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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7

       

       ‘젠장!’

       

       나는 반쯤 열린 캐비넷 문을 급히 닫았다. 물론, 닫을 때는 몹시 신중하게, 소리가 나지 않도록.

       

       ‘허억, 허억……’

       

       흰색 연구원들과 검은 병정들은 때마침 다른 곳을 보고 있었는지 우리의 모습을 보진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캐비넷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는 소리는 확실하게 들었으리라.

       

       『방금, 무슨 소리야?』

       『저 캐비넷 쪽인데.』

       

       캐비넷 문의 틈으로, 검은 옷의 병정들이 총구를 앞세우며 이 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젠장……’

       

       또래 여학생들보다 성숙한 양복자의 큰 엉덩이 때문에 이런 위기가 찾아올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지금이라도 문을 열고 튀어나가서 놈들을 제압해야 할까? 나는 칼자루를 잡은 손에 힘을 주고, 캐비넷 문 틈으로 바깥을 살폈다.

       

       연구실 안에 들어와있는 검은 병정은 여섯 명. 모두 소총을 들고 있었다. 

       

       ‘소총탄은 아직 무리인데……’

       

       나도 나름 성장한 바, 이전까지는 검에 강기를 둘러도 권총탄 두어 발을 막아내는 것이 한계였지만, D급이었던 강기가 C급으로 올랐다. 그러니 소총탄도 몇 발 정도는 아슬아슬하게 튕겨낼 수는 있긴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그 정도가 한계.

       

       기습적으로 치고나가면 두어 명 정도는 무력화시킬 수 있겠지만 병정은 연구실 바깥에도 포진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나로서는 열세인 상황.

       

       —때앵!

       

       마침내 캐비넷 문이 두드려지는 소리에 나는 반사적으로 칼을 뽑으며 뛰쳐나가려 했지만,

       

       양복자가 자신의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댄 채로, 눈을 감고 뭔가를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방금 캐비넷을 두드린 것은 총 든 병정이 아니었다.

       

       ‘……게다마!’

       

       그녀의 능력, 에스퍼 계열 능력인 정신조종. 그 능력으로, 연구실에 풀어져 있던 하급마수, 게다마 중 하나를 조종한 것이었다.

       

       양복자의 조종을 받는 게다마 한 마리가 캐비넷에 와서 부딛혔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가, 탁자 위로 튀어올라 유리 시험관을 깨먹고, 또 갑자기 치솟아 천장에 박는 등, 마치 고무공 튀듯이 좌충우돌 발광을 해 댄다.

       

       『뭐야, 게다마였잖아.』

       

       그 모습을 본 검은 병정들이 총구를 밑으로 내리며 말했다.

       

       『아주 소란을 떠는군!』

       『뭐, 나까모리의 연구실이잖아? 심한 실험이라도 당한 모양이지.』

       

       발작이라도 하듯 현란한 게다마의 움직임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법도 했다. 물론, 실제로는 실험을 당해서 발작하는 것이 아니라 양복자가 급히 게다마를 조종해서 시선을 끈 것이었지만 말이다.

       

       ‘……이 녀석도 할 땐 한단 말이지.’

       

       나는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양복자를 보며 생각했다. 이 정도의 정신조종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물론 양복자도 나름 자신의 능력을 눈에 띄게 키워내고 있는, 자칭 ‘우등생’인데다가, 게다마라는 녀석이 그저 굴러다니는 실험쥐 정도의 취급을 받을 정도로 온순하며 지능이 낮은 소형 하급 마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별 것 아니라고 판단한 병정들은 캐비넷에서 관심을 끄고 멀어져갔다. 

       

       ‘휴우……’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양복자 이 계집애 때문에 위기를 맞을 뻔했지만, 한편으로는 얘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 것이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것대로 곤욕이었는데, 나와 몸을 밀착한 채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양복자 때문이었다.

       

       캐비넷 안의 온도가 몇 도는 후끈하게 올라간 것 같았고, 향수 냄새와 땀에 젖은 체취가 물씬 끼쳐왔다. 양복자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느라 땀에 절어있었던 것이다. 

