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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7

       안젤리카의 눈에 들어온 건 자그마한 돌들이었다.

        

       회색빛을 띠는 녀석들이었다. 붕산과 카드뮴 등으로 마감 처리가 되어 있었는데, 안젤리카의 눈썰미로는 딱 거기까지만 알아낼 수 있었다.

        

       저게 무슨 돌일까. 마석일까?

        

       아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본능이 말해주고 있었다. 저건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되는, 위험한 물질이라고.

        

       안젤리카는 서둘러서 지퍼를 닫았다. 그리고 몇 발자국이나 뒤로 물러났다.

        

       자신과 눈을 마주친 에테르가 씩 웃는다.

        

       의중을 알 수 없는 비릿한 미소였다. 안젤리카의 양쪽 팔뚝에 쫙 소름이 돋았다.

        

       “이제 됐어요?”

       “그, 그게 대체 뭐예요? 뭔데 남자친구한테 선물로 주겠다는 거예요?”

       “그냥 마석인데요.”

       “그런 마석은 본 적 없어요!”

        

       마석에 관해서라면 안젤리카도 자신 있었다.

        

       그도 그럴게, 그녀는 마석학으로 유명한 토츠펠 가문의 일원이었다. 언론인의 꿈을 가지기 전까지만 해도 가문의 의중을 따라 마석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려고 했었다.

        

       어릴 적엔 죽어라 마석학을 공부했다. 그 덕에 웬만한 마석은 모양과 색깔만 가지고 이름이나 용도를 맞출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는데, 머릿속에 없는 마석이라니.

        

       가능성은 둘이었다. 

        

       배웠는데 까먹었거나, 혹은 처음 보는 것이거나.

        

       생각은 후자로 기울었다. 안젤리카는 에테르를 바라보며 조심스러운 투로 물어보았다.

        

       “그거, 위험한 거 아니죠?” 

        

       마석 중에는 인간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들도 존재한다. 보통 그런 걸 보면 색이 어두침침하던데.

        

       “당장은요. 잘 밀봉해 놓았으니까 문제 생길 일은 없을 거예요.”

       “잘못 다루면 위험해진다는 소리잖아요! 그걸 남자친구에게 왜 주려는 거죠?”

       “글쎄, 남자친구 아니라니까.”

       “조금 전엔 자연스럽게 남친이라면서요.”

       “농담도 못 해요?”

        

       에테르가 픽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더 볼일 없으시면 전 가볼게요.”

       “볼일 있는데요?”

       “뭔데요.”

       “당신과 호르데 군을 인터뷰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들은 금안족 소녀의 표정이 구겨졌다. 은은하게 빛나던 금색 눈동자에서는 귀찮아하는 듯한 기색이 풀풀 흘러나왔다.

        

       “왜요. 도촬이나 그런 건 하지 말라면서요? 그러면 대놓고 취재하는 수밖에 없지 않나요?”

       “그것마저 거절하면요?”

       “으음, 허락할 때까지 따라붙겠죠?”

       “그쪽에서 포기하실 때까지 거절할 겁니다.”

        

       오랜 경험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이런 사람들은 미끼를 던져주지 않으면 안 된다. 때마침 안젤리카는 에테르가 무얼 원하는지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인터뷰를 하는 게 당신이나 호르데 후배에게도 좋을 거예요.”

       “무슨 말씀이시죠?”

        

       물었다.

        

       안젤리카는 입꼬리를 알게 모르게 올린 채로 말을 이었다.

        

       “그야 그렇잖아요. 두 분 다 서로 비밀연애를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러면 안 하고 있다는 걸 저와의 인터뷰를 통해 해명하면 되는 거죠!”

       “해명을 하는 것과 그 해명을 사람들이 진솔하게 받아들이는 건 전혀 다른 문젠데요.”

        

       제법 논리정연한 말이었다. 그런데도 안젤리카에게는 반박할 말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 생각이 밖으로 나오는 일은 없었다. 안젤리카가 말을 꺼내려는 찰나, 낌새를 눈치챈 에테르 쪽에서 먼저 치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애초에 저희가 뭐라도 해명을 하면 오히려 모르던 사람까지 알게 돼요. 그럴 바에야 서로 가만히 묻고 지나가는 게 낫겠죠.”

       “그 말은 즉….”

       “교내에서 누가 뭐라고 생각하건 크게 상관없다는 뜻이죠. 당장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이 있거든요.”

       “그 급한 일이라는 게?”

       “말씀 못 드립니다.”

        

       큰일 났다. 대화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아무튼 전 이만 가볼게요.”

        

       에테르도 이걸 알고 있는 듯했다. 자신에게 유리한 지점이 도래하자마자 서둘러 대화를 끝내버렸다. 어떻게든 안젤리카에게서 빠져나가려는 속셈이었다.

        

       그리고 안젤리카는, 그 이상으로 나서지 않았다.

        

       ‘여기서 무슨 짓을 하더라도 같은 방법으로 도망가겠죠.’

        

       괜히 상황을 악화시켜서 좋을 거 없었다. 

        

       안젤리카는 가만히 서서 에테르가 걸어가는 방향을 지켜보았다. 금안족 소녀가 향하는 곳은 황성의 북서쪽이었는데, 저 방향에 뭐가 있었는지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버멜 호르데가 묵고 있는 여관.

        

       ‘설마 집에 들락거릴 정도로 서로 친한 사이인가요!’

        

       동아리 부실에서 장시간 밀회를 나누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한쪽이 다른 쪽의 집에서 머무르는지는 아직 몰랐다.

        

       틸레트 아카데미의 모두… 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수가 버멜과 에테르의 관계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 짧은 사이에 금안족과 엘프가 어떻게 친해질 수 있었는가.

