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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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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습격으로 어수선했던 분위기는 노아의 파티를 기점으로 제자리를 찾아갔다. 사망자가 없었던 탓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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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손된 건물을 보강하고, 주변에서 틈을 노리던 하이에나들도 가볍게 정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일주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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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직이 정상적인 궤도에 오르자 노아와 난 곧바로 카르디샨을 떠나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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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군에게 찍힌 이상 마왕의 땅에선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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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와 릴리, 네로는 매우 엄격하게 함께 떠날 사람들을 걸러내기 시작했다. 배신자였던 ‘ 절미 ‘같은 존재가 간부들 사이에 숨어있을 수 있기에 마도구까지 사용하여 검증된 이들만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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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신뢰가 증명된 간부들이 회의실에 모이자, 노아는 곧바로 안건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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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몇 개의 파티로 나뉘어 사방으로 흩어지자는 이야기도 있었고, 마왕군이 발견할 수 없는 땅으로 도망쳐 숨어 살자는 의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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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원작 지식이 있었기에 그럴듯해 보이는 의견이 위험한 의견인지 아닌지를 판단 내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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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방으로 흩어지는 건 위험해. 현재 마왕군은 활발하게 타국을 점령하고 있어. 현재는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땅도 결국은 마왕군에게 넘어갈 거야. 그러니 사방으로 흩어질 게 아니라 가장 강대한 힘을 가진 제국을 목표로 잡고 도망쳐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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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에선 제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마왕의 손에 떨어지게 된다. 마지막 제국까지 마왕의 손에 넘어가기 직전 혜성처럼 나타난 것이 마지막 용사 아이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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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 반드시 제국을 목표로 도망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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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의 땅에 머무는 이상 마왕군에게 잡히는 건 시간 문제야. 발길이 닿지 않는 외진 곳에 산다고 해도 그들은 결국 찾아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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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군은 흑마법 뿐만 아니라 온갖 기이한 힘을 다룰 수 있는 이들이 널려있다. 마족조차 살아가기 힘든 땅에 숨는다고 해도 결국은 들키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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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침없이 의견을 꺼내놓고 이에 대한 근거까지 제시하자 어느새 회의는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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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마왕의 땅을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야. 네스트 조직원이라고 해서 전부 마왕의 땅을 벗어날 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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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르디샨에서 나고 자라며 기본 가치관이 훼손된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이 땅에 남을 수밖에 없다. 외부 본부에 머무는 이들 대다수가 여기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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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노예 출신이더라도 남을 업신여기고, 네스트 조직의 권력을 이용하려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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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을 바로 잡아 교육해줄 사람이 없었다는 이유도 있지만, 애초에 글러 먹은 인성을 타고난 이들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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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사람들을 탈출 파티에 넣으면 분명 꼬리가 밟힐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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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출 루트는 원작 지식을 가지고 있는 나와 정보를 총괄적으로 다루는 네로, 노아. 이렇게 셋이서 정하기로 결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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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머지 간부들은 함께 탈출할 사람들을 걸러내는 작업을 맞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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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의 악한 정도를 표시해주는 마도구를 사용해 일차적으로 걸러내고, 소문이나 행동을 관찰하여 2차로 걸러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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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이 목표로 한 탈출 시기는 이 주일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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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짜가 촉박한 만큼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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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 괜찮아?”
    “아,응.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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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일하는 중간중간 리안이 걱정되어 몇 번이고 안부를 물어왔다. 전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스칠 때마다 리안은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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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는 그런 둘의 모습을 음흉한 표정으로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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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쁜 하루하루가 흘러 준비가 착착 진행되었다. 떠나기까지 일주일 정도 남았을 때 함께 탈출할 인원이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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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원은 생각보다 적었다. 총인원 98명으로 조직원의 10분의 1도 안되는 수였다. 간부들의 수를 빼면 대다수의 조직원이 카르디샨에 남는다고 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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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스트 조직이 카르디샨을 지배하고 있다 보니, 다들 카르디샨에 남고 싶어 하더라.”
    “마왕군이나 다른 조직이 노려도 그건 그때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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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스트는 비유하자면 카르디샨 내에선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대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기업이 네스트를 노린다고 해도, 하물며 오너가 바뀐다고 해도 대부분의 조직원은 네스트에 남아있길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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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 대다수가 이면에 탐욕스럽고 잔혹한 면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그 때문에 간부들도 굳이 그런 이들을 붙잡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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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를 들은 노아는 씁쓸하게 웃었다. 노예 출신이었던 상처투성이 아이들이 탐욕스럽게 자라버렸다는 사실에 속이 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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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해가 저문 밤. 나는 이불 속에 꾸물꾸물 들어가 막 잠이 들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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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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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순간 문밖에서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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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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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이 노크도 없이 열렸다. 곧바로 눕혔던 몸을 세우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창문이 하나도 없는 탓에 방 전체가 어둠에 삼켜진 상태라 한 치 앞도 안 보였지만 리안은 기민하게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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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 이 밤에 무슨 일이야?”
    “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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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다다 달려온 제스는 가볍게 점프하여 나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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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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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견 강아지에게 덮쳐진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침대에 나뒹굴었다. 나는 욱신거리는 뒷머리를 문지르며 제스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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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으… 제스, 그렇게 갑자기 달려들면 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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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스가 내 몸 위에 엎어져 버렸다. 몸이 덜컹하고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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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제,제스으?”
