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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6

     왕국과 제국 사이에는 다양한 문화 차이가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차이가 있다면 ‘물’을 빼놓을 수 없다.

     이 물 안에서도 정말 많은 것들이 갈리지만, 그중 지금 이 순간과 관련이 있는 문화 차이라고 한다면-

     ‘수영이지.’

     왕국의 수영과 제국의 수영은 다르다.

     왕국의 수영이 물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적 헤엄을 의미한다면, 제국의 수영은 헤엄을 통한 승부와 경기를 의미한다.

     물에 몸을 담그는 순간이 있다면, 그건 목욕할 때.

     ‘애초에 수영이라는 개념도 제국에서 들어온 거고.’

     이전까지 왕국은 그저 물에 몸을 담그거나 물놀이를 해왔을 뿐이다.

     개울에 몸을 담그고, 물장구를 치는 게 물놀이의 전부.

     완전히 다른 옷을 입고 물속으로 첨벙 뛰어든다는 건 왕국의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행위였다.

     -우리가 무슨 물에 빠진 개도 아니고, 왜 물에서 헤엄을 쳐야 하는 거죠? 물에 빠지면 기사가 구하러 오면 되는 거 아닌가?

     왕국 평균 인식이 이러하다.

     물을 헤엄치는 게 마치 개가 머리만 내밀고 물 위에서 발버둥을 치는 것과 같다고 느껴, 헤엄하는 것 자체를 경시하는 기조를 보였다.

     그에 비해 제국은 수영이 보편화되어 있었다.

     -모든 아카데미에서 수영을 배울 기회를 제공한다. 

     제국은 아카데미마다 교양으로 수영을 가르쳤다.

     -수영은 놀이이자 경기이며, 동시에 인간 생활에 필요한 신체활동의 일부이니라.

     겉으로 보면 체력 증진과 심폐지구력 향상, 물에 빠졌을 때를 대비하기 위한 응급행위의 기능이라고 한다면.

     ‘수영을 통해 남부 해협으로 해병을 몰래 침투시키려는 계획의 일환.’

     제국의 계획에는 대부분 전쟁을 위한 군사훈련이라는 음습한 목적이 담겨있다.

     

     수영 또한 마찬가지.

     물속에 오래 잠수할 수 있는 능력.

     깊은 바닷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고 헤엄칠 수 있는 능력.

     

     만일 왕국의 영역 너머 심해에 크라켄을 비롯한 온갖 괴수들이 살고 있지 않았다면, 제국은 어둠 속에서 배를 몰아 전신을 검게 칠한 해병을 야간에 침투시켰을지도 모른다.

     뭐, 이런 건 어디까지나 전쟁이라는 목적에 따른 뒷사정일 뿐이고.

     문화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면, 왕국은 제국인들이 수영을 위해 옷까지 맞춰 입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이게 수영을 위한 수영복이라고요…? 속옷이잖아.

     나야 아카데미에서 설을 들었기는 했지만, 많은 이들이 제국의 ‘해수욕장’이라는 곳에 갔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남자는 웃통을 훌러덩 벗어 던지고 아래만 가린 채 걷고 있다.

     이건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다.

     용병들 중에는 자기 근육을 과시하겠다면서 웃통을 벗어 던지는 이들도 있고, 허벅지 근육도 보여주겠다면서 노출을 과하게 하는 이들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여자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브라랑 팬티만 입고 저렇게 당당히 돌아다닌다니! 문란하고 망측하기 짝이 없군요!

     왕국에서는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복장.

     저기 술집이나 뒷골목 창부들도 입지 않을 것 같은, 피부 면적 중 흉부와 아래만 아슬아슬하게 가린 의상.

     -브라도 팬티도 아니니까 부끄럽지 않은데요?

     

     아카데미 재학 시절 한 제국인에게 물었더니, 그런 대답이 돌아왔다.

     수영.

     제국에서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겠지만, 왕국인들에게는 문화충격이 아닐 수 없는 문화.