        

       옛날 옛적, 틸레트에서 각각 수석과 차석으로 졸업한 뒤 마왕군을 격퇴하고 결혼까지 한 용사와 성녀의 전설을 그대로 계승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걸까.

        

       의문이 한둘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둘 다 수준급의 외모를 지녔다. 딱 그거 하나만으로도 교내 여학생들의 술안주가 되기에는 충분했다.

        

       ‘앗.’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으니 어느새 버멜의 집 앞이었다. 안젤리카는 서둘러 근처 수풀에 몸을 숨겼다.

        

       똑똑. 에테르가 현관문을 두들겼다.

        

       “야, 나 왔어.”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이 열렸다. 그 안에서는 훤칠한 키를 한 엘프가 눈을 비비며 나타났다.

        

       버멜 호르데. 여자애 여럿 울리고 돌아다녔을 법한 외모의 엘프였다. 개연성이 충만한 얼굴에, 안젤리카조차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였다.

        

       “아, 어. 돌아왔구나. 미안, 금방 준비해서 나갈 테니까.”

        

       에테르는 현관 앞에서 10분간 기다렸다. 일반인에게는 지루한 시간이겠지만, 잠복 취재가 습관화된 안젤리카에게는 수첩에 메모 몇 줄 끄적이다 보면 금방 지나가는 시간이었다.

        

       이내 버멜이 외투를 걸치며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가자.”

        

       두 사람은 착 달라붙어서 이동했다. 그 모습에 안젤리카의 손이 덜덜 떨렸다.

        

       진짜, 저렇게만 보면 연인 맞는데.

        

       아닌가? 팔짱을 안 끼고 있으니까 아직은 세이프라고 봐야 하나?

        

       안젤리카는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채로 이동했다. 버멜과 에테르가 향한 장소는 다름 아닌 틸레트 아카데미였다.

        

       두 사람은 연성 동아리 부실, 그중에서도 부실 한쪽에 딸린 자그마한 단칸방으로 들어갔다. 예전에 문예부에서 의뢰를 받았을 때 확인했던 장소와 똑같은 곳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왜 다른 곳도 아니고 동아리 부실이죠?”

        

       사적인 장소라면 저기 말고도 많았다. 가령 버멜이 살던 원룸에서 놀아도 됐었을 것이다. 

        

       그런데 굳이 저런 곳에 들어갔다는 건….

        

       “집은 방음이 안 되나?”

        

       파렴치한 생각에, 안젤리카의 얼굴이 일순 붉어졌다.

        

       화끈해진 얼굴을 식히고자 뺨을 옷 소재로 쓱쓱 문질렀다. 그러자 왜인지 모르게 셔츠 소매가 축축해졌다.

        

       그때였다.

        

       “뭐가 방음이 안 돼요?”

        

       방심하고 있던 틈에 들려온 제삼자의 목소리에, 안젤리카는 몸이 용수철처럼 앞으로 튀어 나갔다. 비명을 지르지도 못한 채 놀란 새가슴을 진정시켜야만 했다. 

        

       그녀가 숨을 고르며 뒤를 돌아보자 웬 소녀 두 명이 서 있었다.

        

       “어라. 신문부 부장 선배님이네!”

       “토츠펠 선배님, 여기서 뭐 하세요?”

        

       둘 다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아니, 모르는 게 이상하지. 안젤리카는 전교생 이름을 거의 다 외우고 있었으니 말이다.

        

       “살리에르, 그리고 셸커니 양이네요.”

       “저희를 아시네요?”

       “그럼요.”

        

       안젤리카는 검지를 입에 가져가며 쉿, 하는 소리를 냈다.

        

       “지금 취재 중이에요.”

       “취재?”

       “버멜하고 에테르 말인가요?”

       “어라. 아시는군요? 혹시 두 사람이 비밀 연애를 하고 있다는 소문, 들어보셨나요?”

       “여기 돌아오자마자 바로 들었어요. 그것 때문에 저희도 여기 왔는데….”

        

       버멜과 에테르의 주요 밀회 장소가 연성부 부실이라는 것쯤이야, 알 사람은 다들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남의 얘기를 엿듣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안 되겠어, 프레이. 우리 그냥 돌아가자.”

       “여기까지 와 놓고? 에이, 잠깐은 상관없다니까!”

        

       두 사람이 쑥덕거리는 사이에, 안젤리카는 어느덧 철문 앞까지 기어갔다.

        

       이 두꺼운 문만 넘으면 두 사람이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무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불시에 문을 열고 들어가는 건 몹쓸 짓이었기에, 문 앞에 귀를 대고 있는 것으로 갈증을 채우기로 했다.

        

       “엿듣는 게 그렇게 큰 죄는 아니라니까! 다른 사람한테 얘기만 안 꺼내면 돼!”

       “그렇지만….”

       “난 아까 문예부 애들이 했던 말이 궁금해서 못 참겠어. 싫으면 너 먼저 숙소로 돌아가 있으라구. 내가 여기서 듣고 난 다음 알려줄 테니까!”

       “하아….”

        

       어느덧 프레이에게 설득된 로테까지 철문에 귀를 대고 기다렸다.

        

       […….]

        

       소리가 들린다. 한없이 작았지만, 희미한 목소리가.

        

       세 사람은 더욱더 숨을 죽였다. 프레이는 자신이 눌러쓰고 있던 커다란 고깔모자를 슬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야, 벗기지 마!]

       [뭐 어때. 깐다고 금방 닳는 것도 아니거든?]

       [잠깐…! 만지지 말라니까! 거긴 민감해서 잘못하면 위험하다고!]

       [진짜 괜찮다니까. 이런 건 원래 경험자에게 맡기는 거야.]

        

       “내가…. 지금 뭘 듣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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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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