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어떻게 바로 하나?”
“설명해줬잖아.”
설명이 어려웠는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알짜배기 핵심들만 쏙쏙집어서 해준 특별과외다.
“어디부터가 어려운 건데?”
“일단 어떻게 흥에 몸을 맡기나?”
거기부터라면….
“처음부터네?”
“…취익.”
잔뜩 기가죽은 굴락.
샤먼이라는 놈이 저렇게 기가 약해서 어디다 써먹겠는가.
“일단 해 봐.”
“알겠다. 성공시킨다.”
단번에 성공은 어려울 것이다.
무아지경이 뉘 집 애 이름도 아니고, 상당히 힘든 부분이니까.
“취이익…”
김빠지는 소리를 한번 낸 굴락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다시 떠지는 두 눈.
“….”
“왜 안 해?”
“흥이 나지 않는다.”
굴락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어깨를 늘어뜨렸다.
“인간샤먼, 생각해봐라.”
“오크새끼 한테 생각해보란 소리를 다 듣네.”
어처구니가 없는 와중에 굴락은 한없이 진지했다.
“취익, 나는 네크로맨서에게 쫓기고, 형제들은 다 죽었다.”
“어…”
“동족들도 계속 죽어 가는 마당에 흥이 나겠나? 취익…”
생각해보니 진짜 불쌍한 놈이었다.
기구하고 딱한 놈.
굴락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바르쿠, 북이라도 쳐 달라.”
“취익! 신성한 의식 돕는다! 샤먼 성장해라!”
금세 북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두웅 –
둥 –
규칙적으로 울려 퍼지는 소리.
그 가운데서 굴락이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취이익…”
“야, 몸에 힘 다 빼고 해.”
내가 말을 하는 순간 굴락이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집중하는지 진지해지는 모습.
얼추 따라 하는 듯했지만, 아직 낯선 듯 했다.
“취익, 나를 지운다.”
“지운다는 생각도 하지 말고 그냥 비워.”
지팡이를 흔들며 뛰어오르는 굴락.
그런데 어째 점점 뛸 수록….
“왜 흉악해지냐?”
굴락이 몰입을 할수록 춤이 이상해지고 있었다.
나는 즐겁게 추는 것이라면 저건 마치 싸우는 듯한 느낌.
“흉악해? 싸워?”
일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그럴듯한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잠깐! 멈춰 봐!”
“취익?”
오크에게 맞는 방법을 찾은 것 같다.
***
퍼억!
오크하나가 굴락의 손에 얼굴을 맞고 바닥을 뒹굴었다.
“취익! 더 덤벼라!”
이번엔 다른 오크를 들어서 집어던지는 굴락.
쿠웅.
굴락과 주변을 둘러싼 오크들이 어지럽게 엉키기 시작했다.
얼마간 난전이 벌어지고 순간을 포착한 내가 소리를 질렀다.
“지금!”
“취이익!”
흉폭함을 담고 번들거리는 두 눈.
굴락이 그대로 지팡이를 들고 몸을 흔들었다.
내가 찾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오크는 몬스터.
흥을 느끼기보다는 저것이 더 맞다.
싸우려고 하는 투지와 본능적인 흉폭함.
“취익!”
굴락은 미친놈 처럼 눈이 헤까닥 돌아가 있었다.
완전히 싸움에 몸을 맡긴 것이다.
나와는 다른 방법으로 이르는 무아지경.
금세 내 옆에서 푸른 불길이 타올랐다.
화르르륵 –
나는 다시 입을 열어 소리를 질렀다.
“불 약해지잖아! 더 밟아!”
“취이이익! 모두 굴락을 덮친다!”
“공격!”
굴락이 지팡이를 휘두르며 오크들을 때려잡기 시작했다.
동작이 격해 질수록.
눈이 번들거릴 수록 불꽃이 맹렬하게 타올랐다.
“인간샤먼! 굴락이 이상하다!”
바르쿠라는 오크가 당황한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럴 만 했다.