    “킁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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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내 목덜미에 코를 박고 킁킁거렸다. 나는 목을 움츠리며 제스의 어깨를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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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 왜, 왜 이러는지 설명부터 흐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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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스가 내 몸 위에 누워 몸을 비비적거리기 시작했다. 강아지가 새 물건에다 제 체향을 묻히는 행동과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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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가 내 몸 위에 등을 문지를 땐, 향긋한 긴 머리카락이 얼굴을 간지럽혔고 앞에서 문지를 땐 -… 아니, 문지르려는 순간 제스의 어깨를 붙잡아 행동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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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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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자 제스가 목덜미가 붙잡힌 강아지처럼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귀여운 울음소리만 들으면 내가 큰 잘못을 한 것만 같았다.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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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우,흐… 제스 왜 이런 행, 행동을 하는지 제대로 설명을 해야지.”
    “크흥… 사천왕이 남긴 마킹을 없애고 있는 거예요.”
   “마킹?”
    “노아가 그랬어요. 사천왕이 쮠님한테 마킹 남겨서 도망가야 한다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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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왕에게 찍혔다는 말을 ‘마킹 당했다.’라고 이해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원작에서 보았던 토막 상식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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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인들 사이에서 마킹은 영역표시 같은 거라고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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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인이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이나 사람에게 다른 수인이 마킹을 하는 건 NTR 같은 행위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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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가 극도로 흥분해서 달려오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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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게 아닌 거 맞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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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간 제스의 “결혼! 부족 만들기!” 발언이 떠올랐지만 빠르게 머릿속에서 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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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같은 사이라서 그런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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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낙 제스를 어렸을 때부터 본 탓일까? 쉽사리 그런 쪽으로 생각이 흐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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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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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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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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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의 어깨를 붙잡고 있던 손목이 제스에게 힘없이 붙잡혔다. 개그 필터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평범한 인간이 수인의 힘을 이겨낼 수 있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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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식간에 침대가 출렁거리고 제스가 내 손목을 잡아 침대에 짓누르고 있었다. 어느새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귀를 쫑긋거리며 동공을 확장한 채 입술을 할짝거리는 제스의 모습을 선명하게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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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쮠님, 내가 사천왕 마킹 다 없애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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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랑살랑, 제스의 꼬리가 흔들거리며 발등을 쓸고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귀여운 목소리와 달리, 제스의 눈동자는 사냥감을 바라보는 짐승의 눈이었다. 나는 포식자를 앞에 둔 피식자처럼 몸이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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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지? 먹어서 없애준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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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에게 산채로 으적으적 씹혀 삼켜지는 장면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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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상일지도… 아니,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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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세계에선 미소녀에게 밟히는 것조차 포상인 곳이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번뜩 들고 말았다. 빠르게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털어낸 후 제스를 달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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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꼭 지금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우선 날이 밝으면 그때 얘기하는 게 어떨까? 내가지금너무졸리고피곤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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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의 입이 점차 목덜미 쪽에 가까워지자 말이 쉼 없이 빨라졌다. 이대로 목이 깨물려 죽는 게 아닌가 싶을 때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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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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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가 이상한 신음을 흘리며 갑작스럽게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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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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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의 서릿발 같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꾹 참고 있던 숨을 길게 내뱉으며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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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에게 뒷덜미가 붙잡힌 제스가 “캬오캬오!”거리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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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쮠님한테 남은 마킹을 없애려고 온 것뿐이야!”
   “마킹? 그런 거 아니라고 아까 노아가 다 설명했잖아.”
   “흔적을 남겼으면 그게 마킹이야!”
   “아니야.”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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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대로 두면 크게 싸울 것 같아 두 사람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시선을 집중시켰다. 둘 다 어둠에 익숙한 상태인지 다행히 내 쪽으로 시선을 던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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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 난 마킹 같은 거 안 당했으니까 그런 거 안 해도 돼. 아니 하물며 당했다고 해도 그런 행동은 상대에게 허락받고 해야 하는 거야.”
    “끼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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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가 귀를 축 늘어뜨린 채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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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도 늦었으니까 이만 돌아가서 빨리 자.”
   “…같이 자면 안 돼요?”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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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여운 어린이 제스였다면 모를까, 이미 성인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자라버린 제스와 함께 잘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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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자면 한숨도 못 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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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이유로 단호하게 문 쪽을 가리키며 어서 가서 자라고 말했다. 그러자 제스가 터벅터벅 문 쪽으로 가다가 한 번씩 귀와 꼬리를 축 늘어뜨린 채 나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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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두워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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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이 밝았다면 애처로운 눈빛에 넘어가 버렸을지도 몰랐다. 그 정도로 시무룩한 제스는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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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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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가 방을 떠나고, 방 안에는 아이리스와 나. 단둘이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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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고 보니 아이리스는 왜 찾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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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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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리스가 침대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당당하게 내 옆자리에 베개를 베고 누워 순한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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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아이리스 : 남매니까 같이 자도 괜찮지?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습격으로 어수선했던 분위기는 노아의 파티를 기점으로 제자리를 찾아갔다. 사망자가 없었던 탓도 컸다.