     왕국에 비해 제국이 훨씬 열려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곳을 보면 제국인들도 ‘아, 이건 좀’이라고 답을 할 것이다.

     ‘수영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목욕 중에 헤엄을 치는 거라고 해야 할지.’

     호수에 그대로 몸을 담근다.

     맨몸으로 물속에 들어가는 건 회귀 후에는 욕조에 몸을 담글 때 빼고는 단 한 번도 없었으나-

     ‘오랜만이네.’

     

     회귀 이전에는 제법 많이 물속에 몸을 담그기도 했다.

     때로는 호수에서.

     때로는 바다에서.

     하지만 대부분은 욕조에서.

     ‘어색하네.’

     물은 따스하다.

     하지만 다른 온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주변이 온통 넓고 탁 트여있으나, 좁은 욕조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또다른 온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정신 차려.’

     이곳에 들어온 건 잠영하기 위함이 아니다.

     호수 속을 헤엄치며 체력을 증진하기 위함도 아니며, 체력이 아닌 ‘마력’을 늘리기 위함이다.

     ‘잡념은 비우고, 마나에 집중해.’

     백금경이 직접 안내해준 마나의 샘인 만큼, 확실히 이보다도 더 정순한 마나가 깃든 곳은 이 세상에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자연의 마나가 모여든 샘.

     생물체가 존재하지 않는 순도 높은 물속에 존재하는 건 오직 마나뿐.

     사실상 마나가 이 물속에 사는 물고기이며, 식물이다.

     

     형체를 갖추고자 한다면 물고기가 되어 헤엄칠 수도 있을 것이며, 바닥에 달라붙어 있는 수생식물이 되어 물결에 흔들릴 수도 있겠지.

     ‘이 모든 것이 마나다.’

     나는 전신에 흐르는 물길에 집중했다.

     ‘전신으로 마나를 느껴.’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연 그 자체가 되어 마나를 흡수한다.

     

     머리카락의 아주 작은 틈에도 마나를 채우고, 피부의 갈라진 조각 사이에도 마나를 채우고, 피부 아래로 마나를 끌어당기며 마나를 채우고 또 채운다.

     틀렸다.

     눈앞, 거꾸로 뒤집힌 백금경이 나를 향해 입 모양으로 말하며 다가왔다.

     강제로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백금경은 말한다.

     황제와는 전혀 다른 이론을.

     마구잡이로 닥치는 대로 마나를 흡수하며 몸에 쌓아, 대륙을 지배한 자의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그대는 시간을 강제로 붙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의문을 던진다.

     시간은 앞으로 나아가며, 그 어떤 방법으로도 잡을 수 없는 초월적인 관념이다.

     마나는 자연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고자 하는 자가 어찌 마나를 품에 담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옳은 말이다.

     소드 마스터가 된 자들이 마나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항상 저런 문구가 들어있기는 했다.

     그러나 이것은 정직하고 바른 길이다.

     정론(正論)이며 정도(正道)라는 것을 알면서, 왜 굳이 빠른 길을 택하려고 하는 것이냐?

     

     나에게는 시간이 없다.

     전쟁이 일어날 요인을 미룬다고 하더라도, 이미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고작 중급을 넘어선 것만으로는 부족해.’

     전생에 비하면 성장이 분명 더 빠른 건 분명하지만, 그래도 아직 정점에 닿으려면 부족하다.

     어처구니가 없구나. 편하고 빠른 길을 걷고자 한다니.

     백금경이 비웃는다.

     누군가는 수백 년에 거쳐서 도달한 곳을 불과 수 년만에 다다르고자 하다니. 욕심이 과한 것이 아니냐?

     당연하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나도 원래라면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가장 높은 산, 하늘 위에 오른 자가 그 누구도 자신이 닿은 곳에 오르지 못하게 죽이려고 들지 않습니까.’

     먼저 도달한 자가 위에서 줄을 내려다주고 후발주자를 돕는다면 모를까, 후발주자를 향해 칼을 던지고 채찍을 휘둘러 그 누구도 올라오지 못하게 막고 있다.