지금의 굴락은 무슨 광전사라도 된 듯 이성을 놓고 날뛰고 있었으니까.
“계속! 멈추면 안 돼!”
내 말에 오크들이 다시 달려들기 시작했다.
고통을 느끼지 못 하는 듯 맞으면서도 싸우는 굴락.
화르르르륵 –
굴락의 흥분을 따라 불꽃이 거세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누래진 눈동자와 잔뜩 선 실핏줄.
미친놈이 발작을 하는 듯 이어지는 굴락의 행동들.
흘러나오는 살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슬슬 진정을 시키려는 순간.
“취익!”
굴락이 멈춰 섰다.
언제 날뛰었냐는 듯이 정상이 된 모습으로.
“취이익! 알겠다.”
“응?”
“이제 배웠다. 인간샤먼이 했던 것 흉내 낼 수 있다. 나는 다르게 해야 한다.”
그걸 벌써 알았다고?
확실히 방금 굴락은 무아의 상태와 비슷하기는 했다.
흥에 몸을 맡기듯 흥분에 몸을 맡겨 버렸으니까.
“보여 준다. 오크들 모두 물러서라.”
“취이익! 온몸이 아프다.”
“다음번에는 때려 준다.”
잔잔해진 불꽃으로 걸어간 굴락이 조용히 눈을 내리감았다.
“냄새가 진해졌다.”
스윽 –
올라가는 지팡이.
그리고 굴락의 거친호흡이 뿜어져 나왔다.
마음을 잔잔히 가라앉히며 시작하는 나와는 반대되는 모습이었다.
흥분과 광기에 정신줄을 놓아버린다는 것이 어울렸다.
“몬스터 답기는 하네.”
이윽고 굴락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를 따라 하는 춤사위.
하지만 즐겁게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싸우던 모습을 춤으로 흉내 내는 듯 움직이는 몸.
“미치겠네, 이걸 진짜 해?”
사람의 영혼에 영향을 미치듯 굴락이 하는 행동에 오크의 영혼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 ….
– …!!
– …%^&!!
굿판이 벌어지면 영혼들이 와서 즐긴다.
동네 잔치에 놀러오듯이.
저 광기와 흥분에 가득한 동작들은 사람이라면 기겁을 하고 도망갈 것이다.
도저히 정상인이 낼 수 없는 감정들이니까.
그게 어디까지나 사람의 영혼이라면 말이다.
“허…”
느껴져 오는 영혼들의 흥분감.
잡귀들이 뿜어내는 더러운 광기와는 조금은 다른 감정들.
순수하게 싸우고 싶다는 투지와 비슷했다.
전투를 벌이며 느끼는 고양감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영혼을 넘어서 살아 있는 오크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것.
“싸운다!”
“취익! 취익!”
흥분을 주체하지 못 하는 듯 뜨거운 콧김들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들려오던 북소리들도 강렬한 힘을 담고 울리기 시작했다.
두우웅 –
두우웅 –
굴락에게서 나오는 광기가 퍼져나가고 오크들의 심장이 거세게 뛰는 게 느껴졌다.
오크의 영혼과 살아 있는 오크 모두에게서 흘러나오는 투지와 광기.
“….허.”
그 감정들이 고스란히 느껴져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예술가들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아니라 격투선수들이 뿜어내는 듯한 감정들.
“이거 내가 뭘 가르친거야?”
시뻘게진 눈을 치켜뜬 오크들을 보아라.
본적은 없지만 광전사가 있다면 딱 저런 모습일 것이다.
굿하지만 주술과 비슷한 효과.
순간, 오크들에게서 광기가 터져 나오며 짐승이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잔뜩 목을 긁으며 나오는 거친 목소리들.
“크르르…”
“싸우고 싶다!”
나는 다급하게 세레나의 손목을 잡아챘다.
“뒤로 빠져야 해.”
“크리스 이건…”
“…빠?”
내가 강신을 할 때도 자고 있던 루나마저도 이상함을 느낀 듯 깨어났다.