파손된 건물을 보강하고, 주변에서 틈을 노리던 하이에나들도 가볍게 정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일주일 정도였다.

조직이 정상적인 궤도에 오르자 노아와 난 곧바로 카르디샨을 떠나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마왕군에게 찍힌 이상 마왕의 땅에선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노아와 릴리, 네로는 매우 엄격하게 함께 떠날 사람들을 걸러내기 시작했다. 배신자였던 ‘ 절미 ‘같은 존재가 간부들 사이에 숨어있을 수 있기에 마도구까지 사용하여 검증된 이들만 모았다.

그렇게 신뢰가 증명된 간부들이 회의실에 모이자, 노아는 곧바로 안건을 꺼냈다.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몇 개의 파티로 나뉘어 사방으로 흩어지자는 이야기도 있었고, 마왕군이 발견할 수 없는 땅으로 도망쳐 숨어 살자는 의견도 있었다.

난 원작 지식이 있었기에 그럴듯해 보이는 의견이 위험한 의견인지 아닌지를 판단 내릴 수 있었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건 위험해. 현재 마왕군은 활발하게 타국을 점령하고 있어. 현재는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땅도 결국은 마왕군에게 넘어갈 거야. 그러니 사방으로 흩어질 게 아니라 가장 강대한 힘을 가진 제국을 목표로 잡고 도망쳐야 해.”

원작에선 제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마왕의 손에 떨어지게 된다. 마지막 제국까지 마왕의 손에 넘어가기 직전 혜성처럼 나타난 것이 마지막 용사 아이리스였다.

그러니 반드시 제국을 목표로 도망쳐야 한다.

“마왕의 땅에 머무는 이상 마왕군에게 잡히는 건 시간 문제야. 발길이 닿지 않는 외진 곳에 산다고 해도 그들은 결국 찾아낼 거야.”

마왕군은 흑마법 뿐만 아니라 온갖 기이한 힘을 다룰 수 있는 이들이 널려있다. 마족조차 살아가기 힘든 땅에 숨는다고 해도 결국은 들키고 말 것이다.

거침없이 의견을 꺼내놓고 이에 대한 근거까지 제시하자 어느새 회의는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우선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마왕의 땅을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야. 네스트 조직원이라고 해서 전부 마왕의 땅을 벗어날 순 없어.”

카르디샨에서 나고 자라며 기본 가치관이 훼손된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이 땅에 남을 수밖에 없다. 외부 본부에 머무는 이들 대다수가 여기에 해당된다.