       

       ‘진정하자…… 진정하자……’

       

       그렇게 얼마간 있었을까,

       

       『그나저나, 여기 게다마는 누가 풀어놓은 거야? 마음 어지러워지게.』

       『오이! 무슨 게다마에 정신을 뺏겼어? 어서 차에 타라!』 

       

       흰색 연구원들과 검은 병정들은 어느덧 밀실 안에 있던 짐을 다 챙겼는지, 연구실을 나가서 하나둘 차에 올라, 왔을 때처럼 순식간에 떠나갔다. 

       

       자동차 소리도 멀어지고, 찾아온 정적을 풀벌레 소리만 가득 채울 즈음, 나는 캐비넷 문을 열며 말했다.

       

       “나가자. 너 먼저 나가.”

       “응응! 푸하……! 아으, 더워!”

       

       캐비넷 문을 열고 나오자, 양복자도 그동안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연신 손부채질을 한다. 나는 양복자에게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수고했어. 많이 성장했더라. 많이 늘었어.”

       

       분대원을 칭찬해주는 것 역시 분대장의 중요한 덕목. 물론 칭찬한 것은 양복자의 정신조종 능력 얘기였다. 양복자는 발표할 때처럼 한쪽 팔을 쭉 뻗어올리며 외쳤다.

       

       “흐흥, 모찌롱! 아따시 유도세-다까라네!”

       “듣는 사람도 없는데 조선어 써라.”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연구실 내부를 살폈다. 게다마 몇 마리만 여전히 천천히 부유하고 있을 뿐, 인적 없이 적막한 연구실 내부.

       

       나는 창가로 조심스럽게 다가가 놈들이 떠나간 방향을 살폈다. 역시 헤드라이트 따위는 켜지 않았는지 보이는 것은 없었지만, 멀어져가는 자동차 엔진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저 사람들……’ 

       

       뭐 하는 놈들이었을까. 펑퍼짐한 흰색 전신복을 걸친 녀석들은, 분명 무슨 연구실의 연구원 나부랭이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머릿속을 스치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히가시노리 연구소.’

       

       교내 신사 지하에 있던, 진공관 컴퓨터를 만든 놈이 히가시노리 어쩌구 박사였었지.

       

       나까모리 교수는 그 진공관 컴퓨터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그렇다면 당연히 그 컴퓨터를 만든 히가시노리 연구소인가 하는 곳과도 엮여있었을 터였다.

       

       히가시노리 연구소는 진공관 컴퓨터처럼 이 시대에 맞지 않는 물건을 만들어낸 놈들이었으니, 나까모리 교수의 마수화 연구에도 얽혀있었을 가능성이 컸다.

       

       그렇게 생각하니, 놈들이 왜 야밤에 소리소문도 없이 이곳에 찾아와, 나까모리 교수가 숨겨놓은 밀실에서 짐을 탈취해갔는지 이해가 되었다.

       

       ‘나까모리 교수가 죽었으니, 증거를 인멸하려고 온 건가.’

       

       나는 연구실 구석과 연결된 밀실로 다가갔다. 녀석들이 까다로운 결계를 풀어놓은 덕분에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밀실 내부는 난장판이었다. 마치 이삿짐 센터를 불러서 비운 것마냥 밀실은 텅 비워져있었고, 물건을 치운 흔적만 어지럽게 남아있었던 것이다. 

       

       ‘이러면 허탕인데.’

       

       입맛이 씁쓸했다. 구로베 교수가 시켜서 온 것이긴 했지만, 나도 나름대로 나까모리 교수의 뒷조사도 할 겸, 뭔가 쓸만한 것이 있으면 슬쩍하기도 할 생각이었는데,

       

       안에 뭐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연구소 놈들이 싹 다 가져가버린 것이다. 남은 것이라고는 바닥에 가득한 먼지와 각종 쓰레기, 잡동사니들 뿐. 

       

       “시라바야시 군! 이것 좀 봐!”

       

       양복자가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뭔가를 주웠다. 어딘지 익숙한 듯한 모양새이면서도 생소한 장치였다.

       

       ‘뭐지? 헤드폰?’ 