불꽃에서 멀어지는 순간.
오크들이 서로 격돌하기 시작했다.
“야이 새끼들아! 너희끼리 쳐 싸우면 어떡해!”
개싸움도 이런 개싸움이 없었다.
주먹이 막히면 몸으로 들이 받았고, 도끼가 부서지면 날째로 쥐고 휘두르고 있었다.
“야, 이거 원래 이래?”
– …&%$%?
이놈이 알턱이 있겠는가.
오크의 영혼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전투를 즐기고 있었다.
저놈들이 싸우는걸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크리스, 안 말려도 괜찮을까요?”
“음…”
저놈들이 즐기는 방식이 저런 것이라면 굳이 말릴 필요가 있을까?
종족도 다른 마당에 오크들의 방식을 배려해 주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원래 이쪽 계통이 별의별 일들이 다 있는 업종이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린데. 잘되고 있는 게 맞는 거 같아.”
“…이게요?”
“빠! 시끄여! 루나, 자야 해…”
불길이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되게 타오르고 있었다.
순도 마저 높아져 색깔마저 진해졌다.
“이거 어쩌면…”
샤먼의 영혼이 머무르는 불길.
영혼을 치유해주는 불길이 강해졌다는 건 저 영혼이 깨어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 가까이서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저벅 –
걸음을 내디디니 세레나가 걱정을 하며 따라붙었다.
솔직히 나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다.
이런 형태는 처음 보는 것이었으니까.
“수틀리면 엎어야겠는데?”
“…그게 가능한가요? 저렇게 날뛰는데?”
“그럼. 아무나 못 하는 거긴 한데…엎어야 하는 굿판들이 있어.”
굿판을 엎는다라고 하는 것이 있다.
금기시되는 행동이기는 하지만 한번 본적이 있었다.
대노하신 스승님께서 굿판을 뒤집어 엎는 것을.
“아직도 살벌하네…”
잡귀를 하나 데려다 놓고 했던 내림굿.
그냥 신기가 있을 뿐 무당이 될 사람이 아닌데도 허주를 내려 버리는 굿이었다.
명백히 돈을 바라고 한 잘못된 굿.
이런 경우에는 신령님들이 노하신다.
사람인생 망치기 전에 엎어야 하는 굿판이니까.
어쨌든 굴락과도 인연이 닿은 이상 잘못된 방향으로 흐른다 싶으면 엎어 버리는 게 나았다.
저렇게 살기등등한 놈들을 세상에 풀어놓으면 곤란할 테니까.
“흐음…”
불과 가까워졌음에도 뜨거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몸이 나른해지는 느낌.
온천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랄까.
“장군신 비슷하기도하고…”
신령은 아니다.
장군신과 비슷하지만 오히려 강한 귀신과 가까운 형태.
“그렇다고 귀신이라 보기에도 애매한데…”
무당이 죽어서 귀신이 되면 비슷할 것 같기도 하다.
“….”
지금 눈앞에 있는 영혼은 오크들의 선조다.
따지고 보면 줄을 잡고 내려오는 조상신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굴락이 말하는 전사의 영혼이라는 것이 이놈도 포함된 것일 테니까.
하여튼 뭐라고 딱 정의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영혼을 표현하는 말이 없으니까.
“일단 치유가 되는 것 같기는…”
뚜두둑 –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투둑 –
“세레나, 이거 들려?”
“…어떤 소리를 말하는 거죠?”
아무래도 세레나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는 것은.
“세레나! 루나 데리고 뒤로 물러나!”
방울을 뽑아 드는 순간 샤먼의 영혼과 눈이 마주쳤다.
순식간에 내 몸을 감싸는 푸른 불길.
머릿속으로 언어의 형태를 한 생각이 흘러들어왔다.
“건들지 마! 안 다쳐!”
눈앞이 하얗게 변하며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리스!”
“빠!”
세레나가 루나를 데려가서 다행이었다.
간만에 하는 기절이 이런 식일 줄이야.
쿵.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