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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6

   EP.106

     

   댕강!

     

   나흘하고도 반나절.

   나는 며칠간 호수를 찾아온 오크를 맞이해, 거의 휴식을 취하지 않고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힝, 힘들어 죽겠어…

   “저거 사람 맞나? 아무리 약빨이 잘 들어도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옆에서 질린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두 사람… 아니, 이무기 한 마리와 토끼의 시선도 이제는 슬슬 익숙해질 참.

     

   크레센도는 여전히 호수에서 피바람이 부는 상황을 달가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들은 말이 있었기에 불만을 표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왜요? 왜 여기에서 싸워요? 여긴 내 집이야! 싸울 거면 나가서 싸우고 사냥을 할 거면 숲에서 해!」

     

   호수에서 내가 오크들을 사냥하겠다고 말했던 당시, 녀석은 자신의 터전에 역겨운 오크들을 불러들인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수십 년의 세월을 한 장소에 머물면서 살아왔다.

   이곳에서 식량을 자급자족했고 호수 밑바닥에는 편안히 숙면할 수 있도록 보금자리도 마련한 상황.

     

   호수 속이 아니더라도 그 주변의 환경이 초토화되며 오크의 피가 어지럽게 흩뿌려지는 걸 가만히 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녀석이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되었기에 할 수 있던 말이었다.

     

   오크들이 처음 이곳에 도달한 이유는 분명 나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찾아올 오크들의 목적은 절대로 ‘내가’ 아니었고 그 수도 처음 호수에 도착했을 때, 상대했던 것보다 압도적으로 많을 예정이었다.

     

   「너, 혼자서 다 감당할 수 있어?」

   「……뭘 감당해요?」

   「오크들 말이야. 앞으로 호수에 엄청나게 찾아올 텐데. 지킬 수 있겠냐고.」

     

   이곳에 크레센도가 산다는 사실을 살아남은 오크들이 자신의 동료들에게 전했을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 정보가 전해지는 동시에 이곳이 어획량이 풍부한 황금의 땅이라는 사실 또한 일파만파 전해질 예정이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아니, 나더러 어쩌라고!」

     

   녀석은 존대를 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은 채, 반쯤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에게 하소연했다.

   집을 지키고는 싶은데 힘은 없는 상황. 물론 목숨을 걸고 오크들을 상대한다면 계속해서 격이 상승해 아주 불가능은 아니었겠지만……

     

   ‘그럴 성격이 아니지.’

     

   겁쟁이.

   녀석을 표현할 다양한 표현이 있겠지만 단연코 그 한 단어 보다 정확한 표현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게 시작된 오크와의 영역 전쟁.

   그것은 지난 나흘을 지나 지금 이곳으로 온 오크 무리를 통해서도 녀석이 싸움 자체를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확인받을 수 있었다.

     

   [‘크레센도’와의 친밀도가 상승합니다.]

   [현재 : 61%]

     

   틈틈이 녀석을 지켜 주며 쌓아올린 친밀도.

   이제 한나절이 조금 넘는 정도밖에 안 남는 시간이었지만, 70%까지라면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쿠윅! 저곳이 밥의 호수라!

   -주술사는 뒤로! 전사는 앞으로!

     

   때마침 등장한 악의 무리들.

   이번에는 물량을 넘어 정예병을 준비해 온 티가 팍팍나는 조합을 보자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크의 존속을 위하여어어!!!

   -크라!!!

     

   존속이라는 어려운 말을 쓰는 걸 보니 저놈이 대장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 뒤로 덩치만 봐도 일반 오크들을 가볍게 웃도는 문신 돼지들이 있었고 나는 곧장 앞으로 달려드는 오크들의 머릿수를 빠르게 계산하며 뒤에 있을 상황을 예측했다.

     

   ‘전방에 있는 전사가 대략 서른…… 후방에 있는 오크가 열 마리 정도 인가?’

     

   처음 보다 인원은 확실하게 줄었다.