       

       헤드폰처럼 귀를 덮는 하우징이 양쪽 귀에 걸쳐지는 물건이었다. 양복자가 머리 위로 물건을 들며 말했다.

       

       “이거, 어릴 때 봤던 거야! 이걸 이렇게 쓰면……”

       

       양복자가 그 물건을 자신의 담홍빛 머리에 쓰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 그렇잖아도 양쪽 머리를 말아감아서 헤드폰같은 헤어스타일을 한 양복자가 그걸 자기의 머리에 쓰는 모습이 어쩐지 웃겨서 나는 놀리듯이 말했다.

       

       “네 머리 같네.”

       “맞아! 내 머리는 라지오마끼(ラジオ巻き)라고 해서, 이런 구식 라디오에서 따온 머리모양이거든!”

       

       헤드폰인줄 알았는데 라디오라고. 자세히 보니 하우징에 길다란 안테나가 달려 있는 것이, 지금 시대보다도 더 예전에 쓰였던 초창기의 라디오인 모양이었다.

       

       초기의 라디오는 작은 출력으로 인해서 소리가 작아, 스피커를 통해 소리를 내지 못하고 헤드폰처럼 쓰고 듣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양복자는 그걸 머리에 써봤다가 꺄르르 웃으며 말했다.

       

       “나까모리 그 쪼잔한 선생, 라디오 청취료 납부하기 싫어서 이걸로 몰래 들었나 봐! 꺄하하……”

       

       그리고는 흥미가 식었는지 아무데다 내려놓았지만, 나는 도로 주워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혹시나 이것도 신사 지하에 있던 ‘진공관 컴퓨터’처럼 시대를 어긋난 물건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딱히 시대에 어긋난 물건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진공관이 부착되어있었지만 이건 지금 시대의 일반적인 라디오에도 들어가는 부속이었고, 

       

       양복자의 말마따나 ‘어릴 때 봤던 구식 라디오’라니, 오히려 지금 시대를 기준으로도 옛날의 물건이었던 것이다.

       

       어쩐지 맥이 빠지면서도 안도감이 들었다. 그 때 문득 생각난 것은 함서주였다.

       

       ‘서주한테 갖다줘야지.’

       

       맨날 집에서 혼자 심심하게 땅바닥만 쳐다보고 있던데, 이걸로 라디오 방송이라도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선물해주면 좋아라 하겠지.

       

       나는 라디오를 가방에 집어넣고 양복자에게 말했다.

       

       “카메라 가져왔지? 여기 몇 장만 찍어볼래?”

       “응응!”

       

       나는 양복자를 시켜서 텅 빈 밀실의 사진을 몇 장 찍게 했다. 찰칵, 찰칵. 양복자가 셔터를 누를 때마다 플래시가 터졌다. 한창 사진을 찍던 양복자가 말했다.

       

       “우으, 그치만…… 제대로 심령이 찍혔을지는 모르겠네! 웬 사람들이, 방에 있던 걸 죄다 싸들고 나갔으니…… 내가 귀신이었어도 물건 따라 떠났겠다!”

       “모르지. 그래도 인화하면 나도 몇 장 줄 수 있어?”

       

       구로베 교수에게 보여줄 생각이었다. 내가 들어갔을 때는 이미 이렇게 텅 비어있었다고.

       

       “물론이지!”

       “좋아, 그럼……”

       

       양복자가 사진을 찍은 뒤, 나는 마지막으로 밀실을 둘러보았다. 쓸만한 물건도 없었고, 사진도 찍어 두었으니 이곳에서 더 할 일은 없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곧 자정. 나는 양복자에게 말했다.

       

       “난 슬슬 돌아갈까 하는데, 너는 어쩔거야?”

       “응응. 별로 재미도 없고, 귀신도 안 나오고…… 나도 이만 돌아갈래!”

       “그럼 교문까지 같이 가자. 택시나 인력거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이이야(아니)! 난 기숙사로!”

       

       그러고보니 얘, 학교에 늦게까지 남는 날이면 아이까와의 방에서 신세를 지곤 했었지. 어쩐지 그런 날이 자기 집에서 통학하는 날보다 더 많은 것 같기도 했지만.

