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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6

       “클락 씨를 찾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저희 실프 공략대에서 예비 인원들을 모집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탑의 최정상을 노리는 공략대는 항상 인원 부족에 시달린다.

        그렇기에 증명의 층에서 아직 이명을 얻지 못한 마법사들을 도와주는 대가로 자신들의 팀에 합류시킨다.

        천변의 방에서 나타나는 시련은 마법사 본인의 가장 깊은 내면의 영역, 간혹 트라우마를 자극하기에 파티를 맺어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잦았다.

        높은 랭크의 공략대에 합류한다면 그만큼 준비가 철저한 상태로 시련에 입장할 수 있는 것이었다.

       

        “혹시 선배에게 추천받으신 건가요?”

        “아뇨, 당신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프리나에게는 말하지 마세요.”

        “어째서요?”

        “만날 때마다 당신을 넣어주면 자기도 공략대에 합류해 주겠다니 뭐라느니 떠드는데 솔직히 이쪽 입장에선 그리 달갑지 않거든요. 애초에 제대로 된 공략대가 왜 해주학파를 팀에 넣겠냐고요.”

       

        그러면 같은 해주학파인 내게는 어째서 접근했는가?

        내 표정을 읽었는지 마가렛은 안주머니에서 연초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그러자 연기를 감지한 얼음 정수기 내부에서 투명한 얼음으로 이루어진 재떨이가 튀어나왔다.

        재가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내게 말했다.

       

        “크흠, 다름 아니라 얼마 전에 38층에서 저와 공략대원 몇이 아주 ‘사소한’ 사건에 휘말려 행정부로부터 ‘가벼운’ 징계를 받았거든요. 노트 계속 진동 울리는데 연락 안 받으셔도 괜찮아요?”

        “네? 아, 신경 쓰지 마시고 계속하세요.”

        “뭐 좋아요. 생각해보니 그 징계도 프리나 걔 때문인데…… 아무튼.”

       

        마침 원탁회에 4번에 1번꼴로 참여하는 나도 아는 사건이었다.

        전야제가 한창이던 와중 술에 거나하게 취한 마법사 집단이 교국의 병사들과 손을 잡고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했다나 뭐라나.

        덕분에 성탄제를 완전히 망쳐버린 것도 모자라 교국과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아 사절단이 목표로 했던 태양의 적 토벌을 위한 칠현자의 합류마저 거절당했다고 한다.

        본인 앞에서 이 이야기를 꺼내니 질색하며 부인했지만.

       

        “누, 누가, 학살이라뇨!? 단순히 방어 차원에서 마법을 쓴 것뿐이고 마녀들한테 조종당해서 무고한 민간인도 아니었다고요.”

        “그렇군요. 전 그냥 소문을 들은 것뿐이라.”

        “당신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먼저 공격 안 하고 못 배겼을걸요? 그냥 꼭두각시라면 모를까 그놈들을 조종하는 배후가 따로 있었다고요.”

       

        음, 거기까진 못 들었는데.

       

        “끔찍한 가면을 쓰고 마치 서커스단의 좌장(座長)이라도 된 것마냥 기괴한 목소리로 접근하는데, 새로운 4대 재앙이 탄생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벌써부터 대륙 전역에 수많은 사교도 추종자들이 생겨나고 있다고요! 거기다 리카르도 대주교가 악을 막지 못했다는 충격에 못 이겨 사임을 발표하면서 교국에도 비상이……!”

       

        그로부터 대강 50분 간 마가렛은 자신들은 진짜로 4대 재앙에 버금가는 존재와 맞서 싸운 것이며 그 악의 수장이 얼마나 공포스런 존재였는지에 대해 묘사했다.

        갑자기 술자리에 찾아온 옛 동료와 그 동료를 잡으러 온 교국의 병사들.

        그리고 두 세력이 힘을 합칠 수밖에 없는 강대한 적의 출현.

        서로 반목하던 이들이 서로의 등을 지켜주고 우정과 교리의 힘으로 끝끝내 마탑을 지켜냈으나 돌아온 것은 세간의 냉담한 시선뿐.

        사건을 덮기에 급급한 기득권의 횡포에 저항한 처절한 뒷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쯤에는 이미 300화짜리 대하 (웹)소설로 써도 손색이 없을 만한 스케일을 자랑했다.