   하지만 그 덩치나 위압감으로 보자면 저 한 마리 한 마리가 지금까지 상대해왔던 일반 오크들을 훨씬 상회하는 힘을 가진 것 같았다.

     

   ‘나쁠 건 없지.’

     

   강한 힘을 가졌다는 것은 그만큼 높은 격을 지녔다는 것. 그런 놈들 일수록 자신에 힘에 대한 자만심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그런 놈들 몇 마리를 뒤로 흘렸다가 구해주는 그림을 설계하면……

     

   스릉.

     

   나는 검을 뽑아 놈들의 사이를 파고들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오크들은 덩치가 크면 클수록 힘이 좋았다.

   맨주먹으로 바위를 때려 부수기도 하고 나보다 족히 3m는 훌쩍 넘을 만한 대검을 거침없이 휘두르기도 하니, 힘으로 맞상대하기에는 위험이 따른다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월광검법 제삼식 月光劍法 第三式

   일섬 一殲

     

   츠츠츳!!

     

   나의 신형이 잠깐이나마 잔상을 남기며 빠르게 튕겨져 나갔다.

   감히 눈으로 쫓을 수 없는 하나의 섬광을 본다는 착각. 그리고 그것을 직접 마주한 오크들은 그저 멍하니 자신의 신체 일부가 날아가는 것을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툭. 툭.

     

   -쿠워어어억!

   -인간, 조심! 빠르다!

     

   하지만 이 오크들은 정예라는 타이틀을 달고 온 놈들이라 그런지, 확실히 강했다.

   목을 치려 했던 순간, 검과 팔을 들어 자신의 목숨을 지켜낼 반사 신경 정도는 있었으니까… 아, 물론 팔은 떨어졌지만 말이다.

     

   “흐읍!”

     

   츠츠츠츳!

     

   나는 놈들의 사이를 종횡무진했다.

     

   계속해서 내가 지나간 허공만을 가르는 오크의 병장기들.

   마치 사람이 망치를 하나 들고 벌을 잡으려 하듯, 점점 더 빨라지는 나의 신형에 놈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틈틈이 뒤로 한두 놈을 놓치는 과정도 빼먹지 않았다.

   애초에 강해지는 것 외에도 크레센도와 친밀도를 올리는 게 목적이었으니,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빨리! 지원!

   -인간 전사가 여기 있…!

     

   오크들의 다급한 외침이 있었지만 나는 그 찰나를 노려 조금 더 집요하고 신속하게 몸을 놀렸다.

     

   한 번의 전투에 대부분의 마력을 소모하는 전투.

   전심전력은 쿨타임이 길었기에 아직 사용한 적은 없지만, 웬만해서는 전력을 아끼지 않고 싸웠기에 전투는 대부분 빠르게 끝이 났었다.

     

   -■■■ ■■■ ■■!

     

   하지만 이번에도 그렇게 간단히 끝날 것이라 생각했던 싸움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서서히 흘러가기 시작했다.

     

   -느려지라.

   -멈추라.

     

   뒤에 있던 오크 중 몇 놈이 나를 향해 알 수 없는 저주를 퍼부은 것.

     

   [상태이상, ‘속박(B)’에 걸립니다.]

   [상태이상, ‘감속(B+)’에 걸립니다.]

   [상태이상, ‘탈진(B)’에 걸립니다.]

     

   [‘초회복약’이 상태이상에 저항합니다.]

   [‘초회복약’의 약효가 사라집니다.]

     

   저항하지 못한 저주로 인해 서서히 발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속도가 줄어드니 검을 휘두르는 힘이 줄었고 한두 번의 공격이 무로 돌아가니, 빈틈이 보이는 건 순식간이었다.

     

   “윽……!”

     

   뒤에 있던 놈들은 주술사였다.

   지금까지 만나지 못했던 유형의 오크들. 심지어 눈속임을 위한 것이었는지 원래 그런 것인지 놈들이 창을 들고 있어서 눈치 채지 못했다.