       

       “오늘도 아이까와 방에서?”

       

       하고 지나가듯 물었지만 양복자의 대답은 달랐다.

       

       “달라! 오늘은 유하 방에 들어가려고.”

       “어? 이유하는 병원에 있잖아?”

       “헤헷. 나한테 열쇠 와리해줬거든. 루스한 동안에 내가 써도 된댔어.” 

       

       학기초에는 서로 마찰이 있었지만, 워낙 넉살이 좋아 이유하와도 어느정도 친해졌으니 가능한 일인 건가.

       

       하지만 그보다는, 아이까와하고 뭔가 서먹서먹해져서 피하는 것일 터였다.

       

       으음. 그나마 아이까와와 친한게 양복자인데, 얘까지 아이까와랑 멀어지면…… 아이까와 얘가 학교생활을 잘 해나갈 수 있을지, 다소 걱정이 되었다. 

       

       ‘설마, 그 일찐녀들이 또 아이까와를 해꼬지하지는 않겠지만……’

       

       나는 양복자에게 당부했다.

       

       “기숙사에서 묵을 거면 아이까와한테도 좀 가 봐. 바로 옆방이잖아.”

       

       그 말에, 양복자는 걔가 먼저 자기를 피한다느니 투덜거렸지만, 그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내일 보자.”

       “응. 마따네!”

       

       양복자는 기숙사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고, 나도 학교를 빠져나와 하숙집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문득 불어오는 밤바람에 어떤 체취를 맡았는데, 다름아니라 내 몸에서 나는 향수냄새였다.

       

       ‘윽. 향수 냄새……’

       

       양복자와 캐비넷 안에서 붙어있느라 향수 냄새가 내 교복에도 배인 것이었다. 

       

       물론 아무 일도 없긴 했지만, 이래서야 조금 민망하지 않은가. 나는 향수냄새 뿔뿔 나는 교복을 입은 채, 하숙집을 향해 밤길을 걸어가며 생각했다.

       

       ‘그래도 뭐…… 냄새가 나쁘지는 않네.’

       

       그나마 향이 나쁘지만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치만 이거, 하숙집에 돌아가면 서주가 뭐라 할 것 같은데……

       

       

       

       ***

       

       

       

       『윽, 구려……』

       『냄새가 안 빠지네……』

       

       그 시각, 치유학 강의실.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걸레를 들고 치유학 강의실의 바닥을 열심히 닦고 있는 두 사람은,

       

       갑반 출석번호 2번의 이시다 유우꼬(石田裕子)와, 그녀의 급우이자 출석번호 28번 모리나가 미까꼬(森永美佳子).

       

       그리고 그녀들이 열심히 닦고 있는 것은, 강의실 바닥에 스며든 포르말린 용액과 동물의 내장.

       

       원래부터 냄새가 독한 포르말린 용액이었다. 전공이 전공인지라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맡을 때마다 「와사비」처럼 코가 찡하고 눈이 매운 용액이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동물의 내장까지 절여놓은 것이니 냄새가 고약하기란 당연지사. 이시다를 돕던 모리나가가 불평했다.

       

       『이러다 제복에도 냄새가 스며들겠어. 칫…… 원래 아이까와의 해야 할 일인데.』

       『흥! 어쩔 수 없지. 시라바야시라는 녀석, 시마즈 아가씨와 그렇고 그런 사이인데, 그런 녀석을 거역했다가 무슨 꼴을 보려고!』

       

       그녀들이 한 손으로는 코를 부여잡고 똥 씹은 얼굴로 걸레질을 하고 있는 이유는, 다름아니라 시라바야시, 즉 백철연 때문이었다.

       

       그날 오후, 치유학 강의실 바닥에 쏟아졌던 포르말린 용액과 동물 내장. 본래 아이까와를 곯려주기 위함이었지만, 

       

       갑자기 난입해 들어온 백철연이 이시다의 따귀를 때리고, 더러워진 강의실의 뒷청소도 이시다에게 시킨 바람에,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청소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 대충 닦자. 이만하면 되었지 않아?』

       『뭐? 대충 했다가, 시라바야시 그 녀석이 내일 와서 보면? 내가 죽는다고!』

       

       이시다는 질색하며 말했다. 백철연에게 따귀를 맞았을 때, 이시다가 느낀 공포감은 결코 적지 않았다.

