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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6

       팅! 프란체의 충격적인 발언에 케일과 라데아의 포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당혹스러운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공녀님?”

         

       이런 내 마음도 모르는지 프란체는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책에서 본 적이 있어. 질투는 좋아하는 감정에서 나오는 거라고.”

         

       큰일이다. 저건 프란체가 가장 가지면 안 되는 감정이다. 어떻게든 돌려야 한다.

         

       “공녀님, 질투는 소유욕에서도 나올 수 있습니다. 자신의 것을 누군가 가져가면 화가 나고 질투가 나고 그런 거죠.”

         

       단순히 소유욕, 의존, 집착은 어떻게 끝낼 수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감정은 다르다.

         

       흑마법의 영향으로 폭발하기 가장 쉬우면서 상사로 이어질 수 있는 감정. 많이 곤란하다.

         

       “그러니? 나는 이게 단순한 소유욕을 넘었다고 보는데.”

         

       그리 말하곤 나를 지그시 응시하는 프란체. 한창 술과 음식을 집어삼키던 라데아와 케일도 경직돼서 나를 바라봤다.

         

       “공녀님, 만일 그 감정이 사실이더라도 그건 절대 제게 향해선 안 되는 마음입니다.”

         

       프란체는 “어째서?”하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는 망국의 왕자이자 노예, 패잔병입니다. 공녀님께서 제게 그런 마음을 가지시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이런저런 변명으로 그녀의 마음을 부정하는 건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지금 제국에서 신분이 가장 낮으면서 어차피 떠날 사람이다.

         

       괜한 상처를 주고 기만하는 것보단 이게 낫다.

         

       “그걸 판단하는 건 내 마음이지. 이제 이 제국에서 내 뜻을 거스르는 사람은 없잖아? 너를 해방하고 지방 세력의 귀빈 취급을 할 수 있어.”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프란체의 권력이라면 내 위치를 복귀시키는 것도 가능할 터. 내가 권력을 너무 키워줬나?

         

       “공녀님.”

       “왜?”

         

       내게로 향하는 흔들림 없는 에메랄드빛 눈동자. 이 공녀님은 지금 진심이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정말 죄송하지만, 공녀님께서는 여러 감정에 익숙지 않으신 상태이십니다. 더 많은 걸 느껴보시고, 경험해보시면 지금 마음을 정확히 판단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최대한 잘 돌려 말했다. 이 정도면 프란체도 알아듣겠지.

         

       “그러니? 나는 내가 틀렸다고 보진 않는데.”

         

       전혀 통하지 않았다.

         

       “이리 오렴, 진.”

       “…….”

         

       조금 떨어져 있던 의자를 끌어 프란체에게 밀착했다. 그러자 프란체는 검은 레이스가 달린 장갑을 쓴 손으로 내 뺨을 쓰다듬었다.

         

       까슬까슬한 감각. 그럼에도 온기는 전해져왔다.

         

       “아주 오래전부터 느껴왔던 감정이야. 나는 항상 이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어. 그리고 지금 판결을 내린 거야. 이래도 내가 아직 잘 모르는 거니?”

         

       입술만 달싹였을 뿐 쉽게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지금 프란체는 한없이 진심이다.

         

       “…공녀님.”

       “진.”

         

       내가 무슨 말을 하려 해도 끊어내고 시선을 마주한다. 나는 눈동자를 굴려 피했다.

         

       “피하지 말고 시선을 마주하렴.”

       “공녀님, 제 말을 더 들어주십시오.”

       “뭐니?”

         

       답이 없는 상황. 이걸 타파할 수 있는 묘수.

         

       “그런 중요한 감정은 천천히, 오래 생각해도 늦지 않습니다. 당장 판결을 내리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죠.”

         

       미루기다.

         

       “…묘하게 피하려는 느낌이 드는데.”

       “다 공녀님을 위한 겁니다.”

         

       눈을 얕게 뜨고 나를 지그시 바라보던 프란체는 후우, 한숨을 내쉬곤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 알겠어. 좀 더 생각해볼게. 오래 걸릴 거 같진 않지만.”

       “잘 판단하셨습니다…….”

         

       미루는 데 성공은 했다마는, 오래 걸리진 않을 거 같다. 그전까지 모든 일을 끝내야 할 텐데 이건 욕심이겠지…….

         

       “…….”

         

       휙. 별안간 나를 보던 프란체가 고개를 돌렸다.

         

       “…?”

         

       옆모습을 바라보니 새빨개진 귀가 보였다. 뒤늦게 자기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알아차린 듯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린애 같은 사람이야.’

         

       저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가슴이 답답했다.

         

       “…이제 밥 먹어도 되나?”

