자로 블라디미르 코스마 즈보리킨이라는 러시아계 발명가가 있습니다.
    블라디미르 코스마 즈보리킨은 원래 역사 적백내전에서 콜차크 정부의 공무로 미국에 갔다가 백군이 몰락하면서 미국에 남았습니다.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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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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