     

   ‘이런 멍청한 실수를……!’

     

   잠시나마 격이 높은 오크가 자만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나의 안일함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제 보니 창이라고 생각했던 놈들의 창대 위에는 철이 아닌 뾰족하고 불쾌한 보랏빛 보석이 박혀 있었고,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순전히 나의 오만함 때문이었다.

     

   -잡았다! 죽이라!

     

   빠르게 전투를 끝내기 위해 들어온 적진 한가운데에서 역으로 포위된 상황.

   하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크롸아아아!!!

     

   언제부턴가 위기를 느낀 크레센도가 다시 본체로 되돌아가 내가 흘린 오크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움직임을 보니 이미 녀석도 주술사들이 펼친 저주에 걸린 상태인 것 같았다.

     

   위험했다.

     

   물론 나야 전력으로 탈출을 한다면 내 목숨 하나 부지하는 건 일도 아니겠지만, 내가 자리를 피하는 순간 저기 있는 파란 이무기는 죽을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빠른 납득이 발동된다.

   두뇌 회전이 빨라지고 심장이 달아올랐지만 당장 크레센도의 목에 도끼를 던지려는 오크 대장을 막을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아니 진짜! 원래 안 이랬잖아!”

     

   멀리서 전투를 지켜보던 토끼의 외침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나마 여유를 찾은 오크 몇 놈이 토끼를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 보였다.

     

   긴장한 듯한 토끼의 표정. 하지만 당황스러운 점은 녀석이 전투는 고사하고 내가 있는 방향으로 손을 뻗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큐어(A)’가 발동됩니다.]

     

   [상태이상, ‘속박(B)’이 사라집니다.]

   [상태이상, ‘감속(B+)’이 사라집……

     

   3층에서 만났던 성녀가 보여줬던 것과 비슷한 마력.

   정확히는 신성력이라 불리던 힘을 토끼가 사용하고 있었고 나는 몸 상태가 다시 호전되는 것을 느끼며 발을 굴렸다.

     

   “김시인! 스킬을 써요! 하나 있잖아요!”

     

   토끼의 말에 나의 머릿속에 한 가지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튜토리얼 전에 받았던 스킬임과 동시에 4층을 클리어하며 동시에 개화한 스킬.

     

   —

   【업데이트】 – 고유 스킬

   보유 성좌 : 모험하기를 좋아하는 별

   경험치 : 활성화 (100%)

     

   설명 : 당신의 성향으로 개화한 고유 스킬입니다. 당신은 타인의 성장을 돕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선의 결과를 위해 최악을 고의로 선택하는 도전 정신이 있으며 그 결과는 언제나 기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런 당신에게 합당한 고유 능력은 ‘진화’와 ‘발전’입니다.

     

   효과 : 희생을 통해 같은 가치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음.

   – 희생이 가능한 재화 예시 : 능력, 수명, 기억, 신체, 코인 등

   —

     

   희생을 통해 기적을 일으킨다는 고유 스킬.

   희생이라는 단어에 대한 묘한 반감으로 시험해 본 적 없는 스킬이 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판사판이다!”

     

   어차피 당장 손을 쓰지 못하면 저기 보이는 크레센도는 도끼에 맞아 죽는다.

   실패한다고 큰 위험이 따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저 녀석을 잃게 되는 순간 언젠가는 밝혀내지 못한 미래에 후회를 하게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고유 스킬 ‘업데이트’를 사용합니다.]

   [고유 스킬 ‘업데이트’에 사용할 재화를 선택하십시오.]

     

   그렇게 내 손끝에서부터 펼쳐진 기적.

   이 스킬을 사용했던 순간은 탑을 오르는 나의 미래에 있어 가장 큰 터닝 포인트가 되는 사건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 국산 인디게임 ‘산나비’의 스토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일단 울었습니다. 스토리가 기가 막히더군요.

공부도 꾸준히 하면서 그런 좋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도록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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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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