       

        물론 나와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였기에 정수기에서 얼음을 리필하며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렇게나 사악한 마족들의 우두머리가 탑에 들어왔었다니,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얼굴이라도 보고 싶네요.”

        “마주치면 곧바로 도망치는 게 좋을 거에요. 그보다 당신 검이 멋대로 떠올라 거울을 건드리는데요?”

        “먼지가 쌓여서 청소하라는 뜻인가 봅니다. 얘가 좀 까탈스럽거든요.”

        “신기한 물건들이 많군요, 여긴.”

       

        어쨌거나 돌고 돌아 마가렛이 나를 찾아온 이유는 간단했다.

        소란을 일으킨 대가로 그녀가 참모직을 맡고 있는 실프 공략대에 일종의 행정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현재 증명의 층에서 가장 실력이 낮은 마법사 몇 명을 40층 위로 올려달라는 부탁을 받았어요. 행정부 측에서는 하층에 고여있는 이들의 수를 줄이고 싶은 거겠죠.”

        “헌데 왜 저를……?”

        “‘고여있다’의 기준이 뭐겠어요? 당연히 연차죠. 클락 씨는 현재 입탑 5년째인데 하층에 머물러 있잖아요. 기숙사 사감도 맡고 있으니 충분히 범주 내에 들어가요.”

       

        이른바 경로 우대 정책으로 운 좋게 천변의 방을 통과하는 버스의 승객명단에 오른 셈이었다.

        그것도 상당한 우등 좌석이었다.

       

        “사실상 전력 외의 마법사들을 데리고 팀을 꾸려야 하니 걱정되는 건 알아요.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고 개중 싹이 보이는 인원들 위주로 접선하는 중이에요.”

        “지금처럼요?”

        “네, 당신의 등반 기록은 전부 살펴봤거든요.”

       

        연기 너머로 이쪽을 응시하는 시선에 흥미가 돋아 있었다.

        5년을 통째로 따지자면 느린 편이겠지만 고작 반년 사이에 40층의 목전에 다다랐다는 건 어지간한 대형 학파의 신예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속도였다.

        비록 해주학파 출신에다 시엔 같은 마법의 천재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실적은 확실하니 저쪽에서도 합류시키고 싶겠지.

        한 가지 걸리는 사실은 어쨌거나 이들이 공략대라는 것이었다.

       

        “만약 40층을 통과하면 이후에도 공략대에 남아있어야 하나요?”

        “아뇨, 이번에 한해서는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행정부라 해도 저희 내부의 인선까지 멋대로 결정지을 수는 없으니까요. 일이 끝나면 가셔도 좋아요, 물론 전 남는 걸 환영하는 편이지만.”

        “시원시원해서 좋네요. 그러면…….”

       

        드디어 꿈에 그리던 이명 ‘분탕의 왕’을 얻기 위해 마가렛과 손을 잡으려던 찰나.

        불현듯 마리엘이 떠오른 나는 한 가지 조건을 덧붙였다.

       

        “아까 모두가 실력이 낮을 필요는 없다고 하셨는데, 괜찮은 마법사를 한 명 추천해도 될까요?”

       

       

       

        *

       

        “싫은 것이에요.”

       

        마리엘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거절했다.

        아니, 순간 옆머리가 살짝 들뜬 것으로 보아 ‘시간을 들여 충분히 생각한 후’ 거절한 것일 테지만 어쨌거나 거절이었다.

       

        “어째서죠?”

        “저는 제 시련을 누구와도 공유할 생각이 없는 것이에요. 이 명함들도 단순히 받아놓은 것일 뿐, 주머니에 넣었다 세탁기에 들어가도 상관없을 정도인 것이에요.”

        “그건 제가 상관있으니까 앞으로는 빼놔요.”

       

        나는 고민에 빠졌다.

        마리엘의 흑화를 막기 위해서는 그녀의 등반속도를 최대한 늦추는 것이 중요했지만 그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그래서 같이 천변의 방에 들어가 시련에 등장할 정도로 깊은 내면의 고민거리를 한번 들여다보려고 했는데.

        혼자서 도전하겠다는 본인의 뜻이 완고한 이상 쉽지 않은 일이었다.

       

        “관리인도 이번에 40층에 도전하나요?”