     ‘저는 그를 끌어내려야 합니다.’

     그를 끌어내리고 정상에 등극하는 것이 너의 목표이더냐?

     ‘아니요. 오직 그자를 쫓아내는 것만이 목적입니다.’

     그러다가 설령 네가 그자와 함께 하늘에서 떨어져 추락하더라도?

     

     ‘그자가 사라진 땅에, 제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이들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걸 위해 편법으로 절벽을 날아올라 간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 길을 선택할 것이다.

     바람직하도다.

     백금경의 입꼬리가 내려간다.

     

     정정.

     뒤집혀 있기에, 저것은 미소다.

     그렇다면 편법을 돕기 위해,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백금경이 거꾸로 선 채 내게 다가와, 내 얼굴을 붙잡았다.

     안심해라. 그대는 죽지 않을 것이며, 그대의 시간을 빼앗지 않을 것이니.

     ‘무슨 짓을-‘

     이라고 생각한 순간, 백금경이 강제로 내 턱관절을 손으로 붙잡았다.

     “!!”

     물이, 강제로 입속으로 들어왔다.

     입을 닫으려고 했지만, 턱관절이 눌리고 있어 입을 닫을 수가 없었다.

     마셔라. 마나를. 네가 개구리도 아닌데, 가장 효율적인 길을 두고 왜 피부로 마나를 흡수한단 말이더냐.

     따스한 물이 목을 타고 넘어와 배를 가득 채운다.

     내장을 모두 물로 채울 기세로, 물은 저항할 틈도 없이 계속 내 몸속으로 들어온다.

     마치 의지를 가지고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처럼.

     마치, 백금경이 물결을 조종해 내 몸속으로 물을 밀어 넣는 것처럼.

     점차.

     숨이 막히며, 의식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안심해라. 본녀는 그대를 죽이려는 게 아니라, 가장 빠르게 그대를 강하게 만들어 주려는 것이니.

     알고 있어서, 더 참을 수가 없었다.

     ‘마스터였으면 1시간 넘게 숨을 참는데.’

     마스터가 아니라, 한계가 찾아왔다.

     

     * * *

     “죽을 뻔 했습니다.”

     “앞으로 계속 반복할 거란다. 다시 들어가렴.”

     “…….”

     정신을 차린 순간에는 이미 물 밖이었으며, 백금경은 바로 내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바로 물속으로 집어넣으려고 했다.

     “잠시만요. 과유불급이라는 말도 모르십니까?”

     “드워프의 말이라 좋아하지는 않지만, 철은 두드릴수록 단단해지지.”

     “너무 심하게 두드리면 깨집니다. 그리고 저는 인간이죠.”

     “정직하고 빠른 길을 원하지 않았느냐.”

     “그렇긴 한데.”

     알고 있으니, 반박할 여지가 없다.

     “네 기술은 결국 마나를 쌓고 난 다음에 갈고 닦아야 할 것. 육체를 온전히 완성하는 게 우선이다.” 

     “…….”

     “설마 지금의 육신이 완성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당연히 아니죠.”

     몸을 일으켜 물에 비친 내 모습을 내려다본다.

     

     “근육은 좀 더 붙어야 할 것 같고, 체격도 더 커질 수 있습니다.”

     “그것만 커지는 게 아니긴 한 것 같은데.”

     “…이보세요, 백금경.”

     “농담이다. 칭찬인데도 너는 아주 질색하는구나.” 

     “칭찬은 감사하지만, 그런 것도 사람 나름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이렇게 있는 것도 싫고요.”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이건 분명히 말해둬야겠다.

     “제가 만일 이 엘프의 숲을 지배하게 된다면, 모든 엘프에게 옷을 입힐 겁니다.”

     “폭군이로다.”

     “적어도 멸망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제국에는 사진기라는 것도 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몸이 전라로 찍힐 수도 있는데.”