같은 노예 출신이더라도 남을 업신여기고, 네스트 조직의 권력을 이용하려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들을 바로 잡아 교육해줄 사람이 없었다는 이유도 있지만, 애초에 글러 먹은 인성을 타고난 이들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을 탈출 파티에 넣으면 분명 꼬리가 밟힐 터였다.

탈출 루트는 원작 지식을 가지고 있는 나와 정보를 총괄적으로 다루는 네로, 노아. 이렇게 셋이서 정하기로 결론이 났다.

나머지 간부들은 함께 탈출할 사람들을 걸러내는 작업을 맞게 되었다.

상대의 악한 정도를 표시해주는 마도구를 사용해 일차적으로 걸러내고, 소문이나 행동을 관찰하여 2차로 걸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이 목표로 한 탈출 시기는 이 주일 뒤.

날짜가 촉박한 만큼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리안 괜찮아?”

“아,응. 괜찮아.”

노아는 일하는 중간중간 리안이 걱정되어 몇 번이고 안부를 물어왔다. 전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스칠 때마다 리안은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줄리아나는 그런 둘의 모습을 음흉한 표정으로 구경했다.

바쁜 하루하루가 흘러 준비가 착착 진행되었다. 떠나기까지 일주일 정도 남았을 때 함께 탈출할 인원이 결정되었다.

인원은 생각보다 적었다. 총인원 98명으로 조직원의 10분의 1도 안되는 수였다. 간부들의 수를 빼면 대다수의 조직원이 카르디샨에 남는다고 봐야 했다.

“네스트 조직이 카르디샨을 지배하고 있다 보니, 다들 카르디샨에 남고 싶어 하더라.”

“마왕군이나 다른 조직이 노려도 그건 그때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

네스트는 비유하자면 카르디샨 내에선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대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기업이 네스트를 노린다고 해도, 하물며 오너가 바뀐다고 해도 대부분의 조직원은 네스트에 남아있길 원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 대다수가 이면에 탐욕스럽고 잔혹한 면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그 때문에 간부들도 굳이 그런 이들을 붙잡지 않았다.

보고를 들은 노아는 씁쓸하게 웃었다. 노예 출신이었던 상처투성이 아이들이 탐욕스럽게 자라버렸다는 사실에 속이 쓰렸다.

그렇게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해가 저문 밤. 나는 이불 속에 꾸물꾸물 들어가 막 잠이 들려 하고 있었다.

타닷!

그 순간 문밖에서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벌컥!

문이 노크도 없이 열렸다. 곧바로 눕혔던 몸을 세우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창문이 하나도 없는 탓에 방 전체가 어둠에 삼켜진 상태라 한 치 앞도 안 보였지만 리안은 기민하게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제스 이 밤에 무슨 일이야?”

“쮠님!”

우다다 달려온 제스는 가볍게 점프하여 나에게 달려들었다.

“우왁!”

대형견 강아지에게 덮쳐진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침대에 나뒹굴었다. 나는 욱신거리는 뒷머리를 문지르며 제스에게 말했다.

“으으… 제스, 그렇게 갑자기 달려들면 안 -..”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스가 내 몸 위에 엎어져 버렸다. 몸이 덜컹하고 굳어버렸다.

“제,제,제스으?”

“킁킁…”

제스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내 목덜미에 코를 박고 킁킁거렸다. 나는 목을 움츠리며 제스의 어깨를 붙잡았다.

“제스 왜, 왜 이러는지 설명부터 흐악!”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스가 내 몸 위에 누워 몸을 비비적거리기 시작했다. 강아지가 새 물건에다 제 체향을 묻히는 행동과 비슷했다.

제스가 내 몸 위에 등을 문지를 땐, 향긋한 긴 머리카락이 얼굴을 간지럽혔고 앞에서 문지를 땐 -… 아니, 문지르려는 순간 제스의 어깨를 붙잡아 행동을 멈췄다.

“끼잉..”

그러자 제스가 목덜미가 붙잡힌 강아지처럼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귀여운 울음소리만 들으면 내가 큰 잘못을 한 것만 같았다.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후우,흐… 제스 왜 이런 행, 행동을 하는지 제대로 설명을 해야지.”

“크흥… 사천왕이 남긴 마킹을 없애고 있는 거예요.”

“마킹?”

“노아가 그랬어요. 사천왕이 쮠님한테 마킹 남겨서 도망가야 한다고!”