        “네, 마침 좋은 팀을 구해서요.”

        “흐응…….”

       

        위치노트에 파묻혀 있던 고개가 슬쩍 돌아갔다.

        사금을 녹인 파도 같은 눈이 샐그러지며 이쪽을 향했다.

        기사단의 원로들에게 주기적으로 사진을 보내야 한다며 나를 꼬드길 때 나타나는 표정.

        달싹이는 입술에 손가락이 잠시 머물더니, 이내 툭 한 마디를 던졌다.

       

        “관리인과 단둘이라면 생각해보는 것이에요.”

        “…….”

       

        아쉽게도 그건 불가능했다.

        천변의 방은 이름 그대로 변화무쌍한 환경의 총체.

        둘 이상이 입장하면 참가자들의 시련이 모두 혼합된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아직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내 몫으로 무엇이 나올지는 뻔했다.

        그리고 장담컨대, 그 시련은 반드시 세 명 이상이 있어야 통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 지금 파딱 업무 때문에 바쁜 것이에요. 당분간 시련에 도전할 생각은 없으니 다른 사람 알아보는 것이에요.”

       

        어떻게 하면 마리엘을 꼬드길 수 있을까.

        갤러리를 보며 고민하던 나는 이내 한 가지 묘안을 떠올렸다.

       

        ====

        [파딱 하나 벌써 투기장 랭킹 상위권인데?]

       

        파딱 해제권 <- 이거 때문에 열심히 하는 거 같은데 하루빨리 탈출하고 싶나 보네 ㅋㅋㅋㅋ

       

        — ㄹㅇ이네 이름 존나 반짝거림

        — 나 검창 논쟁으로 슬쩍 시비 걸어 봤는데 좆털림 ㅋㅋㅋ

         ㄴ 뭔 메크로라도 쓰는지 1초에 댓글 수십 개씩 달리더라 이길 수가 없음

        — 본인이 갤을 곱창내면 어떡함? ㅋㅋㅋ

         ㄴ 분탕으로 분탕이 죽으면 착한 분탕만 남거든요~

         ㄴ 그거 누구도 쓰던 방법인 거 같은데

        — 초천재금발미소녀 : 당신도 덤비는 것이에요

         ㄴ 헉

         ㄴ 대댓 달지 마라 투기장으로 끌려간다

        ====

       

        그녀에게 홀크로프트의 부흥 다음으로 중요한 사안이 있다면 주딱의 마수로부터 벗어나는 것.

        지금껏 포인트 상점에서 파딱 해제권을 뽑지 못한 마리엘은 파딱에서 벗어나기 위해 말 그대로 온몸을 비트는 중이었다.

        오죽하면 마법까지 써가며 온갖 게시글에 댓글을 달고 있을까.

        특히 [주딱은 질서 악인가 중립 선인가]에 대한 투기장에서는 혼자 수백 개에 달하는 댓글을 써가며 ‘혼돈 악’을 밀고 있어 승리가 유력해 보였다.

       

        무려 아홉 개나 되는 성향 중 나머지는 다 포기를 외치고 마리엘의 대척점에서 ‘질서 선’을 밀고 있는 어느 유저만이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상황.

       

        과연 누가 이길지 유저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나는 그녀에게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

        — 주딱은질서선 : 부관리자님 부관리자님!

        — 주딱은질서선 : 띵동!

        — 초천재금발미소녀 : ??

        — 주딱은질서선 : 혹시 파딱 해제권이 필요하실까요?

        — 주딱은질서선 : 제가 작년이랑 재작년, 아무튼 꽤 오랫동안 투기장 우승자여서 많이 가지고 있는데 저한테는 필요가 없어서요 ㅠㅠ 

        — 주딱은질서선 : 41층에서 거래 안 하실래요?

        — 주딱은질서선 : 혹시 하층민, 아니 하층이시면 죄송합니다 ㅠㅠ(손 모으는 이모티콘)

        — 주딱은질서선 : 아, 그리고 소속된 공략대 없으셔도 죄송…… 40층 혼자 통과하면 쵸큼 소시오? 패스? 같잖아여 ㅠㅠ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타는 내일 퇴근 후에 한번에 수정하겠습니다…

    낮잠돌고래 님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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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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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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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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