     이건 전부 엘프들을 위한 배려다.

     “옷이 만일 불편하다면, 최소한 속옷이나 수영복이라도 입힐 겁니다. 반드시.”

     “흐음….”

     “검토해 보시게요?”

     “옷을 입는다는 것은 곧 스스로를 억압으로 가두는 것과 같지.”

     “동물도 자신을 털로 가립니다.”

     “우리에게는 머리카락이 있다.”

     “하….”

     백금경이 자신의 풀어헤친 머리칼을 옆으로 쓸어내리며 이리저리 흔들었다.

     “흡혈귀들은 이미 문명사회에 녹아들어 인류의 그림자 곳곳에 침투해있는데, 정작 엘프들은 숲에만 틀어박혀 유유자적 누워있으니 흡혈귀가 계속 늘어나는 거 아닙니까.”

     “…….”

     “제 말이 틀렸습니까?”

     “맞는 말이지.”

     따ㅡ악.

     “…억울합니다.”

     “맞는 말이라고 했잖느냐.”

     “정곡을 찔렸다고 폭력으로 해결하려고 들다니. 어른스럽지 못합니다.”

     “더 강한 폭력으로 가장 쉽게 해결하는 방법이 있는데 굳이 입 아프게 말씨름해야 할까? 그리고 그대 또한 마찬가지 아니더냐.”

     “…….”

     “네가 죽이고자 하는 자에 대하여, 설득할 생각도 없으면서.”

     “그건 다릅니다.”

     나는 백금경의 앞에 당당히 섰다.

     “설득할 수 없고, 설득당해서도 안 되며, 누구 하나는 죽어야만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라도 있는 것 같구나.” 

     “예.”

     나는 황제에게 정말 많은 것을 받고 배웠다.

     협곡의 문을 열고 지브롤터 변경백으로서 제국에 충성한 대가이기도 하지만, 황제는 나에게 정말 많은 자원을 투자했다.

     “어떤 하나의 문제만 해결된다면, 저는 솔직하게 지금 당장이라도 그자의 편을 들고 싶어질 지경입니다.”

     “그걸 지금부터라도 설득하는 건?”

     “안 됩니다. 백금경과의 관계와 별개로, 그자는 그 생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에.”

     “사람은 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뿌리가 변하거나 바뀌지는 않죠. 이미 성인인 자가.”

     “…….”

     “백금경. 이미 백금경도 어렴풋이 눈채치셨다시피, 저는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을 죽이고 싶습니다.”

     제국의 황태자이자, 차기 황제.

     “어쩌면 백금경이 증오해 마지않는 변절자, 블러디 엘프들을 휘하에 다루고 있는 존재. 그자를 제거해야만 제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악연이로구나.”

     “예. 악연이죠.”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백금경의 사위다.

     “여쭙겠습니다만, 어쩌다가 둘 사이에서 아이가 생긴 겁니까?”

     “철이 없었지.”

     “…네?”

     “에르윈은 똑똑하지만, 사랑에 눈이 멀어서 어쩔 수 없었어. 본녀도 그랬거든.”

     백금경이 어딘가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잘생긴 건 못 참긴 해.”

     “그러면 황태자가….”

     “대략 20년 전 즈음이었나.”

     백금경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는 본녀가 수백 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봤던 인간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미남이었다.”

     “…….”

     “지금은 수염 때문에 좀 그렇지만.”

     과거.

     

     -나도 젊은 시절에는 자네만큼 제법 괜찮았다네. 하하하!

     그냥 허투루 한 소리인 줄 알았는데.

     “…….”

     “왜.”

     “아뇨. 그냥.”

     때로는.

     “저희 아버지도 저희 어머니를 보고 첫눈에 반하셔서 그러셨으니, 이해는 합니다.”

     “흐음…?”

     “…저도 그렇고요.”

     복잡한 인과관계나 그런 것 없이, 가장 단순한 감정이 모든 일의 근간을 차지하는 경우가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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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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