         

       고개를 돌려보니 멀뚱멀뚱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라데아와 케일이 보였다. 설마 처음부터 경청하고 있던 건가…….

         

       “지금 건 잊고 밥이나 먹어.”

       “아니, 이걸 잊으라니…….”

       “이런 걸 쉽게 잊을 리가…….”

         

       나는 눈을 얕게 뜨고 라데아와 케일을 쏘아봤다.

         

       “크흠, 모처럼의 황실 주방장의 요리가 다 식었군. 다시 퍼오겠다.”

       “어, 왜 포도주가 부족하지? 저는 포도주를 더 가져올게요.”

         

       서둘러 일어나 자리를 피하는 라데아와 케일. 분명 둘이서 이런저런 얘기할 게 뻔한데.

         

       ‘놔두자.’

         

       엎지른 물을 다시 담으려 하면 그게 욕심이지. 나는 고개를 휘젓곤 옅은 한숨을 내뱉었다.

         

       ‘이 분위기를 어찌 해야 하나.’

         

       어색하다 못해 불편하다. 분명 내가 어떻게든 말을 돌리려 하는 걸 프란체도 눈치챘을 터.

         

       ‘복잡하네.’

         

       나를 좋아하는 마음은 기쁘다만, 내 동기화 때문에 우리는 애초에 이어질 수 없는 관계다.

       

       “…….”

       “…….”

         

       프란체와 단둘이 남아 어색한 분위기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자니,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 다가왔다.

         

       “데카르트 공녀님?”

         

       성녀, 소미레였다. 술에 취한 황태자는 다른 곳에 두고 온 듯하다. 대신 다른 영부인들과 영애들을 잔뜩 데려왔다.

         

       “성녀께선 제게 무슨 일로?”

         

       여전히 까칠한 프란체. 소미레는 이에 굴하지 않고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랜만에 같이 담소라도 나누고 싶어서요.”

       “저는 담소 같은 거 나눌 생각 없으니 되돌아가시길.”

         

       얼굴을 찡그린 채 휘휘 손짓하는 프란체. 소미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무리 공녀님이라 하셔도 성녀님께 그런 태도는 좀 아니라도 생각하는데요?”

         

       보다 못한 한 영부인이 나섰다. 영애들도 가세했다.

         

       “성녀님은 이제 황실의 일원이십니다! 그런 예의 없는 태도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공녀님께서 함부로 하셔도 될 사람이 아니에요!”

         

       어이구, 호위기사들 납시셨다.

         

       “여러분, 진정하세요. 저는 그다지 상관하지 않는답니다.”

       “하지만 성녀님! 저 공녀님이 지금 성녀님을…!”

       “괜찮습니다. 저는 전부 이해하니까요. 제가 이야기하겠습니다.”

         

       영부인과 영애들이 “성녀님…!”하면서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쇼하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지가 진짜 성녀인 줄 아네.’

         

       속 안이 시커먼 거 다 알고 있는데 저러고 있으니 한대 쥐어 박고 싶다.

         

       “공녀님? 제 이야기를 안 들어주실 건가요?”

       “제가 들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네요. 할 말은 없으니 가시길.”

       “그러지 마시고 들어보시지요.”

         

       계속되는 소미레의 치근덕거림에 프란체는 얼굴을 구기곤 중얼거렸다.

         

       “쯧, 목적을 다 알고 있는데 위선도 정도껏 떨어야지.”

         

       명백하게 다 들리라고 말한 중얼거림이었다. 소미레의 미소가 깨지려고 하던 그때.

         

       “공녀님!”

         

       영애 하나가 나섰다.

         

       “예전 버릇 못 고친다더니. 전부터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깔보는 건 알았지만, 성녀님에게까지 이럴 줄이야. 타인에 대한 존중이 없으신 건 여전하시네요!”

         

       저 말을 영부인들과 영애들이 동조하자 프란체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지금 말 다 했나요?”

       “다, 다 했는데요?”

         

       스르륵. 프란체가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걸어나갔다.

         

       “영애는 이름이 뭔가요?”

       “제, 제 이름은 왜요?”

       “이름은 알아야겠다 싶어서요.”

         

       옅은 미소를 유지한 채 고개를 까딱이는 프란체. 왠지 불안한데.

         

       “로렌느 자작가의 마리 로렌느라 합니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성녀를 믿고 이름을 대는 영애.

         

       “그래요, 로렌느 영애.”

         

       짜악! 프란체가 있는 힘껏 뺨을 휘갈겼다.

         

       “어…?”

         

       프란체의 매운 손맛에 정신 못 차리는 마리 로렌느.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짜악! 짜악!

         

       “흐윽…!”