       

       그것은, 백철연이 무슨 시골 남작의 자식이라던가 하는 조선귀족의 신분이기도 했지만, 백철연이 무서운 것은 다만 그런 신분 때문만은 아니었다.

       

       고귀하기 그지없는 시마즈 렌까 아가씨가 챙겨주고, 또 종로경찰서장의 아들 무라사끼 겐지와도 허물없이 지내는 조선인. 이시다는 조선인인 백철연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분명,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아도 권세가 어마어마할 터였다.

       

       이시다 자신도 여학생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파벌을 이끌고 당당히 가슴펴고 다닐만한 위세가 있기는 하지만, 그걸 어디 백철연에 비하겠는가? 

       

       화족과 경찰의 뒤를 업은 백철연의 한마디라면, 이시다같이 조금 불량할 뿐인 여학생 따위는 쥐도새도 모르게 없애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불평하지 말고 어서 도와!』

       『그렇지만 벌써 자정이고. 왜 밤에 치우자고 한 거야?』

       『그야, 이런 꼴을 다른 녀석들에게 보일 수는 없잖아.』

       

       그녀들이 이렇게 자정 가까운 시간에 몰래 와서 청소를 하는 이유는, 다른 학생들에게 청소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백철연이 무서워서 청소를 하고 있었음에도, 그 모습을 다른 녀석들에게 보이는 것은 체면이 상하는 일이었으니까.

       

       『이게 다 아이까와 때문이야. 그 쓰레기가 나쁜 거라고. 출석번호가 빨라서 급장이 된 주제에, 공부를 조금 잘 한다고 버릇없이 구는 것이 아주 마음에 안 들어!』

       『이시다! 목소리 낮춰. 누가 들으면.』

       『흥! 이 밤중에 누가 들어? 아까 보니까 숙직하는 선생도 잘 자고 있더만!』

       

       모리나가가 만류했지만 이시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애초에, 내가 나빴어? 이게 다, 시라바야시 녀석 때문에! 아이까와 그 녀석 때문에! 그리고…… 저 인체모형 때문에!』

       

       그렇게 말하며 이시다는, 손에 꾹 쥐고 있던 손걸레를 마치 화풀이라도 하듯이 애꿎은 인체모형을 향해 집어던졌다. 

       

       철푸덕! 

       

       인체모형의 머리에 정확히 맞은 손걸레. 손걸레는 인체모형의 머리를 덮고 얼굴을 가린 꼴이 되었다.

       

       『흥! 두고 보라지……. 시라바야시 제까짓게 항상 지켜볼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말하며, 이시다는 손걸레를 회수하기 위해 인체모형을 향해 다가가, 인체모형의 머리 위에 얹어진 손걸레를 낚아채듯 집어들며  말을 이었다.

       

       『걸리지 않고도 괴롭히는 방법은 많으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까와 그 년이 제 발로 학교를 그만두게 만들 거야.』

       

       이시다는 그렇게 말하며 모리나가를 향해 씨익 웃었지만, 웬일인지 모리나가는 무서운 것이라도 본 것 마냥 꼼짝도 못하고 입을 뻐끔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뭐야? 왜 그래?』

       

       이시다는 모리나가의 시선을 따라, 자신이 방금 손걸레를 회수했던 인체모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인체모형을 바라보는 순간, 이시다도 얼어붙듯이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두 눈!

       

       한쪽 얼굴은 피부를 모사한 고무로 덮여있고, 한쪽 얼굴은 셀룰로이드로 만들어진 근육과 골격이 드러나있는—그 얼굴이 마치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 채,

       

       유리알로 만들어진 두 눈이 이시다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월요일입니당……!
    (털썩)

    요새 렌까의 출연이 없지만…… 그 사이에 렌까 팬아트가 한장 나왔습니다! 와아!!
    팬아-트 공지도 종종 봐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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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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