“아..”

사천왕에게 찍혔다는 말을 ‘마킹 당했다.’라고 이해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원작에서 보았던 토막 상식을 떠올렸다.

‘수인들 사이에서 마킹은 영역표시 같은 거라고 했었지.’

수인이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이나 사람에게 다른 수인이 마킹을 하는 건 NTR 같은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제스가 극도로 흥분해서 달려오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었다.

‘…이상한게 아닌 거 맞겠지?’

순간 제스의 “결혼! 부족 만들기!” 발언이 떠올랐지만 빠르게 머릿속에서 털어냈다.

‘가족 같은 사이라서 그런 거겠지.’

워낙 제스를 어렸을 때부터 본 탓일까? 쉽사리 그런 쪽으로 생각이 흐르지 않았다.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텁!

“어어?”

제스의 어깨를 붙잡고 있던 손목이 제스에게 힘없이 붙잡혔다. 개그 필터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평범한 인간이 수인의 힘을 이겨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순식간에 침대가 출렁거리고 제스가 내 손목을 잡아 침대에 짓누르고 있었다. 어느새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귀를 쫑긋거리며 동공을 확장한 채 입술을 할짝거리는 제스의 모습을 선명하게 담았다.

“쮠님, 내가 사천왕 마킹 다 없애줄게요!”

살랑살랑, 제스의 꼬리가 흔들거리며 발등을 쓸고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귀여운 목소리와 달리, 제스의 눈동자는 사냥감을 바라보는 짐승의 눈이었다. 나는 포식자를 앞에 둔 피식자처럼 몸이 얼어붙었다.

‘뭐지? 먹어서 없애준다는 건가?’

제스에게 산채로 으적으적 씹혀 삼켜지는 장면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포상일지도… 아니, 아니지!’

개그 세계에선 미소녀에게 밟히는 것조차 포상인 곳이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번뜩 들고 말았다. 빠르게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털어낸 후 제스를 달래기 시작했다.

“그…꼭 지금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우선 날이 밝으면 그때 얘기하는 게 어떨까? 내가지금너무졸리고피곤해서!”

제스의 입이 점차 목덜미 쪽에 가까워지자 말이 쉼 없이 빨라졌다. 이대로 목이 깨물려 죽는 게 아닌가 싶을 때쯤.

“우겍!”

제스가 이상한 신음을 흘리며 갑작스럽게 멀어졌다.

“…뭐하는거야?”

아이리스의 서릿발 같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꾹 참고 있던 숨을 길게 내뱉으며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아이리스에게 뒷덜미가 붙잡힌 제스가 “캬오캬오!”거리는 게 보였다.

“쮠님한테 남은 마킹을 없애려고 온 것뿐이야!”

“마킹? 그런 거 아니라고 아까 노아가 다 설명했잖아.”

“흔적을 남겼으면 그게 마킹이야!”

“아니야.”

“맞아!”

저대로 두면 크게 싸울 것 같아 두 사람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시선을 집중시켰다. 둘 다 어둠에 익숙한 상태인지 다행히 내 쪽으로 시선을 던져주었다.

“제스, 난 마킹 같은 거 안 당했으니까 그런 거 안 해도 돼. 아니 하물며 당했다고 해도 그런 행동은 상대에게 허락받고 해야 하는 거야.”

“끼잉…”

제스가 귀를 축 늘어뜨린 채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밤도 늦었으니까 이만 돌아가서 빨리 자.”

“…같이 자면 안 돼요?”

“..안돼.”

귀여운 어린이 제스였다면 모를까, 이미 성인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자라버린 제스와 함께 잘 수는 없었다.

‘같이 자면 한숨도 못 잘 거야.’

그런 이유로 단호하게 문 쪽을 가리키며 어서 가서 자라고 말했다. 그러자 제스가 터벅터벅 문 쪽으로 가다가 한 번씩 귀와 꼬리를 축 늘어뜨린 채 나를 돌아보았다.

‘어두워서 다행이다.’

방이 밝았다면 애처로운 눈빛에 넘어가 버렸을지도 몰랐다. 그 정도로 시무룩한 제스는 귀여웠다.

탁.

제스가 방을 떠나고, 방 안에는 아이리스와 나. 단둘이 남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리스는 왜 찾아온…”

출렁.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리스가 침대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당당하게 내 옆자리에 베개를 베고 누워 순한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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