         

       이윽고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마리 로렌느. 프란체는 그녀를 굽어보며 뇌까렸다.

         

       “주제도 모르고 앞으로 나선 것도 모자라 입에 담으면 안 될 말까지 하다니.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있지 않네요. 다시 일어나세요.”

         

       차갑고도 싸늘한 프란체의 눈빛에 다들 움찔거렸다.

         

       ‘이거 안 좋은데.’

         

       뺨을 때린 건 상관없다. 이거로 프란체를 트집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다만 여기가 황실 파티장이라는 게 문제다.

         

       “공녀님!”

         

       보다 못한 소미레가 막아섰다. 이거 상당히 좋지 않다. 이러면 선악이 구별되잖아.

         

       “성녀? 옆으로 나오세요. 주제도 모르는 로렌느 영애에게 냉혹한 현실을 알려줘야 하니까.”

         

       나는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현재 황태자는 술에 곯아떨어져서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중.

         

       황제, 황후와 두 공작가의 일원들은 얘기라도 하러 간 건지 자리를 비운 상태. 시선도 아직 쏠리지 않았다.

         

       ‘이러면 상관없어.’

         

       판단이 끝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프란체에게 속삭였다.

         

       “상황이 더 안 좋아지기 전에 자리를 피하셔야 합니다.”

       “뭐? 내가 저런 말을 듣고, 나를 죽이려는 성녀를 앞에 두고 빠져나가라고?”

       “다음을 기약합시다. 여기는 황실 파티장입니다.”

         

       후우, 뜨거운 숨을 내뱉고 고개를 주억이는 프란체. 흥분은 가신 듯하다.

         

       “바람이라도 쐬시지요. 안내하겠습니다.”

       “그래, 그러자꾸나.”

         

       프란체를 에스코트해서 테라스로 나가려던 차.

         

       “이 사단을 만들어놓고 어딜 가시나요?”

       “맞아요! 어영부영 넘기시려고요?!”

         

       영애와 영부인들이 잡아 세웠다.

         

       “아무래도 교육이 더 필요하신 분들이 계시네요.”

         

       싸늘한 프란체의 시선과 혹한과도 같은 목소리에 움찔거리는 영애와 영부인들.

         

       “저는 지금부터 테라스에 나갈 예정이니 예절 교육이 필요하신 분들은 따라오시길.”

         

       그리 말하곤 휙 등을 돌린다. 나는 프란체를 데리고 테라스로 나왔다.

         

       어두운 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을 볼 수 있는 테라스. 높게 솟아오른 푸른 나무들의 이파리가 살랑이고 바람이 선선하다.

         

       “후, 애써 참으려고 했는데 그 망할 년을 봐서 나도 모르게 흥분했구나.”

         

       자신을 죽이려던 소미레가 추종자들을 이끌고 다가왔다. 거기에 치근덕거리는 것도 모자라 추종자들의 도발까지. 욱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

         

       “후아…….”

         

       선선한 바람을 쐬며 열을 식히는 프란체. 동시에 테라스의 문이 열리며 케일과 라데아가 들어왔다.

         

       “무슨 일이래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라데아와.

         

       “뺨을 날리는 솜씨가 수준급이더군. 검을 잡으면 검격 또한 날카롭겠어.”

         

       칭찬인지 비꼼인지 구별되지 않는 말을 하는 케일.

         

       “케일, 웃기려고 한 거면 성공이다.”

       “그런가? 의도적으로 한 건 아니었다만.”

         

       얘는 엉뚱한 구석이 있는데 알다가도 모르겠다. 

         

       “공녀님, 목이라도 축이시겠습니까?”

       “그래. 음료를 부탁해.”

         

       라데아와 케일이 있으니 안전하겠지. 나는 다시 파티장으로 들어갔다.

         

       ‘포도주? 샴페인?’

         

       취하는 건 그다지 좋지 않으니 알코올 도수가 낮은 샴페인을 가져가는 게 좋겠다.

         

       그렇게 돌아다니는 사용인에게 샴페인을 받으려던 차.

         

       “진 바렌베르크 님?”

         

       소미레가 말을 걸어왔다.

         

       “이번이 두 번째네요. 반가워요.”

         

       살가운 미소를 지으며 내게 접근하는 소미레. 나는 얼굴을 구긴 채 쏘아봤다.

         

       “고귀하신 성녀님께서는 제게 무슨 일로?”

       “제안할 게 있어서요.”

       “당신의 휘하에는 안 들어갑니다.”

       “그것 말고, 거래예요.”

       “거래?”

         

       소미레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다가와 내 귓가에 속삭였다.

         

       “저는 당신이 원하는 걸 이뤄줄 수 있어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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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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